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되면 북한 학교들은 개교식을 갖는다. 새학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북한 소학교, 중학교들은 당조직 차원에서 지방 시, 군, 구역 당위원회 교육부 지시를 받으며, 행정 차원에서는 지방 인민위원회 밎 행정위원회 교육부의 지침을 받는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중등교육은 지금처럼 열악한 수준은 아니었다. '미래를 키운다'는 국가적 방침아래 수량은 부족했지만 개교식 때마다 새교과서와 교육기자재가 조금씩 공급됐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기 부터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교육분야 공급이 크게 줄어 들었다. 교과서나 교복 공급은 물론 학교관리 운영비, 교육기자재 수리비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교원들 월급마저도 건너 뛸 때가 많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 교과서를 제외한 다른 교과목 교과서는 윗 학년 학생들의 낡고 찢어진 교과서를 다시 수거해 아래학년 학생들에게 대물림 되었고 그마저 충분치 못했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학생들과 교원들의 자체부담으로 해결해야 했다. 노동자들의 식량배급이 중단되자 끼니를 거르고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이 과반수였다.
학교 책걸상 수리부터 교실비품 마련, 겨울 난방문제 해결 등 교원들이 풀어야 할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 조직 뿐 아니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과 같은 외곽단체에서조차 중학생들에게 '좋은일하기' 명목으로 각종 과제를 지시한다. 1년 내내 파철·파고무·파지 모으기, 토끼 키우기 등 끝없는 과제가 이어졌다.
통상 학급당 30명 내외인 중학교의 경우 일단 부모가 장사를 하는 학생이 절반 정도 된다. 나머지 학생들 중에 지방 당간부 집 학생들이 4~6명, 그외 10여명은 끼니를 거르면서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이다.
90년대 후반 심각했던 출석율이 2000년대 초반부터 호전되는가 싶더니 2006년 이후 다시 출석율이 떨어지는 추세다. 식량상황이 어려운 춘궁기(5~6월) 때는 1/3 정도의 학생들이 결석하는 때도 있다. 학급 담임교원들은 학생 출석율이 '교원 평가'의 중요 지표중에 하나기 때문에 결석 학생들에 대한 가정방문도 다녀야 한다.
결석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해 보면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결석 학생들의 가정은 거의 대부분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13~15살 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책임감이 있는 학생들은 가사일을 책임진다. 그러나 가정 자체가 해체되는 바람에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학생들의 결석 현상이 일상화 되면서 학생들을 찾아나서는 교원들의 열의도 식어갔다. 90년대 말까지는 기차역 대합실, 시장 관리원실, 인민보안서 등지를 찾아다니던 교원들의 모습을 이제는 보기 힘들다.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각종 과제 뿐 아니라 군대, 건설현장, 탄광 지원 명목으로 거두는 돈을 부담하기 위해 매일 같이 돈을 갖고 학교에 나와야 한다.
학생들이 파철이나 파지를 훔치러 다니다가 공장 경비원이나 인민보안원(경찰)들에게 붙잡히면 담임 교원들도 곤욕을 치뤄야 하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해 불량한 행동을 하게 됐다"는 면박이 돌아온다.
현재 북한의 중학생들은 이른바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에 태어나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사회의 우월성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세대들이다. 북한에는 이제 '10대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제기될 만큼 심각해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가난에 직면해 억척스럽게 살아온 아이들이라 '개인주의'가 심각하고 도덕이나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한 협동농장들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는 5월부터 중학교 3학년 이상 학생들이 40~50일간 농촌지원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학생들이 농촌 집들에 들어가 계란, 닭, 식량 등을 훔치는 사건이 빈번해져 농장 측은 물론 학생들을 통솔하는 담임 교원들도 마음을 놓지 못할 정도다.
북한 아이들은 보통 중학교 4학년(만13세)부터 사춘기를 겪게 되는데 이때 성(性), 돈,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결정된다. 그러나 가정과 학교가 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 어른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가감없이 받아 들인다.
90년대 초반까지 북한 청소년들의 '비행'이라고 해봐야 어른들 몰래 술, 담배를 경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청소년들의 '비행'은 절도, 강도, 폭력 등 사회적 중범죄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에는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라는 유명한 문구도 있지만 많은 10대들은 '오직 오늘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일부 당간부 자식들처럼 여건이 좋은 학생들 조차도 '잘 먹고 잘 노는' 미래만 꿈꾸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얼마 전 경기과천고등학교에 통일교육을 나갔다. 1학년 남학생들 앞에 섰을 때 처음 느낀 것은 한국 고등학생들은 발육 상태가 대단히 좋고, 얼굴 표정도 밝다는 점이다.
호기심 어린 학생들의 눈망울과 마주하고 있다보니, 북한에 두고 온 제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밥벌이를 위해 시장에서 짐을 져나르고, 식량 운반 차량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옥수수를 훔쳐내던 그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내가 기억하는 북한 학생들 모습과 현재 마주하고 있는 남한 학생들의 표정은 절대로 합성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영상이었다.
북한 학교들의 개교식 소식을 접하니 마음 한 켠이 먹먹해져 온다. 그저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바람 밖에 가질 게 없다. 내가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게 이 부끄러운 선생님이 전하는 유일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