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 이인주
당신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길이 있다
바늘구멍에서 시작된
심방을 엿보는 각방
구멍은 소문이라는 배율을 낳고
구멍은 자해라는 무덤을 낳고
주둥이 터진 말이 밑 빠진 독과 등가일 때
고독은 늙어간다 오독으로 불어난 허기가
굴참나무 가지 끝 하늘마당에 걸리면
온갖 별들이 공중돌기를 한다
질시와 편견 사이 나무를 흔든다
빠지면 죽는 절구통인 줄 모르고
알몸으로 뛰어내리는
도토리
그 무구를 흠모라 부르는가
당신도 견디고 나도 견디는
서로 놀란 등을 맞대고
깎고 또 깎아 만드는 자수정
가장 깊은 밤의 광채를 ,
나는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길이 있다
- <애지> 2020년 겨울호
* 이인주 시인
1965년 경북 칠곡 출생
2003년 불교신문신춘문예 당선.
2006년 『서정시학』 신인상
시집 『초충도』 『백매도』
신라문학대상, 평사리문학대상, 목포문학상 수상.
대구 정화여고 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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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행의 ‘당신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길이 있다’ 로 시작된 시는 마지막 행의 ‘나는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길이 있다’로 마무리되고 있다.
결국 너무 잘 알지만 전혀 모르는 ‘심방을 엿보는 각방’인 인간사에 대한 깊은 사유다.
시인의 표현대로 질시와 편견, 소문과 자해, 온갖 별들이 공중돌기 하는 생, 무엇이 옳고 그르다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깊이를 더하는 사유 깊은 다독임이다.
인간이 현재를 넘어서 미래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던지는 실존의 방식으로써 기투(企投)는 시인의 시로 드러나고 나의 선택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침을 인식함으로써 언어의 미사여구를 빼고 명료하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언어구사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주둥이 터진 말이 밑 빠진 독과 등가일 때
고독은 늙어간다 오독으로 불어난 허기가
굴참나무 가지 끝 하늘마당에 걸리면
온갖 별들이 공중돌기를 한다
질시와 편견 사이 나무를 흔든다
빠지면 죽는 절구통인 줄 모르고
알몸으로 뛰어내리는
도토리-중략
빠지면 죽는 절구통인 줄 모르고 알몸으로 뛰어내리는 도토리!는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너를 모르고 너는 나를 모르고 우린 우릴 알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빠지면 죽는 절구통에 빠진 도토리! 고만고만한 키만 재다가 생을 허비할지도 모르겠다.
- 이 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