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를 찢는 손이 있어/김진완
향불을 피우고
촛불을 켜고 지방을 써 붙이고
간간히 쿨룩쿨룩 기침소리가 끼어들기는 하지만
부정탈까 그 입을 막는 것도 손이다. 제삿날엔 손만 확대되어 떠다닌다
좌포우혜 홍동백서 나란히 줄을 맞추던 손이 마침내 바닥에 닿고 모은 손 위에
이마를 얹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마침내 촛불을 눌러 끈 손으로 북어를 찢는 것이다.
저 비린 손에는
저 비리고 향내 나는 손에는
저 비리고 향내 나고 불내 나는 손으로 북―북―짖은 북어를 든
손에는 뭔가 출렁, 하는 게 있다 뭔가 출렁하며 뭉클, 하는 게 있다
북어 너야 모르겠지만 몰라도 되겠지만 보증금 천오백에 이십만 원 월세를
사는 집에 하필 보일러까지 터져서 만삭의 둘째 며느리가 찬물에 설거지를 하다
음복해라 아유 전 괜찮은데……고무장갑에서 꺼내 술잔을 받는 손에는 뭔가 퉁, 꺼지며
짜안하니 울컥, 치받게 하는 뭔가가 있기는 있는 것이다. 북어 너야 눈물 날 없겠지만
너야 눈 코 입 죄다 말라 비틀어져서 그렇겠지만 북어 너야 손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 읽기> 북어를 찢는 손이 있어/김진완
그렇구나, “손에는 뭔가 출렁, 하는 게 있”구나. “울컥, 치받게 하는 뭔가가” 손에는 있는 것이구나. 이 시로 해서 나는 비로소 그걸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래서 그토록 서러운 게로구나. 없는 집 겨울 제사는. “둘째 며느리”의 “고무장갑”과 모은 손 위로 공손히 얹히는 이마와 늙어가는 아버지와 추운 밤의 음복은, 그렇구나, 알 수 없는 비감의 액면이 바로 그 “손”이었구나.
이 시는 아직 불린 적 없던 손의 이름 하나를 찾아주고 있다. 그것도 애궂은 북어를 통해, 아니 손을 빌어 북어의 ‘북어됨’을 극명하게 발견해주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북어 너야 눈물 날 일 없겠지만/너야 눈 코 입 죄다 말라 비틀어져서 그렇겠지만/너야 눈 코 입 죄다 말라 비틀어져서 그렇겠지만 북어 너야 손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기구한 대목이 너머 빼어나, 보증금이며, 터진 보일러며, 찬물 설거지며, 만삭이며 등등은 일거에 헐한 소품이 될 지경이다.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