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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의 고뇌
"나도 죽음의 고통을 피하지 못하겠구나"
아, 아, 인간의 목숨이여,
백 년도 못 채우고 죽는 것을.
비록 백 년 넘어 산다 해도
늙고 쇠하여 마침내 죽고 마는 것을.
<수타니파타>
싯다르타 태자의 궁중 생활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계절에 맞는 세 채의 궁전에 기거하며, 카시(오늘날의 바라나시)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가장 고급스러운 전단향을 몸에 바르며 살았다. 음식도 옷가지도 최상의 것만을 사용했다.
수많은 미희들이 주변에서 시중드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 태자도 성장하면서 점차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따라 가 본 농경제(農耕祭. 혹은 파종제)가 동기가 됐다.
<니다나 카타>(인연 이야기)에 의하면 궁정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싯다르타 태자는
슛도다나 왕이 연 농경제에 참석했다.
모든 노예와 종들은 새 옷을 입고, 향수와 꽃다발로 몸을 꾸며, 왕의 어가(御駕) 앞에 모여 섰다.
의식에 대비해 천 자루의 쟁기가 준비됐지만, 108자루보다 한 자루 적은 숫자의 쟁기를
소에게 묶고 은으로 장식했다.
왕이 사용할 쟁기는 눈부시도록 화려한 황금으로 장식됐으며 소의 뿔과 그물,
채찍도 황금으로 치장됐다.
성장(盛粧)한 슛도다나왕은 싯다르타 태자를 데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농경제 현장으로 나갔다.
의식을 올릴 장소에 한 그루의 무성한 잠부 나무가 녹음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 태자의 침상을 놓고, 위에는 황금별을 새긴 천개(天蓋)를 설치했다.
천막으로 둘레를 두르고 시종을 딸린 채 태자를 그곳에 내려놓았다.
농경제 행사 도중 禪定에 든 태자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간 왕은 황금쟁기를 손에 들고, 신하들은 108자루보다 한 자루 적은 은쟁기를 손에 든 채,
농부들은 나머지 쟁기를 손에 각각 들고 농경제를 시작했다.
왕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커다란 행복감을 느꼈다.
태자 옆에서 시중들던 유모들은 "화려한 왕의 모습을 보러 가자"며 천막에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리 저리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태자는 발을 포개고,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을 음미하며
첫 번째 단계의 선정에 들었다.
그 때 태자는 흙에서 기어 나온 벌레가 새에게 쪼아 먹히고, 그 새는 다시 독수리 같은 사나운 새에게
잡아먹히는 광경 목격하곤 '세상의 무상함'을 느꼈다.
밖으로 나간 유모들은 음식 먹는데 취해 태자에게 돌아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 때 다른 나무 그림자는 움직이고 있었는데, 태자가 있는 나무의 그림자는 아주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정지해 있었다.
유모들은 "아기가 혼자 계시네"하며 급히 천막으로 돌아와, 침상 위에 발을 포개고 앉아 있는 태자를 발견했다.
수하관경
농경제 도중 나무밑에서 선정에 든 태자를 조각한 것.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불가사의한 모습을 본 유모와 여인들은 왕이 있는 곳으로 가 사정을 설명했다.
"왕이시여! 왕자께서는 다리를 포개고 앉아 계시나이다.
밖의 다른 나무 그림자는 흔들리고 있지만, 잠부 나무의 그림자는 아주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고요히 멈춰 있습니다."
급히 천막으로 돌아온 왕은 그 모습을 보고 "사랑하는 아들이여! 너에게
다시 한번 예배하는구나"하며 절을 했다.
농경제에서 '무상함'을 느낀 태자가 성장하여 16살이 되자,
슛도다나왕은 태자를 야소다라와 결혼시켰다.
결혼 후에도 태자의 '호화로운 생활'은 변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는 유원지로 가고 싶어 마부에게 "마차를 준비해라.
저 동산으로 나가 돌아다니며 구경하리라."고 말했다.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동기로 흔히 설명되는, 유명한 '사문유관(四門遊觀)'은 이렇게 시작됐다.
<장아함경> '대본경'에 따르면 수레를 타고 동쪽 성문을 나서 동산으로 가던 도중 태자는 한 '노인'을 만났다.
머리는 희고 이는 빠졌으며,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허리는 꼬부라져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태자는 시자(侍者)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늙었다고 하는가."
"늙었다는 것은 살 나이가 거의 다 돼 앞으로 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늙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老·病은 누구도 못 피해"
"나도 앞으로 저렇게 돼 저 괴로움을 면하지 못할 것인가."
"그렇습니다. 한번 나면 반드시 늙는 법입니다. 거기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에 태자는 "아! 태어남에는 반드시 늙음이 따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터이나 그러한 생이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가!" 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곧장 궁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슛도다나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처럼 태자가 출가할까봐 별궁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예쁜 여자들을 가려 뽑아 태자를 즐겁게 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태자의 고뇌는 점점 깊어갔다.
동문을 갔다 온 뒤 얼마 후 태자는 다시 수레를 타고 남문을 나갔다.
도중에 잔뜩 쇠약한 몸에 배는 붓고, 얼굴은 검어 혼자 똥 무더기 위에 누워 있는, 암도 돌보지 않는 병자를 만났다.
"저것은 어떤 사람인가." "저분은 병자입니다."
"어떤 것을 병이라 하는가." "병이란 온갖 고통이 못 견디게 굴어 살지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응당 저렇게 돼 그 걱정을 면하지 못하겠구나." "그렇습니다.
나면 반드시 병이 생기는 법입니다. 거기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다시 마음이
어두워진 태자는 구경도 마다하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동요는 '노인'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컸다.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태자는 다시 유원지에 가고자 서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죽은 사람'을 만났다. "저것은 어떤 사람인가."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는가."
"숨길이 끊기고 열이 식어져 모든 감각기관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길을 달리하여 사랑하는 처자와 이별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도 반드시 저렇게 돼 그 걱정을 면하지 못할 것인가." "그렇습니다.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태자의 마음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지금껏 생각해 본적 없는 죽음의 공포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엄습해 오는 듯했다.
화려함과 편안함 속에서만 산 태자에게 늙음·병듦·죽음은 딴 세상의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병·사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 최대의 문제. 태자라 해서 피할 수 있고, 가난하다 해서
피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이치. 스스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인생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병들고 죽는 것을 보고도 자신의 일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고, 다만 쾌락과 즐거움에만
탐닉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문 남문 동문에서 노·병·사, 즉 본 삶의 실상을 본 싯다르타 태자는
"괴로움을 초월한 무엇을 얻어야 한다"고 고뇌한, 보통사람과는 다른 청년이었던 것이다.
沙門 만나 희망 발견
이러한 싯다르타 태자에게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던져지니, 카필라성 북문을 나서다 사문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된다.
죽은 자를 본 뒤 어느 날 태자는 다시 북문을 나섰다.
도중에 법의(法衣)를 입고 바루를 들고 오직 땅만 보고 걸어가는 한 사문을 만났다.
"저것은 어떤 사람인가." "사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문이라 하는가."
"모든 은혜와 사랑을 끊고 집을 떠나 도를 닦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모든 감각기관을 잘 억눌러 바깥 욕망에 물들지 않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어떤 생명도 해 치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고, 즐거움을 당해도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능히 잘 참는 것,
그것은 마치 대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문이라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태자의 얼굴은 갑자기 환해졌다.
"좋도다! 이 도는 바르고 참되어 길이 번뇌를 여의고 미묘하고 또 맑고 허(虛)하였으니
오직 이것이 참으로 쾌한 것이로다."
수레를 돌려 사문에게 가까이 간 태자는 "그대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바루를 들었구나.
무엇을 뜻하여 구하는가."하고 물었다.
"사문이라는 것은 마음을 길들여 항복 받아 길이 번뇌를 떠나려 함입니다.
자비심으로 모든 생물을 사랑하여 해치지 않고, 마음을 비워 고요하고 편안해, 오로지 도 닦기 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태자는 순간 "좋구나! 그 도는 가장 진실한 것이다!"고 외치며 기뻐 했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다.
네팔 측이 카필라바스투 성이라고 주장하는 틸라우라코트에는 서문과 동문이 발굴돼 있다.
허름한 민가 주변을 지나 틸라우라코트 입구에 도착하면 보이는 문이 바로 서문. 싯다르타 태자가
'죽은 자'를 만나 인생의 생명의 덧없음을 깨달은 곳. 그곳에는 나무들과 붉은 벽돌로 복원된 유적뿐이다.
노인을 만나 삶의 늙음의 고통을 알게된 동문에도 '나무들'과 '복원된 유적'만 있을 뿐,
싯다르타 태자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여기가 불교가 태동한 곳임을 생각하면 유적은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