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장 21~25절 / 목회자의 유의사항
(디모데전서 5장)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묵상/딤전 5:21-25)
◆ 목회자의 유의 사항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21)
디모데는 각 교회에 장로를 세우도록 하고, 과부를 돕는 일과 교회 질서를 확립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때, 디모데에게 필요한 자세는 공평함이다. 공평함을 유지할 때, 그러한 규범들은 좋은 전통이 되는 것이다. 어떤 교사는 몇몇 아이들을 매우 따뜻하게 대하는데, 어떤 교사는 모든 아이들에게 아예 관심이 없다. 그런데 나중에 평가에서 후자가 더 평점이 높았다. 이유는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차별 받는 그 질투의 감정이 무관심에 대한 실망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22)
안수는 여러 이유로 행해졌다. 성경에는 병자를 낫게 하기 위한 안수(막 6:5), 축복하기 위한 안수(마 19:13), 임직을 위한 안수(행 6:6) 등이 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한 안수는 아마도 임직을 위한 안수일 것이다. 교회 장로나 집사를 세우는 일에 신중할 것을 주의 준 것이다. 한번 잘못 세우면,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약한 목회자들은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의 반발이 무서워서 임직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임직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날까 두려워서 맡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 한 명이 떠나면 되는 일이 두려워서 수많은 사람이 상처받게 만들 순 없다. 잘못된 임직은 교회 전체에 두고 두고 큰 고통이 된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22)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씀은 오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마치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이 단어는 '코이노네이 κοινώνει'인데,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 교제, 나눔'와 같은 어근으로서 '함께 하다'라는 의미다. 같은 단어가 갈라디아서에서는 '함께 하라'(갈 6:6)라고 번역되었다.
즉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데 동조하지 말라는 의미다. 오늘 본문에서는 문제있는 사람을 인수하는 것은 결국 그의 죄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조하는 일이 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역자는 의리나 친분 때문에 그런 죄에 연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늘날 여러 교회에서 장로가 목사의 비행을 눈감고, 악행을 덮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데,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그것은 장로로서의 직무 유기다.
◆ 신앙생활의 융통성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병 치료를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라는 이 말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말이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말이다.
그동안 바울은 형제들에게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14:21)라고 가르쳤다. 심지어 바울은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고까지 선언했다.
바울이 '고기나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것이 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문화에서 고기나 포도주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형제들을 실족게 할까 염려하여 한 권고였다.
즉 권고의 동기와 핵심은 '형제 사랑'이다. 그런데 그 숨겨진 의미를 모르고 사람들은 단순히 '먹지 말라'는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그것은 판단 기준이 되고, 불필요한 정죄를 일으켰다. 누가 포도주를 마시면 그는 즉시 불경한 자가 되고, 심지어 징계 대상이 되었다.
당시 분위기가 이러할진대, 바울이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파격적일까? 애초에 바울이 포도주나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그 이유를 모르고 단순히 먹지 말라는 말을 율법으로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대혼란을 야기할 만한 사건이다.
이것을 우리나라 교회의 예를 들어 비유해 보자.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담배 피우는 것을 죄악시한다. 그런데 만일 존경받는, 소위 신령하다고 알려진 목사가 기도 많이 하는 집사에게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권했다고 해보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리고 집사는 그 권고를 받아들여서 매일 기도가 끝난 후에 담배를 피운다고 해보자. 상황을 모르는 신자들이 어찌 충격받지 않겠는가?
사실 200년 전만 해도 담배는 치료제였다. 영국의 유명한 목사 스펄전은 골초였다. 그 이유는 당시의 의사가 그의 통풍 치료를 위해서 담배를 권했기 때문이었다. 담배, 술 이런 것이 오늘날 성도에게는 금기 사항이고, 나도 술, 담배를 하지 않지만, 이런 것을 경건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함부로 율법화하면, 불필요한 정죄를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오늘날 교회에는 이런 식으로 율법화된 것이 꽤 많다. 이러니 비본질이 오히려 본질을 공격하는 일도 생긴다.
적어도 바울은 본질을 알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쓰라'고 권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시에 바울 외에는 감히 그런 권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본질을 모르면 융통성이 없어지고, 메마른 종교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을 연구해야 할 이유를 본다. 복음을 모를 때는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얽매이고, 함부로 정죄하며, 핵심이 사랑임을 모르고 바리새인과 같이 꼭 막힌 종교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복음을 알면 훨씬 더 융통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사랑과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성도들은 거꾸로 이런 원리를 빌미로 삼아 자신의 술과 담배를 즐기는 일을 정당화한다. 복음을 제대로 알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
제 눈을 여셔서 주의 진리의 말씀을 보게 해주십시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진리의 빛 가운데로 행하며,
사람들을 복음의 원리에 따라서 올바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딤전 5:21-25 / 목회자의 유의사항|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