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으로 지는 것 보다는 16:15로 이기는 것이 더 나은 일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어제의 승리를 굳이 '덤앤더머식 졸전'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더머' 보다는 '덤'이 더 나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 팀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라고 생각합니다.
검투사들이 칼싸움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기저기 찔리고 베여 상처만 입고 쓰러져 죽는 것 보다는, [상처뿐인 영광]일지라도 이겨서 살아 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겠죠. 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얼른 치료해 다음 경기에서도 또 이길 것이냐, 아니면 상처가 곪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다음날 더 강한 상대를 맞나 결국 칼을 맞고 쓰러질 것이냐겠지요.
한화이글스가 검투사라면, 이 칼잡이는 어제 비슷한 실력 가진 싸움꾼을 만나 치열하게 찌르고 베고 하다가 막판에 극적으로 상대를 눕힌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지쳐있겠지요. 게다가 원래 좀 약한 검투사인데 어제 너무 많이 찔려서 오늘은 칼을 제대로 잡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때 비가 오지 않으면 또 나가서 싸워야 됩니다.
우리는 어제 클레이-황재규-마일영-송창식-윤근영-윤규진-박정진-정대훈-안영명을 썼습니다. 2선발과 마무리투수, 필승조3명, 나머지 불펜3명과 또 다른 선발투수 1명을 썼죠. 그런데 무려 15점을 내줬습니다. 안타는 20개를 맞았고 KBO역사상 한경기 최다3루타 허용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화는 [한경기 최다피홈런(10개)] 기록 보유자인데 이제 3루타 기록까지 보유하게 됐네요. 심지어 한경기에 홈런 10개 친 팀이 2번 나왔는데 2번 다 한화가 맞았죠. '한경기 최다 3루타' 같은 기록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역대급 불명예 기록인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똑같은 상황에서 16점을 내준 기아가 우리보다 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죠. 왜냐하면, 기아팬이 아니니까요. 막말로 기아가 투수진이 무너지든 말든 그거야 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팀 투수진, 그리고 자칫하면 어제자로 9위로 내려갈뻔 했던 한화이글스의 팀 전력입니다.
2014년은 타자들의 시대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죠. 하지만 타자들의 시대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투수진이 덜 약해야 강팀이 됩니다. 이런 타격인플레 시대에는 3할타자가 좀 더 많다고 해서 강팀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현재 팀 공격력이 가장 강한 넥센과 두산이 상위권에 머물고는 있지만 결국 현재 리그 1-2위가 팀 평균자책 1-2위 팀이라는 것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죠. 개인적으로 롯데가 넥센이나 두산 중 하나를 잡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나마 잘 돌아가는 5선발]의 힘이라고 봅니다.
한화 투수진은 시작부터 삐긋거렸습니다. (실력이 아니라 적응의 문제라고 보지만 어쨋든 결과적으로) 외국인 2명은 하위권입니다. 결국 한명은 팀에서 나가게 됐고요. 지금 투수진에서 가장 믿을만한 선수는 선발 이태양, 불펜은 윤규진입니다. 이 2선수 모두 감독의 시즌 초반 구상에서는 핵심 전력이 아니었죠. [갑툭튀]가 나와서 기쁘고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덕아웃의 계산이 전부 어긋낫다는 의미도 됩니다. 한화는 분명 [김혁민 송창식 더블스토퍼에 외국인+좌완3 선발]로 시즌을 구상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것이 없죠. 누구의 책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계산대로 흘러간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치러온 경기 만큼을 또 싸우고, 거기에 20경기를 더 치뤄야 시즌이 끝납니다. 이런 투수력을 가지고 남은 시즌을 어떻게 풀어갈지 참 막막하네요. 승부라는 것은 계산의 범위안에 있어야 되고, 변수의 비율은 궁극적으로 줄어들어야 됩니다. 그 한도 내에서 지는 경기를 줄이고 이기는 경기를 늘려야 강팀이 되죠. 하지만 지금은 리그의 분위기도, 또 팀 전력도 그런 상황이 안 되네요.
5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긴것은 칭찬해줘야 됩니다. 한승혁이 볼을 던질때 다들 신났고, '대역전극'을 꿈꾸며 기대를 했겠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결국 남은 것은 꼴지와 반게임차 8위죠. 물론 역전 못하고 져서 꼴찌가 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결과입니다만, 그냥 [어제 저녁의 기분]에서 벗어나와 시즌 전체를 보면 오히려 더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몇 번 이기고 몇번 질 것이냐의 문제 말고, "정말로 팀이 나아지고 있는가"하는 부분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영국 작가 닉 혼비가 쓴 책 <피버 피치>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 가운데 이성적으로 응원팀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 팀을 응원하게 됐다. 그래서 팀이 2부리그로 강등 되거나, 형편없는 선수를 사들이거나, 멀대 같은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는 일이 수백번이나 반복돼도 우리는 그저 욕이나 하고 집에 돌아가 2주 동안 속앓이를 하다가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와서 또 화를 낸다."
저도 그냥 '어쩌다 보니'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기 시작해서 한화팬이 됐습니다. 심지어 충청도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걸요. 그 우연한 선택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무겁다니 참 억울(?)하네요. 물론, 1등부터 9등까지 마음이 무겁지 않은 팬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가슴이 먹먹 해지네요....마지막 닉혼비의 말이 제가슴을 후려칩니다...ㅠㅠ
아들에게 미안할따름입니다 아비가 한화팬이라..
저는 와이프에게 미안합니다...원래 기아팬이었는데...결혼하고 제가 야구장 데리고 다니며 한화 응원하니..덩달아 한화팬되서요....
@산본이글스 기아나 한화나 비슷한 처지인듯 하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될듯요.
@ThankYou!! 기아팬이기는 했는데...야구장을 같이 다니다보니..한화의 열혈팬이 되서...제가 없을때도 야구를 혼자 시청 하더라고요...물론 스트레스는 아주 많이 받으면서요 ㅎㅎ;;;
못난 애비를 둔 내 아들에게 미안하다아아악!!! 한번 질러주셔야겠네요..ㅠㅠ
@산본이글스 제 와이프는 삼성 팬인데 아무리 꼬셔도 넘어오질 않네요 ㅋㅋ
@부은앙마 야구장 같이 가서...각 종 맛있는걸로 유도 하다 보면...언젠가는 한화의 팬이 되어 있는 사모님을 보실거에요 ㅎㅎ;;;
그냥 이겼구나...했지 앗싸 이겼다...까지는 아니었던 경기죠.
인간의 삶이 원래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 한화 예전과는 다르지 않나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화도나고.. 포기해서 2-3일간 야구 끊고 또보게되고 가끔이기면 기분좋고..그래도 이글스라는 야구팀이 있어 행복하긴 합니다. 이글스 야구팀 없어지면 인생 자체가 심심해 질것 같아요..
전 어렸을때부터 야구장 근처에 살아서 자연스럽게 오비팬이었다가 빙그레로 갈아탔네요 대전구장 외야 담장 넘어서 야구장 구경갔던 생각이 아직도 나네요 ^^
우리 아들은 한화 야구 좋아 합니다!
성적을 떠나서,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고,
이기고 있어도 늘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서스펜스가 있어서~~~
우리 아들도 한화 골수팬인 아빠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글스 팬이 되었지요....
이기고 있으면 아빠 오늘은 이긴다 하며 좋아하고 지고 있으면 저쪽 팀 왜케 잘해? 하며 짜증 부리곤 합니다 ㅎㅎ
요즘 짜증이 늘었답니다 ^^ 그래도 자기는 한화가 좋다며 오렌지색깔 옷을 좋아라 합니다!!!
딱 제 생각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좋지만은 않군요
저도 어쩌다가 한화를 좋아하지만
모태신앙처럼 모태한화팬이 된 저희아이들에겐~~~
아직은 그냥 야구가 좋은거지만 좀 더 크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겠죠! 그래도 변함없이 한화를 좋아했음 좋겠네요~^^
얼마전 동네 산책하다가 한화2군선수를 보게 되었고 저희둘째가 좋아하는 고동진선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진을 찍어야겠다고...난감하지만 엄마의 힘으로 부탁하고 사진찍었습니다..이런 소소한 추억이 있어 한화를 늘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지치더군요..마지막 한승혁이라 기대했지만 예상대로 제구가 안되 볼넷으로 나갈때 신났지만 결국 이겨서 좋았지만 지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클레이 마지막 투구인데 해설자 말대로 15점이 승부를 가를 점수였다면 그냥 몇이닝 더 던지게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송창식 투구하는 모습 뚜러지게 보던 클레이의 모습이 잔영처럼 남습니다. 클레이 참 안스럽습니다.
저두 동감합니다. 그러나 결과론이겠죠 ㅎㅎ 이제 끝이네요
현재가 바닥이고 설마 앞으로 지금보다야 나빠지겠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걸로 위안삼으며 조금씩 조금씩 강해지는 한화를 응원하겠습니다. 사실 어제는 1대 8에서 한번 껏다가 12 대 15 될때 다시한번 끄고 잘려구 누었었습니다. 근데 핸드폰으로 야친에서 연락왔더라구요. 이겼다고 ..깜딱 놀라서 확인했네요 ㅎㅎㅎ 오늘 앨버스의 7이닝 이상 먹는 투구 기대합니다. 7이닝 던지고 2이닝은 최영환으로 끝~!!!
1:8을 뒤집은 것이 작년같으면 뒬듯 기버했을텐데....어젠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투수진이 약해서 대량점수 어쩔 수 없습니다.
1~2년 해서 바로 세울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어제같이 15점 내주고 16점 내서 이겨 버리면 됩니다.
어차피 1:0 으로 이기나 16:15로 이기나 매 한가집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플레이만 보여주면 됩니다.
결승 2루타로 승리 결정낸 송광민 수고했다.
쥔장께서 충청도와 아무런 연고도 없다는게 쑈킹하네요.. 어쩌다 가시밭길로 들어오셨나요..
제 여친 맨날 하는 말이 "우리도 이기팀 응원하자" 이러는데 ........뭐 어떻게 하겟습니까....나두 자주 이기는 한화 응원하고 싶은데 ㅋㅋ
와이프가 앞으로 생길 우리 아이를 위해서도 팀을 바꾸는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전엔 그냥 듣고 말았는데, 지금은 한번쯤 고려해 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