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 루돌프 폰 예링 - 권리를 위한 투쟁(1872)
권리는 법학의 핵심 개념임
예링
- 19세기 최고의 법학자
- 베를린 대학에서 로마법 연구로 박사 학위 취득 한 뒤 <로마법의 정신> 을 서술
- 개념 법학의 비판자
- 개념 법학은 법의 체계성과 완결성을 중시하고 법 개념간의 위계를 강조
- 기존의 법규범에서 이론적 조작에 의하여 일반적 법개념을 추출하고, 또한 일반적 법개
념 상호간의 체계적 연관을 확립하는 데에 전념하고, 체계가 서게 되면 사건을 개념에
포섭하는 논리적 조작만으로 모든 사건은 즉시 법률적으로 해결된다고 믿는다
법의 생명은 투쟁
-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예링)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는 한(세상이 존속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 된다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자유권은 처음부터 주
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현대 권위주의 체제 안에서는 보장되지 않는다
- 이러한 자유권은 목숨을 걸고 투쟁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서 가능해짐
- 결국 현재의 법으로 누리는 권리는 투쟁의 결과이다
- 마틴 루터킹의 흑인 인권 운동을 통한 민권법(1964)
- 영국 여성들의 투표권(영국 국왕 조지5세가 참석한 경마대회에서 여성운동가 에밀리 데
이비슨이 깃발을 들고 트랙에 뛰어 들어 사망함 ▷영화 서프러 제트
- 낙태권(1973)
-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노동삼권(5월1일)
법과 권리를 위한 개인의 투쟁
- 자기 권리를 위해 투쟁할것인가? 아니면 다툼을 피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할 것인가?
권리가 평화에 희생되거나 평화가 권리에 희생된다
-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1제곱마일의 척박하고 쓸모없는 땅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자신의 토지를 다 빼앗기게 될 것이다(독도)
- 주권의 핵심 중 하나는 국토
권리 침해에 대한 저항은 의무
- 소송으로 얻는 이익이 미미하더라도 반드시 소송을 하는 경우는 인격 그 자체와 인격적
법 감정을 침해하는 경우
- 인격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
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 공중전화기에 5원을 넣었는데 돈만 삼켜버리고 전화가 걸리지 않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
을 제기 – 많은 사람들이 겨우 5원 때문에 소송해서 얻는 이익이 뭔지를 묻자
동전 한푼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고정 수리에 무성의한 전화 당국과 불친절한 관리자를
일깨워주기 위해 고발 ▷정부가 제대로 일하게 함
- 권리가 침해되었을때 느끼는 도덕적 고통이 직업에 따라서 다르다는 점도 지적함
장교의 경우 명예에 대한 감정이 가장 발달되어 있고 농민의 경우 노동과 소유권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상인의 경우 신용에 대한 비난을 받으면 분개
▷ 당시에 이런 인사이트를 가졌다는 것도 놀라움
- 예링의 소송은 아무때나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침해가 인격을 경시하는 데만 소
송을 함
- 화해나 조정이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실제로 눈앞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잘알고
있음
영국인과 오스트리아인의 비교
- 영국인은 오스트리아 인에 비해 바가지 요금에 대해 단호하다
이러한 권리의식 덕분에 영국이 발전했다 개인의 사소한 일에서도 스스로의 권리를 대담
하게 주장하는 민족이다
-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 조선시대에도 노비 다물사리(피고)와 양반 이지도(원고) 사이의 소송이 있었다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관노비)라고 주장했고 이지도는 그녀가 양민이라고 주장했다
- 말금의 죽은 남편의 사촌인 승운을 고발하는 사건(땅 소유에 대한 재판)
샤일록 다시 보기
- 베니스의 거상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가 돈 많은 상속녀 포샤와 결혼하기 위해 거액
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면서 돈을 못갚으면 심장에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베어 내기로 함
▷피가 적혀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샤일록은 재판에 패해 재산의 반을 국가에 몰수당하
고 나머지 재산의 반을 안토니오에게 배상하게 됨
- 예링은 이 재판이 베니스의 법률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함
샤일록이 유태인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그는 유효한 계약에 근거한 권리자의 권리 주장을 교묘한 논리를 구사해 막고 이 권리자
를 오히려 가해자로 만들어 강제 개종시키고 재산을 박탈한 사건으로 해석
콜하스의 다른 선택
- 미하일 콜하스의 선택(2013)
말거래상인 콜하스는 트롱카의 영지를 통과하는데 통행증이 없다는 이유로 말 두필을 압
류 당함, 이것을 계속 돌려달라고 했지만 말 상태가 나빠져서 돌아옴
재판을 걸었지만 트롱카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소송에서 패배
격분한 콜하스는 반란을 일으킴 나중에 마틴루터가 설득하지만 무산되고 반란은 결국 진
압당하고 교수형에 처해짐
- 예링은 살인범 콜하스를 오히려 우호적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재판이 공정하지 못하고
부패한 국가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
- 부패한 판사에 대한 처벌을 그린 유명한 그림(부패판사인 아버지의 가죽을 벗겨 의자에
덧 씌워 항상 긴장하면서 재판하라는 뜻)
사법살인
- 인간이 참아야 하는 어떤 불법도 신에 의해 임명된 관헌 스스로가 법을 파괴함으로써
범하는 불법보다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 국가와 사법이 콜하스의 정당한 권리를 애초에 인정해주었다면 이후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조봉암은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어 토지개혁을 주도함
이 토지 개혁으로 말미암아 남쪽의 농민이 북쪽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판단됨
- 그러다가 조봉암이 이승만의 경쟁자로 부상하자 간첩으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짐
(1959년)
- 인민혁명당 재건 사건으로 기소된 8명의 사형선고후 18시간 만에 집행
- 부러진 화살(2011)에서 판사 석궁 공격 사건
- 권리가 자기의 투쟁 준비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권리는 스스로를 포기한다
“현명함의 마지막 결론은, 날마다 자유와 생명을 쟁취하는 자만이 그것을 향유한다는
점이라”
7장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독재정권의 몰락과 기소되는 소크라테스
-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함
- 패전후 아테네에는 친 스파르타 정권인 30인 참주정권이 들어섬
아테네 인구의 5%를 죽임(크리티아스 정권)
- 이후 트라시불로스에 의해 민주정이 다시 북구됨
- 여기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소및 재판이 이루어짐
악법도 법이다?
- 주로 권위주의 정권에서 강조함
웃기는 것은 본인들도 악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
-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함
- “악법도 법이다”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죽일테면 죽여라 라고 말함
- 자신은 등애라고 표현하며 아테네가 안이해지지 않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고 함
- 배심원 500명중 280 vs 220 으로 유죄를 선언 이후에 형벌에서 사형선고를 받음
- 소크라테스 vs 민청학련 사건의 김병곤
- 사형 전 친구인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 그러나 거절함
사형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말 했다가 탈옥하는 것은 본인의 말을 바꾸는 것이라 완강하
게 거부의사를 밝힘
변명과 크리톤
- 변명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재판에서 자신을 사형으로 만든 법 자체를 악법으로 생각하
지 않았다 그리고 사법제도를 문명사회를 지탱해주는 지킬 가치가 있는 기본법으로 존중
했다 그래서 악법도 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권창은교수)
- 실정법적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복종한 것은 아테네 도시 공동체로서의 국법
과 법률 일반의 구속성이 갖는 정당성을 인정했다
사형을 당한것은 재판관(일부)들의 어리석음에 기인한 그릇된 판결에 기인한 것이다
(이정호 교수)
- 자신의 죽음은 법률의 희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판단의 희생물로서 죽는 것이라
고 함(조국교수)
- 그렇다면 악법도 법이라고 얘기한 사람은?
일본의 오다카 도모오(경성제국대학 교수) 이사람이 한국법학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기
때문 ▷2000년대초 공식적으로 수정 ▷2002년 교과서에서 수정
- 시민 불복종의 효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