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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계율? 그리고 도마복음 제6장 ?》
음..
앞전에는 경허집 [정혜 계사 규례] 내용이 너무 길어서 몇 번에 나누어서 올려 드렸는데요.^^
이 말의 뜻은 쉽게 말해 규율, 규칙 등을 말하는 것인데요.
오늘 내용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허집을 보면서 느낀 점은 경허라는 분은 정말이지 열정이 대단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필체에 힘이 있고 그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것이 좋았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와 힘이 경허선사라는 법명을 남기게 한 원천이라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저는 경허집을 보면서 지금 스님들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여러분들도 경허집을 같이 보고 있지만 이 당시만 해도 하고자 하는 의욕들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러나 요즘 스님들은 어디 그런가요?
모름지기 한번 출가를 했으면 이 정도는 죽기 살기로 해야 할 것인데요.
왜냐하면 그러려고 출가를 했으니까요.
뭐든지 그렇잖아요?
한번 뜻을 세웠으면 죽기 살기로 해봐야지요.
더군다나 젊음도 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출가를 했는데 기껏 한다는 것이 큰 스님들처럼 죽은 사람들 제사나 쫓아다닌대서야 말이 되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절을 가나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모습들로 대중들을 대한다면 어느 절에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그렇지 않겠어요?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마음 둘 곳이 그리 많지 않잖아요?
예전에는 가난했지만 그래도 마음 만은 의지할 곳이 있었고 즐거울 때가 많이 있었잖아요.
그러나 요즘은 어디 그런가요?
어딜 가나 "돈""돈""돈" ..
최소한 출가한 스님들 만이라도 중생들의 마음 중심을 잡아주고 있어야 하는데 ..
더 돈에 목말라 있으니..
이러한 점이 저는 매우 안타깝답니다.
그러다 보니 명상센터다 뭐다 해서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모이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스님들이 이러한 단체들을 리드해 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잖아요?
이러한 현상은 불교가 불교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잖아요?
오죽하면 젊은 사람들이 절에 안 가고 명상센터로 가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수행처로 몰려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스님들 자체가 수행에는 관심들이 없다 보니까 이런 젊은 사람들을 절에서 흡수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 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경허집을 보면서 느낀 점은 이 당시까지만 해도 젊은 수자들이 많이 모였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오죽 많이 모였으면 규례(규칙)까지 만들어서 운영을 했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 후배 스님들은 이것을 유지 계승시키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허 스님 당시보다도 지금이 훨씬 더 조건이 좋아졌음에도 말이지요?
무엇이든 그렇잖아요?
당구장에는 당구 잘 치는 사람들이 있으면 당구쟁이들이 많이 모이듯이
학원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다른 아이들도 그 학원으로 많이 모이듯이
절은 수행 잘하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요즘처럼 절에서 천도재나 제사 잘 지내주는 스님들만 많다 보니까 당연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만 절에 가득한 것이고요.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꾸준한 노력이 없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런 것인데요.
아무쪼록 지금이라도 큰 스님들부터가 정신들 바짝 차리고 다시 한번 이 땅에 경허 스님의 유지를 받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제 마음이랍니다.
스님도 아닌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불교 쪽으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소리라도 하는 거랍니다.
아무튼 이런 현실이 매우 안타깝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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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지금 기독교 쪽 분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만약에 기독교 쪽 분들이 저의 이런 글을 보시고 예수님 정법에 뇌관을 붙여줄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기독교 쪽 사람들의 근성과 열정을 저는 어려서부터 잘 보아왔기 때문에
단박에 예수님처럼 깨닫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곤 하는데요.
왜냐하면 불교 쪽 분들은 몰라서 그렇지 기독교 쪽 사람들은 기도원에 한번 들어가면 최소한 일주일에서 한두 달 정도는 물과 소금만 먹고서 (철야+금식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인데요.
불교 식으로 말하면 토굴에 들어가서 최소한 일주일에서 한두 달을 경허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잠도 안 자면서 밥도 굶어 가면서 정진 또 정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인데요.
이런 근성과 열정과 끈기를 저는 기독교 쪽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 관]만 제대로 접목시킬 수만 있다면 ..?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 수도 방법을 제대로 방향만 잘 잡아줄 수만 있다면 ..?
저는 기독교 쪽에서도 무수히 많은 선지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려서부터 보아온 기독교 쪽 형제들은 지독하다 못해 극성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불교 쪽은 이런 근성 좋은 사람들을 기독교 쪽으로 모두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고요.
(참고)
교회나 성당에 가보시면 불교 쪽에서 온 사람들이 수두룩하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닐 때 불교 쪽에서 기독교로 전향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스님들은 제사에 미쳐있다는 내용과 돈만 밝히는 사기꾼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가 주류였는데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요.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더러는 있지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어른들의 입을 통해 그동안 백여 년 넘게 야금야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랍니다.
이런 얘기들이 사실이 그렇든 아니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답니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에게 이렇게 인식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기독교 쪽도 점점 이렇게 되어가고 있고요.
기독교 쪽도 젊은 사람들이 예전 같지 않잖아요?
왜 그렇겠어요?
기독교 쪽도 이상한 목사들이 많잖아요?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방송 등을 통해 소문이 빠르거든요.
요즘 젊은이들도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고요.
제가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정신들을 바짝 차리라는 겁니다.
아무튼 저는 불교 쪽이든 기독교 쪽이든 각자가 모시고 있는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들을 잘 따라 하셔서 꼭 성불이든 성령 영접이든 하셨으면 하는 마음뿐인데요.
분명한 것은 이것은 열심히 따라 하고 구하다 보면 안 될 수가 없는 그런 거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도마복음 제2장)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랍니다.
[1.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4.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이 말의 뜻은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성령을 구하는데 그 구함을 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꾸진히 하라는 것입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불성을 증득하는 일에 꾸준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들은 진리 중에 진리인 것이고요.
그리고 오늘 경허집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인데요.
그러면 오늘도 경허집 내용과 예수님 말씀을 함게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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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64) ] 20260330
예순네 번째 이야기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조용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예수님처럼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부처님처럼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들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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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만해 한용운 스님과 같은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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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南原泉隱寺佛根契序
夫佛者覺也能覺悟其性地鍊淨明妙至於神化無盡德用恒沙者也若人能至誠祈願其感應也如水之印月谷之傳聲焉而能普濟含生竟臻壽域樂國也本寺自來有名勝區而佛像神塑之靈異異於他剎則其慈雲慧雨將露潤於無窮也居本邑兩廳諸員發大願心各出若干錢設供佛粮楔添香設供月日禱祝除其灾厄迎其吉慶子孫寔繁富貴連綿則感應道交理也必將獲蔭祐於冥冥之中不待智者而後知也而其壽域樂國竟臻無惑矣余南遊過是寺春溟長老請余一言爲弁余景慕隨喜爲之序
大韓 光武 四年 仲冬 下幹
湖西歸 釋鏡虛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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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제목 : 남원 천은사 불량계 서
대저 부처라 함은 깨달음을 말함이니 능히 자성(自性)을 깨달아 밝고도 오묘한 그 자리를 맑게 단련하여 신화(神化)의 경지에 이르면 다함없는 덕이 항하사 모래처럼 많도다.
만약 누가 능히 지성으로 기원하면 그 감응이 물에 달이 비치듯 골짜기에 메아리 울리듯 하여 능히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 필경에는 극락세계에 이르리라.
이 절은 예로부터 명승지이니 불상과 화엄신중의 영험이 다른 절과 달라서 자비의 구름과 지혜의 비가 윤택하게 적셔서 다함이 없을지로다.
본읍 두 관청의 관리들이 크게 발원하여 제각기 성금을 내서 불량계(佛糧楔)를 시설하고 향 사루고 공양을 올리며 달마다 혹은 날마다 기도하고 축원하며 재앙을 없애며 경사로움을 맞이하여 자손이 번창하고 부귀를 누리게 함은 곧 감응의 이치니라, 반드시 모르는 가운데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은 기다리지 않아도 지혜로운 이는 뒷날 자연 알게 된다.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남도 의심할 게 없다.
내가 남쪽에 노닐다가 이 절을 지날제 춘명장로(春溟長老)가 나에게 한마디 서문을 청하기에 내가 그 일을 기꺼이 생각하고 서문을 쓰노라.
대한 광무 4년 11월 하순
호서로 돌아가는 석경허 근지
(97~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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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제6장》
1.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어 가로되,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오리이까? 구제는 해야 하오리이까? 음식 금기는 무엇을 지켜야 하오리이까?"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3. 그리고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
4. 모든 것은 하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5. 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6. 덮힌 것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오늘 내용은 경허선사 생존 시 남원(현 구례군)에 있는 천은사(泉隱寺)라는 절에 갔을 때 불량계(佛糧契)에 대한 서문(序文) 내용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불량계(佛糧契)란 조선 후기 사찰계 중 보사계(補寺契)에 속하며, 사찰의 불사(공양)와 운영을 위해 승려와 신도들이 출자·기부를 모아 결성한 조직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었는데요.
이 말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수행 정진을 위해서 승려나 재가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수행정진을 하는데 필요한 물품이나 식자재를 만들어서 수행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힘든 상황에서도 뜻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돈을 모아 수행 정진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좋은 환경인데도 불고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몇 명만 빼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고요.
大韓光武四年 이면 서기 1900년인데요.
경허 스님이 1849년생이니까 이때 나이가 만 51세 때 일이랍니다.
그리고 1906년에 절을 등지고 파계를 한 후 박난주라는 이름으로 함경도나 평안도 만주 지방을 떠돌다가 함경도에서 돌아가신 것이 1912년도이니까 이 글을 쓰실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절 안에서 이 법을 펼치고 있을 때 임을 알 수가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경허 선사가 불교계를 파계하고 절을 떠난 것은 정말이지 경허 자신을 위해서라도 천만번 잘 한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게 되면 잡스러운 것들이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이고요.
누구나 깨닫고 증득하게 되면 이렇게 하게 된답니다.
부처님도 그러셨고 예수님 또한 그러셨고요.
혹자들은 혼자 지내면 외롭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요.
만약에 외로움을 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본성(불성/성령) 자리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외로움뿐만이 아니라 그 무엇도 없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유를 하면
주의는 온통 검은색인데 자기만 흰색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쉽게 말해 주의 스님들은 온통 천도재다 제사다 뭐다 해서 잡스러운 것들로 가득한 곳에서 경허처럼 깨달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시궁창 속에서 같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데 그 당시에는 오죽했겠어요?
더군다나 그 당시 조선은 서산대사와 사명당 이후로는 300년 이상을 수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절 안에서는 온통 이런저런 천도재다 제사다 뭐다 해서 잡스러운 것들로 가득했을 것인데요.
이런 절 환경에서 파계를 하고 떠난 것은 경허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답니다.
저부터라도 백번 천 번 그랬을 것이고요.
아무튼 이 당시까지만 해도 경허 스님은 대중들을 위해 이 법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요.
그중에서 오늘 내용은 이런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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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부처라 함은 깨달음을 말함이니 능히 자성(自性)을 깨달아 밝고도 오묘한 그 자리를 맑게 단련하여 신화(神化)의 경지에 이르면 다함없는 덕이 항하사 모래처럼 많도다. 만약 누가 능히 지성으로 기원하면 그 감응이 물에 달이 비치듯 골짜기에 메아리 울리듯 하여 능히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 필경에는 극락세계에 이르리라."]
(해설 : 뒤에 내용은 그냥 읽어보시면 될 것 같고요.
오늘 내용에서 중요한 내용은
[대저 부처라 함은 깨달음을 말함이니 능히 자성(自性)을 깨달아 밝고도 오묘한 그 자리를 맑게 단련하여]
과
[필경에는 극락세계에 이르리라.]
라는 내용이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불교나 기독교는 본성을 깨닫거나 성령을 깨닫고 증득하고 영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가기 싫어도 갈 수 박에 없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극락세계란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천국을 말하는 것인데요.
극락이나 천국은 성령을 영접하게 되면 불교 식으로 말하면 불성을 증득하게 되면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랍니다.
극락과 천국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主/자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 (도마복음 제3장)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라고 말씀을 하셨답니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면 새들이 제일 먼저 갈 거라 하지 않던가요?
참으로 이 내용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인데요.
천국 나라나 극락은 하늘이나 바닷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주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영접(증득)을 하는 것을 가르치는 교(敎)가 불교와 기독교라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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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도마복음 제6장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은 불교 식으로 말하면 율장(律藏)이나 계율(戒律)에 관계되는 내용이랍니다.
손오공으로 비유하면 저팔계(猪八戒)에 해당하는 내용이고요.
(猪八戒)란 말 그대로 돼지(猪)로 비유한 중생들은 팔정도(八)나 계율(戒) 등에만 마음이 매여서 더 높은 단계로 나가지를 못한다는 뜻으로 비유한 그림인데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비유로 하신 말씀이고요.
지금도 보면 일반 중생들은 바리새인들처럼 계율에만 마음이 매여있잖아요?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그런 것에만 마음이 매여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기독교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나 기독교는 성령을 영접하고 불성을 증득해서 생과 사가 없는 쉽게 말해 죽음이 없는 그런 극락과 천국의 세계(나라)로 건너가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너간다"라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도피안(到彼岸)이라 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요단강 건너 저편 가나안 땅으로.."라는 표현을 썼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영원한 안식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만큼 성령을 영접하고 불성을 증득하게 되면 영원히 안식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백번 천 번 옳은 말씀이고 진실이랍니다.(진실)
그런데 이것이 율법이나 계율 등으로 이룰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도 (도마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 모든 것은 하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덮힌 것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
라고 말씀을 하신 거랍니다.
이 내용은 불교 쪽이나 기독교 쪽이나 매우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불교 쪽이나 기독교 쪽이나 지금 보면?
성령이나 불성을 증득할 생각은 안 하고?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부처님 흉상에 공양이나 올리면서 절이나 하고 있고
저팔계(猪八戒)처럼 지키지도 못하는 계율에 매여서 스님들이 수행을 전혀 안 하고 있잖아요?
기독교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수도에는 전혀 관심들이 없고 나무로 만들어 놓은 십자가에 기도만 하면 "천국을 따놓은 당상"이라 하면서 바리새인들처럼 성경 구절이나 외우면서 거룩한 척 손을 양손으로 높이 치켜들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지만
주 안에 있는 쉽게 말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주님(성령)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곧 하나님이요. 불교 식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이 곧 부처라는 것을 못 깨닫고
길 잃은 아들처럼 이리저리 구걸이나 하면서 헤매고 있는 모습들이 지금 불교와 기독교인들의 형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인데 이것도 모르고 지금 기독교인들은 구하지도 않고 기도만 하면서 요행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 쪽도 매한가지라는 것이고요.
불교나 기독교의 교리는 마음이 매이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고 부처인데 누가 누구에게 마음이 매여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느냐 이겁니다?
부처라는 상에 마음이 매여서 예수라는 상에 마음이 매여서 살아가는 것이 불교나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지금 율법 따위에 마음이 매여서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계율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만 매달려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오공 이야기에서 저팔계(猪八戒)도 보면 매번 가짜로 만들어 놓은 궁궐과 같은 환상의 집에서 기생이 차려놓은 진수 성찬에 현혹되어 수행자로 묘사된 사오정(沙悟淨)까지 꼬셔서 기생 집에서 띵까띵까하고 먹고 놀다가 나중에는 손발이 묶여서 그물에 매달려 있잖아요?
이 그림이 바로 오늘 예수님 말씀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팔계나 사오정은 스스로가 계율을 말하고 있고 팔정도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상황이 닥치면 불교 식으로 말하면 경계에 부닥치면 그 유혹을 못 이기고 그냥 끌려들어 가서 홀라당 마음이 그쪽으로 묶이고 매이잖아요.
기독교도 마찬가지이고요.
기독교도 입으로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고 율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예수님도 도마복음 6장을 통해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
하셨던 거랍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도 불경처럼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예를 들면
(마가복음 2장 23~28절)에는 이런 내용들이 나온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도 보십시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라고 하지 않던가요?
이 말의 뜻은 사람이 먼저지 율법이나 계율 따위가 먼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성령.., 불교 식으로 말하면 내 안에 불성이 주인인데 누가 누구에게 율법을 따르라 하고 누가 누구에게 계율을 따르라 하겠느냐 이겁니다.
계율이나 율법 따위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바리새인이나 일반 중생들 입장에서나 소중히 여기는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마태복음 9장 14~15절)에도 이런 내용들이 나온답니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리고 또 (누가복음 18장 10~14절)에도 이런 내용들도 나온답니다.
[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세리(稅吏)는 주로 로마 제국의 조세 징수권을 맡아 세금을 걷는 관리(징세 청부업자)들을 뜻하는 내용인데요.
이 내용은 불교 식으로 말하면 달마와 양무제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랍니다.
양무제도 달마에게 그러잖아요?
양무제가 불교 사원과 스님들을 수도 없이 만들고 공양시키고 있는데 자기 공덕은 얼마나 되냐고 달마에게 묻잖아요?
그랬더니
"무(無/없다)"
라 하지 않던가요?
이 말은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계율을 따르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더라도 성령을 영접하지 못하면, 불성을 증득하지 못하면 모두가 "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울법이나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랍니다.
사랑과 자비와 보시와 공양을 베풀지 말라는 것이 아니랍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말씀은 우리들의 주 목적은?
이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을 증득하고 성령을 영접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육체 입장에서 보면 이 육체는 죽고 없어지면 그만이지만
본성(성령) 입장에서 보면 본성(성령)은 죽으려고 해도 죽을 없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육체만 바뀔 뿐 그 본질은 그대로랍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불교 쪽으로는 약초유품(藥草喩品)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고
기독교 쪽으로는 (마태복음 7장 17~29절)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는데요.
이 두 경전 속 내용들은 모두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내용들이랍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불교 쪽에서 오래도록 공부하고 수행해 오신 분들은 이 내용을 어떻게 보셨나요?
[약초유품]과 그대로 아닌가요?
불교 식으로 말하면 엄청난 법문들 아닌가요?
요즘 말로 표현하면 근기(根氣)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중에서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부류들은 전혀 이쪽으로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관심은 있지만 시꿍둥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불경이든 성경이든 사경(寫經)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찬양이나 염불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불경이나 성경 책을 해석하면서 외우고 또 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오늘 내용처럼 율법이나 계율들만 열심히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드디어 수행이나 수도의 길로 들어서기는 했지만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드디어 수행이나 수도의 길로 들어서서 좀 이해를 하고 길을 잘 잡은것 같지만 아직도 분별심 등으로 인해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드디어 수행이나 수도 등을 통해 깨닫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뭔가가 2%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드디어 수행이나 수도 등을 통해 해탈(증득/영접)을 이루고 보살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또 어떤 부류들은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완전한 해탈을 이루고 앞으로 올 미륵이나 메시아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각자가 각자의 근기에 따라 그 수준과 격차가 다 다르다는 것인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구담 스님이 하신 말씀을 끝으로 오늘 내용은 마무리할까 합니다.
(끝부분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내용)
중생은 뭘 먹고 삽니까?
(답)중생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먹고살지
마왕(사탄)은 뭘 먹고 사나?
(답)번뇌를 먹고 살아
부처(예수)는 뭘 먹고 살아?
(답)지혜와 자비(사랑)으로 먹고 살아
선사(수행자/수도사)는 뭘 먹고 살아?
(답)화두(기도 관)를 먹고살아
경사(經師/성경만 외우는 사람)는 뭘 먹고 사느냐?
(답) 경을 먹고 살아
율사(율법과 계율만 따지는 사람)는?
(답)율을 먹고 살고
(오늘 내용과 같은 내용임)
나한(선지자)은 아라한은?
(답) 공(비워진 마음)을 먹고살아
보살은?
(답)육바라밀을 먹고 살아
거..? 먹는 대로 되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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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이 말은 내가 지금 어떤 것을 대상으로 닦느냐에 따라 중생이 되기도 하고, 율사가 되기도 하고, 아라한(선지자)이 되기도 하고, 부처나 예수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중에서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시겠습니까?
지금처럼 천도재나 제사나 지내면서 사시겠습니까?
아님 지금처럼 기도나 하면서 거지처럼 구걸이나 하면서 사시겠습니까?
저요?
저야 당연히 부처나 예수가 되기 위해서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만이라도 제가 앞장서볼 것이니 저와 함께 이 길을 같이 가 보십시다.(진실)
기독교 쪽이든 불교 쪽이든 제가 무료로 돕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u2ro_coYmSM?si=GIqj2GLJWoew2X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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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하셔서 꼭 성불이든 성령 영접이든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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