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던가.
고모부가 사우디로 돈 벌러 떠났셨었다.
모든 가족들을 불러 모아 환송연을 열었다.
잘 다녀오시라 뭐 그런 덕담들이 오고 갔겠지.
식사와 술로 분위기가 띄워졌을 때 고모부는 카세트 테이프를 내밀었다.
거기에 모인 모든 가족들에게 노래 한곡 씩을 부를 것을 청하셨고
꼬맹이였던 내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이 노래 일절을 불렀지 싶은데,
고모부는 몇년의 사우디 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잘 다녀오셔서
엄마에게 카시오 손목시계를 선물해 주셨다.
고모부는 복이 많은 남자 였나 보다.
고모는 고모부가 안 계시는 동안 바람도 춤바람도 나지 않으셨고
알뜰히 모은 돈으로 집을 사기도 했으니.
그 무렵 그렇게 외국으로 달러벌이를 나서는 아저씨들이 엄청 많았었다.
사회현상 이었달까?
아줌마들의 춤바람이 9시 뉴스에 자주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아부지 엄마가 밥상에서 나누는 이야기에도 심심찮게
어느 집 누구 엄마가 춤바람이 나서 재산을 다 날리고 밤도망을 했다더라.
급거 귀국한 아저씨는 몸져 누웠다더라..
그렇게 가정이 통째로 날아가기도 하던 아주 아주 무서운 -춤- 이었다.
이년 전 이었던가.
한걸음이 귀국한 적이 있었다.
레슨을 들었었고 춤을 춘적도 있었었다.
어땠냐고 무수히 많은 땅게라들이 질문을 해왔다.
식은땀이 났다.
바른 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내가 쓰잘데 없이 커서 아브라소가 힘들었다고만 말했다.
그랬다.
-땅게로에게 내 무게를 주지 말고 혼자 잘 서있을 수 있어야 하며...
가슴은 붙여야 하며
가슴으로 오는 리드를 잘 받아야 한다-
배우대로 한다고 하는 대도 뭔가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춤을 추고 있는게 아니라 용을 쓰고 있다는 말에 더 가까운 몸부림.
거기다
힐 때문에 불쑥 위로 쏫아서는 가슴 마저 붙이고 있을 수 없으니..
이건 뭐,
한걸음 하고 출때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긴장시키는 모든 땅게로.
아악.
언제나 그런 마음이었다.
당장 때려치워야지..
하지만,
너무도 많이 들었던
-나무토막 아브라소-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이건 뭐,
나는 괜찮았다.
대부분 땅게로와의 춤이 다 재밌었다.
그들의 어깨가 떨어져 나가게 아픈건.....음....그의 사정이었다.
-미안하다 쓰고 보니 막말이네-
백약이 무효한 느낌.
이런 저런 워크숍도 많이 들어 보고
주변 땅게로들의 조언도 많이 들었지만,
나는.....
전생에 나무였었나.
그것도 단단해서 한번 조각하면 쉬 모양이 변하지 않는 대추나무 쪽이었나.
오동나무는 연하고 부드러운 축에 든다더라.
그렇게 춤을 추었다.
버텼다는 말이 맞겠다.
이뿌든가 성격이 좋던가 춤을 잘 추든가.
이 바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적어도 하나는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라는 데
'성격 좋은'게 가장 가깝기는 한걸까.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좋다기 보다는 험한........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쩌다 모스크바에서 구르면서 그나마 눈꼽 만큼의 감각도 사라져.
연일 이어지는 파티에 좋다고 뛰어 다녔지만
첫째날은 오랜만에 만난 땅겧로들이 반가운 마음에 청했고
둘째날은 전날 파티에 오지 않았던 땅게로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듯 하다.
구두를 벗어 던지고 당장 그 자리를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땅고의 마력은 자꾸만 그 자리에 주저 앉혀 놓곤 했다.
다시 이년 만에 한걸음과 그의 아리따운 파트너에게 워크숍을 들었다.
뒤뚱대는 어설퍼 빠진 몸뚱이.
강사들에게 안 들키려 여기 저기 숨기 바빴지만
예리한 눈에 여지없이 걸려들었고
직방의 처방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간 몇가지의 나만을 위한 조언.
눈이 번쩍 뜨었다면.
못 믿겠지?
ㅋㅋㅋ
어쩔 수 없어용.
확인은 이 다음에.....
하하하......
일요일 밤이 되자 무언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낮에 뒤뚱대는 내게 미선님하가 무언가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달렸다.
거침없이.
나무토막 아브라소라 해도 어쩔 수 없지.
또 몇개월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질 터이니..
몸이 조금 풀렸을 때 였을까?
빠소님하가 춤을 청했다.
금요일 파티때 뜻밖의 진상짓으로 잠깐 춤을 춘 기억이 있어 이년 전 만큼 떨리지는 않았다.
아주 짧았던 순간이었지만
땅게라를 매우 안락한 마음이 들도록 안아주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삼일 내내 그렇게 땅게로를 안아 주려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안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빠소님하를 아르헨 가기 전부터 알던 사람으로서
그가 가장 많이 변했다고 여기는 부분은
사람을 쳐다 볼때의 눈빛과 따뜻하게 안기 이지 싶은데
무언가 비밀스런 어떤 것을 전달하듯 촉촉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을 보면
때때로 마음이 달달해 지는데
물어 본 적도 있다.
'아르헨티나 가면 여자 쳐다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있는 거 아닌가요?'
여전히 그는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렇게 딴다가 시작이 되었다.
낮에 그녀에게 들은 비법을 몸에 장착시키고
-자, 달려-
내가 더 크건 내가 더 어깨가 넓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지 아무 것도 아니야.
눈을 질끈 감아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쟎아.
니가 원하는 것만 보면돼
반드시 마음으로 말이지.
그를 위해 구름이 되어 주는 건 어떨까.
그를 위해 가을날 새벽녁의 불국사에서 바라본
쏟아질듯 아름다운 별들이 미치게 반짝이는 그 밤하늘이 되어 주는 건 어떨까.
그를 위해 해질 무렵의 찬란하게 빛나는 강물이 되어 주자.
놀고 있다...그자.
근데 나 그런 생각 했는뎅..ㅋ
음,
그에게 무얼 느꼈냐 물어 보지는 말자.
구름 별 강물?
-개코다.
저 들에 푸르른 한그루 소나무 마냥 강직하고 땐실하드라.-
카면 내는
아아.......
지금 눈앞에 각양 각색의 땅게로들이 왔다리 갔다리 하며 곧 열릴 밀롱가를 대비하고 있단 말이닷.
두 번째 곡이였던가,
당연히 무슨 음악이었는지는 모른다.
암튼,
우와.
그분이 오셨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새로이 펼쳐졌으며
갑자기 통장 잔고가 생각이 났다.
이 춤이 끝나고 그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면
으음,
두 말 없이 전재산을 갖다 바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껏 조아린 몸으로 눈은 내리 깔고 팔을 위로 뻗쳐 그가 집기 좋은 상태의 높이로
그냥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그 조각하기 힘들다는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깍은 옻칠이 기막하게 된
쟁반에 통장을 내지는 돈을 바쳐도
그저 망극한 마음만 들 것 같은........
어릴적 나라의 사회문제 였던 춤바람 아줌마와 능력자 제비들의 에피소드.
그저 제 필에 꽂혀 괴발새발 끄적이면서도
상당히 그시기 하다.
혹 빠소님하를 능력자 제비아저씨들과 동일 선상에 놓이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단호히 말하지만 그렇지 아니하다.
그 순진하던 가족밖에 몰랐던.
그립고 그리운 남편을 밤마다 허벅지 꼬집어 가면 기다리던 지금 내 나이 보다
훨씬 어렸을 세상 물정 몰랐던 아줌마들이
그렇게 뿅 갈수도 있지.
돈이야 돌고 돌지 않는가.
가정을 잃기도 하고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겠지만
피땀 흘려 번 돈의 어이없는 행방에 정신줄 놓은 아저씨들도 많았겠지만,
지금쯤 다시 조사해보면
과거는 흘러갔고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잘 살고 있고.
절대 입밖으로 꺼내지 않겠지만
당사자 아줌마들은 아주 가끔
죽어서도 잊을 수 없을 인생의 가장 달콤한 순간 이었을
타인을 통해 내 몸에 그분이 내리신 그 귀한 경험을 다시금 떠올리며 전율하지 않을까.
그 곡이 끝나고 그에게 고백했다.
-뿅 갔어요.
춤추다가 통장을 생각했어요.
갖다 바쳐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늘이 도우셨는지
통장에 잔고가 없어요- 라고
꺾어질 듯 얄부리한 허리를 붙잡고 그가 넘어가게 껄껄 웃고서는
세번째 곡을 추었고
네번째 곡이 시작되기전
돌연 차가운 눈빛으로 -돈이 없다니 오늘은 여기 까지만 할까요-
라는 쎈 멘트를 날려 나를 긴장시켰지만
그것은 그의 조크였다.
마지막 곡 까지...
아,
그에게 구름이 별이 강물이 되어 주고 싶었지만..
여기 저기 쏘아다니느라 바쁜 사람은 나였다.
세상에서 가장 공기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가득한 수목원을 다녀온 듯도 하고
가장 호화롭고 번쩍이는 라스베가스를 떠돈 것도 같고..
근사한 요트를 타고 파도가 심한 바다를 항해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선수들과 춤을 출때면 술 많이 먹고 기절한 것 처럼 축 늘어져 버리거나
아님 온 몸에 쥐가 난듯 심각한 경직을 일으키던 몸뚱이가
이번엔 그냥 나의 춤을 추었다.
더 잘 추는 척 하기 위해 꾸며댔던 몸부림을 버려버리고.
글을 쓰는 내내 여비와 루까가 생각났다.
언제나 무언가 몇 퍼센트 부족한 나를 이해하고서
그냥 한딴다가 아닌 진심어린 춤을 추어진 그들에게 감사하다.
나무토막 땅게라를 품어준 모든 땅게로들 에게도..
허접하나마 세월의 힘을 빌려 조금씩 근사해지는 내 자신에게 칭찬의 말을 주고 싶다.
오늘밤 조금 있으면 열리는 22:00~06:00 밀롱가에서
그냥
다 잊고 내 자신의 춤을 추겠노라
독한 마음 먹는다.
첫댓글 아,, 언니ㅋㅋㅋㅋ 재밌어요
팟팅~~~!!! ^---^)b
솔직 담백한 글 잘 읽었습니다. ~
언니~ 독한 마음 말고.. 레알 여자의 마음으로~ 잘 지내다 와요! 이번엔 너무 짧게 봐서 아쉬워요~ ^^
*^__________^* 재밌어요~*
고맙워용ㅋㅋ 담에 볼땐 밥사고 반대쪽 볼에도 ^^ 배기청바지 완전 굿
아.. 언니 글 넘 잘 봤어요~~ 땅게로가 되어 언니한테 춤신청 하고픔^.^
담에 오실 때는...그.. 망사 ..도전^^
죄송해요 언니 자꾸 바람의 전설에 이성재가 떠올라요ㅋ 초보때는 종종 와주시던 그분이 한동안 못 뵙다 오랜만에 컴백하니 또 한번씩 오시더라구요^^ 쫌 쉬는 것도 괜찮은것 같아요^^ 우리랑 추면서 통장 떠오르는 땅게로는 없겠죠?ㅋㅋ 건강하구요^^*
ㅋㅋㅋ...화장실 앞에서 배추랑 셋이서 했던 얘기 자꾸 생각난다...춤추고 난 후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던...
그리고, 우리는. 춤춘다.
와~~~ 후기다!!! 후기!!! 와~~~~~~(이제서야 레이나님의 멋진 글을 봅니다. 언제봐도 부러운 글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