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기준은 기업의 재무상태나 영업 성과를 회계라는 언어를 통해 표시하기 위한 약속이다. 각국마다 자국의 회계기준이 있다. 우리나라는 1959년 '기업회계원칙과 재무제표규칙'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개정을 통해 지금의 한국회계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이 회계기준이 2011회계연도부터 크게 바뀐다. 모든 상장·코스닥등록 기업은 국제 회계기준 즉 IFRS의 적용을 받는다. IFRS는 국제적으로 동일한 기준에 따라 기업의 경영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회계기준으로, 현재 전 세계 100여 개 국가가 사용 중이다. 우리나라도 기업 회계정보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를 높인다는 목표 아래 IFRS 도입을 결정했다. 2011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코스닥등록 기업(2조원 미만 기업은 2013년부터)이 의무적으로 IFRS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공시해야 한다. 대부분 12월 결산법인인 국내 기업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2011회계연도부터 IFRS의 적용을 받는다. 증권사들처럼 3월 결산법인의 경우 2011년 4월 1일 시작되는 2011회계연도부터 적용된다. IFRS를 도입할 때 가장 큰 변화는 연결재무제표를 주된 재무제표로 공시하는 것이다. IFRS 도입 후 경영 현장에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가상의 사례들을 통해 짚어본다.
→IFRS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은 자본시장 자유화에 따라 국제적으로 통일된 회계기준 제정을 목표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C)에서 정한 회계기준을 말한다.
재무제표의 작성 절차, 공시 시스템, 재무정보 시스템, 경영성과 지표 등 기업의 전반적인 재무보고 시스템과 회계 및 자본 시장의 감독 법규, 실무 등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규정한다. IFRS의 주요 원칙은 연결재무제표와 원칙중심회계(공정가치 평가),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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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1. 재고자산도 연결기준으로 평가
잘들려산업㈜은 전 세계 10여개국에 생산 및 판매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 다국적 기업. 2011년 3월 말, 이 회사 한건해 영업본부장은 지난해 유럽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신제품이 경쟁사의 마케팅 공세로 최근 유럽 현지의 판매가격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전달해 부장의 보고를 받았다.
"전 부장, 그 제품의 생산 단가가 얼마나 되죠?"
"네, 대당 100달러입니다."
"지금 판매가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본부장님, 대당 100달러의 생산 원가에 운송료 등 수출 부대비용 30달러, 우리 이윤 20달러를 붙여서 150달러에 유럽 판매 자회사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지에서 100달러에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본사 입장에서는 어쨌든 대당 20달러의 이익을 보고는 있는 거네요. 물론 유럽 자회사에서는 팔 때마다 50달러씩 손해니까, 전체적으로 대당 30달러 정도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지금 그 제품의 재고가 얼마나 됩니까?"
"본사에 100억원어치가 있고 운송 중인 것을 포함해 현지법인에 50억 원 정도 있습니다."
"그러면 본사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지 않으니까 이번 1분기 결산 시에는 본사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 문제는 없겠네요."
"그게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록 본사에서는 이익을 남겨서 유럽 자회사에 판매하고 있지만, 연결 기준으로 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지금 본사에 남아 있는 재고 100억원어치를 팔면 전체적으로 30억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번 결산에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 손실 30억원을 반영해야 합니다. "
아뿔싸, 한건해 본부장은 그제야 갑자기 생각이 났다. 지난 연초에 회계팀에서 국제회계기준인지 뭔지 하는 새로운 회계기준이 도입되기 때문에 많은 점이 달라진다고 한 말이 인제야 현실로 와 닿았다. 앞으로는 모든 재무제표가 연결기준으로 작성돼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2. 해외 자회사 수출대금 할인액, 차입금으로 표시
잘들려산업의 최대한 사장은 차입금이 전혀 없는 무차입 기업인 것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신규 공장 건립에 필요한 재원도 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등 차입금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 회사의 해외 자회사들 역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금 없이 운영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된 첫해인 2011년 1분기 결산 내용을 검토하면서 최대한 사장은 화들짝 놀랐다. 연결재무제표에 거액의 단기 차입금이 있는 것을 보고 당혹해하다 화급히 이대로 경영지원담당 상무를 불렀다.
"이상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단기 차입금이 있는 거지요? 뭐 잘못된 것 아닌가요?"
"사장님, 그런 것이 아니고 아시다시피 이번부터 연결재무제표를 우리 회사의 주된 재무제표로 공시하게 됐습니다. 연결 기준으로 작성하다 보니 해외 자회사에 대한 수출 대금을 은행에서 할인한 금액 중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해외 자회사가 갚지 않은 부분이 차입금으로 표시되게 됩니다. 단기 차입금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내용입니까?"
"네, 자회사에 제품을 수출해 발생한 매출채권을 은행에 가서 할인한 것은 연결 실체 입장에서 보면 내부거래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따라서 본사의 매출채권과 자회사의 매입채무는 서로 상계되고, 은행으로부터 할인한 금액만큼 연결재무제표에 차입금으로 계상되는 겁니다."
"아니 우리 회사는 그전에도 수출 대금을 은행에서 계속 할인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부채가 안 나타난 거지요?"
"과거에는 본사의 개별 재무제표가 주된 재무제표였는데, 개별 재무제표상에서는 수출 대금 할인액이 본사의 차입금으로 직접적으로 표시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전에도 1년에 한 번은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고 거기에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차입금으로 표시됐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연결재무제표가 주된 재무제표가 아니다 보니 별로 관심이 없었던 까닭에 잘 모르셨을 수 있고, 또 분기 결산 시에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아서 더더욱 알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차입금 없는 회사라고 자랑하고 다녀서는 안 되겠구먼. 이것 참…"
3. 지분법 중단된 해외 종속법인 손실, 본사에 반영돼
잘들려산업은 북미와 유럽시장에서는 선전(善戰)하고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큰 기대를 가지고 진출했던 인도시장에서 최근까지 거액의 손실을 봤다. 인도 현지법인은 이미 몇 년 전에 자본잠식(부채가 자본보다 많은 상태)이 돼 본사에서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하지 않으면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 회사의 개별 손익계산서상에는 인도법인의 손실액이 반영되지 않았다. 인도법인에 대한 투자 금액을 이미 다 까먹어서 지분법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손익계산서에 지분법 손익(자회사의 영업 손익을 하나의 계정으로 모회사의 영업 손익에 표시하는 방법 )이 나타나지 않았다. 주석에서만 그동안 반영되지 않은 누적 손실액을 표시하고 끝냈던 것이다.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이 같은 사정을 재무제표를 통해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 분기 결산을 앞두고 최대한 사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올해 1분기는 계절적 요인이 겹쳐 인도법인의 실적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상무, 이번 분기 인도법인의 실적이 어떻게 되나요?"
"네, 작년 말부터 판매가 계속 급감하고 있어서 1분기에도 5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그거 참 큰일이군요. 작년에 적자가 200억원 이상 났는데, 이번에도 분기별로 보면 여전히 비슷한 상황이네요. 그래도 작년에는 지분법이 중단되는 바람에 본사 손익에는 영향을 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됩니까?"
"이번 분기 결산부터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실적을 공시해야 합니다. 연결재무제표에서는 종속회사의 경우 지분법이 아니고 연결 회계를 적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경우 인도법인의 손실이 고스란히 본사 손익에 반영됩니다."
"그러면 전년 동기와 비교해서 실적이 나쁘게 보이게 되는 건가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번 분기 실적을 공시하면서 전년 동기도 같은 연결 기준으로 비교해 공시하기 때문에 동일 기준으로 보면 별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재무 자료를 이용하는 관련 부서 및 외부 관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도록 하세요."
내부거래 비중 많은 회사, 경영실적 저조하게 나타날 수도
■IFRS가 가져올 변화
그동안 한국의 많은 기업이 사업 확장이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규모를 키우고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초국적 기업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현행 한국 회계기준은 개별 회계 중심으로 운영됨에 따라 연결재무제표를 주된 재무제표로 간주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상당 부분 일치하지 않았다. 국제회계기준은 법적으로 별개 회사라 하더라도 의결권의 과반수를 보유하는 등 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경영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본다. IFRS 도입에 따라 우리나라도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기업은 2011년부터 매 분기 연결재무제표를 공시해야 하고, 2조원 미만 기업은 2013년부터 분기 연결공시가 의무화된다.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은 기업 경영 전반의 일대 전환을 가져올 전망이다. 위의 가상의 사례에서 보듯 상호 독립적인 법인격을 갖고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기업처럼 유기적으로 묶여 있는 모회사-자회사 기업의 경우에는 이 같은 변화가 보다 확연해질 것이다.
내부거래의 비중이 많은 연결집단은 내부거래가 상계됨에 따라 개별 회사 실적의 합계보다 연결 기준의 경영 실적이 저조하거나 부채비율이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기업들은 IFRS 도입을 계기로 경영 활동이 손익 구조와 재무구조에 미치는 효과를 연결 기준으로 사전에 분석하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갖추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