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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은 뻐꾸기였을까(탁란)
🙏🎋幸福한 삶🎋🎎🎋梁南石印🎋🙏
나와 다른 많은 아기는
축복과 기쁜 웃음 속에서 태어날 때
눈 빠지게 기다린 부모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웃음이 아닌 큰 울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방 안의 벽과 천장을 울릴 만큼 서럽게 울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곡절 하나를 품고
세상이라는 두려운 무대에 세워졌다.
사람들은 궁금해 묻겠죠.
무슨 사연을 안고 살아왔기에
그토록 깊은 사연을 품고 있느냐고.
그러나….
굳이 묻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무거운 얘기를 말한다고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아픈 상처는 평생 품고 살아왔다 한들
충분히 곰삭아 희석될 수도 없을 것이니까.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겠다.
혹시 국가 기밀이 아니라면
하루살이 눈곱만큼이라도
아주 쪼매만 귀띔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나를 배려한 그 마음은 참으로 미안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음을 엎드려 청하고 싶다.
내가 입을 다무는 것은 숨길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곡절이라는 것이 말로 풀어내기에는
너무 많은 아픈 세월을 품고 견뎌왔기 때문이다.
혹시 서운하게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 또한 이해해 주시기를 ()()넙죽 큰절하고 싶다.
그만큼 내 삶의 굴곡이 가볍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머문 하늘은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맨몸뚱이로 태어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했지만,
살아가는 동안 나만의 몫은 한 움큼 분명히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비록 튼튼한 금고에 넣어둘 보석은 아닐지라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품을 것 다 품고 살아온 한 생에
만남과 행복, 기쁨과 눈물, 이별과 서러움이 뒤섞인
내 인생만의 작은 보퉁이 하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어떤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이 나이 되도록 천수를 누려가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다 소비했다면
어떤 이유로 여한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믿는다.
남들이 죽음 앞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떠날 때,
나는 오히려 웃으며 영원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단호히 말하건대 내게 주어진 삶이 쉬워서가 아니었다.
수많은 굴곡을 지나온 끝에
마침내 받아들이는 나만의 작별 인사일 테니까.
나는 왜 내 삶을 두고 탁란이라 생각했을까.
나조차 궁금하지만 그래도 묻지 말라고 했다.
그 말 속에는 내가 차마 꺼내기 싫은
너무 아픈 곡절을 품은 비화가 들어 있고,
굳이 곪아 터진 상처 들쑤셔 내지 않아도
삶의 끝자락까지 나를 따라다닌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사람 마음속에 꾹꾹 눌러 쌓아둔 사연이
어느 순간 당신을 삼켜버릴 수 있다며
늦기 전에 꺼내놓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이라며
굳이 혼자만 간직하고 싶거든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 가서
작은 소리로라도 털어놓으면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꾹꾹 눌러두었던 곡절이 너무 버거워
그 말을 듣게 된 나는 대숲으로 향했다.
사람 발길이 뜸한 곳, 바람만 드나들고,
새와 벌레조차 내 이야기를 엿듣지 못할 것 같은 곳.
나는 대나무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훠이! 훠이!
내 안에 쌓아둔 말을 누구도 듣지 못하게 하려고,
대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새도, 벌레도 쫓아버리기 위해 대숲은 뛰어다녔다.
듣지 마라.
들어선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아무도 엿듣지 마라.
이 이야기는 내 안에서만 묻어둘 이야기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오랫동안 묻어둔 곡절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처음에는 내 목소리만 들리는 줄 알았다.
바람도 멈춘 것 같았고, 대나뭇잎도 숨을 죽인 듯했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대나무는 말없이 듣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만 품은 기억이란 존재라는 것을.
그날 내가 흘린 눈물에 섞인 한숨과,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서러운 고백과,
차마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내 깊은 넋두리를
대나무 매듭 사이 빈 공간과 잎이 모두 품었을 것이다.
며칠 뒤 바람이 불었다.
대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그저 자연의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소리는 내가 대숲에 묻어둔 이야기였다.
바람은 내 비밀을 품은 채 세상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대숲을 지나가던 사람이 듣고 여기저기 떠벌려
세상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믿으며 서로 모른 척 한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 하나가 끝내 외쳤던 것처럼,
어느 날 바람은 숨겨둔 진실을 흔들어 깨웠다.
대나뭇잎의 작은 속삭임은
마침내 세상 모두가 듣는 큰 울림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탁란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까.
사람들은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새끼를 맡겨 놓고
그 둥지의 어미 새에게 기르도록 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상한 물음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둥지에서 자란 것일까.
분명코 나를 낳아준 분이 계셨기에 내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품어준 분은 따로 계셨다.
바로 조모님이셨다.
할머님은 이미 당신이 낳은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자식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을 한 번 내려놓으실 연세였다.
그런데 또다시 작은 생명 하나를 품게 된 것이다.
당신의 세월도 넉넉하지 않았고,
당신의 자식들에게 바친 몸도 젊지 않았을 텐데,
눈물을 삼키며 나를 안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가엾은 아기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키워내셨다.
그렇다면….
누가 뻐꾸기였을까.
누가 탁란을 한 것일까.
나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생명을 세상에 나오게 한 사람과,
그 생명을 사람답게 자라게 한 사람.
서로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겠으나
어느 쪽이 더 크고 어느 쪽이 더 작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단호히 말할 것이다.
낳은 정과 기른 정중에 기른 정이 더 크다고
낳아놓고 누군가 거두지 않았다면 죽었을 테니까,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날 낳은 분은 남의 둥지를 빼앗은 새가 아니었다.
조부님의 아들이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모두 탕진
타이르시다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시어
당신 아들 꼴을 보기 싫다며 쫓아내자
어머니는 날 두고 남편을 따라 나가버린 것이다.
눈물로 호소하시던 조모님께서는
아닌 밤중에 날벼락 맞은 듯
당신 손자를 떠안게 된 것이다.
가엾은 상처 입은 작은 생명을 품은
따뜻한 둥지가 되어 날 품으신 것이다.
당신은 이미 자식들을 다 키워낸 뒤였음에도.
그런데도 또 하나의 생명을 받아들여
마른 가지 같은 몸이지만
따뜻한 체온으로 품어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어쩌면 탁란이라는 이름은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자연이 만들어낸
기묘한 운명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고.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내가 대숲에 털어놓은 이야기는
정말 아무도 듣지 못했을까.
대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바람도,
가지 끝에 앉은 작은 새도,
기어다니던 벌레 한 마리도
정녕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의 입보다 빠른 것이 있었다.
바로 소문이 아니라 세월이었다.
세월은 숨겨둔 이야기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이 불었다.
대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자연이 내는 평범한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소리 속에는 내가 오래전
대숲에 묻어둔 작은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왜 그 둥지에서 태어났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다른 품에서 자랐을까.
나를 낳아준 사람은 왜 내 곁을 떠나야 했을까.
대나뭇잎은 그 질문들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세상으로 조금씩 흘려보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처럼.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야기.
보이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믿으며 서로 눈치만 보던 이야기.
그러나 진실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숨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어린아이의 한마디가 모두의 침묵을 깨뜨렸듯이,
대숲의 작은 속삭임도 마침내 사람들의 귀에 닿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 삶의 곡절은 숨겨야 할 흠집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살려낸 사랑의 기록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 이야기가 세상으로 퍼져 나갈수록
내 눈에는 또 다른 아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만의 곡절인 줄 알았던 일이
어느새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시상이 하도 수상한 세월이었기 때문이리라.
거리마다 한숨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저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았다.
한쪽에서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소리가 들렸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무언가 부풀어 오르다
끝내 터지고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 곡절을 알아보니 청춘들의 어깨 위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구름에 닿을 만큼 높이 쌓아도,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녀도,
돌아오는 답은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배우고 또 배우느라 이곳저곳 기웃거릴 때
열정페이라는 회초리 맞아가며 스펙을 쌓아
준비하고 또 준비했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한 젊은 가슴들은
소나무 몸통 껍질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겠는가.
자식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평생을 바친 부모들이
넋을 갈아 기른 자식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먼저 무너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아 못 볼 것을 보고 가는구나.
그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위쪽 마을에서는 젊은이들의 꿈이 무너지고,
아랫마을 쪽에서는 부모들의 가슴이 찢겼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둥지에서 태어나고,
또 누군가의 품에서 자라며,
서로가 서로를 품어주는
긴 탁란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나에게 조모님은 잠시 머물다 가는 둥지가 아니었다.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온 내 삶의 뿌리였다.
세상 사람들은 피를 나눈 관계를
가장 가까운 인연이라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오직 피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님을 안다.
어린 날 내가 배고플 때 밥 한 한술 떠먹여 준 손,
매섭게 추운 날 가냘픈 몸을 품어준 야윈 가슴팍,
아파서 뒤척일 때 밤새 곁을 지켜준 따뜻한 손길.
그 모든 것이 모여
나에게는 부모라는 이름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남았다.
조모님. 당신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영원의 본향으로 떠나셨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작은 등불 하나를 밝혀 놓고 계십니다.
세상이 캄캄할 때마다 그 등불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길을 찾곤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셨을까.
어떤 대가를 기다리셨을까.
아마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저 어린 생명 하나가 무사히 자라기를,
제 몫의 삶을 살아가기를,
그것 하나만 바라셨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조모님의 삶 또한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젊은 날을 다 바쳐 자식들을 키우셨고,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되었을 연세에
또 하나의 어린 생명을 품으셨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계산 없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내가 정말 탁란이었던가.
아니면….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잠시 운명의 둥지를 바꾼 것이었을까.
뻐꾸기의 탁란은 자연에서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지만,
사람의 세상에서는 때로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새로운 삶이 이어지기도 한다.
조모님은 나를 키운 사람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를 처음과 끝을 지켜준 분이셨다.
비록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는
내가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을지라도,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 따뜻했던 손길이 남아 있다.
조모님.
당신이 계셨기에 나는 세상의 거친 바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남긴 것은
재산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고,
높은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귀한 것.
사람을 사랑하는 법과 견뎌내는 법,
그리고 받은 사랑을 잊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먼 훗날 내가 다시 영원의 본향으로 가는 날,
나는 부끄럽지 않게 당신 앞에 서고 싶습니다.
할머님.
당신이 품어 키운 아이, 여기까지 잘 살아왔습니다.
그 한마디를 웃으며 전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품을 빌려 이어가는 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는 누군가의 품이 필요하고,
자랄 때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며,
성장해서는 누군가와의 인연이 필요하며,
늙어갈 때는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기대는 존재가 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를 품어주는 존재가 된다.
그러니 어찌 한 사람의 삶을
한 사람만의 것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그랬다.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준 인연이 있었다면,
나를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품어준 인연이 있었다.
그 두 인연 중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조모님은 내게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었다.
내 삶이라는 어린나무가 비바람에 꺾이지 않도록
두 손으로 감싸안은 커다란 그늘이었다.
당신의 삶을 조금 내어주어 나의 삶을 키워주셨다.
그 사랑을 어찌 말 몇 마디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탁란이라는 말도 어쩌면 바라보는 눈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에 따라서는
무책임하게 남의 둥지를 이용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생명을 살리는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어떻게 태어났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길러졌느냐였다.
애틋한 손길은 내게 생명의 불씨를 살려냈고,
대가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나를 성장시켰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조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아니, 원망이라는 말은
애초에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적이 없다.
오히려 감사하다.
나에게 그런 사랑을 받을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당신께서는 떠나신 지 오래되었지만,
내 삶 곳곳에는 아직도 조모님의 흔적이 남아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릴 적 들었던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가야. 견뎌라.
사람은 바람을 피할 수는 없어도
뿌리까지 뽑히지는 말아야 한다.
그 말씀 하나 품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돌아보면 내 삶의 원고에는 눈물도 많았고,
구겨지고 찢긴 페이지도 곳곳에 목격된다.
하지만 그 모든 페이지 위에는
조모님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뜻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실패한 원고라 부르지 않는다.
비록 처음부터 순탄한 탄생은 아니었지만,
허락 없이 떠안은 누군가의 사랑으로
다시 쓰인 삶의 서사적 휴먼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처음 말했던 것처럼
남들이 슬픔의 눈물 속에서 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웃으며 영원의 본향으로 향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기다리고 계실 한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버려진 아이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적인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였다.
긴 세월 동안 내 마음속 가장 따뜻한 둥지가 되어주신
존경하는 나의 조모님, 그분께 저 잘 살아왔습니다.
넙죽 절하며 그 한마디를 전하러 가는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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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인 글 : 허접한 장문의 이 글은 단순히
내 인생이 힘들었다는 넋두리 주절거린 게 아닙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탄생의 비화 히스토리에
나는 어떤 곡절을 품고 태어난 사람인가.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무엇일까.
세상이라는 둥지에서 누가 누구를 품었으며,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누가 누구를 밀어내었을까.
오늘날 젊은 세대와 부모의 세대가 겪는 아픔은
어디서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을까.
이런 근본의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핵심적인 의문과 질문이 품은 뜻은 이것입니다.
나와 다른 아기들은 웃는 가운데 태어났을 테지만
나는 어떤 곡절이 있어 반대로 울며 태어났습니다.
정녕코 내 부모는 뻐꾸기였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존재의 근본 뿌리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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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침착해지는
마음으로 감사히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