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 3호분이 만들어진 연대는 357년, 덕흥리 고분은 407년이다.
묘도는 지상으로부터 지하의 매장부에 이르는 통로이며, 연도는 묘도와 매장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이다....연도는 묘도보다 늦게 출현한 시설이다....묘도에서 천장까지 갖춘 연도가 분리되는 시기는 전한 만기로 추정...주검은 후실에 안치된다.
첫째, 낙양 일원은 통로로 연결되지 않은 동실합장 벽화분의 중심 분포지이고, 둘째, 요녕성 요양 일대는 통로로 연결되지 않는 관실 병렬 배치 벽화분의 중심 분포지이다. 셋째, 섬서성의 벽화분은 벽돌로 축조된 단칸 구조인 반면, 요녕성 조양 일대의 벽화분은 돌로 축조된 단칸 구조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넷째, 산동성이나 산서성 그리고 감숙성이나 내몽고의 벽화분은 뚜렷한 지역색을 보이지 않는다. 다섯째, 지역성은 요녕성의 조양과 요양 일대의 벽화분에서 뚜렷하며, 낙양 일원의 벽화분도 지역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요녕성 조양 일대의 사다리꼴 평면 묘실은 선비족 무덤의 오랜 전통이며,...축조 재료 면에서도 공심전에서 소전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관찰된다....낙양 소구(燒溝) 한묘의 매장부 구조 변화를 정리해보면, 축조 재료는 공심전에서 소전으로 변화하고, 천장 가구는 평천정에서 터널형과 궁륭상으로 변호하며, 한 개의 관실에서 두 개가 병렬 배치된 쌍관실을 거쳐 진실,후실로 변화한다. 연도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하며, 묘도는 수정식에서 수정계단식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전후실 사이의 통로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벽화분은 낙양을 중심으로 섬서성에서 먼저 축조되기 시작했고, 후하 중기 이후가 되면 하남성, 강소성,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내몽고, 감숙성 등지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벽화분은 중원을 중심으로 축조되기 시작해 후한대가 되면서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요녕성에서 벽화분이 본격적으로 축조된 것은 후한 말 이후 위 진대이다....위 진대애는 낙양을 중심으로 한 중원 지역에서는 벽화분이 보이지 않는다.
한대의 무덤은 전한에서 후한대로 시기가 변함에 따라 축조 재료의 변화도 수반되었다. 즉, 공심전에서 소전으로 변화가 그것이다.
요양 동문리(東門里)는 요양일대에서 가장 먼저 축조된 벽화분이라고 추정...
요서 지역에서 석실봉토벽화분은 요동 지역에 견주어 늦게 축조되었는데, 조양 일대에서 채색벽화분은 4세기 중엽 무렵에 축조되기 시작해 5세기 초엽 무렵까지 지속되었으며, 북표에서는 조양보다 늦은 5세기 초 무렵에 축조되었을 것이다.
고구려에서 석실봉토벽화분은 4세기 중엽 무렵 집안 안악 평양 세 지역에서 축조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고구려 석실봉토벽화분은 5세기대에 수적으로 팽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6세기가 되면 벽화분의 축조가 줄어들어, 집안 통구와 평양 일대로 범위가 국한된다.
조양 원대자(袁臺子) 벽화분은 선비족 정권인 전연의 무덤으로 비정되고 있다.
서북지구의 한, 위 진대 벽화분은 내몽고자치구와 감숙성 지역에서 확인되며,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잇는 곳은 감숙성이다. 벽화분은 후한 말기부터 축조되었다.
요녕성 벽화분은 전축분이 아닌 석실벽호분이어서 중원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의 여타 지역과도 구별된다. 이 때문에 석실봉토벽화분의 최대 중심지는 중국 요녕성 요양 일대가 된다.
요동 일대에서는, 4세기대에 전연이 요동 정벌을 이루었음에도, 사다리꼴 평면의 전대후소형 석곽묘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수혈식 무덤은 요서 지역의 조양과 북표에서만 확인된다. ...합장 무덤 가운데 이혈합장은 고구려에서만 확인되는데,...전 현실 종렬 배치 구조는 고구려에서만 확인된다. 특히 다수를 점하는 통로로 연결된 전축분계 무덤의 평면형은 요동반도 남단의 전축분과 한반도 서북한의 전축분 그리고 전 석혼축분과 유사하다....여러 칸 병렬 배치 무덤은 다인합장이라는 점...중국 요양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벽화분이 축조된 요양 일대에서는 횡혈식의 다인합장이 보이고, 이어 벽화분이 축조된 조양 일대에서는 1인 단장의 수혈식과 횡혈식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고구려에서는 동혈합장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검은 곰은 조양 원대자 벽화분에서는 묘실 천장과 천장고임부에 하늘을 받드는 역사(力士)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검은 곰은 신의 사자로 중국 한대 묘실벽화나 화상석에서는 관찰되지만, 요양이나 고구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석실봉토벽화분은 위 진대 요동의 요양 일대에서 축조되기 시작하나, 4세기 중엽 무렵이 되면 요양 지역 대신 요서 지역의 조양과 고구려 영역에서 벽화분이 축조되고, 5세기가 되면 고구려가 석실봉토벽화분의 중심지가 된다.
고구려 벽화분은...천장 또한 내부 공간 확대를 의도한 궁륭상이거나 고임식이어서 중국의 요녕성과는 차이를 보인다.
4~5세기는 고구려에서 벽화분...부구는 흙으로 쌓은 것이 다수이지만, 중국 길림성 집안에서는 돌로 쌓은 무덤도 확인되었다.
한대 이후 벽화분의 중심지인 요녕성의 요양 일대 벽화분은 회랑을 가진 관실 병렬 배치 구조를 하고 있다.
망산(芒山) 정왕(貞王) 영성 망산시원의 벽화분은 전한 시기에 축조된 무덤.
복천추인(卜千秋印)
하남성 밀현(密縣)은은 상대(商代)에 예주(豫州) 였다가 서주(西周) 시기에 밀국(密國)이 되었으며, 동주(東周) 추추(春秋)시기에 정국(鄭國)에게 멸망당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한국(漢國)에 속했던 곳이다. 전한대에 하남군(河南郡) 밀현이 되었으며....
요녕막부는 한 건제(建帝) 25년(49년)에 요서오환대인(遼西烏桓大人)이 한왕조에 귀부(歸附)...
하남성 밀현 타호정(打虎亭)의 1호분 화상석묘의 주인공은 후한만기 한굉농태수(漢宏農太守)를 지낸 장백아(張伯雅)...
내몽고자치구 탁극탁현 무덤은 후한대의 것으로 비정된다.
감숙성 고태(高台) 낙타성 남쪽은 한대 낙관현(樂涫縣)의 옛터로 , 진대(晋代) 영화(永和) 원년(345년)에 전량(前凉) 장준(張駿)이 건강군(建康郡)을 설치했던 곳이다.
한의 정양군(定襄郡) 치지였던 내몽고 화림격이에 오환교위의 벽화분이 자리하는 것은....
중산포음조향박성리(中山蒲陰助鄕博成里)
이상(李上) 일흉(一匈)
민씨이노(閔氏以奴) 민씨이비(閔氏以婢) 민씨거우일승(閔氏車牛一乘)
내몽고 화림격이 신점자 1호 <-번양현(繁陽縣)
영지령장군(令支令張君) 손도지구대호(孫度支口大好) 의조연(議曺椽)
곽승사(霍承嗣,곽준霍俊) 좌백호(左帛虎) 의병(宜兵)
『고구려 문화의 비교 연구』중에서 (강현숙)
고구려와 중국 북방의 4~5세기 벽화분 비교
돌을 무덤 축조재료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고구려 벽화분은 중국 요녕성 벽화분과 공통되지만, 묘실 구조와 벽화의 내용은 요녕성보다 멀리 떨어진 감숙성 벽화분과 유사성이 더 많다.
요양 삼도호 서진묘는 선각화 무덤으로, 벽면에 태강 7년, 9년, 10년 등 기년명을 새겨져 있다. 태강은 279년에서 290년 사이에 사용되었던 서진대 연호로, 무덤의 명뭉느 286, 288, 289년에 해당된다.
돈황 기가만 310호분의 경우 붉은 글씨로 '神새 2년(393)' 명으로 미루어 북량시기에 속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안악3호분은...357년으로 연대 비정된다. 덕흥리 고분은...409은으로 비정된다.
청자 호자는 요양 상황가촌 벽화분에 부장되었는데, 상왕가촌의 청자 호자는 중국 서진대 청자 호자의
특징을 보여준다. 한편, 초두(초斗)와 괴(魁)등의 식음기와 애금구는 중원계 문물로, 조양 원대자 벽화분에서 출토된 이들 유물은 동진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구려:
묘실 단칸 구조
수와 전 현실 종렬배치
배치 관실 병렬배치
천장 궁륭상
가구 고임(팔각, 삼각, 평행고임)
감숙성
묘실 단칸 구조
수와 전 현실 종렬배치
천장 궁륭상, 터널천장
고구려의 전실 평면은 횡장방형이 우세한 데 반해 감숙성은 방형 평면이 우세하며, 현실의 경우 고구려는 방형인 반면, 감숙성은 장방형이 우세하며 세부 평면형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하 깊숙히 매장하는 관념은 중국 중원의 특징적인 매장관념으로 고구려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묘실의 축조재료는 요녕성은 돌을 축조재료로 사용한 반면 감숙성의 벽화분은 벽돌을 이용하였지만, 분구는 양 지역 봉토부구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묘실의 구조는 요녕성과 감숙성이 차이를 보이며, 요녕성의 벽화분은 요하를 경계로 요동지역과 요서지역이 차이를 보인다. 즉 요녕성의 벽화분은 요동지역 요양 상왕가촌 벽화분의 경우 관실 병렬배치의 다인합장 구조인 반면, 요서지역의 조양일대 벽화분은 일실합장의 단칸 구조이고, 연도나 묘도가 길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면 감숙성의 벽화분은 지하 깊숙히 자리하여 길고 경사진 묘도와 연도를 가진 여러 칸 구조이며, 여러 칸은 종렬배치 되어 요녕성과 차이를 보인다.
중국 요녕성과 고구려..두 지역 벽화분은 돌로 축조한 석실분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특히 석실분은 중국 여타 지역에서는 드문 양 지역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봉토분구라는 점에서는 중국 요녕성이나 고구려에서 공통되지만, 고구려에서는 봉토분구 외에 적석분구와 기단봉토분구도 있다. 고구려의 돌을 이용한 분구는 선행묘제가 적석총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요녕성의 묘실은 관실 병렬배치 구조와 단칸 구조 두 종류가 있으며, 요녕성의 관실배치 구조는 고구려의 요동성총에서 확인되지만, 관실 병렬배치 구조가 고구려 벽화분의 보편적인 평면형은 아니다. 일실합장의 단칸 구조는 고구려와 요녕서의 조양 일대 벽화분에서 보이지만, 고구려 벽화분의 다수는 전, 현실 종렬배치 구조이며, 단칸 구조인 경우에도 방형 현실의 중앙 연도가 우세하여 사다리꼴 평면의 편재 연도인 조양 일대 벽화분과 차이를 보인다.
적석이나 기단봉토분구, 방형 현실과 횡장방형 전실의 종렬배치, 고임식 천장가구는 고구려에거 가장 유행하였던 묘실구조이다.
단변에 화구가 있는 중국의 화덕과는 달리 고구려 화덕은 장변에 화구 또한 중구 감숙성의 무위 남탄1호분에서 출토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