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다 알지 못해도 세상사는 고사하고 내 생활도 내 맘 대로, 내 선한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내 바람대로는 아니더라도 공정과 상식은 지켜져야 하지 않나?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돈 있으면 무죄로 풀려나고 돈 없으면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 더 실감 난다. 실제로 국민의 80%가량이 이에 동의한다는 조사도 결과도 있다. 사람들이 공의로우신 하느님은 없다고 주장할 만하다.
어렸을 때 지구가 둥글다는 말에 그러면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왜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지 참 궁금했다. 지구 자전 속도는 약 시속 1667km라고 한다.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도는데도 어지럽지 않고 튕겨 나가지도 않는다. 이게 다 중력 때문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그런데 10÷3을 계산기에 치면 3.333...이 계속 나온다. 종이를 정확히 삼등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법 숫자는 그걸 표현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거다. 수천 년 전 코헬렛이라는 사람도 대자연과 사람들 삶을 관조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다 허무하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지혜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헤로데 임금은 세례자 요한을 불의하게 사형시켰다. 그가 만일 되살아났다면 그는 감히 그를 마주할 생각도 못 했을 거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그분이 되살아난 세례자 요한이거나 재림한 엘리야 또는 예언자 중 하나라고 하는데도 그분을 만나고 싶어 했다(루카 9,9). 자기가 저지른 불의한 판단을 사죄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테고, 단지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가 정말 그런 기적들을 일으키는지 보고 싶었던 거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참...
오늘 전례 화답송 시편은 우리 삶이 무엇이고 또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 같다.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시편 90,3-4).”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시편 90,12).”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시편 90,14.17).” 모른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뜻대로 안 되고 공정과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고,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귀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주어진 시간 동안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이다. 하느님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 모든 걸 다 알게 될 거다. 혹시 모르고 저지르고 그게 죄인 줄 잘 알아 괴롭고 하느님께 죄송한데 너무 부끄러워 고백하지 못한 죄를 물어 오실까 봐 불안해지면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더 신뢰한다. 그게 아니면 내게는 희망이 없다.
예수님, 인류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믿습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거라고 포기하는 맹신은 아닙니다. 그것은 참 좋으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입니다. 제게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와 자주 눈을 맞추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키웁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