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술에는 유명 인물은 물론 역사, 문화가 함께한다. 나폴레옹 3세가 즐겼다는 와인,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쓴 토머스 제퍼슨이 사랑한 와인 등. 유명 인사와 엮인 일화나 역사 등을 가진 와인은 맛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든다. 이러한 와인은 해외 경매시장에서 수억 원에 거래된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는 인물, 역사와 연관된 술이 없었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도 있다. 바로 조선시대 왕이 마신 술이다.
흔히 술을 빚는 곳은 ‘양조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조장이란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 생겨난 단어다. 이전에는 술 빚는 양에 따라 ‘주막’이나 ‘현주가’로 불렸다.
특히 왕이 있는 궁궐에서는 다른 이름을 가졌다. 고려시대에는 ‘양온서’(釀醞署), 조선시대에는 ‘사온서’(司醞署)로 불렸다. 이 사온서를 관할하는 곳은 내국(內局). 궁중의 의술과 약을 담당하던 내의원이다. 결국 당시 술은 의술을 넣어 아주 소중하게 약처럼 빚어냈다는 의미다.
녹두는 예로부터 해장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왕을 위한 술인 ‘향온주’도 녹두누룩으로 빚은 술이다. 사진은 녹두가 들어가 있는 전인 녹두전.
그렇다면 내국 사온서에서 어떤 술을 빚었을까?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9호 박현숙 명인이 빚는 ‘향온주’(香醞酒)가 바로 그 술이다. 향기 ‘향’(香)에 빚을 ‘온’(醞). 술을 관장하던 사온서(司醞署)와 같은 한자다. ‘어진 자의 향이 있다’는 뜻이다. ‘어진 자의 향이 있는 궁중의 술’이란 뜻도 있다.
이 술의 가장 큰 특징은 누룩에 녹두를 넣어 같이 발효시켰다는 것. ‘향온곡’(香醞穀)이라 부른다. 녹두는 피부미용에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무엇보다 해독작용이 뛰어나다. 막걸리와 녹두전을 같이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 아침에 먹는 녹두죽은 해장에 좋은 요리다.
하지만 누룩은 단백질 함량이 많아 조금만 잘못하면 쉰내가 나고 발효가 늦어진다. 그만큼 궁궐에서는 손이 더 가는 술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박 명인의 향온주는 이러한 녹두누룩으로 10번 이상을 발효(덧술)시킨 후, 증류한 술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 도수는 40도 전후. 높은 도수이지만, 녹두로 빚었다는 것을 통해 왕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빚은 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술을 빚는 사온서는 현재 어디에 있을까? 서울 종로구 적선동 정부서울청사 뒤에 터만 남아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사온서는 원래 고려시대부터 양온서란 이름으로 이어진 전통 있는 기관이었다. 구한 말에 폐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사온섯골이라는 이름의 거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이 의도치 않게 바뀌면서 적선동으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우리 손이 아닌 외세에 의해 행정구역이 바뀐 것에 진한 슬픔과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는 이 이름이 다시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첫댓글 녹두가 해독작용이 있다는건
알았지만 피부미용 까지는
몰랐네요
더 많이 묵어야 겠어요
소주보다는 막걸리랑
어울리겠죠?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비오는 날엔 막걸리,
막걸리에는 전이라는데
그 중의 제일은 녹두전이었군요..
난 그래도 해물파전이 좋아요.ㅎㅎ
그 다음엔 빈대떡,,,우리는 빈대떡이라고 했어요. ㅋㅋ
녹두전 해물파전 빈대떡 부침이등 다 좋아요 근데 이젠 70대가 되니 이빨이 안좋아 부두러운 먹기 좋은 두부 김치가 최고의안주라고 크게 외침니다 후후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