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자비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흔히 자비를 착함, 선함, 혹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정도로 이해한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비가 단순한 도덕적 친절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를 깊이 통찰했을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마음이라고 방문객님 글을 통해 이해했다.
붓다를 일컬어 일체지라 한다.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앎’은
세상의 정보를 많이 안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일체가 공하다는 것, 즉 모든 존재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잠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앎에 가까울 것이다.
별도, 인간도, 생각도, 감정도, 욕망도 모두 인연 따라 잠시 일어나고 사라지는 흐름일 뿐이다.
그 관계를 처절히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자비심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비를 두 가지 의미로 느낀다.
첫째는
‘스스로 자(自)’에 ‘슬플 비(悲)’다.
스스로를 깊이 알아차려 보니 슬픔이 일어난다.
우리는 평생 영원한 것을 붙잡으려 하고,
변하지 않는 나를 만들려 하며,
욕망과 두려움 속에서 허상을 좇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은 잠시 형성된 관계의 파동일 뿐이다.
그 사실을 진실로 마주할 때
어떤 애잔함과 슬픔이 피어난다.(방문객님 글을 읽고이해한 자비로, 깊은 울림 받은 부분)
둘째는
‘자애로울 자(慈)’에 ‘슬플 비(悲)’다.
타인의 괴로움을 향한 연민이다.
흔히 말해지는 자비이다.
그런데 이 둘은 사실 분리되지 않는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타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구조 속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살고 싶어 두려워하고, 사랑받고 싶어 집착하며, 잃지 않으려 괴로워한다.
결국 모두가 거대한 인연의 물결 속에서 잠시 흔들리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자비란 억지로 만들어내는 윤리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를 통찰했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해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붓다는 세상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관계성을 끝까지 바라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남은 것이 바로 자비였던 것은 아닐까.
요즘 AI의 발전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갈까?
인간을 해치지는 않을까? 라는 논제로 떠드는 뇌과학자 등의 유튜브를 보다가.
나는 일체지자 붓다를 꺼내보았다.
사실이 사실대로 보이면, 일체가 명명백백해지면
인간이 만든 AI가 인간을 초월한 지능으로 무장될 수록 도리어 붓다와 가까숴지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ㅎㅎ
좀 이상한가? ㅋ
첫댓글 부처님을 일체지자 라고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일체는 오온 즉 12처 곧 18계 입니다.
종종 말하듯, 슬픔은 알려져야 하고 배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알려져야 할 것은 알려지고, 행해야 할 것은 행해져야 하나니, 더 이상 태어남은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