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건너 거라사라는 지역에 도착했습니다(1절). 거라사는 가다라라고도 불렸는데, 베레아 지방의 수도이며 주로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에 도착하셨을 때 그곳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2절). 이 귀신 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지내고 있었고,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을 정도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3절, 4절).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자해(自害)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5절). 귀신에 매여 사는 자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통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그것이 눈에 확 뜨일 정도로 드러나 있지만, 눈에 띄지 않지만 내적(內的)으로 자기의 생각과 의지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탄이, 귀신이 움직여 가는 이들도 참 많습니다.
마가는 이미 귀신 들린 자들이 입을 열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드러내었다는 것을 기록했었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귀신 들린 사람도 예수님께 달려와 절하면서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드러냅니다(6절, 7절). 하나님의 대적(對敵)인 사탄과 귀신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이길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셨으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7절).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묻는 것은 “왜 여기에 와서 나를 귀찮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말입니다.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귀신들도 통제하실 수 있는 큰 권능의 하나님이시기에 귀신을 애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그 귀신에게 명하셔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기에(8절) 귀신이 예수님께 짜증을 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귀신에게 그 이름을 묻자 그 수가 많아 군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합니다(9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들은 귀신은 그 지방에서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10절), 그 옆에 있는 돼지 떼들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합니다(11절, 12벌).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들이 귀신 들린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갔고,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비탈길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沒死)하게 됩니다(13절). 귀신 들린 한 사람을 구하시기 위해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들을 몰사시키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취급하기 때문에 돼지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돼지를 키우는 자들은 거라사 지역에 거하는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에게는 꽤 큰 재산이었을 텐데,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몰사되는 현장을 보았던 돼지 치는 자들은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14절, 16절). 아마 돼지 치는 자는 삯을 받고 들판에서 돼지 떼를 돌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자기가 맡고 있던 돼지 떼가 모두 바다에 빠져 몰사했으니 매우 난감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돼지 떼는 몰사하였고, 귀신 들렸던 사람은 멀쩡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된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을 갖습니다(15절). 아무리 애써도 자기들이 통제할 수 없었던 군대 귀신 들린 자는 멀쩡하게 회복되었고, 자기들의 재산인 돼지 떼는 모두 잃어버렸으니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 보인 반응은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달라고 간구한 것이었습니다(17절).
물론 그들에게 돼지 떼는 매우 소중한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 들려 고통받던 사람이 회복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을의 다른 문제들도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을에 회복을 위해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가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는다면 귀신 들린 자가 온전히 회복된 것처럼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회복보다 자기들의 재산이 상실된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떠나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예수님께서 내 문제를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 결과로 때로 내게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게 소중한 그 무엇 때문에 천하의 그 무엇보다 더 존귀하신 주님을 잃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돼지 떼에 대한 손해 때문에, 생명의 주인이시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더 머무셨다면, 그 지방에 하나님의 나라가 제대로 전파되었을 텐데, 그 축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돼지가 예수님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을 따르길 원했습니다(18절).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가족들에게,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고(19절), 이 사람이 데가볼리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일을 전파하여 예수님을 알렸습니다(20절). 그 지역 사람들은 돼지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하였지만, 귀신 들렸다가 회복된 자를 통해 그 땅에 예수님에 대해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면, 그 놀라운 역사(役事)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는 예수님보다 돼지 떼를 더 소중하게 여겼던 거라사 사람과 같지 않은가 돌이켜 보게 됩니다. 어떤 손해가 생길 수 있어서, 내게 불이익이 생길까봐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보게 됩니다.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설령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예수님만을 온전히 따르는 결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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