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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청빛 환상☆]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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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빛 환상]
권영옥 시집 / 현대시세계시인선 071 / bookin(2016.12.20)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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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빛 환상
권영옥
천 년은 마녀의 신성도 바랠 수 있는 세월이지
그 푸른 부전나비가 온 것이어서
견장에 달린 문양부터 살핀다.
화원 위에 때 아닌 꽃들이 일렁인다.
먼 옛날 진득했던 정향
너울춤을 추며 구름계단을 오르던 그때
부전나비는 무엇에 감전된 듯
더 높은 하늘로 빨려 가버렸다.
나무 곁에 자란 아이처럼 은은한 냄새에
영혼은 푸른 정향을 찾아 헤매고
오래 전 세상에 없지만 그녀에게 준
별의 기억들이
녹 슬은 장식을 열어 범부채를 건넨다.
방안 가득 가야금 소리 둥기당기 흐르는데
그를 내린 구름은 서로를 빠르게 메워간다.
환상 여행
권영옥
엄마는 양산을 내려놓고 양귀비 꽃밭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만 가요, 아버지는 풍경화 속에서 1865년식 식사를 한단 말이에요. 와인을 마시네요. 아버지 손으로 식사를 하지 않아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물 위에다 동그라미를 그린다. 어린 날 언뜻 본 플라뇌르가 운집한 군중 속을 헤치며 빙글빙글 돈다. 머리 없는 발레리나가 검은 옷과 흰옷을 입고 춤을 추고, 유령도 압상트에 취해서 돈다. 식사를 끝낸 아버지의 양복 위에는 푸른 시간이 앉는다. 아버지 엄마에게서 먹구름이 인다고 했던가요. 목 없는 발레리나가 엄마를 쫓아가요. 아버지, 빨리 꽃밭으로 가봐요.
은방울꽃
권영옥
수직으로 내리긋는 비의 수만큼
여름 내내 빛의 울올이
교직으로 짜여져
올 겨울에는
성스런 얼굴이 새겨진
금사 한 필을
당신 발밑에 받치고 싶습니다.
한 발식 길이 되는 당신은
끈질기게 달려드는 그림자를
붙들어 매시어
초롱초롱한 등으로
진한 어둠을 밝혀 주십시오.
겨울 나비떼
권영옥
계절을 건너온 나비가
온 마을을 흰 꽃밭으로 만들어놓고
그 위에 떼로 날고 있다
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꿈속까지 향기를 몰고 오네
누구의 창을 두드리나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찾아온 너들
쇠못을 친 빗장이 열리네
백 리 너머 경계가 허물어지고,
밤
꽃망울 터져 가루가 난분분할 때
세상에는 천리향이 있다는 말은 들어도,
까마득한 거리를 지우는
나비향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
이 밤
한랭창가에 나풀나풀 날아 앉는 나비떼
그 마음이 아려와 붓으로 파꽃을 그린다.
불면의 잠
권영옥
해가 지면 슬그머니 바다 속 물거품이 되어야 해. 거기서 바닥 깊이 흘러들어가 세상 없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태어나야 해. 우유빛 피부가 물거품에 잠긴 내 발에 진주 신을 신겨주면 그러니까 내 몸은 뭉글뭉글한 거품에 떠밀려 아침 햇살에 눈뜨는 비너스여야 해
깜깜해, 깜깜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이 누워 있기만 하는 난, 어둠이 행인의 소리를 잡아먹고, 바다로 가는 통로를 막고, 먼동까지 포박했을 때, 구석 찬장에서 무엇이 갉히는 소리가 들려, 아침 반찬이 사라지는 것 같아, 살점 없는 바람을 타고 바다로 날아갈 수가 없어
천 개의 말들과 꽁치 한 쪽만 뜯긴 채 식탁에 고스란히 놓여 있어, 한 쪽 팔이 없는 난, 날 수 없기에 물거품에서 탄생하는 나를 보기 위해 이웃들이 해안선을 잡도 있어, 그러나 벽난로 속엔 간밤에 갉은 놈이 눈을 부라리고 있어
뒤척이는 삶
권영옥
몸이 맵짜게 얼고, 녹고, 말라가면서
명태는 바람을 잘 궁글린다.
샛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북풍이 들이치고,
설한풍이 오지만
이내 풀이 죽은 채 밀려간다.
그의 내부에는 오래 전
오호츠크 해의 폭풍이 남긴 그림자가 있다.
풍랑이 울타리를 뜯고
문패를 치고
집이 통째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명태는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이 해동된 듯
지느러미를 쳐댄다.
그 날 이후,
건너편 건어물 전에 펼쳐놓은 얼굴들을
찬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겨났다.
신의 한 수
권영옥
그녀는 출근할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숲속의 나무 한 가지를 자르고 돌아왔다. 세탁기를 돌린 다음 시간이 다 되었는지 빨랫줄에 아이의 흰 셔츠를 널며 무성했던 가지의 노래를 불렀다. 살갗이 따끔따끔 볕이 좋았으나 빨래는 마르지 않았고, 집 주변을 덮은 풀들도 누렇게 잎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 숲으로 들어갔다. 전기톱날이 윙윙 소리를 내는데도 나무 주변에서 그녀의 아이가 부산을 떨며 돌아다녔다. 나뭇가지에 잘못 튕겨진 톱날이 아이에게 떨어졌다. 이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괴성에 숲은 안개로 분간할 수 없었고 까마귀들이 숲 전체를 뒤덮었다. 아이 옆으로 잘린 양 손과 오른쪽 엉덩이 살점이 펄덕거렸다. 펄떡펄떡… 눈물 흘릴 새 없이 우는 이이를 들쳐 으며 그녀는 계속 뛰었다. 뛰고 뛰었으나 제자리였다. 그때 날아가는 까마귀 뗴 속에서 “세상에 나무는 다 내 것이니라”하는 한음성이 들려왔다.
물의 내부
권영옥
하늘을 데리고 온 풋바람은
물고기 하나 헤엄치지 않는 연못에
용케도 수문을 열고
올챙이를 키운다.
너무 좋다. 몸을 하나씩 키워가는 것들이
봄바람으로 인해
물이 외부로 촬촬 넘친다.
그 세계의 율법은 무서워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안 되는
금기를 어기고
개구리는 수면을 찢어
바깥세상으로 튀어 오른다.
그때 등에 불티처럼 희고 검은 돌이
개구리의 등을 난타한다.
새벽 고요와 아침의 침묵 사이
개구리는 주홍글씨를 달고
밀입국자가 된다.
반향反響작용
권영옥
느티나무가 종일 잔잔한 수면을 바라본다.
나무가 본 것은 그저 강일 뿐,
나무는 먼 데 새털구름이 날아다니는 하늘을 본다.
한강은 나무의 눈을 바라보다가 눈 굴림이
자기한테로 향하지 않는 것을 알고
동심원을 그리며 하늘을 헝클어놓는다.
나무가 엉겁결에 가지 끝으로 한강을 가리킨다.
하늘, 어안이 벙벙해
나무를 한참 바라보며 하는 나말,
속세에는 나무도 말 바꾸기를 하는 가 보다.
심해에서 보는 안부
권영옥
한낮인데도 노을이 바다에 빠졌어요. 떠도 보이지 않는 눈, 배 안에서 갇힌 조기들이 동강났던 산호초 이야기를 속닥속닥하지요. 낙지는 시끄럽다고 쭉 뻗은 다리로 우리를 배 밖으로 밀어버렸어요.
터진 가슴을 풀기 위해 조기가 수면 위로 입을 내밀었지요. 말들이 수면 위를 찰랑찰랑 떠다니고, 제복을 좋아하는 감성돔이 해뜨기 전 어둠을 품으며 제 애인 얼굴을 손안에 꼭 쥐고 있었어요, “안녕, 사랑해” 심해에서 쏘아올린 소리가 세월이 흐른 후 수면 위로 끓어 올랐지요만, 시포는 죽고, 조기 입도 동강난 채 말을 닫았지요. 바다가 깊어도 깊은 게 아니었거든요.
생의 능선
권영옥
바얀고비에는 바람만 분다. 그 바람은 가을 태풍처럼 마지막 보루를 점령하겠다는 듯 해일이 되어 따라온다. 사막 전체가 불타는 전선이다. 축축! 달려, 축축축! 해일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달린다. 내 손에 잡힌 채찍이 말의 등성이를 내려치는 순간, 그만 말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그림자가 지나가는 듯 산산한 바람이 일어 눈을 뜬다. 저 멀리 한 사람이 나처럼 달리고 있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얼마나 들고 뛰었는지 무릎이 푸석푸석하다. 그 위로 돈벌레들이 한 줄 종대로 서서 그림자를 몰고 간다. 눈물 켜켜이 덮어쓴 마당을 비질하다 말고 하늘을 올려본다. 노을이 생에 쓸린 환부를 덮고 있다.
깃 내리는 밤
권영옥
허공이란 말
더 좋은 말, 아늑하다, 절대 아늑!
지난하게 날고 싶어날아서
비로소 안착하는 구름가지
이곳은 푹신하게 펼쳐진 청청한 하늘
출렁이는 물풀도 없고
머리 풀고 사운대는 갈대도 없다.
허락 없이 무엇 하나 부러뜨리지 않을 테고
무너지는 것을 자르지 않는
단단하면서 온몸을 받쳐주는 쉼
참으로 맑은, 그것밖에 없다.
이른별이 뜰 때
권영옥
바람이 불어도
산경에는 변함없이 불빛이 켜진다
웃음 살짝이는 아기 다람쥐
종일토록 참나무를 오르내려
온몸이 수피 조각이다.
조잘조잘 자그마한 발바닥,
나무의 껍질을 털지 않아
한 초롱 불빛에
의지한 한 뼘의 몸체가 호들호들
산 아래 위, 숨 쉬는 것마다
첫 겨울이라
화살열매도 살이 얼었지만
까만 눈에 반사되는
이른 별빛만은
동글동글 퍼져가는 도토리전구다.
유월 염천
권영옥
2시의 무풍지대
태양 아래 칸나꽃은
소주 두어 병 마신 듯이
지갑의 혀를 길게 내밀고
부식되지 않는 짐
권영옥
한 가닥 고향을 동여매고 소포가 들어선다.
참나무, 느티나무느릅나무, 인동잎
곧은 줄기를 타고 올라가던 인동열매가 인사를 한다.
빽빽한 동산이 한꺼번에 우우
갈뫼빛 아버지가 신발도 잊고 날아든다.
이끼 사이 성장을 멈춘 고사리 같이
쭈글렁한 손을 흔들며 악수를 청한다.
골곡진 땀물 소리
어디서부터 왔던가
아버지는 알곡들을 새끼 입에 넣어주려다 그만
노을 속으로 걸어갔다
식구들이 인동초를 한 잎씩 뜯는 동안
물땅콩을 삶아 한 번도 차린 적 없는
아버지의 젯밥 위에 얹는다.
향촉불이 가슴을 쓸고 간 뒤
반짝이는 물살 위로 목베개 하나가 노 저어온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입구
‘소포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시누대에 들다
권영옥
오동도에 들었다
시누대가 엄마의 마음처럼 깍지 껴 패 해풍을 막는다.
그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린다.
엄마 바람이 필요해요.
짧은 치마에 구두 신고 햇살을 끼고 싶어요.
신발 코에 아침해를 걸고 도시를 가르고 싶다니까요
얘야, 순진한 얘야,
범들은 너같이 어수룩할 수록한 간을 좋아한단다.
키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엄마의 마음은 촘촘해져만 갔다.
무성한 시누대 옆 벼랑,
해풍은 연신 댓잎을 찔러보지만
여러 해 햇볕이 바닥에 쌓이면
칼칼하던 설한풍도 녹고 동백꽃 만발할 텐데
엄마는 시누대만 촘촘하게 엮고 있다.
깍지 낀 그 손에 반지 한 번 못 낀 울 엄마
딸의 종신 종이다.
애기똥풀곷
권영옥
풀 바람이 이랑을 스치는 봄 나절
돌옷을 입은 아가들이
발그레한 엉덩이를 치켜들고 뒤뚱거릴 때
어디선가
홀홀 풍겨오는 햇똥 냄새
가까이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층층나무도
푸른 빛 방사를 온몸으로 받으며
꽃물 한 움큼 떠
바둥대는 아가들의 사타구니를 씻겨준다.
헌신
권영옥
싸안는다
수천 길을 내려온 해를 위해
참나무는 가지 위로 낙엽을 깔아준다.
세상의 모든 따뜻함을 다 가진 듯
해는 꿈을 꾼다.
메. 에. 에
은하강을 건너는 한 무리 양떼 울음 속에
파도 거품 속으로 쓸려가는
양이 있다.
물에 떠다니다가
소용돌이를 만나다가
해안에 닿으며 꿈에서 깨어난다.
해는 사라진다.
해 자던 가지에 밤이 찾아온다.
나뭇가지는 팔이 허전해
깊은 계곡으로 해를 찾아나선다.
파란 새벽,
나무는 낙엽 방석을 만들기 시작한다.
달의 분신
권영옥
두어 시
멧새가 잠자는 후박나무 가지에 달이 걸린다.
나무 주변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
유리창을 연다.
달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머리를 찧고, 물구나무를 선다.
짙은 어둠이 한가운데로 흩어질 즈음
그 소리는 절명과 탄생 사이를 오간다.
새벽, 선잠을 털고 후박나무 쪽으로 걸어간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서 응애 소리가 들린다.
양수에 폭 젖은 민들레 한 송이가,
살갗이 파랗고 아린 민들레 한 송이가
눈도 못 뜬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꽃의 몸체를 닦아주려고 수건을 찾는데
방에 틀어박힌 채 만삭의 배를 싸안고
언니가 산통을 견딘다.
봄은 곳곳에서 요람을 흔든다.
세상의 심지
권영옥
눈꽃이 한꺼번에 땅으로 뛰어내리는 한낮, 미화원이 가로수 곁에 있는 마른 국화대를 뽑는데 뿌리가 떨어지지 않아 칼로 도려낸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도 병원으로 뛰어간다.
의사가 발바닥에 낀 티눈을 도려내며 하는 말, 발에 심지가 엄청 깊어요. 이거 완쾌되려면 한참 걸리겠는데요. 세상의 뿌리란 뿌리는 죄다 아래로 아래로만 박히는지.
겨울 한가운데
권영옥
설한풍이 불자 벚나무는 거칠게 몸살을 앓는다. 오른발을 딛고 섰다가 빼고, 교대로 왼발을 딛고 선다. 참을 수 없었을까, 나무가 괴성을 질러보지만, 거센 눈바람은 그 소리마저 잘라버린다. 저 만치서 소녀들이 종종걸음 치고, 한 소녀의 목에서 떨어진 목도리가 도로에 뒹굴다 벚나무 밑줄기에 걸린다. 몽실몽실 겨울 함박꽃을 둘둘 감은 나무가 속삭인다. 넌! 솜사탕이야! 넌 호빵이야! 뻣뻣하던 가지가 갑자기 나긋나긋해진다. 소녀가 목도리를 빼내지 못하고 나무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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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십 년 만에 품었던 알을 쏟아냈습니다.
환상에 기댄 푸른 시.
이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겠지요.
2016년 늦가을
권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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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詩集 [※청빛 환상※]
[ 해설 ] -
무의식적 환상이 빚어내는 ‘통합의 여성상’
박현솔 / 시인. 문학박사
1. 무의식적 환상, 나비들
권영옥 시인의 이번 시집 『청빛 환상』의 주제는 무의식적 환상이 빚어내는 ‘통합의 여성성’이다. 그 경계에서 화해하고 현실과 무의식의 간극에서 생기는 균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환상적 기제가 있다. 주체가 일상을 벗어난 상태에서 의식적 환상과 무의식적 환상이 의식과 무의식의 욕망을 오고가면서 꿈의 형성에 기여한다. 대상과 이미지 등을 통해서 주체의 욕망을 조정하고 대상을 특화시키며 원하는 위치를 지정한다. 그것은 시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무의식과 현재의 삶에서 발생하는 의식의 균열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러한 무의식적 환상을 드러내는 존재는 나비로 형상화되는데, 나비는 빛의 세계를 지향하는 무의식적 매혹을 상징한다. 그녀의 시에서는 “푸른 정향을 찾아 헤매”는 “푸른 부전나비”이거나 “꿈속까지 향기를 몰고 오”는 나비로 형상화된다. 즉 현실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비가 아닌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나비이고, 무의식으로 진입할 때에만 만나게 되는 나비이다.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날아온 나비는 화자에게로 날아오지 않고 더 큰 힘에 의해 어딘가로 빨려가게 되는데 화자는 나비의 안착을 유도하기 위해서 꽃을 내민다. 이는 나비가 꽃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나비에게 꽃이 다가가는 형국이다.
천 년은 마녀의 신성도 바랠 수 있는 세월이지
그 푸른 부전나비가 온 것이어서
견장에 달린 문양부터 살핀다
화원 위에 때 아닌 꽃들이 일렁인다
먼 옛날 진득했던 정향
너울춤을 추며 구름계단을 오르던 그때
부전나비는 무엇에 감전된 듯
더 높은 하늘로 빨려 가버렸다
나무 곁에 자란 아이처럼 은은한 냄새에
영혼은 푸른 정향을 찾아 헤매고
오래 전 세상에 없지만 그녀에게 준
별의 기억들이
녹 슬은 장식을 열어 범부채를 건넨다
방안 가득 가야금 소리 둥기당기 흐르는데
그를 내린 구름은 서로를 빠르게 메워간다
-「청빛 환상」전문
여기 “부전나비”는 “푸른 정향”을 찾아 헤매고 화자 역시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정향”을 느끼고 있다. 나비가 화자에게로 오기까진 “천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그 시간은 화자의 시간이면서 무의식이 형성된 시간이기도 하다. 먼 기억의 시간을 날아온 부전나비는 먼저 “견장에 달린 문양”을 살핀다. 견장은 신분이나 계급 등을 암시하고 부전나비가 자신의 주인을 제대로 찾아왔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무의식의 영혼과 육체가 만나게 된다. “부전나비”와 “범부채”의 결합이 그것을 형상화한다.
하지만 부전나비가 꽃을 만나기까지는 시련이 가로막고 있는데 부전나비는 “무엇에 감전된 듯”“더 높은 하늘로 빨려”간다. 그때 화자가 새롭게 제시하는 것은 숨겨둔 “별의 기억들”이다. “세상에 없지만” 화자가 몰래 간직한 그 기억이 부전나비에게 새 전환점을 마련해준다. 결국 부전나비는 꽃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만남은 “가야금 소리”로 공감각화를 이룬다. 나비가 바닥에 내려앉는 시각적 이미지와 “둥기당기 흐르는” 청각적 이미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공감각화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부전나비를 강하게 끌어당겼던 것이 “구름계단”이고 “더 높은 하늘”인 것을 볼 때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차이가 커 보이며 그 사이는 굴곡되고 일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이와 간격을 메워주는 것이 “그를 내린 구름들”로 제시된다. 구름들의 세밀한 작업으로 차이는 없어지고 간격은 “빠르게 메워”지는 그것이 바로 화자가 꿈꾸는 무의식적 환상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환상을 드러내는 나비는 현실 속을 날고 있지만 이전에는 맡아본 적 없는 향기를 무의식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로 인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까마득한 거리와 시간이 현재의 시간과 만나게 된다.
계절을 건너온 나비가
온 마을을 흰 꽃밭으로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떼로 날고 있나
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꿈속까지 향기를 몰고 오네
누구의 창을 두드리나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찾아온 너들
쇠못을 친 빗장이 열리네
백 리 너머 경계가 허물어지고
밤
꽃망울 터져 가루가 난분분할 때
세상에는 천리향이 있다는 말은 들어도
까마득한 거리를 지우는
나비향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
이 밤
한랭창가에 나폴나폴 날아 앉는 나비떼
그 마음이 아려와 붓으로 파꽃을 그린다
- 「겨울 나비떼」전문
현실적으로 나비가 “온 마을을 흰 꽃밭으로 만들어 놓”는 풍경을 볼 수 없지만 환상 속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계절을 건너서 화자의 “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비떼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화자에게 무의식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나비떼는 한 계절을 넘어오듯 현실의 간극도 넘어서 꿈(무의식)속으로 “향기를 몰고”온다. 현실에서의 삶이 “천리향”으로 표상되는 반면에 무의식 속에서 화자를 환상으로 이끄는 것은 “나비향”으로 표상된다.
나비는 향기로 환상의 다리를 놓으며 무의식 속으로 날아가서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벚꽃”을 어둠 속에 새겨넣는 의식을 치른다. 화자가 무의식의 정령인 나비를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현실과 무의식의 괴리, 몸과 영혼의 괴리를 메우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쇠못을 친 빗장이 열리”고 “경계가 허물어지고”“까마득한 거리를 지”워 분리되고 나누어진 것들이 서로 소통하고 통합되는 것을 꿈꾼다. 세계의 양쪽을 돌보느라 지치고 힘들었던 몸과 영혼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절대자에 대한 인식과 경외감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신에 대한 신성성과 경외감을 내비치고 있는데 경계에 서 있는 자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생에 대한 감사와 충만,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가 있다. 신의 존재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렵고 떨리는 경외의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양면성을 지닌 신의 모습은 축복을 내리고 만물을 소생하는 주체이면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시월의 주연”으로 상징되고 있는 신은 우주의 시간과 계절을 다스리는 존재이고 화자의 삶에서 주연으로 자리잡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극적인 상상력은 경외감과 연결되면서 속세에서의 삶이 종교적으로 변화되는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숲속의 나무”와 관련된 사건은 하나의 극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무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자연과 이를 제한하는 인간 사이에서 신은 매우 엄중한 자세를 보인다. 화자는 숲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빛으로 온 이
깃털로 날아와 내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당신은 대지까지 안고 있어
숨쉬는 것마다 사르르 눈을 감지만
가진 것 없어
영혼의 빈터엔 먼지만 풀풀 날리는데
마음강은 맑아
푸른푸른 당신의 모습
팔 벌려 맞을 수 있으나
저 빽빽한 볕살을 지나
늦장미 선바람에 고개 숙이는 그날
물오리떼 밀어대는 나뭇잎 타고 오세요
은방울꽃이 밝히는 꽃길 따라 오세요
이 푸슬한 땅 위로 오실
당신!
맑은 눈의 성聖 가을을 열어주세요
-「시월의 주연」전문
화자는 인생이 연극 무대이고 그 무대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주관하는 신이 우주만물의 “주연”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자신은 신을 돕는 조력자나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인생의 가을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여름으로 상징되는 청춘의 모든 혼란스러웠던 일이 사라지고 인간적인 고민과 방황을 마무리하고 나니 “가진 것 없어/영혼의 빈터엔 먼지만 풀풀 날리”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 초라한 화자에게 “빛을 타고 온” 신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위로를 건넨다. 평소에 화자가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 갖는 이미지는 “마음강 또한 맑아/푸른푸른”모습이다. 그러니 모든 생명체가 절대자에게 경배를 하고 자신들을 신의 백성으로 다스려줄 것을 간청하면서 현실의 삶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 사물들과 화자가 신을 맞이하는 장면은 화합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호적이다. 화자는 기쁨에 “팔 벌려 맞”고 “늦장미 선바람에 고개 숙이”고 “물오리떼 밀어대는 나뭇잎”,“은방울꽃이 밝히는 꽃길”등 무대 위의 인물과 조력자들이 주인공의 귀환을 기다리며 스스로 행동하는 이 모든 이미지들은 극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극의 인물들 모두가 “성聖 가을을 열어”줄 신을 고대하는 장면은 꿈의 풍경인 것만 같다.
하지만 신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에는 벌을 내려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게 한다. 이러한 신은 냉정하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면서 경외의 대상으로 부각된다.
그녀는 출근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숲속의 나무 한 가지를 자르고 돌아왔다. 세탁기를 돌린 다음 시간이 다 되었는지 빨랫줄에 아이의 흰 셔츠를 널며 무성했던 가지의 노래를 불렀다. 살갗이 따끔따끔 볕이 좋았으나 빨래는 마르지 않았고, 집주변을 덮은 풀들도 누렇게 잎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 숲으로 들어갔다. 전기톱날이 윙윙 소리를 내는데도 나무주변에서 그녀의 아이가 부산을 떨며 돌아다녔다. 나뭇가지에 잘못 튕겨진 톱날이 아이에게 떨어졌다. 이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괴성에 숲은 안개로 분간할 수 없었고 까마귀들이 숲전체를 뒤덮었다. 아이 옆으로 잘린 양 손과 오른쪽 엉덩이 살점이 펄덕거렸다. 펄떡펄떡…눈물 흘릴 새 없이 우는 아이를 들처 업으며 그녀는 계속 뛰었다. 뛰고 뛰었으나 제자리였다. 그때 날아가는 까마귀떼 속에서 “세상 나무는 다 내 것이니라”하는 한 음성이 들려왔다
-「신의 한 수」전문
이 시를 연극으로 보자면 비극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가 날마다의 일상이 희극이길 꿈꾸지만 어쩔 수 없이 생의 단편들은 비극으로 채워져 간다. 그녀의 생이 비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눈에 거슬리는” 숲속의 “나뭇가지”를 자르는 일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출근시간이 임박해서 숲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렇게 비극은 비일상적인 것을 단초로 해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숲에서 화자가 한 일은 그저 눈에 거슬리는 나뭇가지들을 자른 일이다. 인간의 잣대로 자연을 재단하고 가지가 자라는 방향을 억지로 바꾼 대가는 부메랑처럼 돌아서 다시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뭇가지가 잘려나간 것과 아이의 “양손과 오른쪽 엉덩이 살점이” 떨어져나간 것은 통증과 고통이 수반되는 공통성을 갖는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화자는 숲의 신으로부터 경고의 메시지를 듣는다. 여기에서 신의 이중적인 면을 확인하게 되는데 모든 허물을 감싸주는 신이 아닌 잘못된 행동을 엄중히 꾸짖어서 새롭게 인식시키는 신의 모습이다. 이때 화자는 신의 메시지를 듣고 두려워하는 경외의 마음을 갖게 된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감싸주는 너그러운 신의 모습과 잘못을 꾸짖어서 새롭게 각성시키는 모습 모두 신의 본성이다. 그러한 절대자의 성격과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를 느끼고 있을 만큼 시인은 종교를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물과 대상을 통해 시적 영감을 얻는 서정시인은 세계와 자연을 다스리는 신의 존재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와 더불어서 권영옥 시인이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신앙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3. 변신 모티브와 장애세력
이번 시집에서 인상 깊은 것은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성장하려는 화자의 모습이다. 그런 성장과 변신이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정되고 있다. 바다는 태고의 생명이 잉태된 곳으로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시인은 꿈을 통해서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려고 하지만 현실은 그 신성한 의식에 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최상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막는 세력으로 화자와 가까운 가족들이 제시된다. 가족의 관리와 감시는 화자를 힘들게 하고 지나친 통제와 규율은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변신은 그들로부터 달아나는 데 용이하게 하고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경계에 서 있는 자는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이를 관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거나 포기하는 행동 특성을 보인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거나 부딪힌다. 그래야 갈등이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며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더 적극적으로 삶속으로, 타자들 속으로 진입해서 그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모색을 꿈꾸기에 자신만의 변신 모티브를 모색한다. 자신과 거리를 두는 일에서 객관성이 확보되고 현재의 문제점이 잘 보이기에 시인은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모험을 감내하려는 것이다.
해가 지면 슬그머니 바다 속 물거품이 되어야 해, 거기서 바닥 깊이 흘러들어가 세상 없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태어나야 해. 우유빛 피부가 물거품에 잠긴 내 발에 진주 신을 신겨주면 그러니까 내 몸은 뭉글뭉글한 거품에 떠밀려 아침 햇살에 눈뜨는 비너스여야 해
깜깜해, 깜깜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어 누워 있기만 하는 난, 어둠이 행인의 소리를 잡아먹고, 바다로 가는 통로를 막고, 먼동까지 포박했을 때, 구석 찬장에서 무엇이 갉히는 소리가 들려. 아침 반찬이 사라지는 것 같아. 살점 없는 바람을 타고 바다로 날아갈 수가 없어
천 개의 말들과 꽁치 한 쪽 날개만 뜯긴 채 식탁에 고스란히 놓여 있어. 한 쪽 팔이 없는 난, 날 수 없기에 물거품에서 탄생하는 나를 보기 위해 이웃들이 해안선을 잡고 있어. 그러나 벽난로 속에 간밤에 갉은 놈이 눈을 부라리고 있어
- 「불면의 밤」전문
화자는 누워 있지만 잠이 들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불면의 상태는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환경이나 타자에 의해서 불면에 놓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불면은 외부 환경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자아가 고민이 깊어지면서 그것이 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화자가 평소에 고민하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행인의 소리”와 “구석 찬장에서 무엇이 갉히는 소리” “아침 반찬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화자를 불면에 놓이게 한다. 대부분 현실적인 삶의 문제와 연결되고 있으며 이 불면의 원인들은 화자가 “비너스”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때의 비너스는 육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지적인 부분까지 완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몸과 마음이 재생되어야 하는데 “눈을 부라리고 있”는 존재를 느끼는 이 상황은 가장 힘든 불면의 조건이 되고 있다. 이렇게 화자를 불면에 놓이게 하는 것은 배고픈 쥐일 수도 있고, 공부에 지친 아이일 수도 있고, 자신을 챙겨달라고 보채는 남편일 수도 있고, 몸이 아픈 노부부일 수 있다. 화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근심거리가 포진되어 있는 이러한 삶의 현장은 마음대로 피할 수가 없는 것이며 피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이 갈등의 국면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갈등 속에서 타자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내부적인 갈등도 조화를 이뤄야 하는 상황이 제시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시인은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떠 올린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강요당한 행동의 규칙과 삶의 방식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실어증을 앓게 된 것은 심리적인 충격이 상당히 컸음을 의미하며, 그 이후에도 지난한 치유의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매일 썰물과 밀물에 치인 섬, 아이는 조각난 몸을 맞춘 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울로 입성했다. 아버지가 보여준 것은 법이었다. 아버지는 그 법에 맞게 매일 일렬 횡대로 도로주행을 하고,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광화문대로를 걸었고, 종로도 걸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반복되는 사이렌으로 인해 느티나무가 출렁거렸다. 다급하게 길을 비키느라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놓쳤다. 주변 가로수에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거미줄은 아이의 목을 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가 더듬거렸지만 거미줄은 더 세게 옥죄었다. 글을 보고도 읽지 못하는 상황 마침내 아이는 실어증을 앓게 되고 매일 비행접시에 몸을 싣는 꿈만 꾸었다.「
-「탈피」전문
말을 잃은 아이는 “매일 비행접시에 몸을 싣는 꿈”을 꾸며 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말을 잃는다는 것은 강한 질서에 대항해서 싸울 수 없을 때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이는 처음에 아버지로부터 억압을 당하고 이후에는 “거미줄”의 속박에 놓이게 된다. 즉 개인적인 상황에서 사회적인 상황으로 나아가지만 “글을 보고도 읽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 아이가 선택한 것은 날아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현실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무의식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영옥 시인의 시집에서 보이는 변신 모티브, 탈피의 이미지는 타자들과의 관계를 소통으로 풀어내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적극적인 자구책을 만들어서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통증은 불가피한 것이므로 시인은 거부하지 않고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러한 긍정의 심리는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할 때 더없이 요구되는 미덕이다. 모든 갈등을 극복하게 하고 모든 상처를 끌어안는 여성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4. 치유와 통합의 여성성
흥미로운 것은 여성성의 여러 상징들 중에서 “물”을 주목하고 있는 시인의 감각이다. 물은 대지와 더불어서 원초적인 모성을 상징하고, 생명을 유지시키면서 자연의 순환을 이끈다. 그리고 투명하면서 깊이를 예측할 수 없는 측면에서 여성성을 상징한다. 물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서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막히면 멈추고 뚫리면 흘러가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물의 유연성은 시인의 품성과도 많이 닮아 있다. 사물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를 알고 그것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통합의 사고를 추구하는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다.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이 약동하여 더 넓은 세계를 꿈꾸게 하는 것이 물의 역할이라면 그곳에는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두려움과 상처까지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하늘이 데리고 온 풋바람은
물고기 하나 헤엄치지 않는 연못에
용케도 수문을 열고
올챙이를 키운다
넘 좋다. 몸을 하나씩 키워가는 것들이
봄바람으로 인해
물이 외부로 촬촬 넘친다
그 세계의 율법은 무서워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안 되는
금기를 어기고
개구리는 수면을 찢어
바깥세상으로 튀어 오른다
그때 등에 불티처럼 희고 검은 돌이
개구리의 등을 난타한다
새벽 고요와 아침의 침묵 사이
개구리는 주홍글씨를 달고
밀입국자가 된다
-「물의 내부」전문
급기야 터부의 세계를 둘러싼 경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경계에 접어드는 “개구리”의 모습은 자유를 부르짖는 혁명가 혹은 선각자의 느낌을 준다. 자유는 혁명이든 무언가를 향해 투쟁하는 존재들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주 아주 평화롭고 고요한 “연못”이지만 내부에선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연못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린 건 분명 연못의 물일 것이다. 바람이 불어와서 변화를 일으킨 것도, 올챙이가 현실을 자각하는 것도, 위태롭게 바라보던 시선들을 모두 끌어안은 것 역시 물이다. 그 변화의 물결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불러들이기에 그것에 극렬히 저항하는 세력은 “희고 검은 돌”을 날려서 개구리의 등에 “주홍글씨”를 남긴다.
개구리가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연못이 다시 예전의 질서를 회복하려면 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분열이 물의 내부에서 치유되고 회복되면서 생명체들은 상생하는 법을 배우고 자연의 질서를 터득하게 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것 역시 이런 것이 아닐까. 시인의 희생으로 변화를 키우고, 변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흉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듬는 것 그것이 바로 권영옥 시인이 추구하는 여성성이다.
다음의 시와 위에 나온 「물의 내부」에서는 물의 다른 속성을 엿볼 수가 있다.
며칠째 비가 내린다. 비 뒤의 숨은 숲이 내게 오라고 손짓한다. 비의 숲 속으로 걸어들어가면 비는 세차게 나를 때리거나 한 걸음씩 뒷걸음질치며 멀어진다. 메타포에 기댄 바람이 비의 심연에 닿고자 하는데 비는 정작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곳이 비의 숲이라고 푸른 무늬만을 보여줄 뿐이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린다. 수억의 숲으로 에워싼 비의 가닥을 그녀가 툭툭 부러뜨려 보지만 정작 잡히는 것은 물이다. 창살에 한 사람의 사유가 피를 흘린다. 피는 향기를 내뿜지만 그 숲엔 향기가 없다. 다만 어룽어룽한 꽃무늬만 있을 뿐이다. 비숲은 견고하다. 그 숲은 언제나 견고하다.그녀만이 견고한 비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가 닿고자 하는 비 숲의 능선에는 늘 골이 흐른다. 산이 높을수록 협곡이 깊고 그 협곡은 아무한테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사유의 주름을 많이 잡기 위해 더 깊은 협곡으로 들어간다. 사유의 주름골에 그녀 비의 숲을 여는 열쇠가 숨어 있다
-「비의 구중심처」전문
위의 시「물의 내부」에서 연못이 배경이었다면 여기에서는 비의 숲이 배경이 되고 있다. 전자는 고여 있는 물이고 후자는 ‘움직이는 물’이라는 것이 다르다.「물의 내부」에서 개구리가 변화의 주체였다면 여기에서는 “한 사람의 사유가 피를 흘”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물의 내부」에서 개구리가 자유를 찾아 연못을 박차고 나오는 데 성공한 반면 여기에서는 화자가 “비의 숲을 여는 열쇠”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변화무쌍해 보이지만 정작 내부적으로는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부의 물 ‘비’와 하부의 물 ‘연못’은 같은 물인데도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비는 하부의 물이 상부로 올라가서 다시 하부로 내리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순환의 구조를 가진 비는 총체적인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어서 그 속내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그런 세계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더 다양한 생명들을 살피고 다양한 인식으로 세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자신만이 그 세계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첫 시집에서 의식의 경계에 머물렀던 시인이 다양한 대상과 세계 속으로 진입해서 변화무쌍한 관계와 갈등들을 풀어나가는 것.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통합의 기술을 터득해나가고 있는 것은 놀라운 변화이다. 현실적으로도 산문(수필)과 서정(시)의 정신을 함께 거느리고 가는 권영옥 시인의 면모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것은 양 날개를 우아하게 펼치며 하늘로 오르는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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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삶의 진정성과 곡진함에서 묻어나오는 은은한 그리움의 향기
그녀의 시들은 은은 하고 그윽하기까지 하다. 엄격한 가문에서 자란 탓에 늘 단정하고 모범적이던 그녀는 반듯하고 영특하게 자란 자녀들이 각자 원하던 대학으로 진한한 후, 여느 엄마라면 풀어져야 마땅할 그 즈음부터 일을 내기 시작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고난을 스스로 택한 것이다. 긴장과 부담감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의 질곡을 선택한 듯 보였다. 늦추지 않는 자신에의 담금질 속에서 이뤄낸 눈부신 성취 탓일까. 그녀의 시에서는 생의 비의적 정서보다는 삶의 진정성과 곡진함에서 오는 은은한 꽃 냄새가 난다. 무엇을 견디며 꿈꾸며, 다시 꽃 피운 것들에게서 나는 향기는 가을 들국화 향기 같이 그윽하다. 해서, 그의 시에는 청량한 생의 그리움이 전반에 깔려 있다. 무릇 날개 없는 것들의 최상의 환상은 청남빛 하늘에 닿아보는 것 아닐까. 솟구치는 푸른 빛ㄹ을 향해 마음을 퍼덕이며 높이 날아오르기를. ― 강정숙 / 시인
문학의 걸림돌마저 디딤돌로 삼아 비상한 무한긍정의 언어들
번듯한 정신, 곧은 자세, 무한긍정의 마음은 어쩌면 문학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 걸림돌마저 디딤돌 삼아 비상하는 이가 ‘죽어도 양반’인 권영옥이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다부지게 부리며 광활한 지식과 새뜻한 지혜의 세계로 나아간다. 시간 앞으로 더 큰 보폭을 위해 스커트 자락을 올려붙이리라 믿는다. 한결같은 그의 행보가 믿음직스럽다. ― 이혜민 / 시인
스스로 터득한 환상기제를 차갑고 냉철한 청빛으로 승화
그녀의 내면은 활화산처럼 뜨겁다. 붉은 낙엽 같기도 하고, 홍학의 날개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뜨거움이 의식 아래서만 들끓을 뿐, 한 귀퉁이를 흘린다든가 눈물로 흔적을 드러낸다든가 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반듯한 그녀만의 시 의식을 풀어헤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 그것은 환상기제를 이용한 차갑고 냉철한 청빛 승화이다. 단단하게 거머쥔 삶의 한가운데서 눈부신 파란 빛을 품은 채 말이다
― 이혜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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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시인∥
∙ 경북 안동 출생,
∙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원과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문학박사.
∙ 2003년 『시경』으로 작품 활동 시작,
∙ 2004년 『현대수필』 신인상 수상,
∙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시집『계란에 그린 삽화』.
∙ 시와색 동인.
∙ 현재 원주 상지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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