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는 시간
성경 말씀: 이사야 12장; 마가복음 13:1-13
요약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로 시간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시간은 하나님으로 개시된 언약의 삶에서 그대로 도입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함께로 말해지는 언약의 시간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이루어짐으로 보입니다. 언약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약의 시간으로 이루어지지 세상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측정된 시간
사람은 시공간에서 삽니다. 사람의 활동은 시공간을 매개로 기술됩니다. 한 개인의 일생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시공간을 매개로 기술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시공간에 두어지니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물리학은 시공간의 점의 움직임으로 물체의 운동을 기술합니다.
사람들은 시공간을 매개로 약속합니다. 언제 어디서가 밝혀져야 약속이 구체적으로 성립될 수 있고 이행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의 만남이나 공동의 일은 명시된 시공간의 설정으로 가능합니다. 시공간이 그들의 공동 의식으로 자리잡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함께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들의 약속과는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그분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시간성을 띱니다. 그분 약속은 가능성에 제한되지 않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루어짐은 시간성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 함께는 단순히 시간의 매개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분 백성은 세상에서 시간의 매개로 살지만, 그분 함께는 시간의 매개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시간으로 이루어지기만 합니다. 따라서 그분 약속도 시간으로 이루어지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약속은 언제 어디서 이루어진다고 명시될 수 없습니다. 그분 함께는 명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 함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이 시간의 매개로 문제지 않습니다. 그분 함께가 시간의 매개로 문제되면, 시간의 매개로 문제되는 다른 것과 상충되게 됩니다.
시간의 매개로 문제되는 것은 측정된 시간에 두어집니다. 사람이 말하는 시간은 측정된 시간입니다. 시계로 말하는 시간은 측정된 양으로 말해집니다. 시간의 진행이나 경과는 양적으로 표현됩니다. 시계의 초침이 얼마나 돌았느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시간을 내포하지만 시간에 설정되지 않습니다. 만약 시간에 설정되면 측정된 시간의 양으로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그분 함께는 시간의 양으로 명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명시된 시간에 따라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약속은 세상의 진행을 넘어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그분의 함께하는 뜻을 그분 약속으로 주십니다. 그분 약속은 세상 조건에 의해 반응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약속은 측정된 시간 체계를 넘어 이루어집니다. 그분 약속의 시간은 측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번성하여 가나안 땅에 살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그가 아내 사라와 아직 아들을 갖지 않을 때 주어집니다. 따라서 그분 약속은 조건적 시간의 경과를 넘어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상황에 반응한 그분 조치가 아닙니다. 그분 약속에 내재된 시간은 측정된 시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분 함께의 약속은 측정된 시간에 설정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시간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영원은 측정된 시간의 양이 무한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태어남에서 죽음으로 제한되니 유한합니다. 양적인 시간으로 말해집니다. 그렇지만 영원은 양적 시간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영원은 측정된 시간이 아닌 그분의 약속된 시간으로 말해집니다.
영원은 측정된 시간의 양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을 갖습니다. 영원은 측정될 수 없는 시간을 뜻합니다. 측정된 시간은 어떻든 유한합니다. 측정될 수 있는 체계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시간은 사람의 시간에 대한 상상입니다. 측정된 시간의 양을 부정함으로 무한한 시간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시간은 측정된 시간과는 무관합니다. 그분 약속은 측정된 시간에서 형성되지 않고, 또 측정된 시간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 약속은 이루어질 약속임으로 시간으로 말해지지만, 그 시간은 측정된 시간이 아닌 영원한 시간입니다.
있음이나 일어남은 측정된 시간으로 말해지지만, 이루어짐은 측정된 시간으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이루어짐은 시점의해 설정되지 않습니다. 이루어짐에 시간성은 주어지지만 시간의 양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분 약속엔 시간이 내재됩니다.
측정된 시간의 삶에서 시간은 자체로 흘러갑니다. 시간을 의식하든 않든 시간은 지나갑니다. 아침을 먹고 일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됩니다. 일에 몰두하든 시간이 가길 기다리든 상관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의식하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할 경우 시점을 앎이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삶은 그분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그것은 그분 약속의 이루어짐을 향하기 때문에 시간적입니다. 그것은 그분 약속의 이루어짐을 향해 펼쳐갑니다. 시간을 향하지만 처한 시점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 약속은 정해진 시점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시점으로 의식되지 않는 시간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으로 의식되지만 시점으로 의식되지 않습니다. 그분 약속은 그 이루어짐을 기다리지만 언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지 않습니다. 그분 약속을 기다리는 삶은 시간을 향하지만 시간에 설정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시간으로 의식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시간을 의식하여 태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는 있는 상태로 지속됩니다. 시간성을 지니지 않은 채 세상에 있게 되지만, 있는 상태는 시점으로 나열되게 됩니다. 개인의 일생은 시점으로 나열된 있음입니다.
사람의 삶은 시간적이지 않습니다. 조건적이고 일시적이더라도 시간적이지 않습니다. 조건적 반응의 하루하루 반복입니다. 시간을 매개로 조건적 반응의 나열이 하루의 일과입니다. 개인의 삶은 있음의 지속일 뿐입니다. 지속하는 것에 시간 부호가 붙여집니다.
태어남으로부터 죽음까지 일시성은 시간성이 아닙니다. 일시성은 시간 부호가 붙여짐으로 시간적으로 정리되게 됩니다. 개인의 순간의 특징은 조건적일 뿐입니다. 시간적으로 분류된 조건은 서로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특징은 시간적이 아닙니다.
내포된 시간
언약의 삶에 함께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으로, 그것은 시간성을 지닙니다. 그것은 자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성을 지닙니다. 그것은 시간으로 이루어짐을 보입니다. 세상에 조건적이지 않고 시간으로 펼쳐집니다. 조건을 따라 보이지 않고 때를 따라 보입니다.
언약의 삶은 세상의 조건에 반응되지 않습니다. 시간의 이루어짐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언약의 삶은 시간에 사는 삶이 아닌 시간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에 반하여, 세상의 삶은 조건적으로 반응하며 시간에 사는 삶입니다. 세상의 삶은 시점으로 나열됩니다.
시간에서 사는 삶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시간으로 사는 삶은 영원합니다. 이 경우 영원은 무한한 시간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원은 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에 담아지지 않아 영원합니다. 시간으로 이루어짐은 시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언약의 시간은 세상의 측정된 시간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언약의 시간은 하나님의 약속에 내재됩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루신다는 데서 봅니다. 그분은 세상 조건에 개입하지 않으시지만 그분 때를 따라 이루십니다. 그분은 세상을 바꾸지 않으시고 그분 약속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때는 영원으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세상에 속한 시간이 아님으로 영원합니다. 영원은 세상에서 보는 그분의 때입니다. 혹은 그분 영원을 보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시간도 그분으로부터 새롭게 생각됩니다, 세상의 측정된 시간이 아닌 그분의 영원한 시간이 의식됩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영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서 무한히 지속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원은 세상의 시간과 구별된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분 함께로 언약의 삶은 세상의 측정된 시간이 아닌 그분의 시간, 영원으로 말해집니다.
언약의 삶은 이루어지는 시간, 혹은 하나님의 시간을 다룹니다. 언약의 삶이 세상 삶과 구별됨으로 하나님의 시간도 세상 시간과 구별됩니다. 세상 시간으로 그분 함께가 다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측정된 시간이 반영되게 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보이는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를 지속적으로 생각한 점입니다. 그들은 그분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면을 간과했습니다. 한 번 아브라함과 그분에 의해 맺어진 언약은 그의 후손으로 언제나 지속된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을 세상에서 굳혀진 기정사실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그분 함께의 면보다 그분의 택해진 백성으로 그들의 신분의 면을 강조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삶과 초대 교회의 삶에서, 조건적이지 않는 시간으로 이루어짐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세상에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만 보입니다. 세상에 속함이 아닌 세상에 드러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신약을 읽으면서 영원의 시각이 눈뜨게 됩니다. 복음의 선포는 세상에 그 이루어짐으로 알려집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개입이 아닌 하나님 함께의 이루어짐이 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시간, 곧 영원으로 사는 삶이 말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있는 저희로 아버지와 함께 살게 하옵소서.
세상 시간으로 설정되지 않고,
새로운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새로운 시간으로 아버지와 함께 영원으로 살게 하옵소서.
양적인 시간에 젖어 세상 변화를 따르는 저희 의식이
이루어지는 시간 의식으로 영원을 향하게 하옵소서.
저희 의식의 매개가 되는 시간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로 이루어지는 시간에 눈뜨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