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43)-맥주 세병 안주 하나
- 인물은 인상이다 -
권대근
문학박사, 중 하북미대 객좌교수
수필 창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인물 표현의 기교다. 수필은 체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이지만, 그 체험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인물이다. 인물이 생생하게 드러날 때 글은 구체성을 획득하고, 독자는 그 속에서 현실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수필에서의 인물 표현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필이 지닌 개성적 특질, 곧 작가의 인격이 전면에 드러나는 장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표현상의 어려움과 깊이 관련된다.
소설이나 희곡에서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인물을 자유롭게 변형하고 과장할 수 있지만, 수필에서는 그러한 자유가 제한된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시선과 태도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글이므로, 인물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인품과 가치관이 드러난다. 따라서 인물을 묘사할 때는 사실성과 더불어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의 결함을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감정적으로 왜곡하면 글의 신뢰도와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의 인물 표현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와 미학이 결합된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수필은 비교적 짧은 분량 속에서 주제와 제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인물 표현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물을 통해 주제를 환기하고, 상황을 구체화하며, 정서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물 표현은 수필의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다. 수필이 언어 예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인물을 어떻게 포착하고 어떤 언어로 형상화하느냐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인물의 성격과 행동, 말투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할수록 독자는 그 존재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또한 인물이 처한 상황과 내면적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은 글의 주제와 정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인물은 표현 대상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존재다. 자연이나 사물과 달리 인간은 외형뿐 아니라 성격, 감정, 사고, 행동 양식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천태만상인 것처럼, 인간의 내면 역시 천변만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물 표현은 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라 할지라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흔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하듯이, 인간의 내면은 본질적으로 불가해한 측면을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인물 표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다 드러내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 인물을 특징짓는 핵심적인 요소를 포착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인물의 내적·외적 특징 가운데 몇 가지 본질적인 단서를 정확히 잡아내는 것이 인물 표현의 요체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인물 묘사의 묘법이라 할 수 있다.
인물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외형적 요소에 대한 관찰이 중요하다. 첫째, 인물의 연령과 성별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이는 인물의 행동과 말투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둘째, 키의 크고 작음은 인물의 인상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셋째, 체형이 비대한지 마른지에 따라 인물의 생활 방식이나 건강 상태를 유추할 수 있다. 넷째, 이마, 눈, 코, 입과 같은 얼굴의 세부 요소를 관찰하면 인물의 개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다섯째, 피부색이나 얼굴빛은 인물의 환경과 정서를 암시하는 단서가 된다. 여섯째, 말소리의 맑고 탁함, 빠르고 느림은 인물의 성격과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일곱째, 걸음걸이는 인물의 태도와 삶의 방식까지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외형적 특징들은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성격과 긴밀한 인과 관계를 형성한다. 예리한 관찰을 통해 포착된 외적 요소는 내적 성격을 암시하는 기호로 기능한다. 따라서 수필가는 겉모습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이면에 숨겨진 성격과 정서를 읽어내야 한다. 또한 옷차림, 취미, 교양, 직업과 같은 요소 역시 인물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물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드러내며, 성격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나아가 인물이 처한 환경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성격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독자는 이러한 맥락을 통해 인물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하며, 글 속 인물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편 인물을 묘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대상 인물을 정지된 상태로 단순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마치 초목처럼 한 자리에 세워 놓고 외형만 나열하는 방식은 생동감을 떨어뜨린다. 수필에서의 인물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즉, 사건과 상황, 그리고 서술의 진행 속에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이 조금씩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독자가 글을 읽어나가는 동안, 인물의 모습이 점차 형성되고, 읽고 난 뒤에는 마치 실제 인물을 만난 것처럼 또렷하게 떠오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인물의 말과 행동, 심리적 반응을 구체적 상황 속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단순한 설명보다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인물의 선택과 판단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직접적인 설명을 최소화하고, 행동과 말, 분위기를 통해 인물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물 표현은 ‘보여주기’와 ‘드러내기’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수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생동감을 살리는 방법이다. 결국 수필에서의 인물 표현은 관찰력, 선택력, 그리고 표현력의 조화 속에서 완성된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구현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순간, 수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과 삶을 깊이 있게 비추는 문학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