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장국 로드
"으허~" 해장국은 직업,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 넘어 식도를 따라 흐르는 동안 온몸이 지글지글 풀리며 나오는 소리를 어쩔 것인가.
해장국 전문식당에서 밥을 말아 먹다 자연음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오케스트라를 한 번씩들 들어보시라.
1분에 한 번꼴로 들리는 속 풀리는 소리를 모아 드든다면 퀸이 관객들의 발소리와 박수소리로 만들어낸 'We Will rock you'에 버금가는 만하리라.
작년 9월 서울 유명 호텔 한식당에서 이색 보양식 메뉴로 해장국이 등장했다고 한다.
'효종갱'(曉鐘羹)이다.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 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배추 속대,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쇠갈비, 해삼, 전복 등 18가지 재료와 토장을 섞어 과아낸 것이라 한다.
일본 스모 선수들이 1인분으로 먹어치운다는 창코나베도 아니고 이 정도 재료로 1인분을 만들어 낸다면 국이 아니라 찜이다.
추정컨대 전날 함께 과음한 사람들 모두 어울려 같이 먹을 만큼의 해장국이다.
어머니의 손맛만큼 많다는 해장국의 세계다.
조미료 팍팍 들어간, 매워서 위장이 마비되는 느낌의 육국수 가게를 최고의 해장 식당으로 꼽는 이도 있는 만큼 우열을 가릴수는 없다.
그럼에도 재료별로 구분해보자면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크게 해산물과 육류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단백질 성분이 들어가야 해장이 된다는 거다.
재첩, 황태, 복어, 선지, 우거지, 콩나물 등이 이름을 걸고 술꾼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 가정간편식으로 날개 단 해장국
사르르 오장육부를 녹이는 국물의 힘은 '해장국'에서 '해장국'으로 바뀌었다.
암묵적 합의로 언어를 바꿀 만큼 국물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표준화된 제조 메뉴얼도 생겼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만드러 먹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식품업계는 해장국 시장 수요에 주목했다.
1인 가구 증가로 업계의 해장국 제조 경쟁은 치열해졌다.
가정간편식 시장의 해장국 터줏대감은 북어나 황태를 소재로 한 제품군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가 2017년 기준 2조7천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보다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대기업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장에 유명 식당과 외식업체, 지역 농·축협까지 뛰어며 덩치가 커진 것이다.
당연한 애기겠지만 비쌀수록 질이 높은 편이다.
특히 근래 들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가성비는 물론이고, 집 밥을 먹는 듯 심리적 안정감까지 줘 가심비까지 높이겠다는 식품업계의 목표의식 상향으로 일부 제품에서는 해장국 식당을 따라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10팩에 7~8만원 선에 팔린다.
낱개에 7~8천원 선이니 일반 식당에서 내놓은 해장국 가격도 큰 차이도 없다.
육개장, 곰탕, 추어탕은 어느새 기본 상품군으로 자리 잡았다.
라면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해장의 핵심은 국물이라는 명제에 충실한 라면을 속속 내놓으면서 기대 이상의 품질이라는 뜻의 '쓸고퀼(쓸데없이 高 Qualuty)이라는 품명 까지 등장했다.
◈ 해산물 해장국
해산물의 대표 재료는 복어다.
그런데 대표 가게를 적자니 애매하다.
레시피가 거의 같아서다.
콩나물무침 베이스로 맑은 국물의 '지리'나 '탕'을 국물로 내준다.
못하는 집을 꼽으라면 꼽을 수 있겠으나 각 구역별로 배어난 집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해장의 대명사가 됐다.
생태탕도 단백질 덩어리다.
죽전네거리 인근의 '참 맛있어요'라고 붙어 있는 가게, 그리고 영대병원네거리 인근의, 간판이 있어도 식당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가게가 유명하다.
두 가게 모두 허름해 보인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마트에 가정간편식으로 스카우트돼 팔리기까지 한 성서쇼핑월드 뒤편의 동태탕 가게도 해장 집합소다.
식당에 한데 섞여 앉아 그치지 않고 밀려드는 소님들을 보노라면 '속 쓰린 사람들 참 많구나'란 생각이 절로 든다.
◈ 콩나물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앞에는 '전주'란 지역명이 붙여줘야 정통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주'가 붙지 않은 콩나물 해장국 식당과 해장 기능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난제다.
복어 식당만큼 많은 식당들이 있어 아무 데서나 먹어도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인지 황태로 우려낸 육수인지 다시마도 좀 섞여 있는지 구분할 미각이라면 애기가 달라지지만.
복불복 확률을 줄일 방도는 있다.
줄을 서서 먹는다든지, 끼니때를 넘긴 시간임에도 바글바글하게 들어차 있는 곳이라면 확실하다.
◈ 그 외 해장국
돼지뼈를 이용한 뼈해장국의 대표는 감자탕이다.
돼지 등뼈를 끓여 만드는 해장국으로 주로 24시간 영업하는 체인점이 많다.
우거지가 같이 들어 있어 해장의 균형을 맞춘다.
간 해독에 도움이 된다는 재첩을 재료로 한 곳도 인기가 식지 않는 해장국 전문식당이다.
콩나물에 전주가 빠지면 어색하듯 재첩에는 하동이나 섬진강이 어울린다.
MBC네거리 문화웨딩 뒤편 재첩국 가게가 오랜 기간 해장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소나 돼지의 굳은 피, 선지를 사골 육수에 끓여 만드는 선지 해장국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지만 해장국을 언급할 때 첫손에 꼽힌다.
앞산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한 그곳과 대구 시내 국과 밥을 따로 내주는 그 식당이 선지 해장국으로는 인지도가 가장 높다.
◈ 짬뽕
아직 팔팔한 소화기 능력으로 해장의 개념이 약한 20대에게 '최애(最愛, 가장 사랑하는) 해장국' 으로 꼽힌다.
도시철도 3호선 건들바위역 인근에 있는 이가게, 어쩌면 짬뽕계의 레전드로 남을지 모르겠다.
돼지뼈를 고아 낸 육수를 베이스로 한다.
주방장의 영혼이 실린 국물이란 평을 받고 있다.
오징어나 홍합 몇 개로 비주얼에만 신경 써 가 재료자 따로 노는 짬뽕이 범접할 수 없는 해장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