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무기와 미래 전쟁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승자-AR-15 계열 자동소총
서유럽 국가 국방예산 대폭 삭감
단일무기 대량생산체계 불가능해져
9·11테러 기점 보조장비 장착 유행
피카티니 레일 적용 다양한 변화 발전
각각의 부품만으로 자동소총 완성
급변하는 미래 안보환경에 최적화
현대 무기체계의 특징 중 하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급변하는 전장 환경으로 현대 무기체계 역시 지속적인 성능 개량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변화로 인해 과거와 같은 단일 무기의 대량생산은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도 서방세계 군용 및 민수용 총기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자동소총(Assault Rifle)이 있다. 바로 미국의 유진 스토너(Eugene Morrison Stoner)가 설계하고 수많은 파생형으로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AR-15 계열(군용 M16/M4 계열) 자동소총들이다.
군축의 나비효과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AR-15 계열 자동소총은 미군을 위한 평범한 자동소총 혹은 우방국에 무상으로 제공 가능한 수많은 군사원조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동서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군용 자동소총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다종다양한 자동소총이 등장해 차세대 보병 소총의 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 이어져 세계 각국은 21세기 미래형 자동소총의 개발을 계속했고 FN F2000이나 H&K G36, CZ CZ805 등 혁신적 개념이 접목된 수많은 차세대 소총이 등장해 우수한 성능을 과시했다. 하지만 XM7으로 명명된 미 육군의 차세대 보병화기가 실전 배치되고 있는 2023년 현재도 AR-15 계열 자동소총은 서방세계 군용 및 민수용 총기 시장에서 절대적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서방세계 특히 나토(NATO)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의 군축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방세계 국가들은 상비군 규모를 감축하고 국방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새로운 보병 화기에 대한 필요성과 획득 규모가 감소하면서 생산단가는 급등했고 결국 납품가격 상승이 또다시 획득 규모 감소를 불러오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다음은 수많은 회사가 앞다퉈 AR-15 계열 자동소총을 생산해 그 어느 총기와도 비교 불가능한 규모의 경제가 완성됐다는 것이다.
신의 한 수, 레일시스템
실제로 수많은 파생형의 등장과 다양성은 AR-15 계열 자동소총이 서방세계 군용 및 민수용 총기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여기에 더해 AR-15 계열 자동소총과 RIS(Rail Interface System)로 불리는 금속제 총열 덮개의 결합은 동시대 다른 우수한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절대 강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이후 다양한 광학장비의 등장은 주야간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이제 병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9·11 테러를 기점으로 다양한 보조장비들을 총기에 장착하려는 시도가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하나의 유행이 된다.
테러와의 전쟁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장병들에게 다양한 광학장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됐고, 이를 하나의 규격으로 통일하자는 요구가 특수부대와 야전 전투부대를 중심으로 높아졌다. 미 육군은 미국 뉴저지주에 소재한 피카티니 조병창에서 통일된 규격의 표준장착 마운트를 개발해 1995년 채택하는데, 이것이 바로 피카티니 레일이다.
미군 제식 명칭 MIL-STD-1913, 나토 제식 명칭 STANAG 2324의 피카티니 레일은 총기에 각종 라이트, 조준경, 야간투시경 같은 광학기기나 보조 조준장치, 양각대 등의 장비 등을 손쉽게 부착, 고정할 수 있도록 만든 표준 고정대다. 최초 등장한 RIS는 알루미늄 경합금에 속이 비어 있고 상하좌우 4면에 피카티니 레일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RIS는 보다 다양한 형태에, 피카티니 레일 위치도 사용자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등 다양한 개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피카티니 레일이 적용된 RIS는 민간분야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수많은 광학기기와 보조 아이템이 다퉈 등장하기 시작했고 RIS 자체도 다양한 디자인과 형태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일례로 2007년 미국의 총기 부속품 생산회사인 맥풀(Megpul)이 독자 개발한 MOE(Magpul Original Equipment)를 2014년 개량한 M-LOK(Modular Lock)가 대표적이다.
RIS와 결합한 AR-15의 독주
그 결과 201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세계 주요 총기 제작사들이 피카티니 레일이 적용된 AR-15 계열 자동소총을 생산하게 됐다. 최초 군용 M16 자동소총을 미군에 납품한 콜트(Colt)를 비롯해 스미스&웨슨(S&W), 레밍턴(Remington Arms), 부시마스터(Bushmaster), 스텀 루거(Sturm, Ruger) 등 미국 내 주요 총기 제작사 대부분이 AR-15 계열 자동소총 혹은 그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소음기를 주로 생산하는 AAC(Advanced Armament Corp)의 허니 배저(Honey Badger)나 각종 총기류 부속과 옵션을 생산하는 맥풀의 ACR(Adaptive Combat Rifle), K.A.C의 PDW 등과 같이 기존 AR-15 계열 자동소총의 외형 혹은 성능을 개량한 형태의 자동소총들이 다양한 업체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총기 제작사들 역시 AR-15 계열 자동소총이나 그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베레타의 REC7, 스위스 시그사우어의 SIG516, 독일 H&K사의 HK416, HK417 계열, UAE 카라칼(CARACAL)의 CAR816 등이 있으며 AK-47로 유명한 러시아의 칼라시니코프와 중국의 노린코(NORINCO, 중국북방공업의 약자로 중국 최대 군산복합업체)조차도 AR-15 계열 자동소총을 생산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지난 2017년, 반군과 교전 중인 필리핀 정부에 무상으로 군사원조를 하면서 중국제 AK 자동소총이 아닌, 미국제 M4 자동소총과 똑같이 생긴 QA-A5 자동소총을 대량으로 제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동소총의 미래와 AR-15
과거 세계 각국의 군대는 ‘군의 요구에 최적화된, 높은 완성도를 갖춘, 대량생산된 무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군의 까다로운 입맛에 최적화된 무기를 정해진 기한 내에 개발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오랜 개발 기간과 높은 개발 비용, 그리고 시대에 뒤처진 무기의 양산이라는 부작용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여기에 동서냉전의 종식과 저강도 분쟁이라는 새로운 안보환경은 보병 화기의 대량 획득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재는 급변하는 안보환경으로 인해 ‘자유로운 조합으로 다양한 상황에 대응 가능하고 소량 다품종 생산이 가능한 무기’가 더욱 주목받는 추세다.
그리고 AR-15 계열 자동소총은 앞서 언급한, 급변하는 미래 안보환경에 최적화된 무기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처음부터 모든 성공요소를 고려한 것이 아닌, 30년 이상 끊임없는 개량과 변화의 결과를 통해 거둔 결과이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극단적인 예로 이제 군 혹은 민간의 사용자는 자신의 입맛이나 요구조건에 맞춰 각각의 부품만으로도 AR-15 계열 자동소총을 완성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옵션이 존재하는지 파악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부품이 세계 각국의 주요 총기회사에서 생산되고 있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부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차세대 소총들조차도 AR-15 계열 자동소총의 외형이나 작동방식을 답습하거나 비슷하게 모방하는 추세다.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과 신기술이 접목된 AR-15 계열 자동소총의 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