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즐거운 명절이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게 마음먹기에 따라 과정도 결과도 달라지는 것이니, 즐겁게 마음먹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밀가루음식을 참 좋아합니다. 살 빼는데 도움 안 되고, 건강 해칠 요인이 많다는데도 유독 밀가루 사랑만큼은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빵 종류, 과자류는 조금만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만 면 종류, 만두 종류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더욱 당깁니다. 만두는 물만두, 군만두, 찐만두, 만둣국, 딤섬 등 종류 불문으로 좋아합니다. 당연히 좋아하는 양산 만두 브랜드, 수제 만두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양산 만두 브랜드는 바뀌었습니다. 지인이 만두를 중심으로 한 식자재 유통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가게를 동아백화점 앞에서 중앙시장으로 옮겼습니다.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동백 앞은 차를 주정차 하기도 쉽지 않고, 지인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옮긴 곳은 구미중앙시장에서 상당히 알려진 중앙떡집 바로 앞 난전입니다. 임차료도 적고, 떡집, 재래시장과의 구색이 맞아 더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형마트도 가지만 재래시장을 참 좋아합니다. 전통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은 은행, 농협에서 구매 시 보통 때는 5%를 할인해주지만 명절 앞두고는 10%까지 할인 가격에 판매하므로 실 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이득이 있습니다. 시장에 가면 덤과 에누리의 정이 아직 살아 있고, 먹을거리가 넘쳐납니다. 국수골목의 묵은지와 푸짐한 풋고추 반찬과 함께 나오는 양이 넘치는 잔치국수, 칼국수, 메밀국수는 말할 것도 없고 줄 서서 사야하는 손만두집, 빈대떡집, 족발집, 싸고 푸짐한 보리밥뷔페집, 오랜 시장에서는 어디서나 형성되어 있는 돼지국밥집, 호떡, 떡볶이, 어묵, 달걀 등을 파는 손수레식당 등등... 그저께는 지인의 가게에 만두를 사러 갔다가 시장 한켠에 있는 분식집에서 꼬마김밥 몇 개를 사서 바로 앞에서 어묵 등 각종 주전부리를 파는 손수레에서 어묵을 먹으며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 어묵은 사시사철 좋지만 겨울에는 특히 뜨거운 국물 덕분에 시장에서 선호 1위 먹거리입니다. 꼬마김밥, 어묵을 먹으며 국물을 마시고 있으려니 바로 옆에 중년 부부가 와서는 떡볶이와 호떡, 어묵을 막 먹기 시작하는데, 저쪽에서 찬송가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부르는 게 아니라,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습니다. 보지 않아도 감이 왔습니다. 재래시장 대부분에 있는, 하지 절단 혹은 유사한 지체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땅바닥을 양손으로 걸어가시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옆에서 드시던 부부 중 남편분이 큰돈을 꺼내더니 일단 지금까지 먹은 것 계산해 달라더군요. 거기까진 무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거스름돈으로 받은 적지 않은 돈 중 꽤 많은 액수를 따로 빼더니 양손 보행자(?)의 바구니에 선뜻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나눔이 생활화된 것으로 보이는 이분이 존경스러워졌습니다. 순간 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말만 번지르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배려, 봉사, 나눔, 이런 것들은 생각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반사처럼 행동으로 나타나는 거란 생각이 들면서 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절 앞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동시에, 부끄러움 모르는 일부 위정자 보며 분통 터뜨릴 게 아니라, 나누고 베풀 줄 아는, 그게 습관화된 소시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 인생은 살만하다고, 긍정의 두께를 더하며 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어묵국물이 더욱 따뜻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분들, 그리고 그 외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그런 무의식적인 선행이 일상화된 분들께 재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인구 42만이 안 되는 구미에 등록된 자원봉사자 수만 7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리며 설 연휴를 즐겁게 시작합니다. ‘나눔과 성장’의 마음, 그리고 작은 실천... 모두 감사할 일입니다.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나눔과 성장(모셔온 글)========
언 땅이 풀리는 해토의 절기가 오면 흙마당가에 쪼그려 앉아
얼음발 속에 뜨겁게 자라는 여린 새싹들을 지켜보느라 눈빛이 다 시립니다.
언 흙을 헤치고 나온 새싹들은 떡잎이 둘로 나뉘면서 자랍니다.
나뉘어야 자라는 새싹들
그렇습니다. 나누어야 성장합니다.
커지려면 나누어야 합니다.
새싹도 나무도 나뉘어야 자라납니다.
사람 몸도 세포가 나뉘어야 성장합니다.
커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성입니다.
커나가는 조직은 정보와 지식, 비전과 자유와 책임을 잘 나누어 함께 공유하는 만큼 멈춤 없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눠야 커지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나누어야 서로 이어지고 함께 모여들어 커질 수 있습니다.
크다는 것은 하나를 이루어낸다는 것이고
큰 사람이란 나누어 쓰는 능력이 큰 사람이고
크게 나눔으로 하나를 이루어내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잘 나누어 상대를 키움으로 자기도 커나가는,
지공무사의 사람이 아닌 지공지사의 사람입니다.
나누지 않으면 성장이 정체됩니다.
시들어가고 뒤처지고 부패하고 적대합니다.
나누지 않을 때 싸움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나눔만이 나뉨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나누려면 나눌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늘 새롭게 나누어줄 삶의 감동과 이야깃거리가 있어야합니다.
새로 학습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하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보살펴줄 시간과 물질과 건강이 있어야 나누려는 마음도 자라납니다.
함께 나눌 가치 있는 일과 희망이 능력이 생겨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눔과 동시에 자기를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크게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나눔과 함께
자기 자신이 세상과 이어지고 몸을 통하여
내 몸과 내 큰 몸이 하나로 창조적 맴돌이를 이루어야 합니다.
천 골짝 만 봉우리 물을 받아들여 큰 물둥지를 이루어야
너른 들녘을 푸르게 피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선 자리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땀 흘려 일하고 공부해야
자기 안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낼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맑은 눈뜨고 자기를 불살라가는 투혼의 불덩이어야 나눈 만큼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나눔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성공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난을 나누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나누려는 마음'이 가난하고, '나누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성공한 다음에 나누겠다는 굳센 다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잘 나누어 쓰는 능력입니다.
두텁게 언 흙을 헤치고 나온 저 작고 여린 새싹은
여유가 있어서 떡잎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가 바로 살기 위해서, 자기가 바로 크기 위해서, 그 작고 여린 자기를 처음부터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는 능력도 생명체와 같아서 쓰지 않으면 퇴화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누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돈을 많이 벌고 크게 성공했다 해도
그것은 삶의 외피와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삶의 속살과 목적,
아니 삶 자체를 삶의 껍데기와 바꿔버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삶의 핵심 능력이고
인간성의 본질인 사랑과 영성을 성장시키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인간으로 바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인간으로 바로 크기 위해서는,
내 삶의 핵심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로 나누어야 합니다.
가난함 그대로를 나누어야 합니다.
나누는 능력이 커나가는 만큼 나눌 거리도 커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고 참된 성취입니다.
그것만이 멀리 가고 오래 남는 창조적 맴돌이인 것입니다.
사랑이란 지금 그대로의 자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상대를 성장시키고
모두가 진보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나누어 자신과 상대를 함께 키워내지 못하는 것은
사랑도 정의도 진보도 아닙니다.
함께 하나 되어서도 성장하지 못하고, 나누어도 성장하지 못하는 건 진보가 아닙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나눔, 성장하지 못하는 성숙은 진보가 아닙니다.
창조적 맴돌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통한 성장과 성숙의 긴장된 떨림,
그 살아 움직이며 이동하는 균형점이
참된 사람의 자리이고 진정한 진보의 자리입니다
잘 나누어 보살펴야 성장함으로 성숙할 수 있고
성숙함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눔의 손은 보살핌의 손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다 나누고 마침내 고목처럼 부드럽게 쓰러지는 생이 있습니다.
쓰러져 돌아감으로 다시 새싹처럼 부활하는 생,
그래서 죽음마저 최후의 나눔이고 사랑이고 희망인 생,
그런 일생이기를 기도하는 신생의 시간입니다
언 흙을 뚫고 치열한 숨결로 자라나는 새싹들을 바라보며,
나눔으로 빛나는 작고 여린 얼굴들을 묵묵히 들여다보며,
내 안에서, 세상에서, 나눔으로 자라나는 푸른 희망 하나 하나를
뜨겁게 지켜봅니다.
고개 들어 해동청 하늘 바라보는 눈빛 시려옵니다
-----박노해의「사람만이 희망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