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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구속’의 도화선
비뇨기과 전문의 박경식 요즘 생활
“정치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한다면 기막히게 잘할 겁니다”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거침없는 답변으로 화제를 모았던 G남성크리닉 박경식 원장. 김현철씨 비리르르 고발한 후 협박, 도청, 감시 등 말못할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그를 보고 정치하라는 권유도 많지만 그는 의사로서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글·이혜련 기자/사진·이종승 기자
서울 송파동에 있는 박경식씨의 G남성크리닉. 현관문 위에 ‘정장차림 부탁합니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어 잠시 의문이 든다.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와야 하는 걸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정장차림이 아닌 손님의 출입을 거절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병원에서 정장차림을 요구하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약만 갖고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해야 치료효과도 있는 겁니다. 이 사람이 날 꼭 치료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병원에 오진 않을 겁니다. 제 말은 저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만 오시라는 겁니다. 남들도 다 고칠 수 있고, 저 사람이 날 치료해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겁니다.”
그의 말에는 의사로서의 자신감이 강하게 배어 있다. 그런 자신감은 병원 운영방식에서도 나타난다. G남성크리닉은 일반비뇨기과와 달리 조루, 발기부전, 성기왜소 등 남성의 성문제만을 다루는 전문병원이다. 진료는 1백% 예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기실이 없다는 것도 이 병원의 특징이다. 가끔 지나가다가 비뇨기과 간판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근처 다른 병원을 소개해준다.
그가 보는 환자는 하루 15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5명 정도는 상담환자다. 상담환자는 한 사람당 30분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많이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환자 숫자가 적으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많은 환자를 보는 것보다 단 한 명의 환자라도 잘 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현철씨 비리 폭로(그는 고발이라고 말을 정정했다) 후 한동안 그의 병원에는 환자들의 발길이 끊기기도 했다. 혹시 불이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사람들도 정권교체가 되니까 다시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죽음을 각오하면 두려운 게 없다
김현철씨 사건 이후 그는 체중도 줄고 흰 머리도 늘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30년간 한번도 변하지 않았던 몸무게가 줄어든 것을 보고 “그만한 일로 체중이 줄다니 나도 아직 수양이 덜 됐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그만한 일이라니? 맨처음 그가 김현철씨의 비리를 밝힐 때는 목숨을 걸고 한다고 했을 만큼 비장하지 않았던가?
“흔히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해요. 사람이 뭘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한거지, 죽기밖에 더 하겠나, 너희들이 죽이려면 죽여라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체중 준 걸 봐서 수양이 덜 됐구나, 인간이 덜 됐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한 나라의 대통령 아들이 구속되고, 그의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지만 그는 의의로 담담하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자면 크고 작은 파도를 만나는 법이라며 그때 일도 인생살이의 파도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김현철씨 비리를 밝힌 후 어떤 어려움을 겪었느냐고 묻는 것이 달갑지 않다.
“저에게 당신이 협박당하고 도청당한 예를 들어봐라 하는데 굳이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도청당하는 거 처음 겪어 본 일도 아니에요.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상도동에서 전화가 왔어요. 몇 번 전화는 도청을 할 테니 사적인 일은 다른 전화를 쓰라구요. 저는 여러 경험 끝에 도청을 당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어요.”
도청이 습관화되어 있다는 그의 말이 무척 냉소적으로 들린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기 전인 96년 10월22일경부터 다시 도청이 시작됐다고 한다. 도청당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그는 갑자기 전화 감이 멀어지고 가끔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고 말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내가 전화로 할 말을 그쪽에서 다 알고 있는 거예요. 도청 안한다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참다못해 도청방지장치업체를 불렀는데 방 3칸당 1천여 만원씩 달래요. 그럼 병원만 해도 수천만원이 들어가는데 집까지 하려면 그게 얼마예요. 게다가 모 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도청장치는 1~2km 밖에서도 도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완벽하지 못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중요한 전화는 밖에 나가서 공중전화로 하고 집에서 집사람과도 필담을 주고받았다니까요.”
집에서 필담을 주고받아야 했다면 전화뿐 아니라 집안 전체가 도청되었다는 이야기다.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자 “그 사람들은 우리 집과 내 자동차 열쇠 면허냈어요” 한다. 어떤 때는 집안에 낯선 삐삐가 떨어져 있었던 적도 있고, 문을 열려고 할 때 누군가 후닥닥 도망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무서워요? 누군지 잡으면 귀싸대기 한대 패주었으면 좋겠는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하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뒤에 숨어서 그런 짓이나 할 정도로 떳떳하지 못한 형편없는 정권 내지는 사람들이 뭐가 무서워요? 나 하나 못 죽여서 그렇게 안달이에요? 얼마나 기가 막혀요? 자기들이 내 집 열쇠 면허냈어요? 그런 짓을 하면서 그 정권이 안 망하면 이상한 것이죠. 내가 엄청난 나쁜 짓을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내가 도둑질을 했습니까? 돈을 떼먹었습니까? 뒤집어씌우고 엉터리로 조작하고. 힘 가졌다고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되죠.”
혼자 등산하며 분노를 삭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힘이 되어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특히 아내는 꿋꿋한 모습으로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고 한다.
“우리 집사람요? 운동권이죠. 가사운동권요. 남편이 독립투사면 아내도 자연히 독립투사가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만약 당신이 옳다고 믿고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나가서 싸우래요. 집안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라면서요. 보통여자는 아니죠.”
농담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잘 하면서도 그는 아내의 이름을 비롯해서 가족에 대해 자세히 밝히는 것을 거절했다. 자신의 일 때문에 가족까지 세상에 알려지고 행동의 제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생 딸과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있는데, 그 일로 아이들에게 충격을 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사춘기 애들이라 한동안은 상당히 어려웠죠. 분명히 자신이 알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게 아닌데, 언론에서 파렴치한 의사, 나쁜 놈인 것처럼 다루고 의료법 위반으로 의사면허를 뺏겠다, 그 다음에는 통신비밀법 위반이다, 그래도 안되니까 국회 모독죄를 들먹이고, 나중에는 명예훼손죄까지 나왔잖아요. 애들이 가치관 확립이 안된 상태에서 혼돈이 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중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봤던 아버지가 맞거든요. 처음에는 아버지가 누구라고 이야기하기 싫어하더니 나중에는 어디 가서도 떳떳하게 밝히고 자랑스러워하더라구요.”
그동안 그는 가족과 대학동창 몇 명 외에는 만나지 않고 집과 병원만 왔다갔다 하면서 지냈다. 가끔 혼자서 등산을 가기도 했다.
“어떻게든 제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싸우겠더라구요. 그래서 등산을 시작했어요.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謠山 智者謠水)’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산에 다녀보니까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산을 좋아하면 어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산을 타다 보면 격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들죠. 우선 힘이 들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니까요.”
그동안 행동의 제약 때문에 사회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사회단체에서 이런저런 일을 좀 도와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 시민단체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 있다는 사회단체도 믿을 만한 데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환경운동단체나 불우이웃돕기단체 몇 곳에 가입했을 뿐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곳은 피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단체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그를 찾는 곳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안양시 보궐선거때 모정당에서 후보추천 제의가 들어왔고 대선때는 모정당에서 텔레비전 지지연설을 부탁해오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들이 지난 대선때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에 천만표를 주었잖아요. 나라를 이렇게 만든 책임을 물어야 할 텐데, 국민의식이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전에 그는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신문마다 그가 언젠가 정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저는 정치하겠다는 소리를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기자들이 그렇게 써놓았더라구요. 일반시민 중에 ‘당신이 정치하면 잘 할 것이다’ 하면서 저에게 정치를 권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은 의사로서 남아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정치를 한다면 돈과 상관없는 깨끗한 정치를 할 겁니다. 또 누구처럼 엄벙덤벙하지 않고, 밤에도 관련서적을 찾아보고 민원현장을 직접 뛰고 공무원들도 만나보고.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따지지, 거수기 역할이나 하진 않을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정치한다는 소리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 입으로 정치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의사는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 살지만 정치권은 얻어 먹는 형태 아닙니까? 내가 벌어서 떳떳하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거기 가서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면서 동냥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동냥질 안하고도 깨끗하게 소신을 펼 수 있는 시기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정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사회를 위해 살고 싶다
최근 김현철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혐의로 항소심에서도 3년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요즘 김현철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김현철씨가 보석으로 석방되었을 때 “다시 구속시킬 수 있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었다.
“김현철씨에 대해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 이미 국민이 심판한 거고 또 정권교체가 됐으니까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밝혀질 겁니다. 다만 잘못된 부분은 고쳐지고 환수할 돈이 있다면 빨리 환수시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건 직후 모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법은 힘있는 자의 편’이라고 말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필요한 것으로 알았는데, 겪어보니까 아니더군요. 최근 의정부지원 판사들의 뇌물수수사건이 밝혀졌는데, 판사가 그 정도면 검사는 어느 정도겠습니까? 이렇게 비리를 밝히는 일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개인이 하면 꼭 보복이 들어오더라구요. 체제도전이니 명예훼손이니 해서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기들은 굳건히 성을 지키더라구요. 이제 우리나라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세상 비판은 거침이 없다. 언론에 대해서도 제발 새로운 정권에 아부 좀 그만 하라고 말한다. 힘있는 자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는 소리를 세번만 하면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듣고 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김영삼 정권 초기에도 지지도가 90%가 넘느니 어쩌니 해서 얼마나 추켜세웠던가.
“새 대통령께서 능력이 검증된 사람을 쓰겠다고 하는데, 먼저 일을 시켜봤어야 능력이 있는 건지 아는 것 아닙니까? 김대중 대통령도 준비된 대통령이지 검증된 대통령은 아니잖아요? 아랍 속담에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맨날 양지만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들은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 계속 쓰면 언제 이 나라가 깨끗해지겠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그는 옳다고 믿는 것이 있으면 자기생각을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학교때 친구의 예를 대신 들었다
“중학교때 우리반 아이 둘이 싸우는데, 처음에는 힘 센 아이가 힘 약한 아이를 일방적으로 두들겨팼죠. 하지만 맞은 아이가 한달이 지나도록 계속 덤벼드니까 결국 힘 센 아이가 항복하고 말더군요. 그때 힘이 세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굽히지 않으면 이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현철씨 사건 후 본의 아니게 언론을 타면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는 특히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제 인생을 세 단계로 나누고 싶어요. 첫번째는 나를 위해 살았던 시기, 두 번째가 가족을 위해 살았던 시기였다면 세 번째는 사회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이 사회를 위해서 주어진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살 겁니다. 하지만 조연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제는 가진 사람들이 베풀어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김현철씨 비리 의혹을 밝힘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아들이 구속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박경식씨. 그 사건 후 그는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 더 달라질지 모른다. 아직도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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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와 비슷한점이 너무 많습니다 지방 시장이 꼭 시장이 되선 않됄 사람이라 검찰에 지방선거법 위반으로 신고 햇습니다 검찰 에서 구형 일년 일심 판결250만원 판사 판결후 사표 변호사 그지역 부장판사 근무한자 외2명 항고심 기각 변호사 부장 판사와 동기동창 결과뻔하지요 결론 비리와 부정을 신고한저는 배신자와 지역에 파렵치한사람이 돼었지요 박경식님 처럼 채중이8키로 이상 줄고 우울중 증세까지 생겼습니다 난생처음 격은 일이고 판사 권의가 이러케 큰 줄 몰랐지요 참 또한 판결에 형편 성도 의문이지요 저는 정치할 사람도 아니고 정치 하는사람도 아닌대 사법부에 위문점이 너무 많습니다
의사 박경식님의 사모님께서도 대단하신 분이라고 느껴집니다. ^^
이런 분들로 인해 탁한 세상, 힘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민한 의사의 시각으로 김교수님과 박판사가 접촉했을때의 상황에서 은폐되었던 당시 민사의 허위판결문을 미세한 수술하듯 분석하시어 과연 김과 박중 어느 쪽이 살인의도를 먼저 발사했다고 판단하시는지요?
(앞 글의 댓글 계속)---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금언은 중용의 미덕을 발휘함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용의 미덕은 동질적인 집단의 구성원들끼리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집단최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서로 경계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항상 건전하고 깨어있는 집단(카페)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지나침이 당연시 되어 버리는 최면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을 눈 똑바로 뜨고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썩어가지 않고자 드리는 저의 이 고언을 깊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