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빌보드 입성 이후, 변죽을 두드리는 몇 개의 단상
금은돌
1. 침입 가능한 상품
입대를 하려고 한다. 입대를 결심하기 전, 그 상품에 대한 뉴스와 동영상을 수없이 살펴보았다. 아니, 살펴보려고 하지 않아도, 이 상품은 국제적인 뉴스 감으로 등장해서, 자주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등장하곤 한다. 그 이름도 특이하여,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최근에는 그 상품의 국제적 지위를 국가적인 성과로 동일시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몇 달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국위선양의 한 방편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이것은 폭발하는 상품이다. 유동하는 상품이다. 이 상품에 감염되는 즉시,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 브랜드 상품에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우리는 세계적인 친구들을 갖게 된다. 입대하는 순간, 세계적인 전산망 안으로, 블랙홀에 빨려들 듯이, 흡인된다. 아미(ARMY)가 된다.
방탄소년단. BTS.
이것은 상품인 동시에 상품이 아니다. 이것은 친구이고 소울 메이트이고, 이것은 게임이자 흥얼거림이고, 스마트폰이자 집착이다. 이것은 소비 가능한 브랜드이자 향유 가능한 연대의 작용이다. 이것은 사랑이자 정치이다. 정치를 행하는 줄 모르는 방식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실천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운동성을 갖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고귀하고 근엄한 문학을 어떤 틀에 가두고자 하지 않는가? 전문적인 문예지에서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아이돌을 다뤄? 이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자세로 훈계를 두려고 하는가? 고귀하고 전문적인 예술로서의 문학이 최고라고 하는, 수직적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가? 비판을 하려고 하면, 일단 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무시하는 것만으로, 대두되고 있는 문화현상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지 않을까?
2. 서사(敍事), BTS가 작동하는 힘
BTS는 일반 아이돌이 아니다. 그들의 음악은 일반 아이돌 음악의 제작과정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기존 아이돌 그룹이 진행하는 성공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만의 매체를 개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한다.
BTS는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문학을 활용할 줄 아는 아이돌이다. 특히 《화양연화》에서 시작한 문학적 내러티브의 차용과 흡수는 《WINGS》 시리즈, 《LOVE YOURSELF》로 가면서 더욱 정교해졌다.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앨범의 바탕이 된 문학작품을 찾아 읽는 일이 기본이 되었음을 아미들은 알고 있다.
그 밑바탕에 ‘서사(敍事)’가 흐르고 있다. 나는 BTS의 세계적인 흐름 위에 우뚝, 선 가장 중요한 이유로 ‘서사’를 꼽고 싶다. 흔히 사용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설명해야 할까?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노래와 영상으로 만들어 관객과 소통한다. 시각적인 영상과 청각적인 노래, 각 멤버들의 매력적인 외모, 개별 플랫폼의 활용, 수시로 공유되는 그들의 사적인 일상생활 등은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아미들의 시각과 촉각, 청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연대한다. 소리판에서 소리꾼이 아니리를 던지면, 청자가 추임새를 넣는 방식으로, 음악이 전하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이 ‘현장성이 갖는 공기의 밀도’를 회복시켜준 것이다. (업그레이드 된 '판소리 문화'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와 그것을 수용하는 청자가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속도가 빨리진 것이다.
누구나 접속 가능한 인터넷 플랫폼의 확장이 실타래 같은 ‘서사’를 이어나가는 물질적 기반이 된다.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 서사의 한 작용점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모듈의 흐름 속에서, 서사의 장(場) 안에서 감정이 달아오르고, 흥분하며 공감하고, 비판하는 등,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처럼, 출렁거린다. 각자 되새김질된 서로의 이야기를 인터넷의 플랫폼에 올린다. 이들은 공유하고, 재창작하고, 스트리밍하고, 번역하고, 다른 나라의 방송국에 사연을 올린다. BTS의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즉각적으로 반응 영상을 퍼뜨린다. 스핑크스 앞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자가 되어, BTS의 음악을 향유한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BTS의 음악이 바로, 자기 자신의 노래로 곧바로 치환된다. 향유의 속도와 공유의 힘이 빛의 속도와 같이 전염력이 높다. 이런 방식으로 BTS의 서사는 문화기술(CT)과 결합하여, 변주, 활용된다. 수용자들은 새로운 창작 방법으로, 다른 영상을 만들어낸다. 아마추어적이어도 상관없다. 그들은 서로의 군대가 되어, 서로를 격려하는, 온라인상의 친구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서사 전략을 짜는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가와 같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인 지도를 그리는 자이다. 다이어그램이 형성되고, 리좀적인 접속 가운데, 수많은 애벌레 주체들이 움직인다. 그들의 물질적 기반 위에서, 열쇠를 가지고 있는 기획사는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힘과 그것을 유통시키는 전략 이외에, 네트워크를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열쇠이다.
열쇠의 비밀은 그들이 서사를 한꺼번에 풀지 않는다는 점이다. BTS는 그들의 아미(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아미들(독자)은 자발적으로 앨범이 제시하는 음악과 영상 메시지 속에서 퍼즐을 맞추는 게이머가 된다. 인터넷 독서 공간에 리뷰를 올리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네트워크 ― 이미지 전략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동참하는 이유는 BTS의 ‘서사’가 성장서사를 중심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BTS와 대한민국의 아미와 세계 곳곳의 아미와 관객들은 함께 격려하며 성장한다.
서사의 작은 출발은, 7명의 개인 성장 서사이다. 7명의 멤버가 소설 속의 한 명의 캐릭터로 설정된다. 각 멤버의 개인사는 성장 소설과 흐름으로, 갈등과 고통과 난관을 극복하는 같은 개인 서사로 짜여 진다. 이 과정에서 데미안의 캐릭터가 설정되고, 개인적인 상징이 주어진다. 개별적인 마크와 기호, 메타포가 탄생한다. 10대들, 멤버들의 개성이 발현되고, 개인 특성이 존중되면서, 멤버 각자가 성숙한다. 이들의 음악은 이 과정을 온전하게 음악 안에 담는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각 앨범마다의 서사를 펼친다.
대하 드라마나 드라마 미니시리즈의 구성처럼,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중심 키워드와 주제가 있다. 이전의 앨범과 차후의 앨범이 전체 서사의 흐름을 타고 작동한다. 전체 서사의 흐름 속에 각 앨범의 주제, 상징, 주된 이미지, 음악적 색깔, 노래가사가 설정된다. 그 가운데 7명의 멤버 개인 서사가 얽히고설키면서 전체 구조가 만들어진다. 성장서사의 주된 이야기는 10대 청소년들의 성장통과 아픔과 실패와 좌절을 기본으로 했기에, 우선 청소년 팬덤이 강력한 힘을 갖는다. 청소년에서 청춘으로 성장함에 따라 학교 이야기에 머물러 있던 틀을 깨고, 사랑 이야기와 사회 비판 서사로 뒤바뀐다. 그 가운데 개인 서사의 특이점들을 빼놓지 않는다. 이 관계는 프랙탈 현상과 같다. 각 개인의 서사가 전체의 성장 서사 안에서 작동하고, 부분이 전체와 닮은 형태로 맞물리며, 세계 곳곳에 위치한 아미들과 온라인 상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BTS의 성장과 전 세계에 포진된 아미들의 성장 역시 부분과 전체 닮은 형태로, 각 앨범의 방향과 지향성은 나선 형태를 그린다. 나선의 방식으로 회오리치는 것이다.
3. 설치 영상의 몇 가지 구성 요소
나는 BTS의 뮤직비디오가 “온라인설치영상”이라고 말한 이지영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녀는 BTS와 들뢰즈의 이론을 연결시킨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영화감독의 작품이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영상 작가가 미술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갤러리에는 비디오인지 실험 영화인지 구분 짓기 힘든 영상 작품들이 설치되고 있다. 네트워크 플랫폼에서만 체험되는 시각 예술인 넷아트는 방탄 현상을 가능하게 한 예술과 네트워크의 결합의 산물이다.” 전위적인 영상예술처럼 뮤직비디오가 작동하는 것이다. 장편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도 않고 영상, 단편 영화도 아닌 음악 영상, 그러나 전체 흐름을 타고 있는 서사의 영상이 각지 퍼즐 조각처럼 연결되어 플랫폼에 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플랫폼(유튜브)에서 진행되는 “온라인 설치영상”작업과 같다.
그러므로 가사가 영상과 스토리라인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노래 가사를 따라가는 방식의 뮤직비디오는 초창기 뮤직비디오 스타일일 뿐이다. 영상과 노래 가사는 두 줄기의 층위로, 거울과 같이, 상호작용을 한다.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춤과 시각적 효과로 관객을 흡입한다. 그 다음, 강렬한 비트와 아이돌의 잘생긴 얼굴에 시선이 머문다. 그러다가 차차 가사가 마음에 새겨진다.
각 7명의 개인 성장 서사와 각 앨범의 성장 서사가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각 앨범에서 7명의 개인적인 상징이 설정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각 역할에 따라 장면에서 등장하는 사물이 달라진다. 동시에 개인의 성장 서사는 나선형의 위상학적인 구조, 떠남과 돌아옴, 탈주와 재영토화의 나선형 구조를 그린다. 각 앨범은 이러한 개인의 성장 서사 위에, 입혀진다. 앨범의 순서에 따른 서사 역시 일종의 드라마 미니 시리즈의 방식으로, 각 앨범이 연결된다. 하나의 주제,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 7명의 캐릭터가 움직이고, 갈등하고, 퇴행하고, 성장한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핵심 키워드는 전체 내러티브를 이끄는 핵심 원리로 작동한다. 《학교》 시리즈, 《화양연화》 시리즈, 《LOVE YOURSELF》 시리즈 등이 이러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고통’과 ‘퇴행’ 현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한 번에 사랑과 희망이 성취되지 않는다. 자기 파괴와 성장과 꿈을 찾는 일, 기존 사회 시스템이 강요하는 관습적 발화방식을 비트는 일, 사고방식을 뒤트는 일을 동반한다. <불타오르네>와 같이, 불과 물의 물질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끝까지 내달리면서, 나무 한 그루, 날개 하나, 눈동자 하나를 발견한다.
다음으로, 그들의 음악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문학 작품이 있다. 지금까지 자주 거론되는 문학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제임스 도티의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어슬러 K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 중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부분에서는 <화양연화>, <아가씨>, 영화 <문라이트> <설국열차> 등이 언급된다. 사실, BTS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단지 문학이나 영화뿐만이 아니라, 미술작품이나 신화 등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봄날>의 노래 가사와 영상과 안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 곡으로 진입하기 전에, 주변을 어슬렁거려보고자 한다. <봄날> 앞에 실려 있는 음악 <NOT TODAY>이다. 이 시점에서 <NOT TODAY> 노래를 예로 꺼내는 이유는 <봄날>이 발표되었을 즈음의 한국의 정치상황을 알기 위함이다. BTS의 음악은 당시 한국사회의 정치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NOT TODAY>는 광화문 촛불정국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우선 가사를 살펴보자.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 새 세상 너도 원해 / Oh baby yes I want it/ 날아갈 수 없음 뛰어 / Today we will survive / 뛰어갈 수 없음 걸어 / Today we will survive / 걸어갈 수 없음 기어 / 기어서라도 gear up / 겨눠 총 조준 발사”
촛불 정국으로 광장이 뜨거울 때, 광화문에 나가면, 들을 수 있는 구호가 연상되는 가사이다. 80년대 광장에서 불렀던 민중가요의 가사라고 해도 낯설지 않다. ‘새날이 오면~ 새날이 오면’ 혹은 ‘그날이 오기까지’ 혹은 ‘타는 목마름으로’ 등등의 익히 아는 민중가요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2017년 겨울 광장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80년대 거리를 점유했던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섰던 사건들을. 그 광장에는 다양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민중가요뿐만 아니라 대중가요가 함께 흘러넘쳤다. 청소년들은 10CM의 <아메리카노> 가사를 바꿔 부르며 즐거운 방식으로, 거리를 점유했다. 젊은이들의 감각은 무거운 투쟁의 방식이 아니었다. 누구나 마이크 하나만 있으면,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할 수 있었다.
BTS의 노래가사는 현대판 민중가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는,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가요 말이다. 이러한 80년대 민중가요와 같은 내용의 가사가 거칠게 들리지 않는다. 리듬이 바뀌고, 세련된 비트가 찍힌다. 그 요란한 장단과 박자에 청년들이 춤을 춘다. 선동적인 춤이 아니라, 대중적인 힙합이고, 합이 잘 맞게 단련된 군무이다. 거칠고 단순한 정치적인 감각을 세련되고 아름다운 감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NOT TODAY> 뮤직비디오에서 ‘학익진’의 형태의 안무를 구성한다.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 새 세상 너도 원해” 라고 노래 부르면서, 7명의 청년들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패배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대열을 맞추어, 전열을 가다듬는다. 다시 일어나 노래 부른다. 함께 달리며, 뛰고, 걷고, 기어서라도, 연대하며, “새 세상‘을 꿈꾼다. 학익진의 모형으로 안무를 짜면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잊지 않았다. 2016년 11월 19일, 광화문에 모였을 때 제안했던 ‘학익진’ 작전 지도를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펼쳤던 유명한 전법을 말이다. 여기서 무엇을 위해 싸우고, 누가 적이었던가를 말이다.
4. <봄날>, 질문하는 괴물
슬슬,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까?
이 곡은 어슬러 K 르 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다. <봄날> 뮤직비디오(온라인 설치영상)는 문학작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이 영상을 보는 사람이라면, 낯설 것이다. 소설의 기본 구조를 알지 못하면, <봄날>의 가사를 그냥,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정도의 사랑 노래로 파악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오멜라스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곳에는 사원도 없고 죄인도 없고, 인생에 대한 승리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 침묵이 있다. 지하실 방, 창문도 없는 굳게 닫힌 문 안에 어린 아이 한 명이 살아있다. 그 아이는 정신박약아이다. 그 아이를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다.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침묵한다. 그 아이의 지하실 방과 자신들의 행복한 삶을 맞바꾸는 계약을 인정한 사람들만이 오멜라스에 살 수 있다. 그 지하실 방을 인정하고 묵인해야만, 오멜라스라는 행복의 공간에서 머물 수 있다. 이러한 “계약은 엄격하고 절대적이다. 그 아이에게 친근한 말 한마디조차 건네면 안 된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선택해야 한다. 무능력하게 현재 풍요로운 삶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떠나야 할 것인가. 질문이 던져진다.
그곳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지하실의 아이를 본 청소년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차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관문을 통과해 도시 밖으로 곧장 빠져나간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서 <봄날>의 설치영상은 떠나는 이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기차가 등장한다. 오멜라스 지하방에 감금된 아이가 있는 것처럼, <설국열차> 의 머리 칸 밑에 작은 아이가 비밀처럼 숨겨져 있다. 몸집이 작은 아이만이 열차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엔진을 돌려왔던 것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아이들이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에 의해서 감금된 아이들, 시스템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이다. <봄날>의 영상은 소설과 영화, 두 서사를 교차 편집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두 서사를 BTS가 가지고 있던 흐름의 서사로 다시 엮어낸다.
설치 영상은 수수께끼와 같은 방식으로 편집된다. <봄날>의 영상은 ‘질문하는 괴물’ 스핑크스(Sphinx)와 같다. ‘질문하는 괴물’은 자유자재로 ‘되기’가 가능한 그 무엇이다. 몸이 사자가 되기도 하고, 독수리의 날개가 돋기도 하고, 뱀의 꼬리를 가질 수도 있는, 다양한 변신체이다. 이 설치 영상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상징물들을 영상 곳곳에 배치한다. 전체 아는 관객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향유자라면, 능동적으로 길을 떠난다. 수수께끼를 낸 “질문하는 괴물”을 만난 수용자들은 영상 속의 퍼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수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오이디푸스가 된다. 자발적으로 책을 찾아 읽고, 능동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유튜브에 업로드 한다. ‘질문하는 괴물’ 찾기를 즐기는 수용자들이 발생한다. 수용자들은 스스로 수많은 것들이 되어보는 과정을 거친다. 표면적인 서사 뒤에 가려진 수수께끼를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수께끼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물음에 곰곰이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 현재- 여기에서 질문을 찾고 답해야 한다. 작게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청춘들에게, BTS의 영상은 ‘질문하는 괴물’처럼 작동한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희생을 침묵으로 처리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몇몇 능동적인 수용자들은 직접 실천한다. 영상을 제작한다. 해당 설치 영상을 번역한다. 아미들끼리 연대하여, 영상을 스트리밍 한다. 팬덤 속에서 그들은 창의적인 전문가가 된다. 특출한 능력자들은 해당 인터넷에서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수많은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수용자는 제2, 제3의 창작자가 된다. 아마추어여도 상관없다. 그들이 생산하는 자가 되어, 성숙해 간다. ‘질문하는 괴물’을 제대로 만났을 때, 수용자들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연습을 한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가장 훌륭한 공부는 바로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봄날> 영상에서 첫 번째 질문이 발생한다. “왜 낙원을 떠나려고 하는가?” 연이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타난다. 이기적인 차원에서 자신만을 위해서 누리는 평화와 행복이 타당한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이 던져진다.
두 번째 질문이 발생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외면하면 될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떠나는가? 떠난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층을 바꾸는, 다른 영토로 몸을 이동하는, 탈영토화 하는, 탈주선을 그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실천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봄날> 영상에서 청춘들은 기꺼이 떠나는 자가 된다. 희생양으로 선택되는 존재들이 가장 약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타자를 외면할 수 없기에, 그들은 기차를 정지시키고, 문을 열고 나간다. 방탄소년들의 7명 멤버들은 아이의 희생을 확인한 이후, 달라졌던 것이다. 이러한 서사를 깔고 <봄날>의 노래 가사가 입혀진다.
보고 싶다 /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 너희 사진을 보고 있어도 / 보고 싶다 / 너무 야속한 시간 / 나는 우리가 밉다 / 이젠 얼굴 한번 보는 것조차 / 힘들어진 우리가 / 여긴 온통 겨울 뿐이야 /
이 곡의 전체를 이끌고 있는 중심 가사이다. 부재하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주술을 거는 것처럼, 부재하는 존재를 반복적으로 호명한다. 노래의 파트를 나누어 부를 때도, 각 멤버들은 모두 주인공이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봄날>이 들어있는 앨범 전체의 제목이 바로 “You Never Wake alone.”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내러티브가 끼어든다. BTS 7명의 이야기이다. 개인 내러티브가 등장하면서,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장소에 수수께끼가 숨어있다. 세탁실 벽걸이 시계가 그러하다. 9시 40분. 세월호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던 시각이다.
BTS 멤버 중의 한 명인 ‘지민’이 세탁기 위에 앉아 있다. ‘지민’의 무릎 아래 주인 없는 신발이 놓여 있다. 이 신발은 뮤직비디오 앞부분에서 지민이 바닷가에서 가지고 온 운동화이다. 운동화는 부재하는 이, 죽은 이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된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재하는 이들이 항상 7명의 멤버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일종의 유령주체처럼.
부재하는 존재 때문에, 이들은 행복한 상황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각자의 빈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통점을 발견한다. “8월에도 겨울이 와 / 마음은 시간을 달려가네 / 홀로 남은 설국열차 / 니 손 잡고 지구 반대편까지 가 / 겨울을 끝내고파 / 그리움들이 얼마나 /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희생한 자들, 부당한 폭력에 희생당한 자들, 부재하는 이들이 돌아오지 않기에, 현재의 세상이 겨울과 같이 차갑고 견디기 힘들다.
일상의 장소인 세탁실에서 통증은 다시 확인된다. 세탁기는 세월호가 진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 세월호 선박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바깥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창문을 연상시킨다. 일상 장면이 굳이, 세탁실인 이유가 그것이다. 창에 갇힌, 회오리, 선박의 창문과 유사한 세탁기 뚜껑, 그 뚜껑으로 보이는 바닷물, 누군가 바깥에서 꺼내주지 않으면, 절대로 꺼내지지 않는 생명,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는 저 어린 생명이 바다에서 가라앉았던 것이다. 우리는 세탁기 라벨을 유의 깊게 보아야 한다.
아주 작은 글씨로 “Don’t Forget”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을. 옷은 세탁기 바깥으로 꺼내지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와도 그 옷을 입어 줄 존재자들이 없다. 옷의 무덤이 발생한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물질이 쌓여간다.
실체를 가질 수 없었기에, 온전한 시체마저도 건져 올릴 수 없었기에, 죽은 이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했던 유가족의 슬픔이 담긴 옷더미가 쌓인다. 옷더미들은 작품이 된다. 죽음을 환기하는 작품, 사라져가는 것을 잊지 못하게 하는 기억.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옷더미 산은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의 설치작품 「사람들」을 차용해 온 것이다. BTS의 아이들은 지하실 방으로 내려간다. 지하실 방에 혼자 남아있던 아이 곁으로 다가간다. 지하실 방에 남아있던 아이와 다른 아이들이 뒤섞인다. “You Never Wake Alone.” 결코 혼자가 아니다.
단 하루도 너를 / 잊은 적이 없었지 난 / 솔직히 보고 싶은데 / 이만 너를 지울게 / 그게 널 원망하기보단 / 덜 아프니까 / 시린 널 불어내 본다 / 연기처럼 하얀 연기처럼 / 말로는 지운다 해도 / 사실 난 아직 널 보내지 못하는데
팽목항에서부터 서울 시청 광장, 광화문까지 이어졌던 노란 리본의 물결을 기억할 것이다. 노란 리본을 잊지 않고 있는 독자들은 알 것이다. 기억은 습관처럼, 몸으로, 저장하는 일임을. 카메라의 사각형 모양처럼, 잊지 않기 위해, 세포 속에, 세월 속에, 역사 속에 기록해 놓는 것임을. 지배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억 저장소가 필요한 것임을. 안산시 단원구에 기억저장소가 살아있는 것처럼. 장소의 연대가 필요한 것임을. 역사 앞에서 증언하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어야 함을. 놀이기구에 새겨진 글귀처럼, “You Never Wake Alone.” 연대가 필요하다.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흩어져 있던 젊은이들은 설국열차를 정지시키고, 기차의 옆문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아멜라스의 모순을 직시하고, 계약을 파기하고, 평화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모른 척 묵인해야 하는 모순을 깬다. 그들은 한 그루의 나무 앞으로 간다. 그리고 그 나무에 ‘운동화’를 걸어둔다.
벚꽃이 피나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 / 보고 싶다(보고 싶다) / 보고 싶다(보고 싶다) / 조금만 기다리면 / 추운 겨울 끝을 지나 /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꽃 피울 때까지) /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 머물러줘
부재하는 존재는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가?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되돌아오는가? 주사위를 던지는 시간이 언제여야, 긍정적인 에너지로, 생성의 기운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들은 영원회귀 할 수 있는 대상인가? 그들도 긍정적인 생성의 존재로, 다시 영원회귀 해야 하지 않을까? 벚꽃이 핀다. 벚꽃은 긍정적인 생성의 기운을 가진 존재이다. 겨울의 고통을 통과한 존재자이다. 그 끝을 향해 달려갔던, 희망의 피어남이다. 시스템에 의해 희생당하는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답은 없지만, 다시 올 또 한 번의 봄/우연에 모든 것을 걸고, 가장 사랑하는 운명의 조합을, 만들어 봐야 한다. “다시 봄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기원한다. 나무에 신발을 걸고, 그 신발에서 꽃이 필 수 있기를,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지도록, 생명의 나무에서 재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염원과 주술을 거는 것이다. 불가능한 봄날이 가능한 봄날이 되도록, ‘보고 싶다’를 외친다.
‘질문하는 괴물’인 영상은 BTS의 실천(능동적 행위)에 맞추어져 있다.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순을 영상에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암시적으로, 단지 이미지의 연결을 통해 결과를 표현한다. 가사의 내러티브와 영상의 서사가 맞물리면서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메시지를 극대화 하는 것이다.
설치 영상과 달리, 무대 위 안무의 서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음악방송 무대 위에서 <봄날> 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BTS은 안무의 시작과 끝 부분에 배 모양을 만든다. 한 멤버가 생존 구조 요청을 보내고, 바깥의 생존자는 부재한 이를 그리워한다. 2016년 12월 즈음에 방영된 음악방송을 살펴보면 그러하다. 그 이후, 2017. 1. 21 신문보도에 따르면, BTS는 ‘세월호 참사 416 가족협의회’에 1억 원을 기부한다. 이 사항들을 살펴보더라도, BTS의 <봄날>이 현대사의 무거운 역사와 정치적인 사건을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 표현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대중음악의 보기 좋은 예라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프랙털 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한 사람의 서사가, 멤버 7명의 서사로, 설치영상의 서사로, 아미의 서사로, 확장되고 있었다. 좋은 노래 한 곡이 사회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의식적인 구호나 광장에서의 혁명적인 이슈나 거친 화염병으로 만들어진 불꽃을 동원하지 않는다. 감각적인 영상과 최신의 비트가 깔린 음악으로, 연대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온몸의 감각을 바꾸는 방식으로, 사회적/정치적 실천을 가능하게 만든다. 감각의 분할과 재편을 능수능란하게 작동시키는 것이다.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었던 기존 386 세대나, 훈련된 정치 그룹이 이들을 배워야 한다. 이들은 음악으로, 새로운 주체를 담론의 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새롭고 젊은 감각으로 새롭고 다층적이고, 리좀적인 연대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춘 가운데, 한국의 역사를 몰랐던 세게 곳곳의 팬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작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5. 무거운 것을 가볍게 풀어내는 기술
여기서 방향을 바꾸어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들에 대하여,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다. BTS는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해도 기존 문학 장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문인들은 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304 낭독회의 현장에서, 또 각자 작품 속에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무겁게, 때로는 오열하면서, 시를 읽어가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이것도 중요하다. 필요하다. 그러나 무겁다.
BTS가 세월호를 다루는 방식은 그 무게를 덜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무겁지 않다.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벼운 공간과 이미지를 배치하면서, 침입의 모럴을 허락한다. 그것을 허락하기 위해, 콘텐츠 구성에서 오히려 세월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단서를 숨겨둘 뿐이다. BTS의 기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타자들이 침입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가볍게 분위기를 마련해 두고, 화려한 영상과 감각적인 음악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온라인 매체에 떡밥을 던지듯이, 조금씩, 정보를 흘린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중소 기획사로 출발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자체 영상을 제작해 왔다. 그 플랫폼은 인터넷 공간, 즉 트위터와 유튜브였다. 아미라고 불리는 BTS의 팬들은 침입이 허락된 공간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성을 지닌 주체로 활동할 자리가 마련된다. 자발적으로 스트리밍을 하고, 영상을 공유한다. 리믹스영상을 제작하거나 전 세계 아미들의 리액션 영상 생산한다.
수수께끼를 내는 방식은 그 침입할 공간을 허락한다. 이것은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수평적 질서를 열어놓는다. 《화양연화》 이후, 보다 본격화된 이 방식은 팬덤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관객들이 수수께끼를 풀듯이, 퍼즐을 풀듯이, 각 뮤직비디오와 노래가사, 티저, 포스터까지, BTS의 일상생활이 담긴 영상까지, 거대한 물줄기와 같은 내러티브의 흐름 속에서 퍼즐을 맞춰나간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BTS가 발표하는 곡을 연구하듯이, 향유한다. 한 개인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의 연대로까지 나아간다. 이 어울리지 않는 문장을, 정말로 실현한다. 그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만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뜨겁게 활동한다.
“감각적 분배 방식을 고수하는 습속의 윤리”에 반하여, “그 분배 방식을 파열하고 침입하는 모럴(moral)”의 방식을 BTS 기획사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아직 분명하게 학술적으로 증명하거나 자료를 모아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음악 시장 안에서, 침입의 모럴을 허용하며, BTS라는 상품을 전 세계적으로 소통가능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나는 판단한다. 타자가 가하는 제한과 금기 속에서, 하나의 문학적 실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생성과 연대가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 문학적 사건을 발생시키는, 시작(始作)이 가능하다. 다양한 침입의 모럴은 감각적 파열과 발명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사건에 참여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음악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동성을, 우리 문학 판에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미학이 정치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6. 힘에의 의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들의 연대는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BTS와 아미의 공동 전선이 좀더 치열해 졌다. 최근에는 BTS 지민이 입은 '광복절 티셔츠'(또는 원폭 티셔츠) 때문에 일본 TV아사히 음악 프로그램 '뮤직 스테이션' 출연이 무산되었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빌보드 · CNN · BBC 등 외신에서 BTS의 일본 방송 취소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에 대해” 오히려 홍보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을 예측한다. 그의 글처럼 빌보드는 11월 9일 “티셔츠 그 이상 : BTS 출연 취소는 한국과 일본의 어색한 K팝 관계를 보여준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낸다.
이 사건은 연일 뉴스에 보도된다. 급기야는 정당에서 개입을 한다. 2018년 11월 10일에는 바른미래당 대변인이 BTS 일본 공연 취소에 대해 논평을 내놓았다. 이것을 BTS 기획사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포한다. 이런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 전 세계의 아미들은 재빨리 움직인다. 갈등은 아미들의 활동을 자극한다. (아마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BTS의 성장 서사에 충실한 새로운 에피소드를 얻고, 차후에 이를 활용하는 서사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 정도로 서사 전략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이제 BTS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그런데 이 힘에 의지가 어디로 갈 것인가, 조금 우려스럽기도 하다. 예술과 네트워크의 결합 산물인 BTS 활동은 이제 ‘BTS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각 인터넷 플랫폼에 올라온 설치 영상들은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여, 정치적인 활동을 개진하는 파워를 형성한다. 음악의 힘, 문화의 힘, 연대의 힘, 침입의 힘이다. 그러나 줄 위에 있을 때 조심하고 더 신중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이 예전의 BTS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실려 있다. 아이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낙타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더 탈주하라고, 응원하고 싶다. 뒤늦게 입대한 한 사람으로서, 나도 그들의 서사에 한줄기 개입하는, 생성하는 자가 되겠다고, 창작자가 되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