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양기창
헤이즐넛 커피를 만들면서 외
살짝 볶은 개암 두 알을
커피 원두와 함께 절구에 찧어본다
금 나와라 뚝딱
개암 깨무는 소리에 놀라 두고 간 도깨비방망이
우리에겐 도깨비방망이 전설이 있는
개암나무 그 열매, 개암
그리스에는 코리리포리 공주의 신화가 있는
헤이즐hazel 그 열매, 헤이즐넛hazelnut
아름다우면 무엇하리,
공주의 얼굴을 훔쳐보았다고 죽인 시녀의 피가
공주의 얼굴에 튀어 박혀 붉은 기미가 되고
그로 인해 죽고 말았으니,
공주의 무덤에 자라난 개암나무 그 열매, 개암
봄이면 수꽃이 먼저 노랗게 늘어지듯 피고
뒤이어 암꽃이 작은 봉우리처럼 맺히는
개암나무 그 열매, 개암
껍질이 단단해 깨야 먹을 수 있는 열매
‘화해’라는 꽃말과도 닮았다
겉으로 단단해 보여도 마음을 열면
고소하고 향기로운 진심이 숨어 있음을
언제부터였을까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헤이즐넛 커피가
커피의 거부감을 덜어주어서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그 커피가 뭐라고
살짝 볶은 개암 두 알을
커피 원두와 함께 절구에 찧어보지만
오늘은 쉽게 화해되지 않는다
5.18 광주 비극의 역사를
가벼운 커피 마케팅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킨
스타벅스 탱크데이
그저 일상의 위로였어야 할 커피 한 잔이
상처를 후벼 파는 탱크의 굉음으로 다가왔다
살짝 볶은 개암 두 알을
커피 원두와 함께 절구에 찧어보지만
오늘은 쉽게 용서되지 않는다
그 커피가 뭐라고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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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꽃사랑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동차 불빛에 비친 자귀나무 꽃
꽃 사이사이 잎들이 오므려 들어 포옹하고 있는 야합수夜合樹
예부터 부부 금실을 위해 집안에 심었던 나무
지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자귀나무 꽃사랑에 아련하다
예부터 자귀나무 꽃 피면 장마가 온다는데
곧 장마가 오겠지
사색이 깊어지는 밤이다
장마 걱정에 이어 또 다른 야합野合이 생각나
웃음이 절로 나는 밤이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서로 정을 통한다는
좋지 못한 목적으로 서로 어울린다는 야합이 생각나
꼭 이맘때면, 자귀나무 꽃을 볼 때면
자귀나무 꽃, 야합화夜合花, 장마,
그리고 비 맞으면서도 치르는 야합野合이 생각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도
자귀나무 꽃사랑을 보면서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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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창|2014년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백신애문학상 창작기금 수혜받았다. 시집으로 『불사조 사랑』, 『쏠 테면 쏘아 봐라』,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는』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