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둘러 임신테스트 시약을 수건으로 감싸서 품에 안았고
화장실에서 급히 나왔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마루에서 나를 찾고 있는 신륜재가 보였다.
그 틈을 노려서 나는 임신테스트 시약을 감싸고 있는
수건을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다 던져 버렸다.
"와, 왔어?"
"어? 거기있었네! 어디보자!"
"뭐, 뭘 봐?!"
신륜재는 쿵쾅쿵쾅 내게 달려 오더니 내 볼을 늘여 잡는다.
죽 늘어난 내 볼..신륜재는 내 볼과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혈색은 약간 돌았군. 괜찮아 진 거지?"
"어? 어, 어어.."
혈색이 돌았다구? 미친 거 아냐?
난 갑자기 처들어 온 너 때문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얼굴이 창백해 진 거 같은데!
"다행이다. 아침엔 왜 그런 거야? 체해서?"
"응.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애.
엄마가 간호해주고 오빠가 죽도 끓여 줬어. 그래서 이젠 괜찮아."
"오호~ 그렇구나. 역시 아플 땐 친정이 최고라니까.
아, 내가 맛있는 거 해줄려고 재료 다 사왔지롱!
두부도 방금 나온 모락모락 김 나는 걸로 사왔어."
야채들이 가득 들은 봉투를 내게 보이며 환하게 웃는 신륜재.
아무래도 내가 혈색이 좋아지긴 좋아졌나 보다.
하지만 사실은 속은 더 까맣게 타고 있는데..
"두부 송송 썰어서 맛있는 된장찌개 해줄게!"
"응."
"얼레리?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응."
"뭐? 안 좋아? 너가 된장찌개 먹고 싶다고.."
"내가 언제? 난 너가 먹고 싶다고 그랬는데."
"또 그 소리다. 1년만 기달려 달라고.."
"기다릴 수가 없어. 이젠 기다림 조차도 안 돼."
아기가..생겨버렸어.
너의 아기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기야.
너는 이 소리를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내가 어떤 말을 할까?
축하해? 힘내? 이혼하자?
도대체 어떤 말을 내게 할까..
"무슨 소리야, 너."
"아니다. 빨리 된장찌개 해줘. 지금 무척 먹고 싶어 졌거든."
"그럼 요리 다 될 때까지 순대랑 귤 먹어.
니가 먹고 싶대서 멀리까지 가서 사왔거든."
"멀리?"
"그래, 멀리! 지금 귤찾는 애가 어딨냐?"
"아.."
그렇구나. 지금쯤이면 귤이 나왔을 것 같아서 부탁한 건데..
그런데 진짜 사올 줄이야.
신 것이 먹고 싶은 건, 임산부만의 특권일까?
나는 순대는 쳐다도 보지 않고 귤부터 까먹었다.
왠지 순대의 냄새가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
신륜재 앞에서 만큼은 입덧을 자제해야지..
륜재는 옷 갈아 입을 거라면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시간에 베란다로 가서 수건 속에 숨겨놓은
임신테스트 시약을 꺼내어 쓰레기 통 깊숙히 박아두었다.
절대 신륜재가 보지 못하게.
그리고 그 수건은 세탁기에다 넣었다.
이제...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만 아는 거야.
나 혼자 연기하고, 나 혼자 조심하는 거야.
그러면..그러면 배가 불뚝해지기 전까지 신륜재와 함께할 수 있겠지.
"이민!"
부엌에서 들리는 신륜재의 목소리.
울컥. 갑자기 슬퍼지려는 건 왜일까?
"왜 불러?"
"어딨어?"
"나 여깄다, 왜."
나는 베란다에서 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신륜재 앞에 섰다.
물론 귤을 까먹으면서.
"저번에 너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을 때 말야."
"!"
덜컹-!
순간 주저앉은 내 심장.
그 오래 전 일은 왜 입 밖으로..
"나한테 전화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수화기 안 놔줬지?"
"으응.."
"너도 나 요리할 때까지 이렇게 옆에 있어."
"뭐?"
"나 된장찌개 다 끓이고 밥 다 할 때까지 기다리라구."
아, 뭐야..난 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싫다는 거야?"
"아, 아냐! 여기 이렇게 있을게."
"그래! 언제라도 내가 뒤돌아 보면 귤을 까먹으면서 웃고 있어야 된다?"
"응."
"좋아! 된장찌개 시작!"
신륜재는 요리할 때 늘 입는 하얀 나시티를 입고있었다.
불을 쐬면 덥다는게 그의 변명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의 몸매 강조와 섹시미 강조를 위해 나시를 입는 듯 했다.
완전 지가 나보고 덮쳐 달라고 악을 쓰고 있잖아, 악을!
륜재는 빨간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앞치마를 둘렀다.
빨간 두건은 그의 머리카락이 요리에 빠짐을 방지하기 위한 건데..
이것도 아무리 봐도 자신의 패션감각을 살리는 그런 위세같았다.
"뭘 그렇게 봐? 이 오빠가 그렇게 멋지냐?"
"오빠? 지랄하네. 내가 누나 거든?"
"부부에는 위, 아래가 없다니까!"
"가끔은 있어 줄 필요도 있어. 넌 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누나라고 부르지도 않고 반말 찍찍 해댄 건데?"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랬지. 나는 조금 용해서 미래를 점지할 줄 알거든."
"조용히 하고 요리해. 찌개에 침 튈라."
"잔인하다, 너. 흥!"
"왜? 이젠 도라에몽 마스크라도 하고 요리하시지?"
"그럴려고 했다!"
콩-!
국자로 내 머리를 때리는 신륜재.
그리곤 싱크대로 가서 국자를 수세미로 아주 박박 문지르며 닦는다.
"머리 감았거든?!"
"그래도 안돼. 안심할 수 없어."
"니가 더 잔인해!"
"두부 썰 거야."
"근데?"
"칼 들을 거라구. 그러니까 개기지 말고 조용히 해."
나는 순간 숨소리도 죽인체 가만히 있었다.
니가 날 죽이면 넌 2명을 동시에 죽인 살인자가 된다구.
니가 살인자가 되는 건 원하지 않아.
"두부가 아직도 뜨끈뜨끈하고 맛있어 뵌다.
캬~ 이번에 된장찌개는 환상적일 거 같은데?"
"자화자찬 하지 말고 얼른 하쇼?"
"알았다니까. 원래 내가 식사당번도 아닌데!"
"넌 그럼 아파서 쓰러져 있던 부인이 요리 하리?"
"쳇. 다음엔 내가 아파 쓰러져야지."
"..맘대로 하셔."
그 다음이 언제일까?
넌 아프지 마.
니가 아파서 쓰러지면 난 아마 땅파고 들어가있을 거야.
"버섯도 넣고, 호박도 썰고. 감자도 넣으면 끝내주죠~!"
"작사, 작곡이냐?"
"어. 개런티 내놔!"
"헛소리야. 빨리 끓이기나 해."
그런데 신륜재가 호박을 썰려는 그 순간,
나는 너무 불안하게도 조금씩 조금씩 속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우웩- 하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참는데까지 참아보자는 식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안돼. 안된다구.
지금 여기서 입덧하면은 륜재도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너 아직도 나은 게 아니야? 병원가자!' 이런 식으로 나올지도 모른다구.
나는 누르고 눌러 입덧을 참았다.
더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어.
다른 곳으로 가야 해! 그런데 저 놈이 음식 할 때까지 여기 있으라고 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아까 까놓은 귤 껍질을 내 코에 대고 있었다.
차라리 귤 냄새라도 맡아야지..그래야 입덧을 안 하지.
귤 냄새가 차라리 낫군.
입덧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울렁거림이 없어졌다.
"뭐하냐?"
"응? 그냥."
"왜 귤 껍질로 코를 막고 있어? 코피나?"
"코피나면 이러고 있냐, 너는? 그냥 향기가 좋아서."
"얼레? 너 된장찌개 냄새 좋아하지 않았냐?"
"어?! 어, 어..좋아하지.."
"근데 왜? 너 혹시.."
"아, 아, 아냐! 규, 귤 냄새가 더 좋아!"
신륜재는 칼날이 바짝 새우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직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봐. 너 아직 안 나았지?"
"......."
"너 아직도 울렁울렁 거리는데 괜히 그러는 거지?"
"아, 아냐."
"대답 더듬는 것봐~ 야, 너 병원 안 가고 뭐했냐?"
"벼, 병원 갈 만한 그런 거 아니래두.
그냥 냄새가 약간 비려서 그래.."
"비려? 비리다구? 비리지 않을 텐데! 비리지 않게 할려고 재료 이만큼 사온 거라구!"
신륜재는 내게 버섯을 내밀며 말했다.
갑자기 귤 냄새가 내 코에서 쏴악 없어지면서 버섯,
그 송이버섯의 특유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치, 치워!"
나는 신륜재 손을 세게 치워냈고 결국 우욱- 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역시..내 표정과 내 행동은 내 연기력으로 감출 수 있다지만
절대로 감출 수 없는 건, 가난, 기침, 사랑..그리고 입덧이로군.
"이민..너 정말 괜찮냐?"
"우웩. 커억, 컥. 괘, 괜찮다니까!"
"죽해줄까?"
"돼, 됐다고! 나, 나가. 추하잖아.."
"추하긴 뭐가 추해! 넌 아픈 사람한테 추하다고 하는 거 봤어?"
"아픈 거 아니야.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까 나가줘."
"아픈 거 아니라구? 당연한..거라고?"
"그래. 그니까 나가."
나는 신륜재의 어깨를 밀쳐내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하아, 하아..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나 임신이야.'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한 번도 신륜재와 잔 적이 없는데..
한 번도 신륜재에게 안겨본 적이 없는데.
임신할 수가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나는 임신을 해버린 걸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가보자! 이민!"
쾅쾅쾅! 쾅쾅!
신륜재는 잠겨져 버린 화장실 문을 주먹으로 때리며 말하고 있었다.
그래. 신륜재 말대로 난 병원에 가봐야 해.
정말 정확하게 임신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고..
초음파로 아기 모습도 봐야해.
건강한지, 안 한지를 파악해야 하고..
또 아기 아빠를 만나야 겠지.
"이민!"
쾅쾅쾅! 쾅쾅!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내일 병원도 가보고 오곤지도 만나야지..
내일은 엄청 힘들겠군.
아기도 힘들어 하겠어..엄마가 힘들어 하니까.
좋은 생각만 듬뿍듬뿍 해줘야 하는데..
"이민!"
나는 벌컥- 문을 열었다.
문을 따라 기우뚱 거리는 신륜재.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나를 노려본다.
"죽 끓일게."
"됐어. 된장찌개 먹을 거야."
"안돼! 어차피 먹어도 다 토해낼 거라구.
한 번에 많이 먹을 생각 말구, 천천히 오래 조금씩 먹자.
그러면 토하는 것도 서서히 없어질 거고, 그렇게 거식증은 고쳐질 거야."
거식증?
역시 너는 거식증이라고 생각했나 보지?
하긴, 거식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누가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뱄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
"신륜재."
"어?"
"된장찌개 끓여. 그리고 밥 줘.
밥 주기 싫으면 니 몸을 줘. 둘 중 하나 뿐이야. 둘 중 하나만 골라."
"뭐?!"
"밥 줄래, 아님 널 줄래?"
신륜재의 표정은 약간의 장난기를 담고 있다가 한순간 쏴악- 굳어져 버렸다.
오늘 밤 너를 내게 준다면..
잔인하겠지만 이 아이는 너의 아기라고 말할 거다.
그렇지만 지금 네가 밥을 줄 거라고 한다면..
내일 산부인과를 가서 아기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보고...
그리고 애아빠를 만나러 갈 거야.
"..밥은 다 됐으니까 밥 먹자."
"........"
역시나 신륜재는 나를 받아주지 못했다.
그럼 나는 신륜재의 여자가 될 수 없다는 거네?
하하. 웃기다..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인데..그의 여자가 되지 못해서 이렇게 울다니.
나는 신륜재가 등을 보였을 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서둘러 그 눈물을 소리없이 닦았다.
나는 식탁으로 가기 전,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었다.
2번에 저장된 곤지의 핸드폰..
신호음이 오래 가고 목소리마저 수척해진 곤지가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 이민."
"아, 누나! 누나 왠일이야?!"
"..할 얘기가 있어서."
"뭔데? 지금 만나자구?"
"아니. 내일 만나자구. 내일..유광사 산부인과 앞으로 올래?"
"뭐라구?"
"유광사 산부인과 앞으로 오라구."
너가 태어나고 내가 태어난 그 산부인과다.
우린 같은 산부인과에서 서로 다른 날짜, 그러나 같은 시각에 태어났었다.
"사, 산부인과?"
"그래. 이유는 묻지말고 거기로 와. 그럼 끊는다."
떨렸던 곤지의 목소리.
넌 지금쯤 온갖 잡생각에 두려움을 떨겠지.
'설마 내가 아기를 부양해야 하는 아빠가 되는 건가?'
하고 말이야.
너는 내가 임신이라는 걸 알면 중절하라고 할테지?
중절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고 하겠지?
그럼 난 너가 중절하라고 했다는 핑계로 아기를 지우겠지?
...그건 너무 싫어.
그건 명백한 살인이야..살인이라구..
내 뱃속의 핏덩이를 어떻게 없애, 어떻게 지워, 어떻게 떼어내!
"이민, 빨리 와서 밥 먹어."
신륜재는 내가 핸드폰을 다시 핸드백에 넣었을 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륜재."
"왜?"
"...미안해. 하지만 어떤 것이라도 내 선택에 후회가 없길 빌어줘."
너를 택하겠는가,
아님 아기를 택하겠는가.
이건 내게 찾아온 위기의 중요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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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조심하세요! 감기때문에 고생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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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 중편 ]
너는 나의 피피새 :42:
윤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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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18 18:4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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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헉 감기조심하세요. 일교차가 커서 다들 감기때문에 난리네요. 님 힘내시구요 담편도 기대할께요~
이런이런.....ㅠㅠㅠㅠ마음이 아프네요..둘이 사랑 하는데 다른 아이을 가졌으니원....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