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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에게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혼탁한 세상 가치관에 순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고집하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적으로 혼탁해지는 세상에 맞서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믿음을 실천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주관자이며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아합에게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바알이 비를 내린다고 생각하는 바알 숭배자들을 도발하는 소식입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찾아 죽이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겨 보호하십니다. 말씀대로 전혀 내리지 않고, 급기야 그릿 시대도 마릅니다.
엘리야를 보호하고 공급하시는 하나님(1-7)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혼탁한 가치관이 난무하는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믿음과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에 맞서며 시대를 바꾸어 갈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길들여지는 연약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이 시대에 도전하는 생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에 맞서며 살아가야 합니다
1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1-7)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로 이끌어 가장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합(16:30,33)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보여주십니다. 분열왕국 왕들의 기록 중 아합 단락(16:29-22:40)은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의 악행을 두드러지게 묘사합니다. 또한 단락 안에는 엘리야의 사역이 아합만큼이나 비중 있게 나옵니다(17:1-19:21; 21:17-29).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사용하여 신앙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에게 그의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사하심으로써 그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임을 나타내십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길르앗 땅의 디셉 출신 또는 거류자로서, 아합(주전 874-853년)과 아하시야(주전 853-852년) 대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아합의 통치 기록에는 엘리야 외에도 엘리사(19:19-21), 이름 없는 선지자(20:13-14, 22-25, 28), 또 다른 선지자(20:35-42), 미가야(22:828), 오바댜가 숨긴 100명의 선지자(18:4) 등이 등장합니다. 이는 악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를 보내 그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셨음을 나타냅니다(미 6:4). 하나님의 말씀에는 심판의 경고도 있고 승전의 약속도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선포된 여호와의 말씀은 그 말씀 그대로 실현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아합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를 버리고, 바알을 좇는 완고함과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합당한 심판에 점점 더 다가갑니다. 한편 엘리야 단락인 17-19장과 21:17-29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과 응답, 탈진, 그리고 재기 과정을 묘사합니다.
이 과정의 한편에는 엘리야의 단호함, 용기, 열정, 헌신, 간절함 등이, 또 한편에는 외로움, 상실감, 좌절, 우울함 등이 기술됩니다. 하나님꼐서는 굴곡 있는 삶의 여정 속에 엘리야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끊임없이 신실하게 공급하고, 보호하고,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부터 19장까지는 3년 6개월의 가뭄을 배경으로 하나님이 엘리야와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보살피셨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1) 가뭄 예고(1)
선지자 엘리야는 땅에 가뭄이 시작될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통보함으로써 아합의 바알 숭배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비뿐 아니라 이슬조차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이 예고되었습니다. 바알은 천둥과 폭풍의 신으로서 땅의 풍요와 가축의 번성을 제공하는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은 바알이 땅에 비를 내린다고 믿었으므로, 바알은 농경생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숭배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아합과 이세벨과 더불어 바알을 이스라엘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신은 자기가 섬기는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임을 밝힙니다. 1절의 “내 (엘리야) 말이 없으면”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말씀하시지 않으면’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엘리야의 가뭄 선포는 여호와와 바알 간의 대결이며, 바알과 그의 숭배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18장의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18:20-40) 이전에, 그들이 각각 섬기는 ‘신들의 대결’이 먼저 시작됐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나님께서 바알과 대결을 벌인다 해서 바알이 실제로 존재한다든가 하나님과 바알이 대등하게 견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당시 아합을 비롯하여 백성이 바알을 신격화하여 섬겼으므로, 그들의 신이 생명과 능력이 없는 형상에 불과함을 증명하기 위한 한 방법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스스로 있는 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출 3:14).
한편 가뭄 예고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임을 함축합니다. 이슬이나 늦은비, 이른비 등의 비는 하나님의 은혜이나(욜 2:23), 가뭄과 기근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대한 형벌임을 암시합니다(레 26:18-20; 신 28:23-24).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솔로몬의 기도에 언급되었듯(8:35-36) 그들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암 5:6-12; 히 12:5-11).
(2) 엘리야를 보호하고 공급하시는 하나님(2-6)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 엘리야에게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의 그릿 시내가에 숨으라’(3)고 명하셨습니다. “여기”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읍으로 유추됩니다. 1절에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뭄을 선언한 장소가 아합의 궁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후에도 아합을 만나러 사마리아로 간 점(18:2)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나님의 ‘숨으라’는 명령은 배경 설명이 없어 갑작스러우나, 엘리야의 가뭄 예언 이후에 나온 것을 봤을 때, 그의 발언 때문에 어려움이 닥쳤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황은 17장의 앞뒤 내용에서 보충됩니다.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가 극에 달한 계기는 오므리가 추진한 아합과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의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시돈은 바알을 위시해 아세라와 아스다롯의 숭배지였습니다. 아세라는 모든 신의 어머니로, 아스다롯은 풍요와 다산의 신의로 알려졌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출애굽 당시 이미 가나안의 신들로 소개됐고(출 34:13), 사사 시대에 아스다롯과 함께 이스라엘의 숭배신으로 증명되었습니다(삿 3:7; 6:28; 삼상 7:3-4). 솔로몬 대에도 아스다롯 등 이방신 숭배가 만연했습니다(11:1,5).
아사의 할머니이며 태후였던 마아가도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15:13). 현재 아합의 아내 시돈 공주 이세벨은 열성적인 바알 신자였습니다. 시돈과 같은 나라(베니게)에 속한 두로의 히람 왕은 성전 건축에 힘을 보탰지만(5장), 시돈의 이세벨은 아합을 부추겨 바알 신봉자로 만들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바알 사이로 몰아넣었습니다(18:21). 이스라엘에는 바알 신전과 제단, 아세라 상이 즐비했습니다(16:31-33).
또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 있어, 이세벨이 공급하는 양식을 먹으며 호사를 누렸습니다(18:19), 이처럼 아합과 이세벨의 주도하에 바알이 흥왕하고 있을 때 엘리야가 나타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알리며 가뭄을 예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의 예언을 그들의 신과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그 후 비가 내리지 않자 모든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려, 그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로 생각했습니다(18:17).
아합은 이스라엘 안팎으로 엘리야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고(18:9-12),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찾아 죽였습니다(18:4;19:10). 나중에 가뭄이 끝날 즈음 엘리야가 아합에게 비가 내릴 것임을 선언한 일(18:41) 또한 엘리야에 대한 아합의 핍박이 가뭄과 관련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보호의 약속과 더불어 그릿 시냇가를 통해 물을, 까마귀들을 통해 음식을 엘리야에게 공급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말씀대로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는 음식과 함께 그럿 시내의 물을 마셨고, 그곳에서 안전히 숨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출 16-17장; 민 11, 20장).
(3) 가뭄의 시작(7)
엘리야의 가뭄 예고(1)로 시작한 이 단락은 가뭄이 실제로 시작되었음(7)을 알리며 끝납니다. 이런 전환은 시간적, 물리적, 환경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선언된 엘리야의 가뭄 예고가 현실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가뭄은 비를 관장하는 폭풍의 신 바알이 여호와의 능력에 압도당했음을 의미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그릿 시내도 말라, 곧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그곳도 엘리야의 식수원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또 어떤 방법을 통해 엘리야를 먹이고 돌보실지 기대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영적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럴 때가 우리를 더욱 강인한 영적 용사로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시는 시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이라는 실로 얼기설기 짜인 융단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할 때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애통할 때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슬픔의 날을 만날 때, 그때에도 우리는 슬픔의 탄식을 믿음의 탄성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드리는 눈물과 비탄의 호소는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간절한 믿음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든 이방 땅에서든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돌보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바알의 성읍인 시돈의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엘리야를 공궤할 자로 지목한 자는 아주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말씀에 순종한 엘리야와 여인의 집에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그 후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아이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8-24)
비록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을지라도 인생길에서 맞이하는 모든 상황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험난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을 때가 바로,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바랄 때입니다. 인생의 불확실함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올려 드리는 기도입니다.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7○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8-24)
사르밧 과부는 자신의 아들이 않다가 죽게 되자 비탄에 잠깁니다. 엘리야는 아이의 시신을 다락으로 옮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살려주시고, 여인은 이 일을 통해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1) 엘리야와 과부 식구를 먹이신 하나님(8-16)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시작된 후에도 계속 엘리야를 돌봐주십니다. 2절에서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9). 하나님은 그를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그릿 시내가 말랐으므로, 엘리야를 다른 곳으로 보내 공급하시려는 의도입니다.
시돈은 가나안의 북동쪽이자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베니게 왕국의 도시입니다. 요단 동편의 그릿 시내에서 130킬로미터 이상인 먼 거리입니다. 게다가 그곳은 이세벨의 고향이며, 부친 엣바알의 통치 지역으로, 바알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16:31). 당시 이세벨은 바알 숭배를 강요하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였으며, 아합은 엘리야를 찾아 수색전을 펼쳤습니다(18:4,10).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바알 숭배지로 보내는 일은 인간의 허를 찌르는 책략입니다. 그릿 시내에서 까마귀를 이용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엘리야를 공궤할 대상으로 사르밧의 한 과부를 정하셨습니다. 까마귀에게 명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과부에게도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20). 이번에도 하나님의 명령은 미래에 할 일(‘명령할 것이라’)이 아닌 이미 완료된 일(‘명령했다’)로 나와, 그의 능력을 부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이방 과부에게 보내셨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들에게 지적하셨듯이, 당시 이스라엘에도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눅 4:25-26).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완악하여 하나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공급과 축복은 이방 여인과 가족에게 돌아갑니다. 바알의 풍요를 기대하는 자들은 기근 속에 허덕이나, 하나님의 매일 양식은 엘리야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한 이방 여인 가족에까지 확대됩니다.
5/14일 전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여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수배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가 먼 곳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 덕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기근을 피해 도착한 바알 숭배지에도 가뭄과 기근이 심각했으며, 엘리야의 숙식을 맡게 될 과부는 풍족한 양식은커녕 자기 가족 먹을 것도 없는 처지였다는 점입니다. 엘리야가 성문에 도착했을 때 과부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성문은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곳이라, 남들이 떨어뜨린 땔감을 주울 수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성문은 엘리야처럼 나그네들이 성읍 주민들에게 초청받아 숙박할 기회를 얻는 장소였습니다(창 19:1-3; 삿 19:15). 엘리야는 그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인인지 알기 위해 그릇에 마실 물을 조금 갖다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장면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갔을 때(창 24:13-14)를 상기시켜, 이 여인이 하나님께서 지목한 과부임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요청에 응하여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자, 엘리야는 그녀를 다시 불러 빵 한 조각도 함께 청합니다.
요청에 당황한 여인은 자기에게 빵이 없으며, 식량이라고는 통에 곡식 가루 한 움큼, 병에 기름 조금 뿐임을 밝힙니다. 원래 그녀의 계획은 땔감 두어 개를 주워다가, 남은 재료로 마지막 빵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이 말을 하면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12)을 언급하는데, 이는 엘리야가 자기 신분을 이미 밝혔음을 암시하며, 여인의 말이 진실함을 주장하는 의도입니다. 여인의 형편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워 말라며 그녀를 위로합니다.
그러더니 예상 밖에 자기를 위해 작은 빵 하나를 먼저 만들어 오고, 그 후에 그녀와 아들의 빵을 만들라고 명합니다. 이 명령은 앞서 10-11절의 “청하건대”를 수반한 ‘요청’이 아닌 ‘명령’입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하면, 여호와의 말씀에 가루 통이 바닥나지 않고 기름병이 줄지 않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처음 만난 이방인의 이런 말은 뻔뻔한 속임수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인은 그가 시킨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야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러 날을 먹어도 가루와 기름이 계속 채워졌습니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죽기를 기다리려 했던 여인은 순종을 통해 음식과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꼐서는 바알의 성읍에서 그의 권능을 나타내며 순종하는 자들을 돌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