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조대(河趙臺) 이야기 /낙산도립공원(2)
여행은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나는 명승지를 찾아 낯선 여행지에서 그 고장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 우선 찾아보게 되는 곳이 그 ‘고장의 8경이다.
내가 찾아온 그 양양군(襄陽郡) 8경은 다음과 같다.
제1 남대천, 제2 대청봉(설악산 주봉), 제3 오색령(한계령), 제4 오색 주전골, 제5 하조대, 제6 죽도항, 제7 남애항, 제8 낙산사‘
양양8경’을 찾아보면서 나는 무지 행복하였다.
한국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명승지가 이 양양에 거의 모였구나 하는 놀라움에다가 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이런 명승지 중 죽도항을 빼고는 다 다녀왔구나 해서이다.
둘째 행복은 그 중 몇 개를 빼고는 다 이 사람의 글을 남긴 것이다.
오늘은 거기서 빠진 하조대(河趙臺) 일원을 가는 날이니 다른 사람이 내 행복의 깊이를 어찌 알랴.
우리는 낭만가도(Romantic Road of Korea)를 따라 하조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다.
나의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독일의 백조의 성((Neuschwanstein)성에서 로덴츠부르크(Rothens db der Tauber)를 향하여 달리던 길이 낭만가도였는데 거기서 이름을 따온 것 같다.
한국의 낭만가도(浪漫街道)는 우리나라 최북단 고성에서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을 잇는 동해안의 빼어난 해안절경 길인데, 가다 보니 이런 생각이 난다.
오늘은 택시를 이용하지만 언제 마음 잡아 아내와 함께 차를 가지고 와서 고성에서 삼척까지 달려 보리라. 그땐 지금처럼 대충 지나치지 말고 곳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일일이 참견하며 다니고 싶다.
*. 하조대(河趙臺, 명승 68호) 이야기
하조대는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리 7번 구 도로의 해안가에 있는 경승지(景勝地)로 양양8경 중 제5경이다.
하조대에는 기암절벽 위에 河趙臺(하조대)란 6각 정자가 서 있고 그 옆에 등대가 우뚝한데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을 뒤에 둔 4km의 백사장에 수심(水深)이 완만한 '하조대 해수욕장'이 있다.
그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옛부터 이런 말이 전해 왔을까.
-이 하조대를 한번 구경한 이는 저절로 딴 사람이 되고, 10년이 지나도 그 얼굴에 산수자연의 기상이 서려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치 좋은 곳에는 어느 곳에나 군부대가 있네요.' 하는 함께 간 기사의 말대로 군부대가 관람시간을 제약하고 있는 철조망 따라 층계를 조금 오르 내리는 곳에 하조대 전설을 알리는 입간판이 있다.
-고려말 신돈(辛旽)의 비행과 최영(崔瑩)장군의 요동 공략이 불가함을 반대하다가 유배생활을 하던 하륜(河崙)과, 최영의 휘하에 있다가 우왕의 폐위를 도모한 조준(趙浚)이 조선개국 공신이 되기 전 잠시 은거하던 곳이라 해서 두 분의 성(姓)을 따서 하조대(河趙臺)란 명칭이 유래되었다.
또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민초들의 이야기가 있다.
-신라 때 이 고장에 대대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던 지방호족인 하씨(河氏) 문중의 총각과 조씨(趙氏) 문중의 처녀가 남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나머지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나마 이루자고 이곳 절벽에서 함께 몸을 던져 하조대의 넋이 되었다.
하조대 6각정 정자 절벽 주변에는 해당화가 동해안의 어느 곳보다 붉게 붉게 피는데 그것은 두 연인의 애절한 넋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 고장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하조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의 하나는 바위 사이를 뚫고 자란 수령 200년이라는 9m의 한 그루의 소나무다.
이런 소나무를 중국 황산(黃山)에 갔더니 파석송(破石松)이라 하고 있다.
왜 소나무를 한자로 '松'이라 쓰는가. '松'을 파자(破字)하면 '木+公'이 된다 나무[木] 중에 공작(公爵)이란 말이다. 보라, 저 소나무는 오작(五爵)의 우두머리인 공작(公爵) 벼슬을 줄 만하지 않은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하였으니 보시라, 하조대의 이모저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