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해 농작물을 수확하기 좋은 계절이다. 서울에 살면서 텃밭 하나 가꾸지 못 하는 형편이지만 그 대신 에너지 농사를 짓는다. 바로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해서 말이다.
내가 조합원으로 있는 에너지협동조합은 태양광발전을 이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종의 공동 경작지다. 400명 넘는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출자해서 만든 2기의 태양광이 서울 도심의 학교 옥상에서 가동 중이며 오늘도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햇빛발전소 1호기가 에너지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어느덧 1년 3개월이 지났다. 이쯤 되면 한 번 지금까지의 소출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협동조합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찾아보며 나름대로 셈을 해봤다.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로서 우리가 지난 9월까지 생산하고 한국전력에 판매한 전기는 6만3천652킬로와트시(kWh)였는데, 한해 스무 가구에 공급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전력 생산량 그래프를 보면, 낮 시간이 짧은 겨울과 무더운 여름에는 과연 발전량이 다소 떨어졌다. 햇볕도 좋고 날씨도 선선한 봄과 가을, 그러니까 바로 요즘과 같은 날이야말로 태양광 발전의 최적기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수확이 아니라 한창 경작에 공을 들여야 하는 농번기인 셈이다.
사진은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우리 협동조합이 태양광으로 만든 전력을 적은 양이나마 공급하려는 이유는 화석연료나 우라늄을 태워서 만드는 전기를 그만큼 덜 쓰게 하기 위해서다. 대형 발전소에서 장거리 송전선을 타고 오는 대신 지붕 위 발전소에서 수확 가능한 ‘로컬 에너지’가 점차 늘어난다면 나와 이웃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시민들이 나서서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하게 됐을까. 정부와 전력기업에만 맡겨둬선 일이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석탄화력과 핵발전소를 계속 늘리려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그저 스위치와 콘센트를 쓰면서 전기요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소비자’로만 머물고 싶지 않아서다. 그 전기요금을 가지고 정부와 전력기업은 더 많은 온실가스와 방사능 공장을 짓기 바쁠 것이 뻔하지 않은가!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 사회,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는 정의는 곱씹을 때마다 새삼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남루하기만 재생에너지 현실에서 태양광과 풍력의 확대는 지금 이대로라면 매우 더디거나 10년 뒤에도 여전히 ‘비현실적인 에너지’로 취급될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 생산과 공급 방식을 관료의 손이 아니라 스스로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햇볕 조건이 좋아 높은 태양광 생산량을 기록하는 요즘이지만, 에너지협동조합들은 정작 전력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목은 한숨을 부른다. 우리 협동조합과 같은 소규모 발전사업자는 대형 발전회사와 계약을 맺어 전력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지만 번번이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여기서 말하는 공급인증서 계약은 12년 동안 고정된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할 수 있게 해서 발전사업자의 장기 수익을 보장해주는 핵심 장치다.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공급인증서 입찰계약 시장에서 태양광 발전사업자는 자신이 원하는 판매가격을 스스로 써내야 한다. 이 게임의 법칙은 낮은 가격을 써낼수록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공급인증서 판매사업자 선정 평가 기준’에서 판매가격 배점이 100점 만점에 70점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서로 눈치게임을 하며 판매가격을 낮게 써낸다면, 대용량 태양광으로 설치단가를 낮춘 대규모 사업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소규모 발전사업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바닥을 치는 경쟁’에 참여하는 도리밖에 없다.
문제는 낮은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공급인증서 판매계약에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데 있다. 정부가 정해놓은 태양광 용량은 너무 적은 반면 태양광 발전사업자는 크게 늘어 공급인증서 판매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하기만 하다.
2014년 상반기 경쟁률은 4.23 대 1을 기록했는데 전체 4,530개 중 선정된 발전소는 843개에 불과했고, 이런 경쟁률은 2012년 제도 시행 이후 계속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부는 높은 경쟁률을 마치 자랑처럼 발표하는데 그만큼 수천 개의 태양광 발전소가 애초 기대했던 수익을 돌려받지 못 하고 있다는 의미다. 4월에 준공된 우리 협동조합의 50킬로와트 햇빛발전소도 올해 상반기 계약입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더욱 황당한 대목은 10월에 예정된 입찰 시장이 아예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를 두고 ‘잠정 휴업’이라는 점잖은 표현을 썼는데, 전력회사들이 태양광 전력을 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전력회사를 철저한 ‘갑’으로 만드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붕과 옥상의 짜투리 공간을 이용해 태양광으로 분산형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시민 사업자들이 넘어야 할 벽이 여전히 너무 높다. 소규모 재생에너지를 대상으로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재도입(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와 병행하는 다른 국가들도 많다)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커져가는 이유다.
정부는 왜 과감한 재생에너지 목표를 설정하지 않을까. 발전소 온배수 논란 등 ‘신재생’에너지 개념이 오염돼있다는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는 최근 발표된 에너지기본계획(11%, 2030년→2035년)과 산업자원부 계획(공급의무화 목표 10%, 2022년→2024년)에서 연이어 후퇴했다.
정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관건은 재원 부족이라는데,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 도입 과정에서 정부는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항목을 신설해 전기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이를 다룬 <전기신문> 보도를 보면, 당시 지식경제부 신재생에너지과장은 “RPS(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 시행 첫해인 2012년에는 공급의무자의 의무이행비용 보전을 위한 재원을 전기요금 총괄원가에 반영할 계획이지만, 앞으로는 국민수용성을 감안해 별도 항목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RPS 이행비용 보전 방안)고 언급했다. 이어서 “당시 지식경제부는 전기요금에 별도 항목을 신설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기재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전기요금 총괄원가에 반영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대목도 읽을 수 있다.
어차피 전기요금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 비용을 충당한다면 총괄원가라는 모호한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명확히 볼 수 있도록 항목을 표시하자는 발상이다. 독일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전력 구입에 따른 추가 비용 발생분이 자동적으로 정산돼 일반 전기요금으로 흡수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정부 보조가 아니라 최종 전력소비자인 국민들이 재생에너지 지원제도의 운영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독일 하인리히뵐재단의 <에너지 전환(The German Energiewende)> 보고서를 보면, 가구 평균 지출액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인한 추가비용은 유로 5센트(약 7천원)로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나머지 전기요금은 2.2%로 재생에너지 비용의 5배 수준이다.
전력공급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매우 높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 정도의 비용은 부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보고서는 “독일에서 재생에너지가 비싼 이유는 제반 비용이 즉각 별도항목(추가요금)으로 지불되는 반면, 석탄이나 핵발전의 경우 대부분이 간접적으로 예산항목에 반영돼 세금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와 전력회사도 모호한 재원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용의 보전이 부담스럽다고 계속 생색만 낼 것이라면 차라리 시민들에게 지불 의사를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다. 에너지협동조합과 같은 재생에너지 동맹도 지금의 재생에너지 제도를 획기적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데 주저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