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가출은 좀 특이하였다.
유달리 눈이 크고 피부가 희어서, 엄마나 누나의 등에 업혀 다닐 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혼혈아가 아니냐고 입을 대던 그 아이는 걸음마가 제법 익숙해지면서 가출을 하기 시작했다.
가출을 하기 시작한 나이는 대략 추정해 볼 때 한 살 반에서 두 살 무렵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걸음마가 익숙해지면 초보 운전자처럼 어딘가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독 그 아이의 가출이 특이했던 것은 그 아이의 가출 행장에서 비롯되었다.
아직 기저귀를 차야했을 나이였으니, 그 당시 아이들의 모습을 추정해볼 때, 아마도 밑이 터진 내복으로 고추 하나 달랑 내민 그런 복색이었을 것이다. 이 또한 다른 아이들과는 별로 특이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일.
정작 특이한 것은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집을 나가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아기 때부터 유난히 총명했던 아이였던지라, 일단 집을 나가면 여러 가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한 행동이라 추측은 해보지만, 정작 본인도 어른이 되고 나서 그때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기억에 없다 하니, 단지 그렇게 추측만 해볼 뿐이다.
일단 부엌에 들어간 그 아이는 주전자와 냄비 혹은 바가지 혹은 그릇들을 최대한 챙길 만큼 챙겨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무언가를 더 잡을 손의 여유가 있으면 빗자루나 쓰레받기를 드는 것으로 마지막 구색을 갖추었다 한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냄비는 머리에 썼을 것이고, 한 손엔 주전자 한 손엔 빗자루를 들고, 양쪽 겨드랑이엔 놋그릇을 하나씩 끼고, 아랫도리에 고추 하나 달랑 내놓고 서있는 모습. 그 표정의 진지함 또한 가관이었을 터이다.
모든 행장이 다 갖추어지고 나면 그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는데, 그 동작의 민첩함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지경이라, 그 아이 엄마가 잠시 빨래 걷는 사이, 혹은 그 아이 누나들이 마당에서 고무줄놀이에 잠시 빠진 사이, 혹은 그 아이 형이 미심쩍은 영어 단어를 콘사이스에서 잠시 찾는 사이 없어지곤 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아이를 돌보는 책임을 나누어 가진 그 아이 식구들의 면피를 위한 변명만은 아닌 것 같다. 한두 살 정도의 그 아이가 그 특이한 행색으로 여러 눈의 관심을 피해 가출한다는 것은 사실 동작의 민첩함이란 노하우를 제외하고는 달리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에 그러하다.
부지불식간에 그 아이의 가출을 당한 가족들의 놀람은 항상 컸지만, 걱정이 크지 않았음은 그 아이의 또 다른 가출의 특이함 때문이었다.
놀라 달려 나간 가족들은 사방으로 난 길을 나누어 달려가며 그 아이를 찾았는데, 그 아이의 걸음이 얼마나 빨랐던지 처음의 단서를 추적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초의 단서를 발견하면 그때부터 그 아이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특이함이란 그 아이가 가출한 다음, 집과는 다른 세상의 신기함을 만날 때마다, 어떤 표식, 즉 가지고 간 물건 중에 하나씩을 떨어트려 두고 가는 방식이었는데, 그 첫 단서를 찾으면 그 길로 죽 따라가면 그 아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길 도중에 그 아이가 흘려두고 간 것들을 하나하나 수거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어린 그 아이가 가져나간 것이 무엇 그리 무거웠으랴. 그 아이를 찾아오면 되는 것이었으니...
그 길 끝에, 아니... 그 아이가 멈춘 곳에 이르러 그 아이의 모습을 본 식구들의 후일담을 종합해보면, 그 아이 표정에 집을 잃어버렸다는 두려움은 전혀 없고, 이젠 어디로 갈까... 하는 고민의 흔적만 호기심 가득한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크고 맑은 두 눈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충족되지 못한 아쉬움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걸 보면...
내가 그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기 전까지, 그 아이는 그렇게 여러 가족들을 놀라게 만드는 가출에 대한 집념으로 똘똘 뭉친 막내로 사랑받으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가람과 뫼, 내 작은형.
두 번째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격리 중이랍니다. 얼른 회복해서 다시 수필 방에서 형의 글들 읽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ㅎㅎㅎㅎ
옛날에
역마살 이란 말을
했어요
해외에 가고싶어도
못간 친구가 있고
우연히 미국에
온사람들도 계시지요.
ㅎㅎ운명 인가봐요.
Covid-코로나 아직
조심해야 겠어요.
실내에선 😷마스크
씁니다. ㅠㅠ
ㅎㅎ 그런가 봅니다.
가람형과 저는 역마살이 있는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자꾸 옮겨 다니거나, 하는 일이 많이 이동하며 해야하는 일들이라 이곳저곳 세상 구경을 많이 하고 다니네요. ㅎ
아이구우 ㅠㅠ
그래도 젊으시니 잘 이겨내시기 바라요.~^^
네. 저도 형이 잘 이겨내리라 믿어요. 석촌대형님도 이겨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그 아이의 모습은
낯선 곳을 동경하는 그런 모습이었나 봅니다.
막내로써 가족의 사랑을 얻는 방법도
조금은 느낌으로 깨달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막내가 생겼으니
혹시 마음자리님,
형으로 부터 질투는 받지 않으셨는지요.^^
그 분의 글에는 함께 탐구하고,
팀웍이 되어서 탐색하는 글을 보았지요.
형제간의 우애, 마음 따스해 집니다.
제가 밉살스럽게 굴어서 어린 형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디어가 많은 형이라 재미있는 놀이 만들어 저랑 늘 같이 해주는 바람에 자라면서 형과의 우애가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때는 막내였던 그 분
사막에 데려다 놔도 끄떡 없을 분이라 사료되면서
코로나 또한 가볍게 툭툭 털고 회복되실 것이 분명합니다.
형님에 대한 무한 사랑과 존경이 참 좋아보입니다.
당연히 그러겠죠?
저도 형이 곧 회복하리라 믿습니다.
호기심 만땅에 어린아이는 성년이 되어
그 호기심을 채우기위해 길위에 삶을 선택했다는
전설이 있어요.
작은 형님이 요사이 누구나가 찾아오는 코로나를
겪고계신가봐요. 빠른 쾌유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쾌유해서 돌아올 겁니다.
나무랑님의 말씀처럼 형과 저에게 호기심은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재미있는 형님이셨군요. ㅎㅎ
아마도 지금 역시 그런 기발난 형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ㅎ
언제나 아이디어가 많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능력까지 뛰어나 늘 저를 놀라게 한 형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