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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아우르는 온화한 감성
김준(문학박사, 서울여대 명예교수)
1.
함 세린 시인은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온 몸으로 감지하면서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에의 그리움을 절절히 읊어낸다. 온갖 감성으로 무장해 완벽한 듯 보여도 인간이 홀로 고고할 수 없다는 것을, 정지된 듯 보이지만 우리가 눈길을 두는 세상 곳곳에 따사로운 자연의 숨결이 넘쳐난다는 것을, 시인은 숨을 내쉴 때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확인시킨다.
아무리 그립고 아름다운 것이라도 인간의 언어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더러 외로움에 사무칠 때, 그리움에 목이 멜 때, 시인이 불러내는 자연의 품에 기대어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화사한 봄빛 아래 잎보다 먼저 피어
오만한 눈빛으로 향기를 뿌리더니
어이해 터질듯 피는 그리움만 보내나.
- <탱자나무1> -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리움 묻어두고
해맑은 웃음지어 노오란 갑옷 입네
사랑에 취해버린 몸 찔린다고 아플까.
- <탱자나무 2> -
<탱자나무1>과 <탱자나무2>는 그 빛깔과 이미지로 상큼한 봄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봄바람에 가슴이 일렁이듯 사랑에 취해 설레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화사한”,“오만한”,“향기”,“그리움”등으로 봄의 정취가 그득히 전해지는 <탱자나무1>과 “그리움”,“해맑은”,“노오란” 등의 시어로 생동감이 더해지는 <탱자나무2>가 서로 짝을 이루면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쌍둥이처럼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두 그루의 나무인 듯 각각의 밀어를 주고받는다. 연작의 형태로 감정을 폭넓게 전달하되 한 수 한 수 간결하게 정돈하고 마무리해 남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흔히 나무에 빗대어 인생을 논하곤 하지만, 대단한 진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무가 보여주는 일관성과 진정성에 위로받고 동화되어 간다. 나무를 향하는 눈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아니겠는가.
그토록
간절하게
피워낸 너의 꿈은
이별의
순간에도
꽃불로 활활 타네
몸 사른
불꽃 잔치는
비구니의 눈물 꽃.
- <단풍> -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는 단풍의 강렬하고 붉은 빛깔로 천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특별한 재주와 신기한 능력을 가진 존재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그 열정을 “이별의/ 순간에도/ 꽃불로 활활 타네”라고 노래한다. 단풍이 드는 가을은 조락의 계절로 이어진다. 잎이 시들기 직전 단말마의 비명처럼 꼭대기까지 빨갛게 불태우는 절정의 순간, 우리는 탄성과 함께 숨을 멈춘다. 그러나 시인은 예리한 눈으로 이면을 바라본다. “몸 사른 불꽃 잔치는/ 비구니의 눈물 꽃”이라는 종장이 처절하게 폐부를 자극한다. 감탄을 자아낼 만한 자연현상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오만함을 반성하며 서서히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가는 것일 터이다.
싱그런 푸른 잎을 여름내 뽐내더니
새 옷을 갈아입고 먼 길을 간다 하네.
한 세월 벗는 그 날도 저리 가면 좋겠네.
- <은행 잎> -
그런가 하면 <은행잎>은 차분하고 숙연하다. 빨간 색과 노란색이 주는 심상이 달라서일까. 조용히 옷을 갈아 잎은 은행잎은 소리 없이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어느 실바람에 우수수 여행길에 오른다. 그렇게 담담하게 비우고 떠날 수 있다면 불타고 들끓고 일렁거리던 삶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자연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우고 받아들이는 우리는 그래서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2.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며 존재의 위상을 드높이는 갖가지 능력들을 내세우곤 한다. 언어라든가 도구라든가 역사적으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계기들이 있어왔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능력일 것이다. “첫사랑”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감정은 우리가 아니면 느낄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감성의 범주에 속한다.
세상의 소리들이
연분홍 빛이 되어
때로는 영화처럼
때로는 음악처럼
눈감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고 보이네.
- < 첫사랑 4> 전문 -
인간이 위대한 것은 서로 나누고 함께 할 줄 알기 때문이리라. “눈감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고 보이네.”라고 종결되는 함 세린 시인의 첫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울림으로서의 사랑의 감정을 결연하게 받아들이는 구도자의 자세와 유사하다. 마치 주어진 운명처럼, 그렇게 다가오는 첫사랑의 열병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허갈진
일상에서
한 뼘쯤 비켜서면
잘 익은
햇살 한 줌
내안에 등불 켜내
숨겨진
불 항아리는
어느 빛에 터질까.
- <그리움> 전문-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첫사랑과 달리 “그리움”이란 오랜 세월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와도 같다. 시인은 “불 항아리”라고 표현한다. 우리 몸 안에 깃들어 있다가 “일상에서/ 한 뼘쯤 비켜서면” 어김없이 밖으로 그 형체를 드러내 우리를 우울하게도 달콤하게 가슴 서늘하게도 만든다. 인간의 일상이란 매우 빠르게 쉼 없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기에 우리는 거의 매 순간 그리움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어쩔 도리 없이 놓쳐버리는 존재와 시간의 자취들을 되살려 내고자 목이 메지만 그리움의 대상과 흔적들은 늘어만 간다. “잘 익은/ 햇살 한 줌”을 가슴 속에서 다스리는 일이야말로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첩경이 아닐까 곰곰이 되새겨 본다.
앞으로
가는 것만
길인 줄 알았었네.
굽어진
등뼈 마디
세월은 숨이 차고
그 아픈
잇꽃 빛 흔적
돌아서니 보이네.
-< 회귀(回歸)> 전문-
우린 인생의 행로란 앞을 향해 가도록 만들어졌으니 때때로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의 육신은 앞을 보게끔 태어났고, 동요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곤 한다. 시인은 회귀의 장면에서 “잇꽃 빛 흔적”을 발견한다. 국화과의 이년초로 알려진 잇꽃은 주황색의 꽃을 피우며 꽃부리는 붉은 물감의 원료도 쓰인다고 하니,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흔적의 빛깔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인생이란 그다지도 쓰디쓴 고행의 길이란 말인가. 굽어진 등뼈를 한 채 가쁜 숨을 고르느라 잠시 뒤돌아보니 거기엔 객혈의 흔적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더라…
함 세린 시인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때때로 돌아다보며 고쳐 내디디라고, 더러는 길 위에서 숨도 고르고 심호흡도 해 볼 일이라고 우리의 신경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뿌리치지 말고 발걸음을 늦춘 채 서성거려보는 것도 좋으리라. 먼저 바람 맞은 사람의 경험담에 귀 기울이며 옷깃을 여미는 지혜도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덕목 중 하나이리라.
3.
함 세린 시인은 산천초목에서부터 명승고적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어우러진 경관을 폭넓은 관심과 시선으로 아우른다. 시조의 형식으로 담아내기에 적절한 경관들이 도처에서 시인들을 유혹하지만, 그 이미지를 운율에 담아내기는 녹록하지 않다. 그저 글자 수나 맞춰 초 ․ 중 ․ 종장을 엮어 내려가면 되려니 생각하다가는 곧 벽에 부딪친다. 게다가 경관을 노래하려면 안 보고도 본 듯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에 더욱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러니 늘상 마음에 시조의 운율을 달고 사는 게 지름길이리라. 그러다 숨이 턱 막히는 절경에 이르면 작은 보따리 풀어 주섬주섬 담아내는 것도 넉넉한 시인의 풍류일 듯싶다.
영호정 그림자도 눈길에 누워 있고
눈 덮인 호수에는 오색등 졸고 있네
어느 뉘 푸른 시절도 보았다고 말할까.
- <의림지의 밤 1> -
시인은 겨울밤 의림지의 고즈넉한 정경을 소리 낮춰 그려내고 있다. 그림자도 누웠고 오색등도 졸고 있는데, 인적이 끊긴 의림지의 눈 덮인 정경 속에서 시인은 “푸른 시절”을 되짚어내고자 한다. 영락의 계절을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보는 시인의 시선이 뾰족하다. 곧 새벽이 오리니 이제 시린 눈으로 눈 덮인 호수를 기억해야 할 시간이다.
시조는 그 운율과 정서로 인하여 산사를 표현하기에 유리한 점들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속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장면들과 차별화되는 고유한 속성 때문에 시조 편에 오롯이 담아 보고픈 감응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훼손이 덜 된 자연경관 속에 더불어 존재함으로써 산사는 시공간적으로 시의 영역에 가깝다. 함 세린 시인도 <겨울 부석사>를 시조의 운율에 담아 옮겨왔다.
어느 날 불현듯이 찾아간 겨울 산사
삶의 빛 다 지우고 홀로 선 은행나무
짐 벗어 좋은 삶 뵈며 함께 웃자 반기네.
찬바람 시린 얼굴 창백한 낮달 하나
안양루 추 끝에 풍경을 매어 달고
어머님 아련한 자태 얼비치는 저녁놀.
- <겨울 부석사> -
“겨울 산사”,“은행나무”,“찬바람”,“풍경”등 전형적인 시어들에“낮달”과“어머님”,“저녁놀”등 함 세린 시인 특유의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산사의 마당, 그 그림을 완성한다. 산사는 그 위치와 풍광만으로도 우리를 정화하고 숙연하게 만든다. 시인은 산사의 시각적 심상들에 풍경 소리를 결합하여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공감감적으로 생동하는 노래를 읊어낸다.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고, 그 마음을 노래로써 소통하려는 마음은 곧 힘이요, 능력이다. 이차원의 평면 속에 갇혀 있곤 하는 절경들을 삼차원으로 불러내는 마법의 주문을 시인들은 알고 있는 게다.
4.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는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휴식처와도 같다. 사실상 신식 어머니들의 이미지는 매우 빠르게 변해왔고 각기 풍부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터라 어머니의 위상도 종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마음 한구석에 과거로부터, 아니 태초로부터 있어왔음 직한 원초적 모성의 어머니를 갈구하고 염원한다. 어머니라고 소리 내어 부를 때, 그 울림으로부터 배어나오는 어머니의 온화한 미소와 숨결은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요, 환상일지라도 아직 마음이 벅차오르게 만든다.
어머님 바느질에 긴 밤은 깊어 가고
고운 손 나비되어 한 뜸씩 날아대면
호박단 저고리 섶은 꽃잎 되어 웃는다.
- <어머님> -
시인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어머님의 바느질하는 모습과 그 솜씨를 추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시인은 넉넉하고 풍성한 유년의 뜰을 가꾸어온 듯하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손끝에서 나비도 날고 꽃잎도 벙긋한다. 시인은 바느질하는 어머니 옆에서 곧 맵시를 드러낼 저고리를 꿈꾸고 고대하며 쏟아져 오는 잠을 쫓았으리라. 추억이 빈곤한 요즈음,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것들로 가득 채워진 세태 속에서 소박하고도 애틋한 어머니와의 정경이란 이제 먼 기억의 저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아득한 일인 것 같다.
햇살이 눈부신 날 가만히 열어 보면
투박한 숨결 속엔 해묵은 사연들이
어머님 목소리인 듯 도란도란 들리네.
- <장독대> -
어머니를 얘기하자면 어머니의 손맛 또한 빠뜨릴 수 없는 화두다. 장독대에 마련해 두신 항아리들의 크기와 모양만큼이나 다양한 장독들이 제각각 다른 자기만의 맛을 담고 묵묵히 세월을 견뎌낸다. 적당한 햇볕과 온도를 감내하며 더할 수 없이 맛깔스런 장이 되어 가듯, 장독대에는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쌓여온 삶의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어머니가 정성스런 손길로 매만져온 장독대에서 시인은 어머니의 냄새와 숨결을 감지한다. 변하지 않고 오래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돌아보고 지탱하게 해주는 기둥일 것이다.
누구의
마음인들
아프지 않았을까?
노랗고
파란 마음
하얗고 붉은 마음
흩어진
마음을 모아
하나 되니 고아라.
- <조각보> -
자투리 천을 모아 기워내는 조각보에 시인은 각양각색의 마음을 실어 보낸다. 삶에의 상처로 울긋불긋 얼룩지고 더러는 멍이 들어 얼룩덜룩 색깔을 지닌 마음들이지만 한 자리에 모여 각자 제몫을 거드니 보기에도 마음이 뿌듯하다. 하염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조각보 작업이 얼마만큼 형체를 드러내고 완성되어 갈 때, 그것은 어느 누구의 공로가 아니라 작은 조각들의 모두의 힘이요, 그것들을 하나로 엮이기까지 인내해 온 시간의 자취이리라. 함 세린 시인은 작은 것으로부터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과 추억을 일깨워 냄으로써 고단한 세상사를 훈훈하게 다독거린다.
5.
인생을 한 마디로, 또는 시조 한 수로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러나 인생의 각 고비마다 위기마다 살아온 길을 되새기며 인생에 대해 일단의 정리를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바다>란 우리가 알고 있는 대상 중에서 우리를 아주 작아지게 만드는 존재이다. 규모의 어마어마함으로부터 시작하여 태초의 근원과도 같은 물의 뿌리이자 종착점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위력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 앞에 서면 만감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목 놓아 울고 싶어 찾아온 남녘바다
수평선 그 너머엔 어둠이 넘실대고
바다는 나보다 먼저 소리쳐 울고 있네.
미움도 그리움도 모두 다 버리자고
백사장 십리 길을 맨발로 걸어 봐도
멍울진 가슴속 상처 용틀임만 쓰나니
떠나고 오지 않는 내 님의 눈빛들은
스쳐간 파도처럼 흔적도 사라지고
바다는 마음 다하여 용서하라 전하네.
- < 바다 > -
함 세린 시인은 바다의 충동과 파도에 주목하며 거기에 자신의 가슴속 갈등을 투영한다. “목 놓아 울고 싶어 찾아온 남녘바다”는 나 이전에 이미 소리쳐 울고 있었다. 광활한 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포용할 수 없는 울분이란 대체 무엇일까. 시인은 거친 물결 위로 가슴 속 “용틀임”을 다 띄어 보내야 함을 직감한다. 바다는 미움도 그리움도 다 실어 보내고 고요해지라고 한다. 바다가 밀어다 주는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다스리고자 한다.
우리에게 바다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두려움과 환상을 동시에 갖게 되는 존재이다. 많은 자연재해가 그로부터 발생하고 숱한 목숨들을 훑어간 역사 또한 수다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포용한 듯 다시금 평정을 되찾곤 하는 바다의 위력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사소한 감정의 기복에 몸서리치곤 하는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미소 짓기도 한다. 시인의 가슴속에 펼쳐진 바다가 더러 동요할지라도 끝내는 자기 모습을 투영하리만큼 잔잔한 호수가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꽃구름
피어내며 숨지는
가을날은
돌이켜
풀어보니 미움도
사랑인 걸.
돌아선
먼 하늘 끝에
붉은 강이 흐른다.
- <노을> -
노을은 어떤 의미에서 바다와 유사한 이미지를 갖는다. 수평선에서 서로 만나 시작과 끝을 공유해서일까. 하늘과 바다는 가없는 시공간의 영역이다 보니 항상 동경의 시선으로 응시하게 된다. 혹자는 핏빛 하늘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보랏빛이라고 언급했다. 함 세린 시인은 “돌이켜/ 풀어보니 미움도/사랑인 걸”하는 회한으로 하늘에서 붉은 강을 본다. 각가지 마음의 빛깔들이 뒤엉켜 빚어내는 노을은 강렬하면서도 영롱한 빛을 띠며 보는 사람의 심금을 자극한다. 멀고 먼 하늘, 가없는 하늘 언저리로 흐르는 붉은 강에 시인은 보내야 할 것들을 실어 보낸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정화하면서 우리는 시선을 되돌려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함 세린 시인은 시공간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선으로 인간사의 요소요소를 두루두루 보듬고 읊어낸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우주와 자연의 섭리 및 그 경개까지 담대한 시선으로 펼쳐 놓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인간의 마음이 흐르는 살아있는 터전으로 이끌어 낸다. 화려한 수식보다 진솔한 감정 표현에 공들이 작품들 속에서 훈훈한 서정을 맛보며, 함 세린 시인의“시조의 뜰”이 번성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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