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해안가 산책 나들이
어딜 돌아보아도 바다가 있다. 물결이 넘실대거나 드러난 갯벌 위로 다양한 해양생물이 꼼지락거린다. 산과 들녘을 지나 해안가의 돈대는 한적한 산책길이고 쉼터다. 수백 년 지켜온 솔숲 저편 해변 백사장에는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이 오가고 갈매기의 자유로운 비상을 본다. 바다 위로 쏟아지던 한낮의 햇볕이 지나가고 서해의 저녁노을까지 제 몫을 다한다. 이번에는 강화의 남쪽으로 가 본다.
-해변에서 닿기 쉬운 돈대, 분오리돈대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로 알려진 동막해변은 저만치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다. 비가 그치고 여전히 흐리지만, 바다 풍경은 운치 있다. 동막해변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해선 분오리돈대를 먼저 오르는 게 좋다.
강화도엔 50개가 넘는 돈대가 곳곳에 있다. 몽골 항쟁과 삼별초, 청나라의 침입 등 외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강화도다. 분오리돈대는 그중에서 강화도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동막해수욕장 바로 옆이다.
돈대를 오르기 전 안내판을 읽고 나서 공터에서 커피와 옥수수 파는 할머니에게 “돈대까지 오르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라고 말했더니,“요기 금방요. 10분이면 가”라고 하신다.
몇 걸음 걷자마자 돈대가 보인다. 천천히 걸어도 단 3분 정도 거리다. 이렇게나 가깝다니, 그 옛날에는 해안 방어를 위해 바다를 앞에 두고 설치했을 시설물이 이제는 산 중턱에 도로가 뚫리고 산책길보다 더 쉽게 걸어 오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올라서 보니 확 다르다. 가볍게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돈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득한 절벽 아래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분오리돈대 내부는 독특하게도 초승달 모양이다. 대부분의 돈대 모양은 원형이거나 사각형, 또는 타원형이기도 한데 분오리돈대는 유난히 눈썹 닮은 초승달처럼 곡선의 끄트머리가 좁게 휘어졌다. 지형을 최대한 살린 게 아닐지 생각해 본다. 분오리돈대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 축조한 돈대 중의 하나다.
돈대 내부에 드니 4개의 포좌가 바다를 향해 뚫려있다. 바다 건너편 동쪽으로 선두리 포구와 동검도가 흐린 날씨 속에서도 보인다. 다시 동막해변 쪽으로 서니 마니산이 듬직하게 배경을 이룬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토록 넓은 바다를 둘러싼 섬과 산과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위치에서 바라보니 시야가 넓고 볼 게 많다. 분오리돈대는 특히 일출과 일몰의 조망지로 손꼽히는 명소이기도 하다.
-바다와 갯벌 즐기기, 동막해변
짙푸른 솔숲이 동막 해변 가는 길에서 먼저 맞는다. 동막해수욕장은 강화 본섬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100년을 넘긴 소나무가 숲을 이룬 솔숲 캠핑장에 여름을 나는 그늘막과 작은 텐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더운 여름날 솔숲에서 시원하게 쉬어가도 좋아할 쉼터다.
동막해변의 모래톱은 하루에 두 번씩 물 빠짐의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물이 빠져나간 바닷가를 느릿하게 걸으며 여유를 가져보는 시간, 한쪽에서는 여행자들의 새우과자 유혹을 향해 몰려드는 갈매기 떼의 날갯짓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각자의 방법으로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넓어지는 갯벌 위로 바다의 속살을 보듯 살아있는 생태의 현장을 본다. 이때 갯벌이 펼쳐지는 넓이가 4km 정도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해양생물들을 관찰하기 좋은 시간이다.
생명이 꿈틀대는 맨땅에 맨발로 들어서면 발바닥으로 갯벌의 생명력이 전해진다. 갯벌 위로 군데군데 드러나는 버려진 닻들이 또 다른 삶의 현장처럼 느껴진다.
동막해변에서는 분오리돈대 밑으로 조성된 긴 데크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산 아래 해변 쪽을 시작으로 분오어판장까지 해안산책로다. 150m 정도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길을 걸으며 바로 발아래의 갯벌 생태도 구경하며 바다를 동시에 즐긴다.
물이 빠져나갔을 때는 데크 아래 자갈밭 캠핑 의자에 앉아 여름을 보내는 한가로운 풍경도 자연스럽다. 일몰 무렵 동막해변을 붉은 노을로 물들이는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서해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누리는 호사가 된다.
-저수지에서 힐링의 시간
해안가를 벗어나 달리는 길목에 길상저수지와 장흥저수지가 이어진다. 저수지 둘레에 홀로이 앉아 낚시하는 강태공들이 즐기는 풍경에 저절로 이끌린다. 낚시꾼들이 만들어놓은 풍경이 세상 이처럼 평화로웠나 싶다. 대부분 각자 한 명이거나 두 명이다.
푸른 신록과 드문드문 펼쳐져 있는 파라솔이 그저 이쁜 그림이다. 한쪽으로는 아이들도 제법 보인다. 낚시는 이제 아빠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의 체험 놀이가 되고 아빠와 함께하는 레저가 되고 힐링의 시간이 되는 걸 본다.
저수지 부근으로 강화 나들길 5코스 중의 하나인 이름도 예쁜 국화저수지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강화읍에서도 가까워서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외지인들이 걷기 코스로도 거쳐 가기 좋은 곳이다.
입구에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벽화로 조성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금방 한눈에 알아본다. 국화저수지 생태 문화로는 자연 속에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주변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저수지 둑에 개망초가 지천이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피어난 들꽃이나 수생식물들이 도심에서 지친 마음을 다독여 준다.
-가을을 기다리는 강화들판
푸른 들판에 햇볕이 쏟아져도 귀갓길의 강화 들녘에 부는 바람은 시원하다. 곡식을 여물게 하는 빛과 바람이 들판에 가득하다. 그 길에 자전거 주행을 하는 이들이 휙휙 지나간다. 가볍게 배낭을 메고 묵묵히 나들길을 걷는 사람들도 간간이 이어진다. 지나는 길마다 곡식이 익어가는 논과 밭, 천혜의 갯벌이 진득하니 고스란하다. 길가의 들풀들이 바람에 날리며 내는 부드러운 소리가 가을을 기대하게 한다.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자연과 소통하기 좋은 강화들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