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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겪는 일이지만 휴가를 다녀온 첫 주일 설교는 참 부담스럽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설교라서 부담스럽고 휴가 동안 책을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것들, 또 묵상한 것들, 그런 것들을 잘 전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설교가 길어질까 봐 부담스럽습니다.
특별히 어제 우리 청소년부 학생들이 1박 2일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새벽 4시까지 자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설교를 길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부디 짧게 설교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원래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 보냄 받은 선교사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도 보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우리 역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이기에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보냄 받은 자들입니다. 독일어로 선교사는 미시오네아입니다. 미시네아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보냄 받은 자 그런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들, 그들이 선교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도 선교사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주님을 전하라고 보냄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또 어떻게 전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서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16절부터 41절에는 바울 사도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설교는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16절에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즉 원래는 이방인이었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들에게 무슨 내용을 설교했습니까?
설교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부터 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이 질문을 중심으로 설교를 펼쳐갈까 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설교하면서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광야 생활,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왜 이 일들을 이야기할까요?
이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형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애굽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때에 가족 전부가 이집트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40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렇게 400년을 살다 보면 이집트의 동화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왜죠?
17절이 말씀하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하나님의 붙잡아주신 덕택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기들과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분 나빴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자기들이 하기 싫은 일, 힘든 일을 시키기로 합니다. 이스라엘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가 된 이스라엘은 아주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비참한 노예 생활로부터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 그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런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 백성을 높여주시고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하나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숨어 있는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어떻게 해요?
권능의 팔로 인도해 내셨다고 합니다.
근데 그 권능의 팔이 뭡니까?
재앙입니다. 어떤 때는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강물이 피로 변해버리면 사람들이 마실 물이 없습니다. 다 죽는 거예요. 또 어떤 때에는 전염병이 돌아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전염병 때문에 경제가 무너졌습니다. 몇 년 전에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 폐해를 잘 압니다. 이런 어려움이 이집트 땅에 나타난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 재앙도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우박이 내리고 어둠 때문에 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교해 생각해 보면 올여름 유럽은 몇 차례의 폭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이집트에도 이상한 기후 현상이 나타나서 이집트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그런 환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재앙을 통해 공격하니까 이집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부원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는 것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일반적인 구원과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게 다른가요?
사람들이 자기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어려움, 위험, 그런 거로부터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것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사고 당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사고 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려움,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 그것을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성경은 죄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 죽음의 문제는 현대 과학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예수님을 통해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것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두 번째로 구원과 관련해서 광야 사건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18절입니다. 광야에서는 40년 동안 그들에 대하여 참아주시고 이집트로부터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광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그들을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국가 안보 문제로 전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전쟁이 발생했고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나라들이 강한 군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강한 군대 예를 들면 특수부대 같은 곳이죠. 싸움을 잘하는 특수부대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들은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가장 힘든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특수부대가 되는 겁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구할 수 없는 광야에서 가장 힘든 훈련을 시켰습니다.
왜 그런 훈련을 시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사로 그렇게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그렇게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은 어떻게 지켰는데 이스라엘로 지켰는데 생각과 문화로 삶의 습관이 이집트 사람들을 담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이집트 사람들의 모습을 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든 광야로 보내 힘든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장 나라,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사로 만들기 위해서 힘든 훈련을 시켰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구원은 그 영혼이 악에서 벗어나는 것, 죽음에서 살림을 받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이집트 죽음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도 중요하지만 구원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다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광야 훈련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시오.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부르고 있는 거예요.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그러나 지금 현재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 하나님이 본래 꿈꿨던 사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도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봅시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었을 때 그때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요한일서 3장 2절은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모습은 예수님과 같은 모습일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그런 분입니다. 그처럼 마지막 때 우리도 하나님을 닮은 사람, 하나님께서 만들고자 했던 그 모습,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만들고자 했던 사람, 가장 자기다운 사람 그 사람이 구원이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각자의 인생 광야에서 훈련하십니다. 때로는 영적 특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그런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가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완성해 가시는 것 그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적 기업이었습니다. 이 땅은 450년이 걸쳐서야 차지하게 됩니다. 신학자들은 이 약속의 땅을 하나님 나라 천국의 모형이라고 설명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곳입니다. 복된 곳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으로 사는 그 삶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모자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모두가 의롭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의의는 상대적인 의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내가 옳고 저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자기가 옳고 저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의의 개념을 가지고 살다 보면은 모든 사람이 억울해요. 저는 저 나름대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을 보니까 불평이 생겨요.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름대로 자기 나름대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저를 보니까 화가 납니다. 다들 의롭게 살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다 화가 나 있습니다.
제가 독일 남쪽을 갔다 왔거든요. 남쪽하고 북쪽하고 사람들의 차이가 있어요. 남쪽은 사람들이 잘 웃고 말도 잘하는데 북쪽 사람들은 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 뭔가 쿡 찌르면 욕을 할 것 같고 막 이럴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예요. 다들 화가 나 있어요.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 우리 모두를 의롭다 인정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좋은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곳이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눈물도 고통도 울부짖음도 없다고 합니다.
이런 영적 약속의 땅에 대한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더라도 이 땅 이후의 삶에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완성해 주신다 그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좋은 것입니다.
이 상의 내용을 한번 정리해 봅시다. 바울 사도는 보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구원 속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전해야 될 하나님의 구원, 우리가 살아야 할 하나님의 구원 그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문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문장의 주어를 보면 모두가 하나님께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우리를 인도해 내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께서 완성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뜻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뜻대로 가장 자기다운 사람으로 살도록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 이것 역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모두를 의롭게 해 주시는 그런 복된 곳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을 시간의 개념으로 정리해 보면요. 과거 현재 미래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우리를 2천년 전 예수님을 통해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보혜사 성령과 함께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또 미래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봅시다.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며 또 하나님의 구원을 몸소 누리며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번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바이엘은 지방을 여행했습니다. 늘 여름마다 한국으로 휴가를 가다 보니까 아이들이 독일 도시를 가본 곳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쪽에 여러 도시를 다녔는데 굳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다 보니까 중세, 근대 현대 독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져 있는 그런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도시를 보고 이동 중에 기차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인생도 저 도시 저 집들과 같았으면 좋겠다.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요?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고 늙어가고 마침내는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드는 가운데 스스로에 대해서 초라함과 허무함, 나약함 그런 감정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서글프시죠. 그러나 제가 본 도시는 오랜 시간 시간이 흘렀지만 그 도시의 건물들은 초라함이 아니라 고풍스러움이었습니다. 역사의 무게를 간직한 중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담고 있는 완숙함이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데는 그런 오래된 건물보다는 현대식 건물들이 더 좋을 것입니다. 에너지 효율도 높을 거고요. 사용하기에도 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가 그런 편리한 집들을 보기 위해서 먼 길을 그렇게 찾아가겠습니까? 시간의 무게, 역사의 흔적, 그리고 삶의 교훈,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찾아갑니다.
하나님께서도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를 보면서 너 약해졌다, 너 이제는 쓸모없어졌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가 인생을 통해서 깊어졌구나, 성숙해졌구나, 내가 인생에 대해서 정말 풍성해졌구나, 너의 삶 속에는 믿음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져 있구나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차를 잘못 타가지고 농촌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농촌 지역 한 군데 한 군데 다 세우다 보니까 아주 자세하게 보게 됐어요. 집들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곳은 지붕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어버린 그런 집들이 있었습니다.
왜 지붕이 무너졌을까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쳐주고 수리해 주고 새롭게 해주고 의미를 부여해 주는 그런 주인이 그 집에 있을 때 그 집은 역사를 간직하고 보존이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인생을 악으로부터 건져주시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시고,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허물어진 집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과 함께 내 삶 속에서 사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의 통치가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살아계신 그분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다스리도록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기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교회 학교 수료식이 있습니다. 이제 오늘로써 방학이 끝나요.
그리고 내일부터 새 학기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학교였어요. 교회 학교에서도 시간의 매듭을 하나 맺는 겁니다. 내일부터 어떤 이들은 입학을 하고 또 이미 졸업한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만 시간의 매듭을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아마 내일 아침부터 부모님들부터 당장 바빠질 걸요.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한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해당 사항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내일부터 일상이 달라질 겁니다. 개학한 학생들 때문에 버스 타는 게 힘들어질 거고요. 그리고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와글와글할 겁니다.
우리 모두 이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 겁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인생에 시간의 매듭을 메워주십니다. 새로운 해 새로운 달, 새로운 학기 이렇게 매듭을 맺고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살아라 그것을 말해 주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간의 매듭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움 앞에 서 있으면은 늘 마음이 좀 두려워요. 가보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시간은 언제나 염려와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 우리의 미래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그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주어진 이 시간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겁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하나님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시고 또 그 하나님과 함께 현실에 부딪히면서 가장 하나님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복되게 해주실 겁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