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함께 지는 돌봄 공동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와 초등에서 온 SOS
갑자기 찾아온 팬데믹 상황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학교‧학급의 관계 생태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가 2년째 이어지던 지난 해, 초등학교에서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문의가 여럿 있었다.
지역과 학교 규모가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통제하기 어려운 아동의 과잉행동, 학급 내 잦은 충돌, 학생들의 피로도 상승과 과민해진 학급 분위기, 학부모 민원과 학교폭력 신고 위기, 학부모 간의 갈등, 교사 탈진과 무기력, 담임의 휴직….
대응 방식도 비슷했다. 학부모에게 학생의 ADHD 진단과 치료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 요구, 학부모의 학교폭력 신고, 학생 간의 분리 요청 또는 다른 학교 전학 및 대안학교로 이동하기를 바라는 암묵적 기대, 담임 교체….
관계 생태계는 불안 정서와 서로에 대한 경계, 과민 반응으로 악순환되고 있었다.
코로나 세대가 경험하는 생애 사건과 그 후유증, ACE 연구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는《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에서 아동‧청소년의 코로나 트라우마를 ‘단절 트라우마, 규칙 트라우마, 일상 유지 트라우마, 결손 트라우마, 중독 트라우마’로 제시했다. 그 외에 아동․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은, 코로나 위기로 부모의 스트레스가 자녀에게 표출되면서 아동학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신체적․정서적으로 결정적 발달 시기에 놓여 있는 아동․청소년에게, 코로나로 유발되는 만성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경험은 이후 전생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와 같은 아동․청소년 시기의 부정적 경험에대한 연구(ACE :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가 빈센트 j. 펠리티와 로버트 F. 앤다에 의해 1995~1997년 동안 17,0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최근 뇌․신경과학의 발달로 더욱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학대 | 가족의 문제 | 방임 |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 엄마의 폭력 피해 가족 내 물질 중독 가족 내 정신질환 부모의 별거 혹은 이혼 수감된 가족 구성원 | 정신적 방임 신체적 방임 |
ACE 결과에 의하면, ACE 점수가 4인 사람은 우울증 확률이 460%, ACE 점수가 6점인 사람은 수명이 20년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은 뇌와 신경발달을 저해하여 뇌의 크기가 작아지게 되고, 해마 크기가 축소되며, 편도체의 과다활동으로 과민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반응을 가라앉히는 유전자가 손상되어 통제되지 않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활성화된다. 결과적으로 아동기부정적경험(ACE)은 이후 생애에 과민성대장증후군, 자가면역질환, 섬유근육통, 만성피로, 섬유종, 궤양, 심장병, 편두통, 천식, 암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상류를 바꾸는 힘
지난 해, 의뢰받았던 사안 중에 2건은 작은 대안학교였다. 두 대안학교 사안의 공통점은 아동이 공교육에서 전학을 왔다는 점이다. 한 아동은 대안학교에서 주어지는 자유와 여유, 다양한 자연 친화적 활동을 좋아했지만,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대부분의 약속과 질서는 무시했다. 아이의 방해행위로 수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이 몇 개월 동안 반복되었다. 정신과 상담의로부터 규율에 대해 매우 자유로운 학생이기 때문에, 규율이 느슨한 대안학교보다 오히려 엄격한 규율이 있는 공교육 학교로 다시 전학가는 것이 낫다는 권고를 듣게 되었다.
공교육에서 대안학교로, 다시 대안학교에서 공교육으로…. 이것이 과연 답일까? 우리의 선택은 방법적인 면에서 다양하게 열려있다. ADHD나 발달장애라면 치료적 노력과 PBS도 필요하고, 갈등전환을 위한 회복적 서클과 공동체성 형성을 위한 평화교육도 필요하다. 때로는 분리와 전학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쳇바퀴처럼 공허하거나, 아동에게 새로운 부정적 요인을 유발시키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택에도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양자물리학자이며 대화연구자인 데이비드 봄은, 우리가 사고의 강에 오염물질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략을 취한다고 말했다. 강 하류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거나 상류에 있는 무엇을 바꾸는 것이다.
‘하류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눈 앞에 보이는 오염을 제거하고 물을 정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효과는커녕 다른 종류의 오염원만 추가할 수 있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하천 전체를 보고 오염원을 찾아 내는 것이다. 오염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 해법이다.’
위기에 있을 때, 우리의 선택은 당장 눈에 보이는 하류의 오염물을 제거하는데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에 당장 후련한 답을 얻지 못한다 해도, 전체를 보며 상류의 무엇인가를 바꾸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짐을 함께 지는 돌봄 공동체
여러 학교와 학급을 다니면서, 관계의 생태계가 단절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성원 모두가 피로감이 높고, 과민한 상태로 상대방에 대해 방어적이어서, 타인 배려심이나 타인의 취약성을 견디는 인내력이 부족했다. 몇 차례의 지원과 도움으로 가시적인 변화가 있는 사례도 있었지만, 더 많은 다양한 자원과 마음을 요구하는 과제만 남길 때도 있었다.
어느 순간 불을 끄러 다니는 소방관 역할을 하면서 소방관 역할의 한계를 느꼈다. 하류의 오염물 제거도 중요하지만, 상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더 절실함을 배웠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적 존재다. 더불어 인간은 취약성을 지닌 존재다. 취약성이 없는 인간은 없다. 서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서로의 취약성을 함께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살벌할 수 밖에 없다. 서로의 취약성을 수용하고 그로 인한 짐을 함께 지는 공동체가 인간 삶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 문제는 상류에서 벌어진 단절의 문제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두 가지 본능이 있다. 자신보존본능과 관계맺고자 하는 본능이다. 인류가 위기 때마다 관계맺고자 하는 본능을 확장시켜서 서로를 돌보고 위기를 극복해왔다. 예측불가능한 팬데믹상황으로 더욱 위기에 처한 아동‧청소년, 그리고 가정과 학교… 더 넓은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이제 상호돌봄의 가치를 회복하여 발휘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