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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3부 사자 같이 담대하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8장 19-27
요절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재판 받을 때 재판장 앞에서 사자 같이 담대하셨습니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 때, 죄없을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혹 죄가 있다면 죄사함을 받아야 담대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성실로 살 때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후에 그는 은혜로 사는 사람이 되었고 사자 같이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회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채찍에 맞아도 담대히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베드로처럼 사자 같이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 공개적인 복음을 깨달을 때 담대할 수 있다.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대제사장의 장인 안나스는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실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직 제사장으로 로마에 의해서 폐해졌지만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안나스는 70명으로 구성된 공회를 불법으로 밤에 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예수님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전한 복음에 무슨 이단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재판하고자 그 교훈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드러내 놓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공개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은밀하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느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대답해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농사 용어나 시장 언어나 법정용어나 제사 용어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은 공개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공개하였지만 기독교가 타락하면서 복음을 특권층만이 독점하고자 하였습니다. 종교 개혁 전에는 성경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만 되어 있었고 히브리나 헬라어를 공부한 신부들만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게 금지 시켰습니다. 이를 통하여 신부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복음을 독점하고 종교적인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가톨릭에 반발하여 성경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기득권자들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을 불에 태워 화형을 시켰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박해에도 불구하고 몰래 숨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화형을 당하면서도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것을 쓴 소설이 김성한의 ‘바비도’라는 소설입니다. 15세기 초 헨리 4세 치하의 영국, 가톨릭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교회는 권력을 독점하려 라틴어 성경만 고집했습니다. 재봉 직공인 바비도는 영어 성경을 읽는 비밀 모임에 참여합니다. 종교 재판이 열리자 모임의 지도자들은 죽음이 두려워 신념을 버리고 권력에 굴복합니다. 바비도는 목숨을 구걸하는 그들의 비겁함과 교회의 거대한 위선에 분노합니다. 바비도 역시 체포되어 종교 재판에 회부됩니다. 주교와 헨리 태자는 그에게 생각을 바꾸면 살려주겠다며 달콤하게 회유합니다. 바비도는 이 부당한 권력과 타협하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결국 그는 당당하게 사형대에 올라 화형을 당하며 복음의 공개성을 지킵니다..
뮤지컬 중에는 국내 창작 기독교 뮤지컬인 《더 북(The Book): 성경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영어로 번역된 성경책을 발견하는 족족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에 대항해 주인공들과 롤라드(중얼거리는 자)들은 성경을 불태울 수 없도록 66권의 성경을 각자 한 권씩 통째로 외워 스스로 '인간 성경책'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들은 감찰사제들의 잔혹한 탄압과 화형의 공포 속에서도 외워둔 성경 말씀을 입에서 입으로, 생명에서 생명으로 전파하며 진리를 지켜냅니다.
당시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성경을 읽고자 하여도 당시는 돈이 없으면 성경을 읽지 못하였습니다. 당시는 성경 한권 값이 필사본으로는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3000만원 정도였습니다. 마틴 루더카 번역한 인쇄본 성경은 300만원 정도 하였다고 합니다. 부자들만이 성경을 사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성경 책 가격이 대략 3만원 정도 합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하여 성경을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 헬라어를 몰라도 ai를 이용하면 원어의 의미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번역본도 참 많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경은 싸다고 성경의 가치가 하락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공기나 물처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의 생명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나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목숨보다 더 값비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고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복음의 은밀성이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계시하여 열어주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에 ‘이 복음을 교만하고 지혜로운 자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같이 겸손한 자에게 나타나심을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같이 겸손하게 복음을 알고자하는 자에게 복음을 계시하십니다. 우리 주신이 어린아이같이 겸손해졌을 때, 복음을 뜨겁게 사모할 때, 우리에게 복음을 계시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가 비밀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복음 중에도 십자가의 복음은 사탄에게도 숨겨놓은 것입니다. 사탄은 십자가 복음을 몰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지혜 있는 자들, 능력 있는 자들, 도덕적인 자들은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입니다. 많이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지만 십자가에 눈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음란하고 사기 치고 고소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깨우쳐주시면 십자가는 가장 큰 지혜요 가장 큰 능력이요 가장 거룩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알 때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의 경험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나는 일학년 때부터 성경을 공부하고 십자가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5년 동안 그 의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다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예수님이 우리 대신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이 영접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갚았다는 말씀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 나는 11년 동안 고통하던 죄책감에서 자유을 얻었고 질병에서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때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받은 은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에 계속하여 십자가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까운 사람과 오래 갈등하다가 다시 십자가를 보았을 때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 주위에서 발길질하고 침뱉고 채찍질하고 못질하던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인간 갈등이 해결되었습니다. 십자가 찬송가만 불러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알아갈수록 사람들 앞에서 더 담대해졌습니다.
요즘 한 번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것은 우리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부터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토바이 사고, 난소암, 혈액암, 쇄골뼈 골절, 발끔치 뼈 골절이 연달아 일어나며 왜 이런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이를 잘 참고 견디면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를 알 때 어떤 고난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의로우신 예수님은 사자 같이 담대하십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으므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자 아랫사람이 손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 대제사장에게 공손히 대답하지 않고 당당히 대답했다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바른 말을 했으면 왜 치느냐고 다시 하속을 책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피고였지만 대제사장과 공회원들 앞에서 사자처럼 담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이렇게 사자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의인으로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에 보면 28장 1절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좋은 상황에서도 생쥐처럼 도망하고 두려워하지만 의인은 두려워할 것이 많은 상황에서도 사자처럼 담대합니다.
악인은 두려움이 많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고 짐승에게 물여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식량을 사러 애굽에 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그들이 가져온 돈을 도로 넣어줍니다. 형들은 주막에서 자루에 돈이 그대로 있는 것을 알고 혼이 나가서 떨며 자신들을 도둑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한다고 말합니다.(창42:28) 형들이 다시 애굽에 방문하였을 때 요셉이 형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고자 하였습니다. 형들은 두려워하여 지난 번 자루에 들어있던 돈 때문에 자신들을 잡아 가두고, 종으로 삼으며, 나귀를 빼앗으려는 음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창43:18) 이처럼 죄를 지은 사람은 호의에도 두려워 벌벌 떱니다.
마크 트웨인이 평소 도덕적이고 청렴하기로 소문난 고위 관직자나 친구 12명에게 익명으로 모든 것이 탄로 났으니 즉시 도망치라는 전보를 보냈는데, 다음 날 12명 모두가 도시를 떠나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사기꾼들이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수집한 이메일이나 전화번호로 ‘당신의 외도나 불법 행위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 당장 100만 원을 보내지 않으면 가족과 직장에 폭로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보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죄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의인은 악인과 달리 사자처럼 담대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담대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버율은 공회를 주목하며 위축되지 않고 공회원들을 똑바로 노려보며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오늘날까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자, 바울은 거침없이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며 도리어 대제사장의 불법을 당당하게 책망하였습니다.(행전 23장 1,2) 바울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살았으므로 사자처럼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3) 베드로는 회개하고 담대해질 수 있었습니다.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시몬베드로가 문지키는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후입니다. 그때는 지금 달력으로 3월 4일로 계산합니다. 밤이 되자 날씨가 추워서 대제사장의 뜰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한 번 부인한 후에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불빛에 베드로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너도 그 제자가 아니냐?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귀가 잘린 말고의 친척 중 하나인 대제사장의 종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갈릴리 사투리 쓰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닭이 울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바라 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자 예수님이 닭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베드로는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베드로는 치킨을 안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닭의 울음은 예수님의 통곡을 상징합니다. 예수님는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베드로를 밀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여 자살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제자 공동체를 무너뜨리려고 하였습니다. 복음역사를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베드로가 기도로 준비하여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에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는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을 견고하게 세우는 목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겟세마테 동산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였을 때 베드로와 눈을 맞추셨습니다. 닭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서 닭이 꼬끼오! 두 번 울었습니다. 닭의 울음은 베드로가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통곡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하였습니다. 그의 연약하고 악한 죄를 인정하는 눈물입니다. 그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눈물입니다. 그는 이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수고했다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자기 의가 있을 때 그는 두렵고 연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회개를 통하여 베드로는 자신의 의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은혜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해도 모든 것을 은혜로 하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어도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담대한 자가 되었습니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을 팔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는 죄를 짓고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챙피해서 자살해 죽었습니다, 구약의 유다는 자신의 며느리와 자고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그러나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평생을 회개하며 살았습니다. 그랬을 때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회개하며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잘하는 것은 죄를 지었을 때 평생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어떻게 사자처럼 담대할 수 있을까요?
“요절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우리가 어떻게 사자처럼 담대하게 살 수 있을까요?
첫째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 내가 만약에 하나님의 종을 함부로 대하였으면 사자가 자신을 찢고 땅에 짓밟아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시편 7편 2-5)
둘째는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도 나중에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간음과 살인을 하였습니다. 일년 정도는 죄를 숨기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그는 담대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탄이 공격하고 시므이나 구사가 공격해도 담대했습니다. 원수는 물러가라고 담대히 외칩니다. 그는 회개하였을 때 온전히 은혜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8장 3부 사자 같이 담대하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18장 19-27
요절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