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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시인(1986) - 양귀자 - |
[줄거리] |
'나'는 청소부인 아버지와 남의 일에 간섭이 심하고 싸움질 잘하는 원미동 똑똑이인 엄마 사이에서 난 다섯째 딸이다. 남들은 나를 철부지인 꼬마로 알겠지만 집안 사정, 동네 사정에 훤한 아이다. 또래와 어울려 놀 형편이 못 되어 나는 형제 수퍼에 나가 김반장과 낄낄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선옥 언니에게 미련을 두고 있는 터라, 나더러 처제라면서 언니 소식을 묻곤 했다. 사실 나도 은근히 그가 나의 형부이기를 바랐다. 몽달 씨라는 별명을 가진 원미동 시인도 이곳에 산다. 그는 김반장 가게 앞을 기웃거린다. 자칭 시인이라는 몽달 씨가 나를 부르더니 시라면서,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고 했을 땐 기가 찼다. 아무튼 나는 그와 친구가 된다. 그런데 열나흘 전 사건이 있으면서부터 김반장이 싫어졌다. 그 사건은 초여름밤 10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나는 그때 수퍼의 노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젊은 사내 둘에게 쫓겨온 사람이 김반장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김반장은 그를 모른다고 했다. 코피가 범벅이 되어 일어선 그는 바로 몽달 씨였다. 지물포 아저씨가 달려나가 사내들을 쫓았고 몽달 씨를 구했다. 그때서야 김반장이 나타나 "빨리 가서 잡아야지, 저런놈들 그냥두면 안돼요!" 하고 흥분했다. 피투성이가 된 몽달 씨는 김반장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갔다. 몽달 씨는 이상한 사람이다. 열흘 만에 다시 만났는데 핼쓱한 얼굴로 여느 때처럼 김반장을 거들며 박스를 나르고 있었다. 그날 밤 김반장의 행동을 잊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몽달 씨에게 그날 밤 이야기를 하며 김반장은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붙이는 데도 그는 딴전만 피운다. "슬픈 시가 있어. 들어 볼래? …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와 같다.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같다 ……" 다 알고 있었으며서…… 바보 같은 몽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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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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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
◈ <원미동 시인>은 1986년 6월 <한국문학> 152호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연작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11편 중 하나로 거대한 도시 문명 속에서 늘 억압당하고 무기력해져 가는 현대 한국인의 평균적인 일상의 삶을 우수에 어린 정다운 모습으로 그려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구체적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작은 삶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 원미동의 세계는 지금 윌의 실제적인 삶의 세계이다. <원미동 시인>은 대개 봉급 생활자와 도시 중심부에서 밀려나 있는 평균적인 보통 인물들을 등장시켜 세태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희망과 절망, 폭력과 소외, 갈등과 이해 등으로 얼룩져 있는 삶의 부조리와 속물 근성을 풍자하면서, 소시민의 일상적 삶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향수를 형상화하고 있다. '원미동(遠美洞)'이란 문자 그대로 '멀고 아름다운 동네'인데, 이 글에서는 '기어이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할 우리들의 동네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원미동은 작고도 큰 세계이다.
◈ <원미동 시인>은 이유없이 한 개인이 당해야 하는 폭력과 이 폭력에 대한 이웃의 방관을 보여준다. 선량하기 그지 없는 몽달 씨가 당하는 폭행에 무관심한 김반장의 태도, 이것은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무서운 속성, 즉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개인에게 가해지는 비합법적 폭력과 이 폭력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모순투성이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며, 아파트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 이웃간의 단절 현상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 이 작품은 특유의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로 독자에게 신선감을 준다. 물질만능의 현대 사회에서 주변부 인물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풍속도를 작품화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대상의 핵심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관찰력으로 형제수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삶의 단면을 부각시킨 세태소설이다. 작가 양귀자는 소시민들의 삶을 <멀고 아름다운 동네>에서 <한계령>에 이르는 원미동 연작에서 압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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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단편소설, 세태소설 ▶ 배경 : 1980년대 여름, 부천시 원미동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소시민의 일상적 삶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향수 ▶ 출전 : <한국문학>(1986) |
[생각해 볼 문제] |
1. 이 작품의 제목인 '원미동 시인'에서 '원미동'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설명해 보자. ⇒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가장 평균적이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또한 물질만능과 극도의 개인주의 속에서 서로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 처한 비극의 동네이지만, 다시금 꿈과 희망을 만들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삶의 현장이다. 원미동이라는 그 말 자체는 역설적 표현이다.
2. 이 작품에서 원미동 시인이 이유없이 당한 폭력에 대해 형제수퍼 김반장이 방관한 이유는 무엇인가? ⇒ 한마디로 말하면 이웃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없이 행해지는 비합법적 폭력은 삶의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기 일쑤이다. 그 폭력은 우리의 육체에 직접 가해지기도 하지만, 정신적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한 폭력과 두려움 앞에서 개인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으며,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을 땐, 그것이 그다지 두려운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대인의 무관심과 극도의 이기주의는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아 버리게 되고 만다. 김반장 역시도 굳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상황이 바로 나의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함이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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