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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文選 제33권
표전(表箋)
1.하 백치 전(賀白雉箋)
2.하 평정 북방 전(賀平定北方箋)
3.영천이 솟아난 것을 하례하는 전[賀靈泉湧出箋]
4.유구국에서 앵무를 드림을 하례하는 전[賀琉球國獻鸚鵡箋]
5.북방을 평정했음을 하례하는 표[賀平定北方表]
6.북로를 쳐서 평정했음을 하례하는 표[賀討平北虜表]
7.기린과 복록사자와 공중에 나타난 제불세존의 보탑을 하례하는 표[賀麒麟福祿獅子空現諸佛世尊寶塔表]
8.하 감로 예천 표(賀甘露醴泉表)
9.하 추우 표(賀騶虞表)
10.기린이 나타난 것을 하례하는 표[賀麟見表]
11.북경에 도읍을 정하고, 봉천ㆍ화개ㆍ근신 세 전을 세우심을 하례하는 표[賀定都北京建奉天華蓋謹身三殿表]
12.거가가 서울로 돌아오심을 하례하는 표[賀車駕還京表]
13.거가 가 서울로 돌아오심을 하례하는 표[賀車駕還京表]
14.당나라가 땅을 하사함을 사례하는 신라의 표[新羅謝唐賜地表]
15.태위의 직을 더해 주심을 사례하는 표[謝加太尉表]
16.남만의 통화문서를 보여주심을 사례하는 표[謝示南蠻通和事宜表]
17.서천에 축성비를 세움을 사례하는 표[謝立西川築城碑表]
18.어제 진의 찬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御製眞賛表]
19.어찰ㆍ옷 및 국서를 사례하는 표[謝御札衣襟幷國信表]
20.사가 시중 표(謝加侍中表)
21.시중 겸 식실봉을 가수(加授)함을 사례하는 표[謝加侍中兼實封表]
22.왕위(王位)를 이음을 사례하는 표[謝嗣位表]
23.사은표(謝恩表)
24.조서 두 함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詔書兩函表]
25.발해(渤海)가 신라의 윗자리에 거함을 불허함을 사례하는 표[謝不許北國居上表]
26.대송황제께 책력을 하사함을 사례하는 표[上大宋皇帝謝賜曆日表]
27.압록강 전면의 정자를 헐어버림을 사례하는 표[謝毁罷鴨江前面亭子表]
28.사 칙제 인왕 표(謝勅祭仁王表)
29.사물장(謝物狀)
30.사 칙제 인왕 표(謝勅祭仁王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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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전(表箋)
1.하 백치 전(賀白雉箋)
조말생(趙末生)
동궁(東宮)이 위(位)를 바로하사 정식으로 감무(監撫)의 권병(權柄)을 받으시고, 천지가 상서(祥瑞)를 낳아 이에 태형(泰亨)한 길운(吉運)을 나타내니, 보고 듣는 자마다 기뻐 춤춤이 오직 고릅니다.
그윽히 듣자옵건대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한창 융흥(隆興)할 때 월상(越裳)국이 흰 꿩을 바쳤다 하오니, 저 중역(重譯)으로 얻은 것도 오히려 역사를 빛냈거늘, 하물며 국내(國內)의 소산(所産)이리이까. 마땅히 노래하고 찬송할 바이옵니다.
공손히 생각건대, 동궁께옵서 영자(英姿)가 우뚝하시고 도량이 깊으시어, 만기(萬機)를 참결(參決)하심에 있어 진실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은혜가 풍부하시고, 오직 덕(德)을 힘써 닦으시어 항상 물건을 사랑하는 마음을 돈독히 하시니, 이제 이렇듯 아름다운 하늘의 선물이 나타난 것은 실로 이 지극한 어지심의 보응(報應)이십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資質)로써 다행히 성대(聖代)를 만나 직책이 제잠(鯷岑 우리나라)에 매어 있사오니 비록 부추(鳧趨)의 반열(班列)에 참가하지 못하나, 마음은 학금(鶴禁 동궁)으로 달려가 애오라지 호배(虎拜)의 정성을 펴나이다.
[주-D001] 주(周)나라 …… 것 :
주나라 성왕(成王) 때 교지남(交趾南)의 월상씨(越裳氏)가 중역(重譯)을 하면서까지 사자(使者)를 보내어 흰 꿩[白雉]을 바쳤다.
[주-D002] 호배(虎拜)의 정성 :
호(虎)는 주(周)나라의 소목공(召穆公)의 이름. 주 선왕(周宣王) 때 회이(淮夷)의 난을 토평함에 공(功)이 있으므로 왕이 산천(山川)과 전토(田土)를 하사하니 소목공(召穆公)이 배계수(拜稽首)하며 사례를 했다. 후에 그로 인하여 신하가 조회하여 천자(天子)에 절하는 것을 ‘호배(虎拜)’라 한다. 《시경(詩經)》대아(大雅), 강강한편(江江漢篇)에 “호가 배계수하면서 천자의 만년수를 빌다.[虎拜稽首, 天子萬年]”라고 함.
2.하 평정 북방 전(賀平定北方箋)
최항(崔恒)
하늘의 위엄이 뇌성처럼 움직여 대번에 삼첩(三捷)의 소식을 날리고, 북쪽 사막(沙漠)에 먼지가 맑아져 사바의 하례가 다투어 달리니, 경사가 종사(宗社)에 관계되고 기쁨이 속국에까지 넘치나이다.
공손히 생각건대, 황태자께서 영명(英明)하심이 매우 뛰어나시고 용지(勇智)가 우뚝 높으시어, 천지를 손바닥 위에 놀리시니 비(否)가 이미 태(泰)로, 둔(屯)이 이미 형(亨)으로 되었고,호월(胡越)을 눈[目] 속에 두고 관찰하시니 가까운 곳이 스스로 안정되고 먼 곳이 스스로 정숙해져서, 구이(九夷)가 모두 제항(梯航)이 늦어질까 두려워하고 삼변(三邊)에 조두(刁斗)의 소리가 끊겼나이다.
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완추(頑酋)가 이[蝨]처럼 건주위(建州衛)에 거처하면서 망령되게 지리(地理)의 험함을 믿고 반항하며, 감히 악독한 마음을 품고 불공(不恭)하며, 다만 저희 나라를 집적거려 쥐처럼 도둑질하고 개처럼 훔쳐먹기를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앙큼하게도 상국(上國)에까지 발호(跋扈)하여 돼지처럼 날뛰고 산돼지처럼 앞뒤를 가림없이 함부로 달려드니, 이번에 일노(一怒)의 군사를 일으켰음은 이로써 구벌(九伐)의 본보기를 보인 것이로소이다.
만전(萬全)한 신책(神策)을 수여(授與)하시어 앉아서 기각(掎角)의 형세를 이루고, 일고(一鼓)에 기공(奇功)을 뽐내어 단번에 시호(豺虎)의 소굴을 소탕할 적에, 비로소 허점을 타고 그 험지(險地)에 깊이 들어가 마침내 용기를 드날려 그 추장(酋長)을 모조리 사로잡고, 닥치는 곳마다 다 쓰러졌으니 그 무엇이 도망쳐 벗어났겠습니까. 이는 흉노가 백 년의 망운(亡運)을 만난 것이므로 장군이 세 살[三箭]로 평정한나머지 가죽장막을 소탕하여 휑하게 비우고 큰 공을 며칠 안에 아뢰게 되었으니, 이와 같은 묘한 작전은 워낙 예모(睿謀)에서 결단된 것이라서, 평정하고 귀순시킴에 신끝으로 걷어차는 힘도 들이지 않았으며, 반항할 자 없고 업신여길 자 없으니, 어탑(御榻) 가에 어찌 무뢰한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리이까. 백 개의 풀무를 불어 기러기털을 태운 듯, 설치(雪恥)는 한제(漢帝)에게 자랑할 만하고, 천균(千鈞)을 드리워 새알을 누른 듯, 흉노를 무찔러 당종(唐宗)에게 보고하려 하오니, 이것이 어찌 다만 삼한(三韓)만의 기쁨이리이까. 실로 온 천하가 뛰놀며 춤출 일이로소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노둔(駑鈍)한 자질로서 원련(鴛聯)에 우두머리로 참여하여 왕정(王庭)에 조회하지 않는 무리를 네 번 정벌(征伐)하여 만백성을 편안케 하였으니, 비록 젓가락을 빌리는 큰 기획은 드리지 못하였으나, 만수무강을 하시면서 온갖 복록을 다 누리시기를 빌며 갑절이나 첨주(添籌)의 단침(丹忱)을 펴나이다.
[주-D001] 비(否)가 …… 되었고 :
모두가 《주역》에 있는 점괘이니 비(否)와 둔(屯)은 흉한 운명을 말하는 것이요, 태(泰)ㆍ형(亨)은 좋은 운명을 말하는 것이다.
[주-D002] 구이(九夷)가 …… 두려워하고 :
제(梯)는 사닥다리요, 항(航)은 배다. 험한 산을 사닥다리를 놓아서 오르고, 큰 바다나 강을 배로 건넌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먼 데 사람들이 험한 산을 사닥다리로 넘고 큰 물을 배로 건너서 찾아온다는 뜻.
[주-D003] 이번에 …… 것이로소이다 :
건주위(建州衛)에 사는 여진족(女眞族)이 반란을 일으키어 우리나라를 침범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명나라에 보고하여 명나라에서 그 여진족을 토벌한 때의 일이다.
[주-D004] 흉노가 …… 것 :
예전부터 “호무백년지운(胡無百年之運)”이라 하여 오랑캐 족속은 백 년만 되면 멸망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한다.
[주-D005] 장군이 …… 평정한 :
당나라 설인귀(薛仁貴)가 천산(千山)에서 돌궐(突厥)과 싸울 때 세 살을 쏘아 세 사람을 맞히니 나머지 군사가 다 항복했다 함.
[주-D006] 예모(睿謀) :
예(睿)라는 글자는 황태자(皇太子)에게 쓰는 글자이니 이때에 명나라에서는 황태자가 섭정한 때이므로 그런 말을 썼다.
[주-D007] 원련(鴛聯) :
원(鴛)이라는 것은 오리의 일종인데, 신하들이 임금 앞에 죽 늘어서 있는 것이 마치 오리떼가 주인 앞에 늘어선 것같다 하여 원련(鴛聯 오리줄)이라고 하는데, 벼슬아치의 반열을 비유한다.
[주-D008] 왕정(王庭)에 …… 정벌하여 :
은(殷)의 탕왕(湯王)이 의사(義師)를 일으켜 무려 네 번이나 정벌했다.
[주-D009] 첨주(添籌) :
남의 장수를 송축할 때 쓰는 말.
3.영천이 솟아난 것을 하례하는 전[賀靈泉湧出箋]
최항(崔恒)
하늘의 용(龍)이 옥좌에 임어(臨御)하시어 천심(天心)을 대행(代行)하시며, 대지(大地) 어머니가 상서를 나타내어 신령한 선물을 드리니, 온 누리에 찬송이 흐르고 사방에 기쁨이 넘치나이다.
그윽히 보건대, 아름다운 징조가 나타남은 반드시 진주(眞主)가 일어남을 기다리는 법이니, 자천(滋泉)이 당요(唐堯)의 세상에 나타났고, 예수(醴水)가 하우(夏禹)의 때에 나타났었으니, 진실로 성화(聖化)가 남몰래 통함이 아니었으면 어찌 기특한 상서가 흐뭇이 이르리이까.
공손히 생각건대, 주상전하께서 중정(中正)ㆍ준철(濬哲)하시며, 용지(勇智)하고 덕이 넓고 깊으시어, 난국(難局)을 경륜으로 건지시고 새 나라를 주선(周旋)하여 이룩하셨나이다. 일거(一擧)에 은하수를 끌어당겨 삼한(三韓)을 깨끗하게 확청(廓淸)하시고, 만기(萬機)는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 사방의 옹색(壅塞)함을 통하게 하시어 사사로움이 없는 우악(優渥)한 은택을 흐뭇하게 베푸시고, 걷잡을 수 없는 거센 물결을 휘돌려 놓으시니, 이(理)와 도(道)가 점점 높아지고 위령(威靈)이 산뜻하게 떨쳐 하수(河水)가 이로부터 진실로 모여 흐르고 바다가 오래도록 물결을날리지[揚] 않으리이다.
항상 경외(敬畏)하고 공손하여 가득 참[盈]을 경계하시고, 저녁까지 조심하여 매양 조심하시며, 심미(深微)한 교화를 돈독히 하시고, 더욱 청정(淸淨)한 풍(風)을 숭상하오니, 만민(萬民)의 편안을 생각하심이 물에 빠진 자를 건지심 이상이요, 한 사내[夫]라도 얻지 못할까 염려하시어 항상 도랑에 빠친 것같이 여기셨나이다. 이제 해마다 순수(巡守)하시는 규례(規例)를 좇아 지방을 순찰하는 성전(盛典)을 거행하시어, 황옥(黃屋어가(御駕))이 남방에 행행(幸行)해서는 순 임금의 음률과 같이 민정(民情)을 살펴보시고, 취개(翠盖)가 온천에 머무르셔서는 탕(湯) 임금의 욕반(浴盤)에 앉아 국정(國政)을 섭리하시니, 만물이 모두 기뻐 우러러뵈옵고 삼령(三靈 천(天)ㆍ지(地)ㆍ인(人))이 감동하여 축복하나이다.
샘물이 콸콸 대궐 앞에서 솟아나 햇빛을 머금어 넓게 퍼지고, 맑디맑은 물이 어전(御前)에 넘쳐 용안을 비추어 졸졸 흐르니, 때[垢]를 씻음에 어찌 감천(甘泉)만 못할 것이며, 깨끗한 품이 현주(玄酒 제사에 쓰는 냉수)가 될 만하나이다. 마치 아름답고 차디찬 다른 물줄기를, 오래 비장(祕藏)하여 보호해둔 듯이 문득 맑디맑은 빛나는 영원(靈源)을 열어놓으니 이 어찌 시키는 자가 없었으리이까. 이는 대개 우주(宇宙) 안엔 사대(四大)가 있어 땅은 그중의 하나로 늘 편안하고, 하늘이 낳은 오행(五行) 중에 물은 능히 아래를 적시어 잘 이롭게 하는 것인데, 이 영천의 솟아오름이 바로 대화(大和)의 융액(融液)임을 징험할 수 있고, 또한 천지 기운의 훈증(薰蒸)임을 점칠 수 있나이다.
하늘이 아름다운 상서로써 전에 없는 위적(偉績)을 환히 표창하시는데 땅인들 어찌 보배를 아끼오리까. 곧 비상한 진부(珍符)를 드렸나이다. 하물며 욕일(浴日)의 때를 당하여 더욱 광대(曠代)의 상서임을 믿겠으니, 비록 보편하고 광활하며 깊고 근본이 있어서 제때에 나오는 덕을 지닌 성인이라도 진실로 이미 더할 나위가 없사오나, 움켜 씻고 목욕하여 깨끗이 하며,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功]은 마땅히 그치지 말아야 하리니, 이 어찌 역사에 빛을 더할 뿐이오리까. 실로 경사가 천지간에 흐뭇하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등이 모두 용재(庸材)로써 마침 성대(聖代)를 만나 외람되이 유수(留守)의 직책을 맡았다가 아름다운 상서의 소식을 듣고, 법종(法從 임금을 호종(扈從)함)의 산호(山呼 만세)를 상상하면서 비록 파도처럼 달려가 경하올리는 행렬에는 참가하지 못하나, 구름에 아득한 행궁(行宮)을 바라보며 갑절이나 해주(海籌)의 축원을 더하나이다.
[주-D001] 저녁까지 조심하여 :
《주역》 건괘에 “군자는 종일토록 조심하고 저녁까지 조심하여 위태롭지 않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君子終日乾乾 夕惕若厲无咎].”라고 하였다.
[주-D002] 순 임금의 … 살펴보시고 :
순(舜)의 남훈가(南薰歌)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불만을 풀어주겠네[南風之薰兮可以解吾民之慍兮].” 하였다.
[주-D003] 탕 임금의 …… 섭리하시니 :
탕왕의 반명(盤銘)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하였다. 《大學》
4.유구국에서 앵무를 드림을 하례하는 전[賀琉球國獻鸚鵡箋]
최항(崔恒)
명주(明主)가 임어(臨御)하시어 남방 끝까지 천성(天聲)을 떨치시자, 먼 지역[絕域]에서 정성을 바쳐 진물(珍物)로 토산(土産)을 드리니, 일이 역사에 빛나고 기쁨이 천하에 넘치나이다.
그윽히 보건대, 역대의 나라가 흥할 때 대개 외국에서 이물(異物)을 바치는 예(例)가 있사온대, 진(晉)나라 역사엔 남월(南越)의 코끼리를 기록하였고, 《한서(漢書)》에는 안식국(安息國)의 사자를 기록하였나이다. 비록 먼 곳에서 온 물건이 볼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지만, 어찌 성덕(聖德)의 소치(所致)임을 이에서 징험할 수 없다 하오리이까.
공손히 생각건대, 국왕전하께서 내성내신(乃聖乃神)하시고 윤문윤무(允文允武)하시와 정치의 크신 법도는 삼황오제(三皇五帝)보다 뛰어나, 간우(干羽)로 춤추고 의상(衣裳)을 드리우시며, 국위(國威)가 미치는 길은 구이팔만(九夷八蠻)에 통하여 그들이 모두 제항(梯航)을 다투고 옥백(玉帛)의 예물을 올리니, 상국에 조공하려는 뜻이 이미 간절한대, 와서 그 진보(珍寶)를 드림을 그 누가 늦추리이까.
생각건대 앵무는 본래 서역(西域)의 영금(靈禽)인데, 저 유구(琉球)가 남만(南蠻)과 같이 바친 공물(貢物)입니다. 금정(金精)을 받았고 화덕(火德)을 머금었으니 어찌 다만 말을 함이 보통새보다 다를 뿐이리까. 주인의 뜻을 알고 인정에 통함이 실로 특수한 지혜로 뭇 새 중에서 뛰어난 것입니다. 일찍이 당 명황(唐明皇)의 총애(寵愛)를 입어 녹의랑(綠衣娘)이란 봉호(封號)까지 받았음이 당연하니, 어찌 그 붉은 부리[觜], 빨간 발뒤축만이 자랑할 만하며, 그 푸른 깃과 금빛 눈만이 완롱(玩弄)에 값할 뿐이리까.
하물며 이제 먼 지역 두 나라에서 함께 바친 것이 옛날 월상(越裳氏)의 중역(重譯)보다도 더 정성스러우니, 어찌 다만 남국의 진금(珍禽)이 동정(彤庭)의 진열물(陳列物)이 될 뿐이리까. 오직 덕(德)으로 물건을 대하면 그 영광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다가 물결을 날리지 않으니 진실로 이미 해동(海東) 성인이 나셨음을 알 것이요, 하늘이 명(命)을 내리시니 어찌 천하 태평의 징조가 아니오리이까. 먼 옛날의 역사를 상고하여도 듣기 드문 일이요, 온 천하가 모두 경사를 같이 하는 바이로소이다.
신등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 원항(鴛行)에 참열(參列)하여, 다행히 눈으로 이 성사(盛事)를 보았으나, 입으로만 성대(聖代)를 구가할 수 없기에, 대서특서(大書特書)로 성미(盛美)를 찬송하여 효음(鴞音)의 나를 생각하는 노래를 잇[續]고, 천년 만년이나 순희(淳熙)한 성대(聖代)를 이루소서. 갑절이나 구주(九疇)의 ‘당신에게 주는 복’을 비나이다.
[주-D001] 효음(鴞音)의 …… 노래 :
원객(遠客)이 보물을 바치는 노래. 《詩經 魯頌 泮水》
[주-D002] 구주(九疇) :
《서경》 홍범(洪範) 구주 특히 제5황극(皇極)에, “복을 거둬 궐민(厥民)에게 나누어주면 궐민이 너의 극을 보호해 준다[歛時五福 用敷錫厥庶民 惟時厥庶民 于汝極 錫汝保極].” 하였다. 《書經 洪範》 원문의 구주(龜疇)는 구주(九疇)의 잘못임.
5.북방을 평정했음을 하례하는 표[賀平定北方表]
무명씨(無名氏)
문덕(文德)을 널리 펴시어 만방(萬邦)을 편안하게 하시고, 무공(武功)을 이루시어 군추(群醜)를 모조리 섬멸하시니, 승전의 소식이 미치는 곳마다 기쁜 기운이 솟아오르나이다.
공경히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옵서 용지(勇智)는 탕(湯) 임금보다 더하시고 총명이 순(舜) 임금보다 뛰어나시어, 인(仁)으로 돈독히 화육(化育)하시니 온 천하가 거서(車書)를 같이함에 이르렀고, 천운(天運)으로 영성(盈成)을 지향하시니 예악(禮樂)이 인정(人情)과 문채를 한껏 갖추었는데, 저 되놈의 종자가 감히 천주(天誅)를 무서워하지 않고 처음에는 간사한 꾀를 부리다가 끝내에는 완악(頑惡)한 태도로 황명(皇命)을 거역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에 웅비(熊羆)의 군사를 정돈하여 위령을 환히 보이고 봉채(蜂蠆)의 무리들을 섬멸하여 사막(沙漠)을 확청(廓淸)하시니, 평화가 다시 회복되고 이하(夷夏)가 모두 편안하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써 다행히 성세(盛世)를 만나, 몸이 기전(箕甸)에 매여 있어 준분(駿奔)의 열(列)에는 참여하지 못하오나, 축는 화봉인(華封人)을 본받아 곱절로 연하(燕賀)에 정성을 바치나이다.
[주-D001] 기전(箕甸) :
우리나라를 말하는 것이니, 옛날에 기자(箕子)가 다스리던 땅이라는 뜻이다.
[주-D002] 준분(駿奔) :
준마(駿馬)는 잘 달리는 말이니, 마음은 그 말처럼 빨리 달려가고 싶다는 뜻이다.
[주-D003] 화봉인(華封人) …… 바치나이다 :
화(華)는 땅이름이니 옛날 요(堯) 임금 때에 화 땅에 봉(封)해 준 사람이 축복을 세 가지로 올렸다는 고사(故事)가 있고, 연하(燕賀)는 제비가 봄날에 빨랫줄에서 지저귀는 것이 마치 수인에게 축복하는 것같다는 고사로 하여 제비의 축하[燕賀]라는 말이 생겼다.
6.북로를 쳐서 평정했음을 하례하는 표[賀討平北虜表]
무명씨(無名氏)
문덕(文德)을 널리 펴시어 은택이 중국에 흡족하고 군사(軍事)를 일으켜 위엄이 북비(北鄙)에 더하오니, 첩서(捷書)가 사방에 달하여 경송(慶頌)이 섞여 솟아오르나이다.
공경히 생각건대, 성경(聖敬)이 날로 뛰어나시고 용지(勇智)를 하늘이 주시어 이제 삼왕(二帝三王)을 이어 황극(皇極)을 세우시니 정치가 안정되고 공이 이루어지며, 사해구유(四海九有)를 정하여 한 집을 삼으시니 먼곳이 편안하고 가까운 데는 숙연하나이다. 그런데 저 노린내나는 조그만 오랑캐[醜類]들이 생육(生育)의 큰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번번이 왕화(王化)를 거역하여 변경(邊境)을 침범하고 있으니, 그 죄를 성토하여 토벌함이 마땅하므로, 이에 웅비(熊羆)의 군사를 정돈하니 군기(軍紀)가 엄명(嚴明)하고, 저 견양(犬羊)의 무리들을 쓸어내니 황령(皇靈)이 환하게 빛나 간과(干戈)가 거둬지고 이하(夷夏)가 모두 편안하게 되었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이 다행히 소대(昭代)를 만나 기쁘게 성사(盛事)를 듣고, 몸은 청사(靑社)에 매여있어 부추(鳧趨)의 반열에는 참가치 못하오나, 눈은 단소(丹霄)를 바라보며 호배(虎拜)의 정성을 갑절 드리나이다.
[주-D001] 청사(靑社) :
청(靑)은 동방이라는 뜻이요, 사(社)는 토지라는 뜻이니, 그러므로 청사(靑社)라 함은 동쪽 땅 즉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7.기린과 복록사자와 공중에 나타난 제불세존의 보탑을 하례하는 표[賀麒麟福祿獅子空現諸佛世尊寶塔表]
무명씨(無名氏)
성인(聖人)이 황위(皇位)에 임어하시어 태평을 밝게 여시고, 신물(神物)이 대에 옹하여 아름다운 선물을 나타내니, 해와 달이 비치는 곳마다 기쁘고 춤춤이 오직 고릅니다.
공경히 생각하옵건대, 도(道)는 천지를 경륜하시고, 공(功)은 만물을 화육(化育)하시니, 백성이 편안하고 물자가 풍부하여 비잠동식(飛潜動植)이 다 편안하고, 예(禮)가 갖춰지고 악(樂)이 흥하여 화이만맥(華夷蠻貊)이 모두 의지하니, 이제 이 영이(靈異)한 산물들은 진실로 태형(泰亨)의 징조에 맞습니다.
기린은 원래 오행(五行)의 정(精)이요, 사자는 곧 백수(百獸)의 장(長)인데, 하물며 복(福)과 녹(祿)이 쌍으로 난 것은 고금에 더욱 희한한 일이니 이는 모두 화기(和氣)가 길러낸 것이요, 실로 지극한 정치에 감동한 것이로소이다. 또한 여러 부처의 보탑(寶塔)이 두루 공중에 나타나고 채봉(彩鳳)ㆍ신룡(神龍)이 서로 해 아래에 너훌거리는 아름다운 상서가 겹쳐 이르니 경사로운 칭송이 섞여 솟아오르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다행히 성대(盛代)를 만나 기쁘게 상서를 듣고, 몸은 외복(外服)에 매여 있어 비록 준분(駿奔)의 반열에는 참가치 못하오나, 마음은 중신(中宸)에 쏠려 호배(虎拜)의 정성을 갑절로 올리나이다.
[주-D001] 중신(中宸) :
신(宸)은 하늘인데 황제를 의미한다. 중(中)은 중국이라는 뜻이니 중신(中宸)이라면 중국 황제라는 뜻이다.
8.하 감로 예천 표(賀甘露醴泉表)
무명씨(無名氏)
신성(神聖)하신 임금이 때에 응하여 나시어 문명한 정치를 성대히 여시자, 천지가 경사에 협력하여 이에 명(命)을 돕는 거동을 나타내시니 종사(宗社)가 안녕하시며 화이(華夷)가 모두 기뻐합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성심(誠心)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랑으로 백성을 돈독히 하시고, 인(仁)으로 만물을 품어주시고 편안하게 함을 두터이하시어 고택(膏澤)이 하민(下民)에까지 흡족케 하시니 영천(靈泉)이 상서를 빚어내고, 형향(馨香)이 상제(上帝)에 도달하여 감로가 엉기는 아름다운 징조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듯 여러 복이 이르게 한 것은 모두 한 마음의 묘함에 말미암은 것이로소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써 다행히 성대(盛代)를 만나, 봉의(鳳儀)의 성덕(聖德)을 느끼면서 소소(韶蕭) 구성(九成)의 악(樂)을 상상하며, 호배(虎拜)의 정(情)이 간절하여 주아(周雅) 만년(萬年)의 기원(祈願)을 올리나이다.
[주-D001] 봉의(鳳儀)의 성덕(聖德) :
봉(鳳)은 상상의 새인데, 새 중에 제일가는 새로서 성인 임금이 세상을 통치하여야 나타난다고 한다. 의(儀)는 손님 노릇한다는 뜻이니, 봉의라면 봉새가 와서 손님 노릇한다는 뜻이 된다.
[주-D002] 주아(周雅) 만년(萬年) :
주아(周雅)는 주나라 시대의 아악(雅樂)을 말하는 것으로, 군왕 만년(君王萬年)의 곡조가 있다.
9.하 추우 표(賀騶虞表)
무명씨(無名氏)
성신(聖神)하신 임금이 황극(皇極)에 임어하시어 만물의 번영을 이룩하고, 기특한 상서가 때에 응하여 양의(兩儀 음양)의 아름다운 선물을 환히 나타내시니, 일이 역사에 빛나고 기쁨이 천지에 넘치나이다.
그윽히 보옵건대, 지극한 정치가 일어나면 반드시 믿을 만한 부징(符徵)이 나타나나니, 역괘(易卦)를 그었을 때 용마(龍馬)가 나타났고, 소소(蕭韶)를 이루었을 때 봉황(鳳凰)이 와서 춤추었나이다. 또 주(周)나라 문왕(文王) 때를 당하여 비로소 추우(騶虞)의 시(詩)를 읊었는데, 어쩌면 다행히도 천년 뒤에 다시금 이남(二南)의 상서를 보게 되었나이까.
공경히 생각건대, 밝으심은 해와 달 같으시고 공(功)은 만물을 화육(化育)하시니, 선정(善政)에 덕이 높으시니 육부(六府 수, 화, 금, 목, 토, 곡(水火金木土穀)ㆍ삼사(三事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가 오직 닦으시고, 군생(群生)에 인(仁)이 흡족하시니 일발(一發) 오파(五豝)를 탄미할 만합니다. 이제 이 특이한 산물이 감동하여 나왔음은 실로 천지가 기운을 합쳐 길러낸 바로소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이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서 마침 성대(盛代)를 만나, 구중(九重)에 정성을 달리면서 오변(鼇抃 몹시 기뻐함)하는 마음을 갑절이나 품으며, 만년의 성수(聖壽)를 축수하며 호배(虎拜)의 시(詩)를 잇기를 원하나이다.
[주-D001] 추우(騶虞)의 시(詩) :
주나라 문왕(文王) 때 이수(異獸)가 나타났으므로 《시경》소남(召南)에 그것을 노래한 시편 이름이다.
[주-D002] 이남(二南)의 상서 :
중국 고대 주나라 시대에 있던 노래. 《시경》 십오국풍(十五國風) 중에 주남(周南)ㆍ소남(召南)이 있다. 이는 모두 임금의 가정이 잘 융화된 것을 찬미하는 노래다. 이 글은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한 후에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병(高騈)이란 사람의 막하(幕下)에서 참모로 있을 때에 고병을 대신하여 지은 글이다.
[주-D003] 일발(一發) 오파(五豝) :
“저 무성한 갈대밭에 다섯 암퇘지를 한 발에 쏘아 잡네. 어허, 추우로다[待茁者葭 一發五豝 于嗟乎騶虞].” 《詩經 召南 騶虞》
10.기린이 나타난 것을 하례하는 표[賀麟見表]
무명씨(無名氏)
한 분이 지존(至尊)에 임어하시어 성대(盛代)를 환하게 여시고, 이의(二儀 하늘과 땅)가 상서를 모아 아름다운 선물을 풍성히 나타내시니, 해와 달이 비치는 곳에 기뻐 춤춤이 오직 고르도소이다.
그윽히 보건대, 이 어진 짐승이 난 것은 실로 왕자(王者)의 상서이니, 황제(黃帝) 때에는 동산[囿]에 나와 노닐었고, 창희(蒼姬 주나라)에 미쳐서는 들밖에 나타났는데, 진실로 광세(曠世)의 희한한 일이거늘 다행히 이 명시(明時)에 다시금 보게 되었나이다.
공경히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 마음은 만물의 화육(化育)에 돈독하고 정도(正道)는 천지의 경륜에 합하시어 천운(天運)으로 영성(盈成)을 어루만지시니 신화(神化)가 팔표(八表 팔방)에 두루 미치고, 은혜가 동식(動植)에 흡족하며 화기(和氣)가 천지간에 가득하니, 이번에 이 영물이 나타남은 실로 상서로운 징표(徵表)가 응함이로소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써 희조(熙朝)를 만나 몸이 제잠(鯷岑)에 걸려있으므로 비록 준분(駿奔)의 반열에 참가하지는 못하오나, 정은 봉궐(鳳闕)에 달려 갑절이나 호배(虎拜)의 정성을 다하나이다.
11.북경에 도읍을 정하고, 봉천ㆍ화개ㆍ근신 세 전을 세우심을 하례하는 표[賀定都北京建奉天華蓋謹身三殿表]
무명씨(無名氏)
제업(帝業)에 공적이 크시어, 거듭 빛나는 운(運)을 풍성히 받고, 황극(皇極)을 새로 열으사 이에 백관(百官)의 조회를 엄숙히 받사오니, 서기(瑞氣)가 궁궐에 자욱하고 환성(歡聲)이 천지에 솟아오릅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옵서 온공(溫恭)ㆍ준철(濬哲)하시고 강건(剛健)ㆍ수정(粹精)하시어, 신도(神都)를 정하고 법궁(法宮)을 건조(建造)하시니 공(功)이 계술(繼述)에 빛나고, 윤언(綸言)을 반포하여 환택(渙澤)을 베푸시니 덕이 생성에 흡족하여, 국조(國祚)가 더욱 융창(隆昌)하고 군정(群情)이 모두 기뻐하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서 마침 성세(盛世)를 만나 몸이 청구(靑丘)에 매인 탓으로 비록 부추(鳧趨)의 반열에 참가하지는 못하오나, 마음은 자달(紫闥 궁궐)로 달려가 갑절이나 연하(燕賀)의 정성을 다합니다.
12.거가가 서울로 돌아오심을 하례하는 표[賀車駕還京表]
무명씨(無名氏)
난여(鸞輿)가 북으로 파천(播遷)하시자 만민이 모두 수심하더니, 용어(龍馭)가 남으로 돌아오심에 온 천하가 다 같이 경하(慶賀)하여, 해와 달이 비치는 곳마다 기뻐 춤춤이 모두 고르도소이다.
공경히 생각건대, 관유(寬裕)하시고 온유(溫柔)하시며 문명(文明)ㆍ준철(濬哲)하신 황제폐하께서 북방 사막(沙漠) 머나먼 땅에 계시니 만민이 바야흐로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바라보았는데, 이제 황도(皇都)에 보위(寶位)를 높이사 다시금 하늘과 해를 보게 되었사오니, 환성(歡聲)이 자금(紫禁)에 넘치고 기쁨이 자위(慈闈)를 움직이리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써 마침 성대(盛代)를 만나. 포과(匏瓜)처럼 몸이 매인 탓으로 비록 준분(駿奔)의 반열에 참가하지는 못하오나,규곽(葵藿)의 정성은 깊사와 오직 호배(虎拜)의 예(禮)를 부지런히 올릴 뿐입니다.
[주-D001] 규곽(葵藿) :
해바라기.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이는 데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충심으로 따름의 비유.
13.거가 가 서울로 돌아오심을 하례하는 표[賀車駕還京表]
무명씨(無名氏)
황령(皇靈)이 밝으시니 맞아들이는 규모가 넓고, 임금의 수레가 돌아오시니 천하 백성의 바라던 마음에 위로되고 일월이 비치는 곳마다 모두 뛰고 춤춥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황제께서는 순 임금의 총명에 합하시며 탕 임금의 지용(智勇)과 같아서, 공업(功業)은 계체(繼體)에 빛나고 우애는 인심(因心)에 돈독하십니다. 오직 지성이 하늘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저 오랑캐가 필경 도(道)에 향하였습니다. 임금[一人]이 경사가 있음은 실로 조종(祖宗)의 은밀한 힘을 입음이시고, 이성(二聖)이 거듭 기뻐하시니 화한 기운이 궁중에 가득하며, 백성이 즐거워하고 사직이 편안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외람되이 용렬한 자질로 다행히 성대를 만났는데, 몸이 동방[東土]에 매이어서 백관[百辟]의 반열에 참석하지 못하여, 정성된 마음만은 북신(北辰)에 달려가며 만 년의 수를 축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합니다.
14.당나라가 땅을 하사함을 사례하는 신라의 표[新羅謝唐賜地表]
무명씨(無名氏)
엎드려 은칙(恩勅)을 받드오니, 패강(浿江) 이남의 땅을 하사하신다 하였나이다.
신이 바다 한 끝에 살면서 성조(聖朝)의 은혜에 목욕하와, 비록 한 조각 마음은 붉으나 이렇다 할 공을 세운 것이 없고, 충성을 본분으로 삼으나 아무런 갚을 만한 수고가 없었는데도, 폐하께서 특히 우로(雨露)의 은전(恩典)을 내리시고 일월(日月)의 조서(詔書)를 발하시어, 신에게 땅을 주시고 신의 고을살이를 넓혀 주셔셔, 드디어 농지를 개간(開墾)할 기태를 가지게 하시고 농사지을 곳을 장만하게 하시니. 신이 윤음(綸音)의 뜻을 받들어 은총(恩寵)이 깊음을 못내 감하(感荷)하며,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도 이 성은(盛恩)을 상답(上答)할 길이 없나이다.
15.태위의 직을 더해 주심을 사례하는 표[謝加太尉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금월 모일에 선위사(宣慰使) 공봉관(供奉官) 엄준미(嚴遵美)가 이르러 내리신 성지(聖旨)를 받자오니, 신과 장교(將校) 등을 위유(慰諭)하시고, 아울러 신에게 칙서(勅書)ㆍ수조(手詔) 각 한 봉(封)을 주시어, 신에게 검교태위(檢校太尉)를 더하시고 종전대로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겸 동면도통(東面都統)에 보(補)함이었나이다.
우러러 봉조(鳳詔)를 뵈오니 바로 용안(龍顔)을 대하듯, 총영(寵榮)이 지극하오나 무슨 힘으로 산(山)을 지오리이까. 황송하기 그지없어 몸둘 곳을 알지 못하겠으며, 신) 모가 진실로 춤추고 진실로 감격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신은 엎드려 생각건대, 대사마(大司馬)의 위권(威權)은 백관(百官)이 우러러보는 바요, 상장군(上將軍)의 명은 10도(道)에서 모두 준수(遵守)하오니, 어찌 다만 오병(五兵)을 정집(整戢)할 뿐이오리까. 실은 칠정(七政)을 조화(調和)하는 요직(要職)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마땅히 완전한 인재(人材)에게 이를 맡겨야 할 것인데 신과 같은 자는 몸을 윤택하게 할 만한 덕이 없고, 사물(事物)을 두루 살필 만한 지혜가 없으며, 선비로서는 오색(五色)의 붓을 가지지 못함이 부끄럽고, 무사(武士)로서는 겨우 일부(一夫)를 겨룰 만한 검(劍)을 가졌을 뿐인데, 다만 천정(天庭)의 총애를 입삽고 수국(水國)에 근심을 나누어, 대군(大軍)을 통솔하는 중임(重任)을 맡사오니 영광이 일대(一代)에 으뜸이고 장병을 지휘하여 정벌에 종사함으로써 만리(萬里) 밖에 절충(折衝)하여, 다행히 성감(聖鑑)을 만나 충성을 다할 수 있을 뿐이옵나이다. 이제 이미 웅사(雄師)를 거느려 장차 거추(巨酋)를 주륙(誅戮)하려 할 때, 정벌의 기치가 가리키는 길엔 멀리 요(堯) 임금의 햇빛을 따르고, 전함(戰艦)이 물결을 박찰 때에는 바야흐로 순(舜) 임금의 바람을 힘입고자 하였더니, 어찌 뜻밖에 왕인(王人)이 멀리 내려오시어 제명(帝命)을 전하며 외진(外鎭)의 작은 수고를 장려하시고 상사(上司)의 중한 책임을 수여하실 줄을 기대나 했겠습니까? 치의(緇衣)로써 아름다운 공적을 나타내지 못한 터에 외람되이 금피(錦被)의 영광을 누리게 됨이 진실로 황공하여이다. 하물며 겸하여 이권(利權)의 장(長)으로 널리 군수(軍需)의 책임을 맡게 하시고, 서절(瑞節)을 남연(南兗)에서 옮기지 않은 채 병부(兵符)를 동추(東陲)에까지 겸임(兼任)하게 하시니, 신이 어떤 특이한 재능으로 이 영광스러운 중임을 감당해 내오리이까.
신이 삼가 마땅히 얼음을 저녁에 마시고 황벽(黃檗)나무를 아침에 먹으면서, 병영(兵營)을 치는 곳마다 면대(面對)하여 백성들을 선무(宣撫)하고, 군기(軍旗)를 세우는 곳마다 몸소 사졸(士卒)에 앞장서오리니, 뭇 도둑들이 이미 고슴도치털처럼 일어나 우연히 잠깐 방자하게 굴고 있으나, 제후들이 반드시 말머리를 바라보아 함께 섬멸(殲滅)을 이룩하리라 생각하나이다. 힘은 이렇듯 자신만만하오나, 마음이야 어찌 안일(安逸)하오리이까. 반드시 난(難)을 당하여 몸을 잊고 위태함을 보고서는 목숨을 바쳐, 우러러 애를 태우시는 성려(聖慮)를 풀어드리고, 대강 완구(頑寇)를 막아내는 공을 세울까 하나이다.
신이 이미 아랫여울[下瀨]에서 군사의 장(長)이 되었으나, 멀지 않아 중류(中流)에서 맹세를 베풀고자 하오며, 몸은 원문(轅門)에 있어 창을 베고[枕] 잠들지 못하오나, 혼(魂)은 연로(輦路)로 날아 옥좌를 바라보며 정성을 달리나이다. 행재(行在)에 나아가 사은(謝恩)하지 못하오니, 성은(聖恩)에 감격하고 성체(聖體)를 연모하면서 한편 영광스럽게 춤추고, 한편으로는 그지없이 황공스럽습니다. 지정(至情)을 표할 길이 없기에 삼가 선위사 엄준미(嚴遵美)가 돌아가는 편에 표를 붙여 진사(陳謝)하나이다.
[주-D001] 무슨 …… 지오리이까 :
산같은 임금의 은혜를 모두 몸에 진다는 뜻.
[주-D002] 오색(五色)의 붓 :
육조(六朝)의 강엄(江淹)이 꿈에 곽박(郭璞)에게 오색(五色) 붓을 빌려 받아 문장이 되었다.
[주-D003] 치의(緇衣) :
검은 옷. 제후(諸侯)가 천자에게 조회할 때 입는 정복(正服). 《詩經 緇衣》
[주-D004] 남연(南兗)에서 …… 동추(東陲) :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 남부와 강소성(江蘇省) 북방은 옛날에 연주(兗州)에 속하였는데, 그후에 강소성 남부를 남연주라고 한 때가 있었다. 동추는 양주(楊州)인데 그곳은 양자강(揚子江) 하류로 전 중국의 동남방에 해당한다.
[주-D005] 얼음을 저녁에 마시고 :
왕사(王事)에 전념함을 말한다.
[주-D006] 아랫여울[下瀨] :
하류(下流)와 같은 말인데, 여기 또 중류(中流)라는 말이 있으나, 그것은 흐르는 강의 한복판이란 말이요, 하류는 강물이 바다 가깝게 간 곳을 말하는 것이다.
[주-D007] 중류(中流)에서 맹세 :
진(晉)나라 조적(祖逖)이 분위장군(奮威將軍)으로 북벌(北伐)하다가 장강(長江)을 건너며 중류에 이르러 노를 치며 맹세하기를, “중원을 평정하지 못하고 다시 이 강을 건너면 이 강과 같다[不能淸中原 而復濟者 齊如大江].” 하였다. 《晉書》
16.남만의 통화문서를 보여주심을 사례하는 표[謝示南蠻通和事宜表]
신 모는 아뢰나이다.
2월 26일에 선위사(宣慰使) 공봉관(供奉官) 이종맹(李從孟)이 이르러 엎드려 칙지(勅旨)를 받으니, ‘입학척사(入鶴拓使) 주사(冑嗣)ㆍ왕귀년(王龜年)과 합문사(閤門使) 유광유(劉光裕) 등이 표(驃)의 신표(信表)와 국신(國信)을 가지고 돌아왔고, 겸하여 포섭(布燮) 양기굉(楊奇肱)과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의 글월에 모두 정성(精誠)으로 황명(皇命)에 순복함을 갖추어 기록하였기에, 그 표와 글월과 답례 신물(信物) 수효를 아울러 적어 보내며, 이 일의 전말(顚末)은 경(卿)의 양모(良謀)에 의한 것이다.” 하는 성지(聖旨)였나이다.
멀리서 왕언(王言)이 내리신 사절(使節)의 글을 엿보고 무릎을 꿇고 상천(上天)이 뜻을 열람함에 앉아서 외역(外域)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총애로우신 영광을 주심이 가이없어 근심하고 황공하여 몸둘 곳을 모르겠니, 신 모는 진실로 춤추고 진실로 기뻐서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신은 원래 간세(間世)의 재주가 아니요, 시국(時局)을 건질 만한 지혜가 없사오나, 다만 매양 궁변(窮邊)을 진수(鎭守)하였을 때마다 오랑캐들을 대강 진압(鎭壓)하여 그들로 하여금 배부르면 날아가고 배고프면 빌붙지 않게 하고 전에는 거만했으나 뒤에는 공손하게 하고자 하였나이다. 저번에 외람되이 성도(成都)를 지킬 때 원략(遠略)을 펴고자 하시어, 드디어 석자(釋子 중)를 사절로 보내어 몽고 왕(蒙古王)을 잘 설유(說諭)하게 하였는데, 우러러 천위(天威)에 품(稟)하여 풍교(風敎)를 선양(宣揚)할 수 있었으므로 길이 간과(干戈)의 우환(憂患)을 없애고 그들로 하여금 옥백(玉帛)을 조공(朝貢)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조정의 의논이 비등(沸騰)하여 군신(群臣)들이 다투어 반대하는 의견을 진술하였사오나, 성충(聖衷)으로 전단(專斷)하시어 일찍 부동(不動)의 결의(決意)로 신의 방략을 지지(支持)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잠깐 서순(西巡)하시어 혹 남방이 반(叛)할까 염려될 때에도 국가의 귀주(貴冑 귀족)와 조정의 근신(近臣)을 보내시어, 성덕(聖德)을 돌려 굽히시고 멀리 현화(玄化)를 전하시어, 방언(方言)을 통역해서 외교를 맺어 그들로 하여금 참다운 지성을 빠짐없이 진주(進奏)하게 하여, 이미 그들로 하여금 의(義)를 안고 인(仁)을 이게[戴] 하시니 이제 과연 옥백을 받들어 예물로 진상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폐하의 위덕(威德)의 소치일 뿐, 신(臣)의 힘이 무엇이 있었으리이까.
그러한데 이제 신이 선견(先見)의 재능으로서 미래의 일을 알아, 남만(南蠻)과 화평하는 양책(良策)을 미리 베풀어 서촉(西蜀)에 행행(行幸)하시는 엄성(嚴城)을 대비(對備)하였다 하여, 보잘 것 없는 근로(勤勞)를 철권(鐵券)에 기록해 주시고 멀리 칭장(稱獎)의 성지(聖旨)를 내려주시니, 신이 황공하고 감격여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남만(南蠻)의 장주(章奏)를 보니 서궤(書軌)가 이미 같고, 간사한 오랑캐가 시기하고 혐의함을 그쳐 제항(梯航)이 서로 접(接)하니, 남국이 과거의 허물을 속죄하여 조공함을 실증하였고, 북극(北極 천자)이 미래의 근심을 덜어 안심하심을 아게 되었으니 비록 오리(五利)가 남음이 있은들 어찌 감히 후한 상을 바라오리까. 오직 원하기는 사방이 무사하여 길이 성대(盛代)를 찬하(賛賀)하여지이다.
신이 번진(藩鎭)을 지키는 책임상 행재(行在)에 나아가 칭사(稱謝)하지 못하오니, 한편 기쁘고 감격하고 송구함을 이기지 못하며, 삼가 공봉관(供奉官) 이종맹(李從孟)이 돌아가는 편에 표를 부쳐 진사하나이다.
[주-D001] 오리(五利) :
오리(五利) 춘추 시대에 진(晋)나라의 위강(魏絳)이란 사람이, “오랑캐와 평화 조약하는 것은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和我有五利]”고 말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17.서천에 축성비를 세움을 사례하는 표[謝立西川築城碑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엎드려 11월 6일의 칙지(勅旨)를 받자오니, ‘신이 서천 절도사(西川節度使)로 재임할 때 나성(羅城)을 창축(創築)하였는데, 어제 칙지로 가장(嘉獎)하심에 의하여 당시에 하사(下賜)하였던 비문(碑文)을 이제 이미 유사(有司)에게 내어주어 새겨 건립하게 하였다.’는 내용이었나이다.
한 조각 비문(碑文)을 거북이 처음 이고[戴] 서고[立] 구중(九重)의 조서(詔書)를 봉(鳳)이 이미 물고 오니, 새긴 명문(銘文)이 절묘(絶妙)하지도 못한 터에 내리신 은총(恩寵)이 이렇게도 화려하니, 우러러 성은(聖恩)을 엿보고 울면서 황공한 마음을 안고 신 모가 진실로 감격하고 진실로 송구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저번에 다행히 삼도(三刀)를 꿈꾸어 오래 익주(益州)의 절도사로 재임하여, 멀리 한 검(劍)을 들고 몽병(蒙兵)을 좌절(挫折)하였으나, 다만 그곳이 옥루(玉壘)로 일컬을 만하나 금성(金城)이 아직 설치되지 않아, 산어귀[山口]는 허허히 야만족인 단족(蜑族)을 바라보고 강물은 비스듬히 체양(䍧 운남성(雲南省)으로 가는 땅이름)을 베고[枕] 흐르니, 시냇물을 품고 골짜기를 안은[抱] 형국을 비록 천험(天險)이라 할지라도 촘촘히 들어선 집과 잇달은 기와의 형세는 실로 들판이나 다름이 없었나이다. 그러므로 신이 여간한 설계(設計)와 주비(籌備)로써 공역(工役)을 짐작하여 성을 쌓았던 것인데, 이는 대개 백성들의 희망을 따라 한 것이므로 과연 그들이 자원(自願)으로 부역(赴役)하여, 드디어 역사(役事)가 시작되자 천중(川中)의 민심이 풀 눕듯 하였고 지성이 감동되어 돌위에 흙이 생겼나이다. 둘레의 길이가 36리로 우뚝 천만 년이나 진수(鎭守)하게 되니, 철성(鐵城)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음은 가히 송곳으로 시험할 수 있나이다. 준용오첩(隼墉烏堞)은 엄연히 날아갈 듯하고 금랑면봉(錦浪綿峯)이 우뚝 화려하게 장식되었나이다. 드디어 황제폐하께서 황공하게도 포칭(褒稱)을 지극히 하시고, 축성비를 세우라는 영전(榮典)을 허하시어 사실이 볼만 하오니 문사(文詞)로 불후(不朽)에 전할 만하다 하였으며, 신이 비록 칙지(勅旨)로 상(賞)을 받게 되었으나 어찌 감히 문자(文字)로 공(功)을 자랑하오리이까. 이는 감히 겸양함을 드러내자 함이 아니었고, 그저 비방(誹謗)이나 피하고자 하였음이었나이다.
이제 황제폐하께서 멀리 그 승지(勝地)에 순수(巡狩)하시어 신의 작은 공(功)을 친람(親覽)하시고, 옛날에 하사(下賜)하셨던 비문을 다시 찾아 새로 비(碑)에 새겨 길이 금대(琴臺)의 옆에 우뚝 세워 옛날 검각(劍閣)의 명(銘)을 능가하게 하시니, 신의 영광이 과연 어떠하오리이까. 또 저 두원개(杜元凱)의 현산비(峴山碑)는 모두 제 자랑뿐이요, 완덕규(阮德規)의 제국비(齊國碑)는 대개 뭇사람이 만든 것으로 부질없이 죽은 뒤의 허명(虛名)을 전할 뿐, 어찌 목전(目前)의 성사(盛事)를 보았으리이까. 더구나 채호(彩毫)로 칭장(稱獎)해 주시고 취염(翠琰 비)을 건립하시어 하토(下土)의 공(功)을 이루고 마침내 상천(上天)의 뜻에 응해서 오늘과 같은 성대(盛代)에 따로 훌륭한 모범을 떨치게 됨에야 어찌 비하오리이까.(이것이 모두 폐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만일 폐하의 선행(善行)을 기록하는 깊은 은혜와 수고를 갚아주시는 두터운 덕이 아니면, 신이 어찌 아직 출사(出師)의 공업(功業)이 없었는데 전각(篆刻)의 영광을 외람되이 누리며, 일찍 흥학(興學)의 규범이 없었는데 전양(傳揚)으로 미명(美名)을 도둑질하오리이까.
신이 진수(鎭守)의 직책에 구입되어 행재(行在)에 나아가 칭사(稱謝)하지 못하오니, 감격하고 기쁘고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겠기에 삼가 표를 받들어 진사(陳謝)하나이다.
[주-D001] 준용오첩(隼墉烏堞) :
준용(隼墉)은 매같은 날랜 새나 올라갈 수 있는 담[墉]이란 말이요, 오첩(烏堞)은 역시 까마귀같이 나는 새라야 올라갈 수 있는 첩(堞 성위의 담)이란 말이다.
[주-D002] 금랑면봉(錦浪綿峯) :
사천성(四川省) 촉(蜀)에 있는 가릉강(嘉陵江)의 별명이 금강(錦江)이요, 그 강가에 면죽(綿竹)이란 중요한 요새가 있다. 그래서 금강의 물결 면죽의 봉우리라고 말한 것이다.
[주-D003] 흥학(興學)의 규범 :
한(漢)나라 때에 문옹(文翁)이라는 사람이 촉나라의 태수가 되어서 학교를 많이 세워 학문을 장려하였다.
18.어제 진의 찬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御製眞賛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2월 26일에 선위사(宣慰使) 공봉관(供奉官) 이종맹(李從孟)이 이르러 엎드려 칙지(勅旨)를 받드니, ‘이미 대자사(大慈寺) 경진원(卿眞院)에 짐(朕)의 진(眞 초상화)과 호종 재신(扈從宰臣)들의 진을 그리도록 명하여 열경(列卿)들의 모습이 모두 이 당(堂)에 모였기로, 이제 먼저 경(卿)의 진축(眞軸)과 아울러 짐이 친히 지은 찬술(賛述)을 보내어, 경에게 주어 특수한 은총을 표하고 남다른 예우(禮遇)를 나타내노라.’ 함이었나이다.
은당(銀璫)의 사자(使者)를 보내시어 옥간(玉簡)의 문사(文詞)를 전하오니, 성지(聖旨)를 받은 몸이 영광으로 빛나고 하사품(下賜品)을 배수(拜受)하니 신혼(神魂)이 놀라 떨리어, 신 모가 진실로 감격되고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신의 원래 뜻은 ‘위수(渭水)의 결(訣 강태공의 병서(兵書)인 《육도(六韜))》’을 흠모하고 업(業)은 ‘이교(圯橋)의 글(장량(張良)이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은 《삼략(三略))》’을 연마(鍊磨)하여, 감히 물방울 한 작은 수고를 의지하여 스스로 총임(寵任)에 만족하고 전벌(戰伐)의 우환을 쓸어내어 길이 충성을 다하기를 원하였나이다. 드디어 선조(先朝) 때로부터 병무(兵務)에 종사하여, 남정 북벌(南征北伐)에 어찌 편안히 거처할 틈이 있었으리까. 동진(東鎭)ㆍ서번(西藩)에 여러번 외람되이 중임(重任)을 맡았으며, 폐하께서 등극(登極)하신 뒤에도 미신(微臣)에게 정벌(征伐)의 책임을 맡기시어 촉국(蜀國)에서 남만(南蠻)을 방어함에는 대강 원략(遠略)을 상신(上申)하였고, 초궁(楚宮)에서 도적을 막을 적에 우연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지금은 해문(海門)에 절월(節鉞)을 옮겨 다시 회전(淮甸)에 아독(牙纛 사령부의 기)을 세우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늘 병무(兵務)에 구애되어 어전(御前)에 나가 뵈옵지 못하고, 오직 하늘 위에서 내린 조서(詔書)를 펴볼 때마다 해 속의 왕자(王字)를 보는 듯, 부질없이 연궐(戀闕)의 회포만 더하고 귀조(歸朝)의 뜻을 이룰 길이 없었나이다.
저번에 경건히 인사(仁祠 절[寺])를 빌어 신의 보잘것 없는 초상(肖像)을 그려 두었는데 이 어찌 구진(舊鎭)에서 떠난 뒤에 기념(記念)을 삼음이리까. 오직 공문(空門)에 웃음거리가 될까 부끄러워하였더니, 마침 폐하께서 순수(巡守)하시어 지방을 순찰하시는 길에 어가(御駕)를 멈추시고 주필(駐蹕)하시어, 드디어 화공(畫工)을 명하시어 성용(聖容)을 그리게 하였으니, 그 시종(侍從)의 제신(諸臣)들은 좌우(左右)에 있음이 마땅하나, 어찌 이 하잘것없는 미신(微臣)이 단청(丹靑)에 적시어질 줄을 생각이나 하였으리까. 연함(鷰頷)의 기특한 상모(相貌)가 없이 길이 용안(龍顔)의 옆을 모시게 됨이 부끄러웠나이다. 하물며 폐하께서 친히 보시고 어필(御筆)로 찬(賛)을 지어 그 위에 쓰시니, 높직이 걸어놓음에 흰 벽(壁)이 다투어 빛나고 우뚝 세움에 떠도는 먼지도 물들지 않았나이다.
그러신 뒤에도 멀리 총조(寵詔)를 내리고 특히 귀신(貴臣)을 보내시니, 언뜻 채전(綵牋)을 받듦에 영예(榮譽)로운 칭찬의 말씀이 황송하고, 이어 보축(寶軸)을 열어 보니 그림에 새겨진 성은(聖恩)에 깊이 놀라고, 초상을 잠깐 보니 제 몰골이 스스로 부끄러우나, 폐부(肺腑)에 감격함을 무엇에 비하오리까. 옛날에 한조(漢朝)가 중흥(中興)하여 성제(聖帝)가 공신(功臣)들을 하념(下念)하시어 그 형상들을 궁중에 죽 그려놓고 훈명(勳名)을 역사에 기재하게 하였을 때, 비록 찬술(賛述)을 명하였으나 몸소 칭양(稱揚)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폐하께서는 잠깐 순유(巡遊)하시는 길에 멀리 장식(裝飾)의 은전(恩典)을 내려주시어 특히 사륜(絲綸)의 어명(御命)을 내리시고 친히 금수(錦繡)의 문사(文詞)를 엮으시어 신의 자리를 봉황지(鳳凰池) 가운데에 걸게 하시고, 이름을 기린각(麒麟閣) 위에 높게 적게 하시니, 멀리 역사상의 고실(故實)을 찾아보아도 이런 특별한 영광을 입은 예(例)가 없습니다. 신이 무슨 출중한 재능이 있어 이런 비상한 총애를 받겠습니까. 이른바 천년의 가우(嘉遇)요, 만대(萬代)의 미담(美譚)이니, 신은 오직 풍상(風霜)에 뜻을 가다듬어 길이 송죽(松竹)같이 절개를 옮기지 않고 우로(雨露)에 몸을 적시어 포류(蒲柳)가 먼저 쇠하는 근심을 면할까 하나이다.
신이 번진(藩鎭)을 지키는 직책 때문에 행재(行在)에 나아가 칭사(稱謝)는 하지 못하나, 성은(聖恩)을 감격하고 용안(龍顔)을 연모하여 영광에 기뻐하며 황공한 마음을 가눌 길 없기에, 삼가 공봉관 이종맹이 돌아가는 편에 표를 부쳐 진사(陳謝)하나이다.
[주-D001] 은당(銀璫) :
은으로 만든 귀고리[璫]라는 말이니, 궁중에 있는 내시들은 은으로 귀고리를 만들어 달았다.
[주-D002] 연함(鷰頷) :
제비턱이란 말이니, 용장(勇將)의 상은 제비턱이라야 좋은 상이라 한다.
[주-D003] 기린각(麒麟閣) :
나라에 큰 공로있는 사람들의 초상을 걸어두는 곳이니 궁중에 있다.
19.어찰ㆍ옷 및 국서를 사례하는 표[謝御札衣襟幷國信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2월 26일에 선위사(宣慰使) 이종맹(李從孟)이 이르러 엎드려 성은(聖恩)을 받자오니, 따로이 신에게 어찰(御札)을 주시고 의금(衣襟)과 어복(御服), 저고리 한 벌, 용뇌향(龍腦香) 한 개, 금합(金合)ㆍ금급화산완(金鈒花散椀) 한 개, 금화은합(金花銀榼) 한 개를 하사(下賜)함이었나이다.
글자마다 신필(神筆)을 였볼 수 있고 은혜가 어의(御衣)에 젖으며, 선약(仙藥)의 향기가 코에 사무치고 보기(寶器)의 빛이 안계(眼界)에 치솟으니, 우러러 총사(寵賜)에 젖고 굽어 황공을 금하지 못하여 신 모가 진실로 감격하고 진실로 송구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신이 매양 생각건대, 신이 선대(先代)로부터 궁마(弓馬)의 업을 이어받아, 외람되이 부월(斧鉞)의 직책을 맡았음에 맹세코 충절(忠節)을 기울여 끝내 성조(聖朝)에 보답하고자 하나이다. 작년에 친히 용맹한 장병들을 거느리고 흉도(兇徒)들을 섬멸하고자 하였으나, 이윽고 성지(聖旨)를 받자와 이미 수군(水軍)을 거두어 주둔(駐屯)하고 있으면서 돛대[楫]를 치는 맹세에 부끄러워 창을 베고자 하는 소원이 간절하였더니, 이제 뜻밖에도 초관(貂冠)이 어명(御命)을 전하고 어필(御筆)로 친서(親書)를 쓰시어 공자(孔子)의 한 자[一字] 포장(褒裝)을 보이시니 광무제(光武帝)의 열 줄 조서(詔書)보다 지나치나이다. 더구나 어사(御笥)의 으리으리한 진품을 나누어 하사하시어 향기가 조렴(雕奩)에 가득한데, 꽃무늬는 여수(麗水)의 금을 아로새기고 눈[雪]같이 투명한 임산(任山)의 그릇을 받들어 완상(玩賞)함에, 이료(吏僚)들이 모두 놀라고 함(緘)에 넣어 간직하니 길이 자손을 빛내리이다. 신이 비록 요행히 성시(盛時)를 만나 영광이 한몸에 모였으나, 공이 없이 상(賞)을 받으니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겠으며, 한갓 홍은(鴻恩)을 입으니 무엇으로 표략(豹略)을 펴리이까. 몸은 초수(楚水)에 있어 아직 승전의 보고를 올리지 못하오나, 눈은 멀리 촉천(蜀天)을 바라보며 다만 성은에 감격하는 눈물을 뿌릴 뿐입니다.
신이 번진(藩鎭)을 지킴에 구애되어 행재에 나아가 칭사(稱謝)하지 못하오니, 한편 감격하고 한편 황공함을 가눌 길 없으며, 삼가 공봉관 이종맹이 돌아가는 편에 표(表)를 부쳐 진사(陳謝)하여 아뢰나이다.
20.사가 시중 표(謝加侍中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신이 엎드려 작년 11월 11일의 은제(恩制)를 받드오니, ‘신에게 시중(侍中)을 가수(加授)하시고, 회남 절도사(淮南節度使)를 종전대로, 계(階)와 훈봉(勳封)은 아울러 그 전대로 두고, 식실봉 일백호(食實封一百戶)를 더한다.’ 함이었나이다.
어명(御命)이 하늘로부터 내리시니 몸둘 땅이 없으며, 감격이 깊어 눈물이 나고 총애가 극하심에 놀라 신 모는 진실로 춤추고 진실로 두려워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출척(黜陟)에 등급을 나눔은 성군(聖君)의 지극한 가르침이오며, 행장(行藏)에 도를 지킴은 달사(達士)의 좋은 규범(規範)이니, 벼슬을 받아 제몸을 망칠까 염려하면 분수를 지켜 위태롭지 않게 해야 하리이다.
신이 염정(鹽政)과 조운(漕運)의 직을 맡은 뒤로부터 곧 병과(兵戈)를 만나 군읍(郡邑)이 전쟁의 마당이 되고 산해(山海)가 도둑들의 도망쳐 숨는 숲이 되어 소정의 세(稅)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맡은 직책을 성공할 수 없었나이다. 하물며 권세가 딴 문(門)에 있고 칼날을 놀릴 여지가 없어, 자칫하면 포인(庖人)이 제 할 일을 버려두고 제사음식을 차리고 번번이 기둥을 피하려다가 난간에 부딪쳐, 드디어 조운(漕運)의 규정(規程)을 어기고 혹시는 동염(銅鹽)의 법을 범하기도 하였는데, 다행하게도 황제폐하께서 곧은 마음을 굽어 살피사 엄한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따로 좋은 인재를 선용(選用)하여 무거운 직책을 그에게 옮겨 맡기셨나이다. 그리고도 이에 신의 봉공(奉公)하는 절개를 살피시고 신의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성을 생각하시어 거듭 장단(將壇)을 맡기시고 봉읍(封邑)을 더하여 주시니, 이는 일시의 빼어난 공적이 없음을 용서하고 칠엽(七葉 공경(公卿)ㆍ재상(宰相))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름을 허하심이라, 오직 그 드높은 벼슬에 부끄러울까 염려되며 혹 벼슬을 훔쳤다고 기롱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지금 스스로 하례하는 것은 삼조(三朝)에 우뚝 서고 칠진(七鎭)을 영천(榮遷)하여 매양 작위(爵位)를 받을 때마다 왕정(王庭)에 사은(謝恩)할 줄을 몰랐으므로 사문(私門)에서 이로써 제 자신을 격려하여 길이 남부끄러움을 면하고자 하나이다. 신이 삼가 마땅히 장도(壯圖)를 분발하여 궁구(窮寇)를 섬멸함으로써 사방의 우환을 대충 없애고 만승(萬乘)의 근심을 우러러 덜어 드리리이다.
신이 번진(藩鎭)을 지킴에 구애되어 행재(行在)에 나아가 칭사하지는 못하나, 성은에 감격하여 송구하고 황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며, 삼가 표를 받들어 진사(陳謝)하나이다.
[주-D001] 포인(庖人)이 …… 차리고 :
분수를 넘어 남의 일에 참견함을 말한다. 《莊子 逍遙遊》
21.시중 겸 식실봉을 가수(加授)함을 사례하는 표[謝加侍中兼實封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룁니다.
6월 16일에 공봉관(供奉官) 유숙제(劉叔齊)가 이르러 성지(聖旨)를 받드니, 신과 장교들을 위유(慰諭)하고, 아울러 신에게 칙서(勅書)와 수조(手詔) 각 1봉(封), 관고(官誥) 1통을 주시고, 신에게 시중(侍中)을 가수(加授)하며 식실봉 일백호(食實封一百戶)를 가급(加給)하고, 그 밖의 벼슬은 종전대로 보(補)함이었나이다.
명(命)이 하늘에서 내리시니 몸둘 땅이 없는데, 봉조(鳳詔)를 펼치자 혼(魂)이 놀라고 초관(貂冠)을 대함에 다리가 떨려, 신 모는 진실로 감격하고 진실로 송구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신은 일찍부터 하잘것없는 공로로 매양 특수한 영광을 받아 왕실에 봉사하되, 애초에 알찬 봉사가 적었고, 벼슬을 받았으나 오직 헛되이 받은 것이 많았으니, 모기같은 작은 힘으로 산을 짊어진 듯 골짜기에 임(臨)한 양 제 마음을 경계하고 있나이다. 하물며 전쟁이 들판에서 벌어지고 흉적들이 소굴에서 나온 뒤로부터, 요기가 궁궐을 덮고 어가(御駕)가 지방을 순수하시게 되었나이다. 신이 오래 웅번(雄藩)을 진수(鎭守)하여 일찍 중권(重權)을 장악했었으나, 이렇다 할 공적을 하나도 이룬 것이 없사온대 두 번이나 영광스러운 표창을 받아 앞서는 상장군(上將軍)으로 대사마(大司馬)가 되었었고, 지금은 납언(納言)의 겸임으로 식읍(食邑)의 영전(榮典)까지 더하니, 여러 해 동안 발군(拔群)의 공이 없던 몸으로 온종일 벌단(伐壇)의 부끄러움을 안고 있나이다.
또한 《주역》에 이르기를, “혹 가죽띠를 주어도 아침나절 안으로 세 번 끄른다.” 하였고, 《시경》에 이르기를, “벼슬을 받고 사양하지 않다가 끝내는 망하고야 함다.” 하였으니, 이러한 격언들을 두루 보건대 모두 녹(祿)을 탐함을 징계함입니다. 나라의 은혜를 보답하지 못하면서 구구히 제 집이나 영화롭게 하니 신이 실로 무슨 마음으로 제 면목을 부끄럽게 하오리이까.
이제 왕인(王人)이 멀리 내려와 성택(聖澤)이 넘쳐 흐르니, 우러러 칙서를 뵈옵건대 깊이 비정(秕政)을 가상히 여기시어, 도리어 군사들이 화목하고 백성들이 편안하다 하여 충성을 굽어 생각하시어 특별히 행상(行賞)하신다 하였나이다. 신이 방촌(方寸)의 가슴속에 믿을 만한 충심이 있고, 지척에 용안(龍顔)을 모신 듯 어김이 없거늘, 어찌 감히 시속(時俗)을 바로잡는 체 문사(文詞)를 꾸며 진정(陳情)하여 벼슬을 사양하오리이까. 한 번 사양하여 물러감을 본받기 어렵고, 오직 세 번 명령에 더욱 공손함을 기약하여, 이미 염조(鹽漕)의 이권(利權)에는 노력을 면제해 주셨으니 끝내 군무(軍務)의 중책에만 최선을 다하고자 원하나이다.
신이 번진(藩鎭)을 지킴에 구애되어 행재(行在)에 달려가 칭사(稱謝)하지 못하오니 성은에 감격하고 용안을 그리워하며 송구하고 황공함을 가누지 못하며, 삼가 공봉관 유숙제의 편에 표를 받들어 진사(陳謝)하여 아뢰나이다.
[주-D001] 벌단(伐壇) :
《시경》 위풍(魏風)의 편이름. 탐욕스럽고 무능한 관리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어진 사람이 나아가 벼슬할 수 없음을 풍자한 시.
22.왕위(王位)를 이음을 사례하는 표[謝嗣位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전(前) 본국 왕 서리(署理) 신 탄(坦 진성여왕(眞聖女王))은 신의 친숙(親叔)입니다. 신의 망부(亡父) 증태부(贈太傅) 신 정(晸 헌강왕(憲康王))과 차숙(次叔) 신 황(晃 정강왕(定康王))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친숙께서 번국(藩國)의 왕을 서리하다가 병과 사고가 서로 이어 건녕(乾寧) 4년(신라 진성왕 11년) 6월 1일에 국왕의 임무를 간절히 밀어 신에게 주지(主持)하라 하셨나이다. 관리와 백성들이 재삼 왕위에 머무르기를 청하였고, 신 또한 부탁을 굳이 사양하여 명을 준승(遵承)하지 않고자 하였으나, 이에 군정(群情)을 막으시고 멀리 사제(私第)로 돌아가셨나이다. 신은 돌아보건대 어리고 부덕한 몸으로 잘못 종사(宗社)를 이어받게 되오니, 얼음골짜기[氷谷]를 굽어보는 듯 혼이 떨리고, 구름하늘을 우러러봄에 그림자가 움추러듭니다. 중사(中謝)
신은 듣건대, 어렵게 나아가고 쉽게 물러나는 것이 군자(君子)의 마음씨요, 공사(公事)에 순종하여 사사(私事)를 없앰은 실로 옛 사람이 힘쓴 바이나, 입으로 자랑하는 자는 무척 많아도 몸소 행하는 자는 자못 드무나이다. 그런데 신의 숙모 탄(坦)은 사람을 세우는 뜻이 간절하고 자기를 책하는 말씀이 깊어 말하기를, “불이 나무에서 생기나 불이 맹렬하면 나무가 타고, 물이 배를 띄우지만 물이 광폭하면 배가 엎어지는 법이다, 본국이 지금 큰 흉년이 들어 좀도둑이 사방에서 일어나 본래의 늑대와 이리같은 탐욕으로 차츰 홍곡(鴻鵠)의 뜻을 자랑하며, 처음엔 쥐같이 숨어서 살살 뒤주를 뒤지고 주머니를 더듬다가 형세를 타 벌떼 날 듯하매 문득 성(城)을 파괴하고 고을을 노략질하여, 드디어 연진(煙塵)이 국내에 자욱하고 풍우(風雨)가 농사를 망치게 하니, 뭇 도적이 동릉(東陵)에 더욱 치성(熾盛)하여 농사를 남묘(南畝)에 지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서슬에 천자(天子)의 용호절(龍虎節)이 가다가 구렁에 잠기고, 상국(上國)의 봉황사(鳳凰使)가 오다가 중도에 막히게 되어, 은영(恩榮)을 욕되게 하고 성관(誠款)을 펼 도리가 없으니, 이렇듯 어김이 많으면 죄책이 중해질까 두렵다. 그러므로 세 번 명령에 공손함을 삼가 생각하여, 한 번 사양하고 물러가기를 결심하였다.” 하셨나이다. 본국에서 백관과 왕족들이 모두 모여 울면서 청하여 아뢰기를, “천재(天災)가 행하여지는 것은 지분(地分)으로도 면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를 자기의 허물로 여김이 마땅한 일로 보이지 않으니 황제의 어명(御命)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왕작(王爵)을 사양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나이다.
그러나 또 양위(讓位)의 유시(諭示)가 열 번이 넘고, 예(禮)가 삼사(三辭)를 지나 숙모 탄이 울면서 신에게 말씀하시기를, “생각건대 이 나라 일경(一境)은 다른 삼방(三方)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본국이 복장(服章)을 고치고 정삭(正朔)을 받들어, 우러러 황제 나라의 명을 준수하고 굽어 여러 제후의 번국(蕃國)을 화평하게 하는 터이니, 그러므로 옥황(玉皇)께서 선조(先祖)에게 시(詩)를 내리셔 이르기를, ‘예의(禮義)는 너희 나라가 으뜸이요, 시서(詩書)를 집마다 마련해 두었다.’ 하였고, 또 저번에 황화(皇華) 원계방(元季方)이 와서 계림(鷄林)의 정사(政事)를 기록한 시에 말하기를 ‘다만 시서(詩書)의 가르침이 아름다울 뿐, 일찍 병화(兵火)의 시끄러움이 없으니, 옛 어진 제후들의 고요한 다스림을 여기서 보리로다.’ 하였는데, 지금은 군읍(郡邑)이 모두 적굴(賊窟)이 되었고 산천(山川)이 모두 전장(戰場)이니, 어지 하늘의 재앙이 우리 해동(海東)에만 흘러드는 것이랴. 모두 내가 몽매한 탓으로 이 도둑들을 부른 것이니, 죄가 주륙(誅戮)을 받아 마땅하고 이치상 사직해야 하겠다. 바라건대 일국으로 하여금 사양지심이 일어나게 함은 오직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함에 있으니 이 일을 추진하여 나갈 것이요, 사양하여 안 받음을 본받지 말라.” 하였나이다.
신이 생각건대, 숙모 탄(坦)은 사심(私心)이 없고 욕심이 적으며, 다병(多病)한 몸에 한가함을 좋아하고, 적당한 시기라야 말을 하여 그 뜻을 빼앗을 수가 없으니 만일 끝내 그 양위(讓位)의 청을 거절한다면 마침내 신을 벗어버리고 물러가실 것입니다. 신이 왕실의 태자로 책봉(冊封)됨도 그분의 공을 힘업었고, 문에 기대어 염려해 주시는 은혜를 받았는데, 송목(宋穆)이 능한 어진이를 대신 천거했음은 존몰(存歿)의 경우가 아주 다르고, 사안(謝安)이 상위(相位)에 있을 때 시(始)ㆍ종(終)을 더욱 삼갔나이다. 그러나 한편 군사(軍事)를 동독(董督)하기는 오히려 가까우나 도적이 매우 괴란하여, 문서를 결재(決裁)함에 반근착절(盤根錯節)을 제거하지 못하고, 법망(法網)에서 샌 무리들의 흉광(兇狂)이 더욱 심하여, 심지어 물에는 배[艇]가 없고 육지에는 수레가 끊어질 지경이기에, 하료(下僚)를 보내어 우러러 충간(忠懇)을 진술하지는 못하오나, 제횡(齊橫)의 섬 밖에 혼(魂)을 여온(餘溫)바람에 달리며, 진제(秦帝)의 다릿가에 쓸개[膽]를 조종(朝宗)하는 물결에 씻사나이다.
신이 엎드려 외람히 번국(蕃國)을 다스리는 서리로서 황조(皇朝)에 달려가 뵈옵지 못하나, 성은(聖恩)을 바라 황공한 마음을 이지기 못하나이다.
[주-D001] 왕위(王位)를 …… 표[謝嗣位表] :
신라 효공왕(孝恭王)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주-D002] 홍곡(鴻鵠)의 뜻 :
원대한 포부. 진(秦)나라가 어지러웠을 때 초야(草野)에서 일어났던 진승(陳勝)이 농상(壠上)에서 발한 호언(豪言)으로, “왕후 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종자가 있으며, 연작이 어찌 홍곡의 뜻을 알랴.” 하였다. 《史記 陳渉世家》
23.사은표(謝恩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옵니다.
신은 숙부 탄(坦)이 번국(蕃國) 왕의 서리로 취임하는 날 표를 받들어 추증(追贈)하옵시기를 진청(陳請)하였고, 지난 건녕(乾寧) 4년 7월 5일 앞서 입조(入朝)했던 경하판관(慶賀判官) 검교상서사부 낭중 사자금어대(檢校尙書祠部郞中賜紫金魚袋) 신(臣) 최원(崔元)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편에 내리신 제지(制旨)를 받드니, 망조(亡祖) 고(故) 계림주 대도독 검교태위(鷄林州大都督檢校太尉) 신 응(凝 경문왕(景文王))을 태사(太師)로, 망부(亡父) 고(故) 지절 충녕해군사 검교태보(持節充寧海軍事檢校太保) 신 정(晸)을 태부(太傅)로 하시고 각각 관고(官誥) 한 통씩을 하사하시었나이다.
총명(寵命)이 천가(天家)에서 내리시어 영광이 일택(日宅)에 무르녹으니, 해동(海東) 온나라에 감격이 더하고 지하(地下)의 선령(先靈)들께 고하여 혹 들으신다면 기쁨이 곧 슬픔의 실마린 줄을 알겠사오며, 영광이 두려움의 장본임을 더욱 체험하나이다. 중사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본국이 집마다 땅의 의(義)를 숭상하고 온나라가 하늘의 인자하심을 앙모하나이다. 그러므로 옛날 원조(遠祖) 정명(政明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이 우러러《예기》를 구하니, 현종 성제(玄宗聖帝)께서 특별히《효경》을 하사하시어, 그로써 온 국민의 교화가 크게 이루어졌음이 실록(實錄)에 환히 나타나 있나이다.
신이 삼가 상고하건대, 《예기》에 가로되, “종묘사직을 지키는 자손으로 그 선조의 선행이 있음을 모르면 똑똑하지 못한 자손이요, 알고도 전하지 못하면 어질지 못하다.” 하였고, 또 《효경》에 이르기를, “입신양명하여 그 부모를 드러냄이 효도의 끝이라.” 하였나이다. 신의 망조 증대사(贈大師) 응이 지난 함통(咸通) 연간에 상국(上國)의 교화가 널리 행하여 천하가 풍속을 같이하고, 성덕(聖德)이 바다 모퉁이 해 뜨는 고장까지 입혀지는 때를 만나 몸이 동이(東暆)에 얽매어 있으면서도 마음을 북극(北極)으로 달려가나 머나먼 번국(蕃國)을 지켜 주(周)나라를 볼 길이 없으므로, 유도(儒道)를 받들어 오직 노(魯)나라에 이르기를 기약하였나이다. 비록 공사(公事)로 겨를이 없었으나 학문을 즐겨 스스로 기뻐하여 중화(中和) 선포(宣布)의 노래로써 공경하여 전철(前哲)을 잇고, 태평(太平) 직금(織錦)의 작(作)에서 전대(前代)를 경앙(景仰)하다가, 드디어 구현재부(求賢才賦) 한 편과 미황화시(美皇化詩) 육운(六韻)을 지었는데, 그 내용이 대개 전자는 찬화(餐和)ㆍ유원(柔遠)의 덕을, 후자는 정수(挺秀)ㆍ등고(登高)의 재(才)를 찬미(讚美)하는 것이나이다. 이를 국민들에게 두루 보이고 지금까지 가보(家寶)로 삼고 있으니, 몸은 가셨어도 불후하다고야 감히 이르리까마는 대체로 또한 찬연(粲然)히 볼 만하다 하겠나이다.
다음 신의 망부(亡父) 증태부(贈大傅) 신 정(晸)은 얼마 전 건부(乾符) 말(末)에 환해(寰海)의 풍파가 차츰 일고, 관하(關河)의 동란(動亂)이 이어 일어나 도둑이 함진(咸秦)을 핍박하여 어가(御駕)가 용촉(庸蜀)으로 순수(巡狩)하시자, 선신(先臣)께서 이에 초몌(楚袂)를 들어 종영(終纓 종군(從軍))을 지원(志願)해서 여울 내리듯[下瀨] 하는 날쌘 군사를 일제히 징발하여 태조(太祖)의 난(難)에 순직(徇職)하기를 결심했었나이다. 그러나 고(故) 동면도통 회남 절도사(東面都統淮南節度使) 고병(高騈)이 두레박줄이 짧은 때문은 아니나, 채찍이 긴 것을 빌려 다만 선성(先聲)만을 살피고 장차 후효(後效)를 보고자, 번관(蕃款)을 그대로 상진(上陳)하고 밖으로 군위(軍威)를 떨쳤으니, 이는 전규(前規)를 답습(踏襲)한 것이라 원려(遠慮)에는 흠절이 없었는데, 속 본도(屬本道) 고(故) 청주 절도사(淸州節度使) 안사유(安師儒)는 본국의 거조(擧措)를 월포(越庖 월권)라 일러, 이 돛대를 두드리[叩楫]는 충성을(조적(祖逖)의 고사) 막았다고 하였으니, 말은 비록, “후방을 고려한다.” 하였으나 그 뜻은 혹 앞을 잊었음이었나이다. 그가 사인(使人)을 특별히 달려 보내어 와서, 본국의 병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로써 원방(遠方)의 충성을 펼 도리가 없었고, 선신(先臣)의 유한(遺恨)이 그지없었나이다.
그렇다면 신의 조부의 문덕(文德)을 앙모함이 이미 저러하였고, 선고(先考)의 무공(武功) 돕기를 원했음이 또 이러하였나이다. 또 돌아보건대 본국이 무덕(武德)으로부터 개원(開元)에 이르기까지 국상(國喪)을 만날 때마다 상국의 추증(追贈)이 있었는데, 그 추증의 총명(寵命)이 우연히 중도에 끊어져 본국에서 실로 큰 수치로 삼나이다. 신의 망부(亡父) 정(晸)이 효사(孝思)를 다하고자 간절한 슬픈 유언을 남겼고, 신의 숙모 탄(坦)이 처음 화악(韡蕚 형제)이 시들어짐으로써[凋] 더욱 육아(蓼莪 부모)를 애통하어 깊이 운천(雲天)의 은택을 우러러, 산릉(山陵)에 영광을 추증(追贈)해 주기를 바랐으니, 그 그지없는 정(情)은 용서받을 만하나 그 욕심 많은 죄는 실로 도망칠 길이 없었나이다.
그런데, 이제 뜻밖에 황제폐하께서 특별히 예자(睿慈)를 내리시어 굽어 단청(丹請)을 윤허(允許)하시고, 특별히 상공(上公)의 귀한 벼슬을 빌려 외예(外裔)의 명혼(冥魂)에 나누어 주시니, 대효(大孝)의 어버이를 높임은 일방의 다행이나, 소인이 입은 은혜는 만 번 죽은들 무엇으로 갚으오리이까.
또 태사(太師)는, 멀리는 주 문황(周文皇)이 은(殷)나라 비간(比干)에게준 벼슬이요, 가까이는 덕종(德宗)께서 곽상보(郭尙父 곽분양(郭汾陽))에게 주신 벼슬이며, 또 태부(太傅)는 왕릉(王陵)이 늠름한 절조(節操)로 만인(萬人)의 첨앙(瞻仰)을 받았고, 호광(胡廣)이 중용(中庸)의 고덕(高德)으로 비로소 참다운 제수(除授)를 받은 귀한 벼슬입니다. 비록 존몰(存沒)을 비하기 어렵고 화이(華夷)가 현수(懸殊)함이 있으나, 총악(寵渥)이 저승에까지 입혀졌고 신파(宸波)가 먼 곳에까지 무젖어와서 훈(勳)이 아니요 공로도 아닌 신의 조부, 신의 선고(先考)가 이러한 영작을 받았습니다. 드높은 저 남산은 더욱 삼사(三師)의 벼슬에 부끄럽고, 동해(東海)에 내쳐 있어도 오직 백행(百行)의 먼저 할 바를 흠모하나이다. 바라건대, 제후(諸侯)에의 표창이 길이 본국의 표창이 되고, 효자의 전(傳)함이 저으기 가문의 전함에 도움이 되게 하며, 구족(九族)을 친함을 숙모 탄(坦)이 외람되이 바라고, 두 사람에게 회포 있음을 신 요(嶢 효공왕(孝恭王))가 우러러 본뜨나이다.
엎드려 사군(四郡)에 비서(卑棲)하는 몸이라 구원(九原)에 계신 부조를 위해 슬픔이 북받치나 천정(天庭)에 달려가 울며 운폐(雲陛)에 사례하지 못하나이다.
[주-D001] 노(盧)나라에 이르기 :
《논어》에 “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른다.[齊一變至於魯].” 하였다.
[주-D002] 태평(太平) 직금(織錦)의 작(作) :
진성여왕(眞聖女王)이 당나라 황제에게 바친 송시(頌詩).
[주-D003] 왕릉(王陵) :
한나라 고조(高祖)의 공신(功臣). 혜제(惠帝) 때 여후(呂后)가 모든 여씨(呂氏)를 왕으로 삼으려 하여, 왕이 우승상(右丞相)인 능(陵)에게 물으니, “불가하다.” 하므로, 태부(太傅)로 옮겼다.
[주-D004] 드높은 저 남산 :
《시경》 절남산(節南山)에 나오는 구절로, 제 구실을 못하는 사윤(師尹)를 풍자한 시.
[주-D005] 구족(九族)을 친함 :
《서경》 요전(堯典)에 “능히 큰 덕을 밝혀야 구족이 친하고, 구족이 화목하여야 백성을 평정한다[克明俊德以親九族 九族旣睦 平章百姓].” 하였다.
24.조서 두 함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詔書兩函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신의 망형(亡兄) 고(故) 국왕 신 정(晸)이 먼저 배신(陪臣) 시전중감(試殿中監) 김근(金僅) 등을 보내어, 표를 받들어 서행(西幸)하셨던 선황제(先皇帝)의 난가(鑾駕)가 귀궐(歸闕)하셨음을 경하(慶賀)하였고, 인하여 따로 표를 붙여 역적 황소(黃巢)를 베었음을 칭하(稱賀)하였더니, 이제 성상께서 성은으로 칙서 두 함(函)을 내리시고 따로 장식(獎飾)을 내리심을 받았나이다.
오륜(烏輪 해)이 높이 계신 곳으로부터 난불(鸞綍 칙서)이 날아와, 빛을 나누어 절역(絶域)의 영광을 흐뭇하게 하고, 감화가 가성(佳城 묘소)의 한(恨)을 격발하게 하나이다. 중사
신은 본국의 왕으로서 생각건대, 옛날 주(周)ㆍ진(秦)이 교대하고 연(燕)ㆍ조(趙)에 근심이 많을 때, 가인(佳人)이 합포(合浦)의 구슬을 옮김과 같이, 장사(壯士)가 연진(延津)의 검(劍)으로 교화시키듯 하여, 와서 본국의 읍락(邑落)을 일으켜 번방(藩邦)의 구석을 도와 지켰나이다. 그러므로 진한(辰韓)은 진한(秦韓)의 이름을 잘못 쓴 것이요, 낙랑(樂浪)은 회랑(澮浪) 자(字)를 의용(擬用)한 것인데, 다만 분서(焚書)의 여폐(餘弊)에 속했던 것이 오히려 피란(避亂)의 무리들을 따라왔던 것입니다. 옛것을 본받아 법규를 이루어 풍속을 변화시키는 학술에 어두웠으니, 이 고장이 열 길[丈] 머리카락을 입에 물게 되었으니 어느 사람이 오색(五色)의 붓끝을 전하리이까. 《국어(國語)》와 《효경》으로는 풍속을 변화시키기 매우 어려웠고, 상(床)머리의《주역(周易)》은 이름조차 아는 이를 보기가 드물었나이다.
그런데, 신의 망형(亡兄) 태부(太傅) 신 정(晸)이 나면서부터 노교(老敎)를 알고 평소에 진언(秦言)을 잘하여, 풍성한 재주가 어찌 쟁쟁(錚錚) 할 뿐이었겠습니까. 아름다운 담화가 실로 곤곤(袞袞)하고도 남음이 있었나이다. 그러므로 몸의 문채는 세상에 빛났고 글씨는 범인보다 뛰어났습니다. 매양 병외(屛外)의 신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고 호중(壺中)의 객(客)을 쫓기를 원하여, 노래와 시(詩)에 그 뜻을 나타내고 혼자 탄식하고 슬퍼함을 깊이 하였고, 내지(乃至) 우송(虞松) 오수(五守)의 난문(難問)을 종회(鍾會)에게 구태여 물어볼 것이 없었으며, 곡영(谷永) 만조(萬條)의 역(易)은 왕충(王充)에게 상찬(賞讚)을 받았는데 너무나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하였기에 자못 한 번 자시(自試)하기를 희망하였나이다. 전번에 선황제(先皇帝)께서 금천(錦川 성도(成都))에 순수(巡狩)를 파하시고 강궐(絳闕)로 돌아보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또 동방의 제후(諸侯)들이 가지런히 호표(虎豹)를 몰아내고 경예(鯨鯢)를 죽여 여럿에게 보였다[顯戮]는 기별을 듣고, 부비(拊髀)하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충심에 의한 간곡한 회포를 쓰고자 손수 표문을 초하고 절창(絶唱)의 사(詞)를 불렀는데, 비록 서북으로 흐르는 물은 방향을 약간 다르더라도 바다에 이르기를 능히 기약할 수 있겠지만, 또한 동남의 미(美)를 독차지하지 못했으니 감히 하늘을 움직이기를 바랐겠습니까.
이제 우러러 황제폐하께서 충관(忠款)을 굽어 하념(下念)하시고, 멀리 회조(回詔)를 날리시되 특히 상규(常規)를 넘게 하시는 난봉(鸞鳳) 두 함(函)이 그림자를 가지런히 하여, 오산(鼇山)의 길을 가리키고 규룡(虬龍) 일찰(一札)이 줄을 나란히 하여 첩수(鰈水)의 시골에 들어오니, 이는 실로 하늘에서 내리신 값을 매길 수 없는 구슬이요, 온나라가 마르지 않는 풀이 되었나이다.
엎드려 조서의 절문(節文)을 보건대, 이르기를, “반드시 마음을 더욱 굳게 잡아 영원히 의(義)에 순종하기를 잊지 말고, 힘써 정삭(正朔)의 의례(儀禮)를 닦고 거서(車書)의 미(美)에 맞도록 하며, 밝고 환한 공적이 타방(他方)의 으뜸이 되도록 하고, 넘치는 은혜가 항상 너희 나라에 젖도록 하라.” 하셨나이다.
신은 듣건대, 옛날에 제오륜(第五倫)이 매양 한광무(漢光武)의 조서를 볼 때마다 곧 등배(等輩)들을 돌아보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 어른은 참으로 성주(聖主)시다. 뵙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합니다.
신이 지금 성군(聖君)의 조서를 받들어 보니, 마치 자부(慈父)의 회언(誨言)을 직접 듣는 듯한지라, 모(某)가 깊이 성은(聖恩)을 감사함과 간절히 성덕에 감격함이 백어(伯魚)보다 만 배나 되나이다.
하늘에서 내린 조서는 비추기만 하면 능히 햇가녘을 비추고, 햇가녘의 사람은 어질어서 길이 인(仁)을 하늘 위에 돌리나이다. 또 신 번(蕃)은 길이 2만 리가 넘고 조공(朝貢)이 겨우 3백 년인데, 부사(父事)의 예의(禮儀)를 펴기를 허락해 주시고 자래(子來)의 관(款)을 이어 바치게 하시어, 매양 조칙(詔勅)을 받들 때마다 모두 의방(義方)을 이루니, 선조(先祖)께서 이미 받들어 주선(周旋)하였고, 예손(裔孫)들이 진실로 순복(順服)하여 그지없는 바이로소이다.
더구나 개원(開元) 황제께서 어우(御寓)하시어 바다에 물결에 일지 않을 때에는, 자주 왕언(王言)을 주시어 문덕(文德)을 널리 펴시었고, 뒤에 신의 선조 흥광(興光 신라 성덕왕(聖德王)ㆍ헌영(憲英 신라 경덕왕(景德王)) 부자가 제법 능히 선(善)을 사모할 줄 안다 하여, 여러번 팔분체(八分體)의 어찰(御札)을 하사하셨는데, 그 어필(御筆)이 용이 날뛰는 듯, 봉이 날아가는 듯하여 채전(綵牋)이 이로 말미암아 빛을 더하고 신필(神筆)이 지금까지 아직 젖어 있으니, 보옥(寶玉)을 백숙(伯叔)의 나라에 나눠줌을 일찍이 들었으나, 은구(銀鉤)를 이적(夷狄)의 시골에 하사하심은 예전에는 보지 못한 바이었나이다. 그 조지(詔旨)에 이르기를, “경(卿)을 노위(魯衛)에 비(比)하노니 어찌 번복(蕃服)과 같으랴.” 하셨나이다. 또 대력(大曆) 연간에는 천어(天語)를 내리사 이르기를, “구주(九州) 밖에 있으면서도 제후(諸侯)에 비할 만하며 만국 중에 진실로 군자(君子)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사랑으로 허물을 잊으심이요, 칭찬이 지나치심이라, 소국(小國)이 감당하지 못할 바이로소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성문예덕 광무홍효(聖文睿德光武弘孝) 황제폐하께서 크게 열성(列聖)을 이으시어, 군방(群方)을 빛나게 다스리실 때 전모(典謨)ㆍ훈고(訓誥)의 종(宗)을 들어 융적(戎狄)ㆍ만이(蠻夷)의 무리들을 경계오니, 장차 만국(萬國)이 일가(一家)로 합작(合作)함을 볼지나, 신의 애통하고 상심(傷心)되는 바는 망형(亡兄) 신 정(晸)이 먼저 해로(薤露)가 말라(세상을 떠남) 지이(芝泥 조서)를 받들지 못하여 살아서는 성화(聖化)를 마시는 몸이 되었고 죽어서 은혜를 저버리는 넋이 됨이나이다. 주신 바 계칙(誡勅)을 신이 삼가 이미 옥사(玉笥)에 함봉하고 금함(金函)에 넣어서, 질남(侄男) 요(蟯)에게 주어 국보(國寶)로 전하게 하였니, 요가 마땅히 원좌(瑗座 거백어(籧伯魚)의 좌우명))에 명(銘)하고 사신(師紳 자장(子張)이 공자의 말씀을 관끈에 썼음)에 써서, 들어와 서는 삼경(三卿)들을 욱려(勖勵)하고 나가서는 백성들을 무유(撫柔)하여, 간역(姦逆)을 막음 식알(式遏)의 공을 대략 이루고 시옹(時雍)의 성화(聖化)를 우러러 도울 것입니다.
신이 지금 은수(殷樹)가 봄을 사직하고 공포(孔匏)가 멀리 매여 있으므로 길은 막혔으나 혼만은 바다를 건너는 매처럼 훨훨 날아가고, 하늘은 올라갈 수 없으나 눈은 구름에 치솟는 학(鶴)을 바라봅니다. 하오나 궁궐에 달려가 전정(殿庭)에 칭사하지 못하여 황송하나이다.
[주-D001] 낙랑(樂浪)은 …… 것 :
《한서(漢書)》의 구설(舊說)을 최치원(崔致遠)이 승습(承襲)한 잘못된 설(說).
[주-D002] 부비(拊髀)하는 기쁨 :
여기의 뜻은 기뻐서 넓적다리를 치며 환히(歡喜)하는 뜻으로 쓰였음.
25.발해(渤海)가 신라의 윗자리에 거함을 불허함을 사례하는 표[謝不許北國居上表]
최치원(崔致遠)
신 모는 아뢰나이다.
신이 당번(當番) 숙위원(宿衛院) 장보(狀報)를 보니, 지난 건녕(乾寧) 4년 7월중에 발해(渤海) 하정왕자(賀正王子) 대봉예(大封裔)가 장(狀)을 올려, 발해가 신라 위에 거(居)하기를 청허(請許)하였었는데 그에 대한 칙지(勅旨)를 엎드려 보니, “국명(國名)의 선후(先後)는 원래 강약(强弱)에 인하여 일컬은 것이 아니다. 조제(朝制)의 등위(等威)를 어찌 성쇠(盛衰)로써 고치랴. 마땅히 구례(舊例)대로 할 것이니 이에 선시(宣示)하노라.” 하였나이다
한조(漢詔)의 윤음(綸音)을 내리사 주반(周班)의 법도를 명시(明示)하시니, 적신(積薪 적수(積水)의 동북에 있는 별 이름)의 수탄(愁歎)이 이미 사라짐에 집목(集木)의 근심이 도리어 간절한데, 하늘만은 심정을 아실 것이니 어느 땅에 몸을 용납하오리이까. 중사
신이 듣잡건대, 예(禮)에 그 근본을 잊지 않음이 귀함은 바로 부허(浮虛)를 경계하기 때문이요, 서(書)에 그 법도를 능히 삼감을 일컬은 것은 오직 참월(僭越)함을 막기 위함이니, 진실로 그 분수를 좇지 않으면 끝내 뉘우침을 스스로 부르는가 하나이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발해(渤海)의 원류(源流)는 고구려(高句麗)가 망하기 전엔 본시 사마귀만한 부락(部落)으로 앙갈(鞅鞨)의 족속이었는데 이들이 번영하여 무리가 이뤄지자 이에 속말(粟末) 소번(小蕃)이란 이름으로 항상 고구려를 좇아 내사(內徙)하더니, 그 수령 걸사우(乞四羽) 및 대조영(大祚榮) 등이 무후(武后) 임조(臨朝) 때에 이르러, 영주(營州)로부터 죄를 짓고 도망하여 문득 황구(荒丘)를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振國)이라 일컬었나이다. 그때 고구려의 유신(遺燼)으로 물길(勿吉)의 잡류(雜流)인 효음(梟音)은 백산(白山)에 소취(嘯聚)하고, 치의(鴟義)는 흑수(黑水)에 훤장(喧張)하여 처음은 거란(契丹)과 행악(行惡)하고, 이어 돌궐과 통모(通謀)하여 만리 벌판에 곡식을 경작하면서 여러번 요수(遼水)를 건너는 수레를 항거했으며, 10년이나 오디를 먹다가 늦게야 한(漢)나라에 항복하는 기(旗)를 들었나이다. 그들이 처음 거처할 고을을 세우자 와서 인접(隣接)을 청하기에 그 추장(酋長) 대조영에게 비로소 신번(臣蕃)의 제5품(品) 벼슬인 대아찬(大阿餐)을 주었더니, 뒤에 선천(先天) 2년에 이르러 바야흐로 대조(大朝)의 총명(寵命)을 받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봉(封)해졌나이다.
근대에 그들이 차츰 황은(皇恩)을 입게 되자 갑자기 신번(臣蕃)과 항례(抗禮)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강(絳)ㆍ관(灌) 이 열(列)을 같이함은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말이요, 염(廉)ㆍ인(藺)이 서로 화목했음은 전계(前誡)가 된다 할 것이나, 저 발해가 원래 사력(沙礫)의 도태물(淘汰物)로 본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사거늘, 삼가 본분을 지킬 줄을 모르고 오직 위를 범하기만 도모하며, 우후(牛後)가 되기를 부끄렵게 여겨 앙큼하게도 용두(龍頭)가 되고자 망령되이 진론(陳論)하고 있으니 이는 애초부터 외기(畏忌)함이 없어서인데 어찌 자리를 격(隔)한 데 대한 예의를 지키오리까. 실로 아래품계가 지킬 예법에 몽매한 짓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폐하께서 높은 데 계시나 찬찬히 살피시고 멀리 보심이 사뭇 환하시어 생각하시되, 신번(臣蕃)의 기마[驥]는 혹 여위었어도 일컬을 만하여, 소는 파리했어도 혀를 빼무는 것이 아닌 반면에, 저 오랑캐의 매[鷹]는 배가 부르면 높이 날아가고, 쥐는 몸집이 있으되 방자히 탐욕만 낸다고 여기시어 길이 제항(梯航)을 함께 함만 허하시고 관리(冠屨)를 거꾸로 두지 않게 하시니, 노부(魯府)가 구관(舊貫) 그대로 두어짐을 듣자 주(周)나라의 명(命)이 오직 새로움을 징험하리로소이다.
한편으로 또한 명위(名位)가 같지 않으매 등급이 엄연히 있습니다. 신의 나라는 진관(秦官)의 극품(極品)을 받았사옵고, 저 번국(蕃國)은 주례(周禮)의 하경(夏卿)을 빌었을 뿐인데, 요즘 선조(先朝)에 이르러 갑자기 우대(優待)의 은총에 젖었으니, 융적(戎狄)은 만족시킴이 불가하므로 요(堯)ㆍ순(舜)도 오히려 이에는 골치를 앓으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등(滕)나라의 다툼을 틈타 스스로 갈왕(葛王)의 꾸지람을 취하였으니, 만일 황제폐하께서 영금(英襟)으로 독단(獨斷)하시고 신필(神筆)로 쭉 그어 비답하시기 않았던들 근화향(槿花鄕)의 염양(廉讓 염치와 예양)이 스스로 침몰하고 호시국(楛矢國 숙신(肅愼))의 독기가 더욱 성할 뻔하였나이다.
이제 멀리 남월(南越)을 수안(綏安)한 한 문제(漢文帝)의 깊은 뜻이 봄같이 무르녹고, 동조(東曹)의 성(省)을 파(罷)한 위 태조(魏太祖)의 아름다운 말을 함께 효득(曉得)하게 되었사오니, 이로부터 팔예(八裔)가 조급히 구하는 희망을 끊어버리고 만방(萬邦)에 망동(妄動)하는 무리가 없어져서 확실히 정규(定規)를 지키며 조용히 분쟁이 사라지리이다.
신이 엎드려 해우(海隅)에 통융(統戎)하기에 구애되어 천조(天朝)에 달려가 뵈지 못하나이다.
[주-D001] 강(絳)ㆍ관(灌) :
한 나라의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무신(武臣) 관영(灌嬰). 주발이 무장인 관영과 동렬(同列)되기를 부끄러워했다.
[주-D002] 염(廉)ㆍ인(藺) :
조(趙)나라의 노장(老將) 염파(廉頗)와 젊은 문신(文臣) 인상여(藺相如). 염파가 처음에는 불화(不和)했으나, 뒤에 인(藺)이 진(秦)나라 조정에 가서 꾀로써 화씨벽(和氏璧)을 보전하여 돌아오니 인에게 가서 사죄하고 친구가 되었다.
[주-D003] 우후(牛後) :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에 “닭의 머리가 될망정 소의 꼬리가 되지 말라[寧爲鷄口 毋爲牛後].” 하였다.
[주-D004] 노부(魯府) :
노 나라 사람이 장부(長府 창고)를 만드니 민자건(閔子騫)이, “옛 사람들의 일을 잇지[續], 하필 다시 짓느냐[仍舊貫如之何 何必改作].” 하였다. 《論語 先進》
26.대송황제께 책력을 하사함을 사례하는 표[上大宋皇帝謝賜曆日表]
곽원(郭元)
구관(具官) 신 모는 아뢰옵나이다.
지난 천희(天禧) 4년 4월 일에 입조사(入朝使) 최원(崔元)이 돌아와 전하는 조서(詔書) 한 통을 받들어 보니, 성상께서 신에게 천희 4년 건원구주력(乾元具註曆) 한 권을 하사하심이었나이다.
문사(文思)하신 교화가 크게 해우(海隅)에까지 미쳐 역상(曆象)을 이에 나누어주시어 특별히 세시(歲時)의 가르침으로 삼으셨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 건곤(乾坤)과 더불어 함께 실으시고[載] 만물로 하여금 형통하게 하시면서 진변(辰卞)의 작은 나라가 본래 정삭(正朔)을 의지하는 것을 생각하사, 희화(羲和 역관(曆官))의 구직(舊職)을 거행케 하여 인빈(寅賓)을 주시니, 뜻밖에 하찮은 작은 나라가 외람되이 이러한 권주(眷住)를 받은지라, 신이 감히 이로써 농상(農桑)의 조만(早晩)을 보이어 천자(天子)의 □하신 바를 나타내고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아 길이 백성들의 노역(勞役)을 위로하지 않으오리이까. 하물며 함(函)을 열고 책을 펴보니, 어력(御曆)의 무궁하심을 엿보았는지라, 군신(群臣)을 거느리고 함께 춤추나이다.
27.압록강 전면의 정자를 헐어버림을 사례하는 표[謝毁罷鴨江前面亭子表]
최유선(崔惟善)
번토(蕃土)를 지키는 작은 신하가 간절한 사정을 들어 우러러 호소하자 햇볕같은 성군(聖君)께서 총명하신 귀를 기울이시어 굽어 좇으시니, 총은(寵恩)을 받자옴에 감변(感抃)이 깊도소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건대, 신이 먼 곳을 다스릴 만한 식견(識見)이 없는 터에 변방(邊方)을 나누어 지키는 중책을 받았으나, 공을 헤아려보면 아무런 □이 없고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 부질없이 모험(冒險)만 하더니, 황제께서 등극(登極)하신 뒤로부터 우무(羽舞)로 문덕(文德)을 펴시어, 드높은 대동(大同)의 교화가 국내외를 논할 것 없고, 먼 데 사람까지 다 순복(順服)하여 모두 희령(熙寧)함에 이르렀나이다.
다만 유감된 것은 지난해에 변경(邊境)을 지키는 장수가 신의 국경(國境)에 걸쳐 척후(斥候)하는 정자를 지어, 드디어 세민(細民)들로 하여금 초목(樵牧)의 편의(便宜)를 얻지 못하게 하고, 부질없이 소방(小邦)으로 하여금 침삭(侵削)의 우려(憂慮)를 품어야 할 듯 하옵기에, 전번에 감히 봉장(封章)을 올려 정자를 헐어버리기를 간청하였더니, 봉조(鳳詔)로 특히 유지(兪旨)를 내리시어 웅번(雄藩)이 그대로 받들어 시행하였나이다.
바야흐로 길음(吉音)을 들으니 저희 소원이 모두 성취된지라, 성은(聖恩)이 지대(至大)함을 다시금 느끼며 기쁨이 맘속에 거듭 쌓이나이다. 은혜를 보답에 말미암을 길이 없어 다만 간절히 성수(聖壽) 만세를 부르나이다.
28.사 칙제 인왕 표(謝勅祭仁王表)
최유선(崔惟善)
신 휘(諱)는 아뢰나이다.
월 일에 칙제사(勅祭使) 모관(某官) 오연(烏延)과 준례부사(遵禮副使) 모관 오거인(烏居仁) 등이 이르러 전하는 조서(詔書)와 별록(別錄) 각 일통을 받들어보니, 신의 아비 선신(先臣) 휘(諱)가 훙서(薨逝)하였으므로 특별히 치제(致祭)를 거행하고 아울러 제물을 하사하심이었나이다.
우러러 망령(亡靈)에 대한 성은을 대하니 눈물이 한없이 흐르나이다. 중사
신의 아버지 선신 휘(諱)가 마침 성대(聖代)를 만나 각별(恪別)히 후번(侯藩)을 지키더니, 우연히 미양(微恙)이 낫지 않아 문득 육신(肉身)이 길이 가셨는데, 고애(告哀)가 상달(上達)되자 슬퍼하는 마음이 깊으시어, 구중(九重)에 사전(使傳)을 내리시고 백품(百品)의 전의(奠儀)를 주시니, 베푸심이 존몰(存歿)을 겸하고 예(禮)가 애통과 영광을 구비한지라, 지하(地下)의 유혼(遺魂)이 저승에까지 젖어든 은택에 흐뭇하게 목욕할 것이고, 재소(齋疏)하는 여천(餘喘)이 더욱 땅을 밟는 회포를 더 느끼나이다.
29.사물장(謝物狀)
최유선(崔惟善)
효도로 다스리는 풍도(風度)가 하토(下土)에 달하여 상사(喪事)에 쓸 물품이 상천(上天)에서 내리시니, 돌아보건대 이 외롭고 조그만 몸이 어찌 고맙고 자랑스러운 은혜를 감당하리이까.
30.사 칙제 인왕 표(謝勅祭仁王表)
최유선(崔惟善)
구름하늘에서 은택(恩澤)을 뿌려 저승길에 영광이 더하니, 보고 절함에 애통과 영광이 망극(罔極)하도소이다. 중사
공손히 생각건대, 존호(尊號) 황제께서 신(神)을 궁구하여 화(化)를 아시고 옛법을 잡아 현재를 통어(通御)하시며, 덕과 위엄으로 내려덮으사 나라를 가없이 넓히시고, 인(仁)과 사랑으로 적시어 천하가 모두 돌아오게 하시나이다.
이제 선신(先臣)이 세상을 하직한 상사를 진도(軫悼)하시고, 후사(後嗣)의 종신(終身)토록 애통해 함을 불쌍히 여기시어, 친히 초사(軺使)를 보내어 와서 제전(祭奠)을 베푸시되 모두 외옹(外饔)에서 나온 조실(俎實)이요 내부(內府)에서 나온 폐재(幣財)로써 찬란한 이수(異數)를 내려 망령(亡靈)을 빛나게 장식하니, 우러러 성은(聖恩)을 알았으나 어떻게 두려움에 몸 둘 수 없는 이 감격을 표하리까. 몸을 굽혀 보답에 맞는 것을 생각함에 오직 마땅히 효도 옮겨 충성을 다할 뿐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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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권 끝.
첫댓글 자료 수집 및 편집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 자료와 함께 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