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한반도 위기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추리 소설이며, 등장 인명·지명·기관·사건 등은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4편]에서 계속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5화 황금 주사위]
언제부턴가 그녀는 프롬펠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넉넉한 부자가 된 그녀는 더 이상 프롬펠 곁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서는 인성도, 품격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의를 가장한 탐욕, 저급하고 치졸한 말투, 세상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광기, 돈을 벌면서도 비용 몇 푼에 벌벌 떠는 천박한 욕심.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진저리치게 했다.
이번 결산 보고가 끝나면 말하려 했다.
한 달 뒤, 그만두겠다고.
그러나 막상 그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녀의 예민한 촉이 먼저 브레이크를 잡았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판이 끝나지 않았어.’
보고가 끝난 뒤, 칼로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백을 집어 들고 일어나는 순간, 프롬펠이 손짓으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칼로스.”
그녀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아직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어. 앉으시게.”
정색한 그의 표정에 칼로스는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프롬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요즘 한국은 어떤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한 달 만에 주가지수가 약 50% 상승했습니다.”
프롬펠의 눈썹이 올라갔다.
“아니, 왜 그렇게 많이 올랐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지요.”
짧은 대답이었다.
칼로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프롬펠이 한국 증시를 갑자기 꺼낸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그는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는 내 친구들이 많이 있소. 빨리 한국에 계좌를 100개 이상 만들어야 하네. 가능한 한 빨리!”
칼로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쉽지 않습니다.”
“왜?”
“노출 위험이 큽니다. 계좌 명의도 문제고, 근저당 설정이나 백지 차용증 같은 안전장치도 필요합니다. 한계가 있어요.”
그녀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매매 자체도 이미 벅찹니다. 이젠 별도의 자산 운용사를 세우고, 소수 정예로 인력을 채용해야 할 단계입니다.”
하지만 프롬펠은 그녀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하여간 빨리 만들게.”
그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재촉만 했다.
그녀는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대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더구나 프롬펠처럼 욕심이 늘 말로 새어 나오는 사람이 말을 아낄 때는, 더 큰 먹잇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유를 알아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잠시 그녀를 노려보는 듯 했다. 그러나 곧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결국 자랑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칼로스, 절호의 기회가 왔어. 놀라지 마.”
칼로스는 숨을 죽였다. 프롬펠이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북한의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어요.”
칼로스의 눈빛이 번뜩였다.
프롬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먼저 무조건 핵 포기와 전면 개방을 하겠다는 거야. 하하하! 그리고 때를 봐서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거야. 하하하!”
순간, 칼로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는 단번에 그 의미를 낚아챘다. 계산 빠른 그녀의 머릿속에서 세계 지도와 증시 차트가 동시에 움직였다.
한반도. 핵 포기. 전면 개방. 2선 후퇴.
그리고 통일 가능성.
이건 단순한 외교 정보가 아니었다. 세계 금융시장을 뒤집을 수 있는 특급 내부 정보였다.
계산을 끝낸 그녀가 곧바로 반응했다.
“그건 통일이 예고된… 정말 엄청난 정보이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묻어났다.
프롬펠은 그녀가 반색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의 눈빛은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짐승 같았다.
칼로스는 곧바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승부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흥분이었다.
“하지만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프롬펠은 즉시 손을 내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마침 김 위원장이 먼저 강경 군부를 설득하고 회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3개월의 여유를 달라고 하더군. 하하하!”
칼로스의 눈빛이 깊어졌다.
3개월. 그 정도면 넉넉했다.
“그럼 충분하겠네요. 최근 한국에서는 국민 펀드, 지하궁전 프로젝트, DMZ 공동 개발, 금융 시장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한국 증시가 단기간에 폭등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 정보가 노출되면, 우리는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보는 신세가 될 겁니다.”
칼로스는 최고급 내부 정보의 외부 유출을 우려하고 있었다.
프롬펠이 즉각 일축했다.
“한국은 내가 전문가야, 칼로스.”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건 자네와 나, 그리고 김 위원장만 아는 일급 기밀이야. 전 세계에서 단 세 사람만 알고 있지. 한국 정부도 몰라. 걱정할 건 조금도 없네. 하하하!”
그가 호탕하게 웃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다.
‘비밀은 둘이 나누면 소문이 되고, 셋이 알면 공지야. 그건 절대 비밀이 아니지.’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생각에 발목 잡힐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정보는 너무 컸다.
혐오도, 불안도, 경멸도 잠시 뒤로 밀어 둘 만큼 컸다.
“그럼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
그녀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준비하겠습니다.”
승부사인 그녀의 가슴은 이미 요동치고 있었다.
한국 주식은 오랫동안 군사적 분쟁 지역이라는 이유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아 왔다. 실제 가치보다 30% 이상 저평가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많았다.
그런데 만약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된다면. 만약 통일이 먼 미래의 구호가 아니라 실제 가능성으로 시장에 반영된다면.
그 순간 한국 시장을 짓누르던 위험 부담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경제적 시너지와 폭발적인 기대감이 채울 것이다.
평균 주가지수가 두 배로 뛰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식이 두 배로 뛴다면, 파생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선물, 옵션, 스왑, CDS 등의 파생 상품의 수익은 수천 배, 어쩌면 수만 배의 수익을 안겨 줄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고급 정보였다.
프롬펠은 이미 이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권력과 특급 비밀을 독점한 그는, 대한민국 증시의 폭등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날이 눈앞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칼로스가 나간 뒤. 프롬펠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아무 조건도 없이 핵 폐기와 전면 개방을 결정하였습니다. 각하께 먼저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하하하.”
프롬펠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즉각 반문했다.
“정말이오? 어떤 조건도 없소?”
“그렇습니다. 그저 각하의 고견을 따를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과장된 어조로 그를 추켜세웠다.
프롬펠. 그 역시 질세라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정말 위대한 결정입니다.”
“다 각하께서 배려해 주신 은덕이지요. 하하하.”
“앞으로 위원장께 축복과 영광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미국은 위원장님의 그 큰 결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와하하하!”
김 위원장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말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저는 2선으로 물러날 생각입니다. 통일도 해야지요.”
프롬펠의 눈빛이 번쩍였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머지않아 제가 각하를 이곳으로 초청하겠습니다. 그때 저와 식사하시면서 와인 한 잔만 나누신다면… 그건 이미 노벨 평화상이 예약된 셈이지요. 하하하.”
프롬펠의 입가가 크게 벌어졌다.
“그건 내가 원하는 거요. 참 반가운 소리요. 와하하하!”
전화는 그렇게 웃음 속에서 끝났다. 다만 김 위원장은 석 달의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경 군부를 설득하고 회유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하나 더. 감동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두 차례 대한민국에 군사적 압박을 가할 예정이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그는 양해가 아니라 오히려 반색했다. 시장에는 더 좋은 기회였다. 공포가 먼저 오고, 평화가 뒤따르면 수익은 두 번 만들어진다.
한 번은 하락에서. 또 한 번은 반등에서.
프롬펠의 귓가에는 아직도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덤으로 노벨상이라… 흐흐흐.’
혼자 웃던 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끝이 책상 서랍을 더듬었다.
딸깍.
서랍이 열렸다. 그 안에서 오래된 가죽 주머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와 손때, 오랜 세월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프롬펠은 조심스럽게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래된 주사위 두 개를 꺼냈다.
황금 주사위였다.
사진출처:픽사베이.com
황금색의 사각 면마다 숫자의 각인이 미묘하게 달랐다.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을 지나며 더 음산하게 깊어진 광택을 품고 있었다.
프롬펠은 주사위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대선 전날, 이 녀석들이 7을 보여 줬지.”
그는 황금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다음 날, 나는 대통령이 됐고.”
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내 뜻대로 흘렀어.’
그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행운의 여신은 또다시 내 편일까?’
프롬펠은 긴장한 얼굴로 주사위를 움켜쥐었다. 손아귀 안에서 황금 주사위가 서로 부딪히며 작은 금속음을 냈다.
그 소리가 그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했다.
잠시 후, 그는 주사위를 책상 위로 내던졌다.
또르르르르.
덜그럭.
하나는 3.
다른 하나는 4.
합은 7이었다.
프롬펠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와우… 또 7.”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행운의 숫자지.”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미세한 광기가 비쳤다.
그러나 곧 다시 주사위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건 행운이 아니라 우연일 수도 있어.’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무엇이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해.’
그는 행운조차 검증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철저했다.
잠시의 침묵 후, 프롬펠은 다시 주사위를 잡았다. 숨을 고르던 그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자, 이번에도 7인가.’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니, 8이라면 더 완벽하겠지.’
그가 손을 들었다. 황금 주사위가 움직였다.
또르르.
주사위 하나가 먼저 멈췄다.
4였다.
또 다른 주사위는 책상 위를 크게 돌았다. 황금빛 육면체는 미묘하게 흔들리며 가장자리를 따라 맴돌았다.
순간 방 안의 공기도 함께 멈춘 듯했다.
덜그럭.
마침내 마지막 주사위가 옆으로 쓰러졌다.
프롬펠의 시선이 급하게 숫자를 훑었다.
‘앗, 또 4다!’
합은 8이었다.
그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미소가 터져 나왔다.
‘맞아. 행운의 여신, 그 은총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는 주사위를 내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중국에선 8이란 숫자가 재물의 상징이지. 흐흐흐.’
그의 웃음이 점점 커졌다.
‘아주 좋아. 최상의 조합이야. 이제 서양의 신은 행운을, 동양의 신은 재물을 약속했어.’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우~하하하!”
그는 행운도 검증하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오늘도, 그는 검증에 성공했다고 믿었다.
프롬펠은 황금 주사위를 힘껏 움켜쥐었다.
딸칵.
주사위끼리 부딪히며 작은 금속음이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번개가 창밖을 갈랐다.
은빛 섬광이 그의 얼굴을 비추며 방 안을 하얗게 물들였다.
프롬펠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독수리눈에는 아직도 섬광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좋아.’
그는 중얼거렸다.
‘오늘도 주사위는 내 편이야.’
행운의 끝에는 언제나 오만이 찾아온다. 행운은 늘 검증의 얼굴로 미소 띠고 나타나지만, 실은 가면일 때도 많다.
그것은 종종 함정이기도 했다.
인간 만사, 가장 위험한 것은 섣부른 확신이었다. 확신은 달콤했다. 그러나 때때로 파국은 바로 그 달콤함 속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오늘도 운명은 그의 편이었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프롬펠은 황금 주사위를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서랍 깊숙이 넣고는 천천히 서랍을 밀어 넣었다.
그가 서랍을 닫는 순간, 새로운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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