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부서 발령 뒤 정신과 진료기록
'머릿속 하얗다' 업무부담 호소해와
사망 전날엔 '어찌해얄지 모르겠어'
'마음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남예산경찰서 '고아무개(28) 경사가
생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흔적이 담긴 정신과 진료기록부가 나왔다.
서울 관악서, 동작서 등에서 과로를 호소한 경찰의 죽음이 잇따른 가운데, 고 경사의 죽음 배경에도 과중한 업무' 부담이
있었다는 정황이 짙어진 것이다.
고 경사 유가족이 1일 한겨래에 전한 고 경사의 정신과 진료기록부와 심리평가 보고서를 보면,
고 경사는 지난 4월11일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우울, 감정 조절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통 여덟차례 진료를 받았다.
진료 과정에서 고 경사는 업무 부담을 설명하며 '엄청 스트레스받고 마릿속이 새하얘지고', '숨 가빠지고' 등의
표현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고 경사의 휴대전화에는 이번 인사 떄 부서를 옮기고 싶다'고 상사에게 요청하는 내용의 메모도 저장돼 있다.
지난해 9월 건강검진에서 우울증 관련 '해당 없음' 체크가 돼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 경사의 우울 증세는 올해 들어 예산서 경비안보과로 발령되면서 시작된 것이라는 게 유족 설명이다.
실제 고 경사 근무 당시 예산서 경비안보과의 경우 업무를 맡은 팀원이 2명에 불과했지만
대통령 방문 경호, 국회의원 선거, 장마 대비 등 과중한 업무가 잇따라 주어졌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과 7월 인근지역을 방문했는데 고 경사 또한 대통령 경호 업무에 투입됐다.
고 경사는 지난 4월 총선 떄는 연이은 정치인 피습 사건 여파로 후보자 신변 안전을 직간접적으로 살펴야 했고,
최근 집중호우 때는 밤낮없이 지하차도의 안전이나 댐의 방류량 등을 체크하는 업무까지 했다.
고 경사는 목숨을 잃기 전날 밤 형과 통화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형은 휴직하고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유했지만 '말이 가닿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동생한테 경찰은 오랜 꿈이었어요.
이겨내려고 발버둥 쳐봤는데 결론은 '모르겠다'는 거였더라고요.
끔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형은 세상을 떠난 동생이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김가윤.고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