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3 표절과 그 두둔 세력
복수의 증언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니까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랑의교회 목회자로
말미암아 제기된 표절 시비는 이제 그 불똥이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번지고 있다. 본인이 그 표절을 시인하였다고 하니 진실
게임에서는 진일보한 상태지만, 그 여파는 아프리카와 LA로 튀고 있어서 것잡을 수 없다. 목회자에게 학위가 그것도 두 개씩이나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은 이런 상황이라면 접는 것이 좋다. 문제는 학위 다음이다. 표절이 사실이라면 본인이 사퇴하겠다고 한 약속은
온데 간데 없고, 오히려 표절행위를 두둔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교회,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서 그런 두둔세력이 결집되고 있다고 하니,
한 때 복음의 순수성을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도 되듯이 주장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과시했던 이들에게는 청천의 벽력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표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측근에게 이번 문제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관여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전에 사랑의교회 건축문제로 성명서를 발표할 때 앞장 선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표절 문제에 다시 관여함으로 그 교회 문제에 유독
목을 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표절 문제는 단순하고 명백해서 교회건축 문제와는 뒤섞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되며, 따라서 교회를 어려운 수렁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당자 스스로가 상식적인 선에서 결단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그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존재는 외부의 어떠한 달콤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의 결단이 섬기는 교회는 물론 수렁에 빠져 들고 있는 한국 교회에 참신한 기풍을 불어넣는 길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마저 갖고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결단하지 않을 경우, 그 동안 복음적 정통과 도덕적 우위를 ‘과시’해 온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변명으로 일관한 본인은, 박사학위 논문을 제대로 써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식밖의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켰다. 원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했다는 변명부터가 꼬이는 시초다. 논문을 인용하는 데에 왜 원저자의 허락이 필요한가.
인용할 때는 정확하게 주(註)만 달아주면 된다. 이건 국내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통째 베껴놓고 레퍼런스마저 붙이지 않는
‘해적행위’와는 다르다. 또 논문을 수정했다면서 이미 사망한 논문심사자의 서명을 붙인 것은 무슨 해괴한 노릇인가. 이런 과정들은
학위논문의 생산과정을 정확하게 지실하는 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치명적 실수다. 거기에다 최근 당해 대학교가 표절을 인정하고도
학위논문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한 데 대해서는 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듯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을 보면 논문심사 때와 같은
형식적 절차는 밟은 것 같다. 그러나 표절을 인정하고도 그 논문의 창조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학위를 취소하지 않겠다는 말은, 그
대학에서 학위를 받으신 다른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의구심을 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그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동창들이 학교 당국과 협의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가 있다.
표절이 인정된다면 학문적인 ‘도둑질’을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학위취소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표절을
인정했다는 것은 논문의 첫 심사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럴 때는 자기의 살을 베는 듯한 아픔으로 학위
취소를 결단해야 한다. 그만큼 박사학위 논문에는 자기 학교의 명예가 걸려 있고, 첫 심사에서 표절을 걸러내지 못한 자기의 무능까지
엄격한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박사학위논문은 그 논문의 내용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갖는 도덕적 권위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표절’이라는 도덕적 하자가 발견될 경우에는 그 하나만으로도,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학위취소를 감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국내의 웬만한 박사학위 논문의 규정에도 뒷날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학위를 취소한다는
단서를 달아놓고 있다. 그 대학에는 그런 단서도 없었던 것일까.
표절 문제가 등장하고 난 뒤에 본인의 분명하지
못한 태도는 물론이고 그 교회 당회가 취한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표절이 밝혀졌으니 본인이 약속한 대로 약속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회는 교회가 처한 교회당 건립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런 때야말로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물어야 한다. 목회자들이 잘 사용하는
‘하나님께 맡기자’는 외침은 이런 때를 위한 것이다. 그 교회가 금지옥엽처럼 존경했던 전임교역자의 뜻이 이런 때에 어땠을까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래, 전임교역자 같았으면 이런 때에 어떤 답을 냈을까.
최근에는 어느 신학교의
교수들이 표절 행위를 두둔 내지는 두호하는 듯한 의견을 개별적으로 표명했단다. 그러다가 집단적 의사표명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단다. 김 모, 박 모 교수 같은, 평소 그분들의 인격으로 봐서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행동들이어서 처음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그들의 학자적 양심은 이런 문제에는 통용되지 않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학자적 지성이
표절 두호에 이용되고 있다면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만들었다”(행 26:24)는 비난 또한 면치 못할 것이다.
표절 두호 세력에는 새로운 목회 윤리 표방에 관여한 인사나 단체도 관련되어 있다. 항간에는 그런 단체들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를
사랑의교회로부터 받는 이해관계와 관련시키기도 하는데, 사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회윤리 제정 멤버였던 이 모 목사는
언론을 통해 표절을 옹호하고 있어서 그의 과거의 행적에 비춰볼 때 참으로 딱하게 보인다. 더구나 표절 논문이 교수채용 등
학문활동에 활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옹호하는 것은 해괴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만에 하나, 이런 논리를 가진 이들 때문에
한목협에서 표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이는 한목협이 고 옥한흠 목사 이래 지금까지 가졌던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나친 것일까.
이번 표절 사건은 한국 교회의 거짓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표절행위와 그 두둔세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사탄을 신바람나게 하고 있을까. 두호하는
이들을 보면서 미가야 선지자가 언급한 ‘거짓말하는 영’(왕상 22:22)을 떠올리게 한다.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이번 사건을
뭉개고 두호한다면, 한국 교회의 거짓과 불신앙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걸핏하면 “모든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목회자들의 외침이 이런 때만큼 절실할 때가 없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이런 때에는 그런 외침이 왜 숨을 죽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사건을 뭉개버리려는 이들은 인간의 절망 위에서, 인간적 대안없음 위에서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표절 당자도, 교회 당회도, 두둔세력으로 등장하는 교수군도, 그리고 한목협의 어정쩡한
지도자들도 인간의 판단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 결단해야 한다. 인간적 판단력과 통찰력 밖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그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과거 한국 장로교회는 여러 차례 분열의
경험을 갖고 있다. 신사참배 회개문제는 1952년 고신의 분열을 가져왔고, 신학상의 갈등은 1953년 기장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WCC 문제 등으로 1959년 통합과 합동이 분열되었다. 1969년 삼선개헌 문제로 한국 교회는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북한돕기를 계기로 1993년 남북나눔운동이 결성되는 등, 보수와 진보가 손을 잡는 기적도 있었다. 왜 이 말을
하는가. 표절 문제가 두둔세력과 비판세력으로 나눠져 계속 쟁론을 벌이게 되면, 사랑의교회는 물론 한국 교회의 소위 복음주의 진영도
분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가속화되어가는 예감은 필자만의 것일까.
지금은 표절시비의
한가운데 서 있는 당사자가 교회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자신을 두둔하는 세력 뒤에 숨어
있어서는 안된다. 자신을 잘못된 판단으로 유도하는 ‘아부세력’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뒤에서 이들을 조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된다. 이때야말로 자신을 내려놓고 결단해야 할 때다.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요”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요”라고 외쳤던
자신의 말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다.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 왔던 전임 목회자의 뜻이, 이런 상황을 맞았을 때 과연
어떻게 나타났을까를 재삼 숙고하면서,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 전체에 정의를 세우고 화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결단해야 한다. 두둔
세력 또한 그의 이런 용기있는 결단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그렇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두둔 세력 또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음을 직시하자.
출처 ;
가장 비겁한 오목사도 그의 두둔 세력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겁니다.
한국 교회가 흔들리고 선한 목회자까지도 목회하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오목사 한 사람으로 많은 성도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오목사로 인해 초신자들이 하나님을 떠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오목사만 태연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지요.
참 해괴망측한 일입니다.
어디 사랑의교회 문제로만 보시는지요 한국교회 의 전체적인 문제이지요 그래도 깨어있다는 교회가 이정도이면 다른 교회들은 어떨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주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거짓과 더러운 모든것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시고 정화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집사님도 성도님도 주님편 에서서 선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하겠습니다
ㅁㄱㅂ 에서 이런 ***같은 글을 가지고 장로님 글을 비판하고 있더군요.
이 글을 보니 이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 성도들이 불쌍해지더군요. 차라리 ㅁㄱㅂ에서 온건하게 자기 주장을 하시는 분들 글 읽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http://www.kscoramdeo.com/bbs/list.html?table=bbs_4&idxno=3059&page=1&total=139&sc_area=&sc_word=
학자적 양심과 정의감이 돋보이는 글이군요. 사회 정의 표방에 앞장서야하는 종교인, 그것도 지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하고도 표절이 아니라고 고집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내가 표절을 했다면 사임하겠다고 하고서 표절이 밝혀져도 사임을 하지 않는 것은 시간만 지나갔다고 해서 무마되는 것이 아니다. 오정현 목사가 발행인인 Christianity Today에 보니 이런 말이 있다. "혀는 내가 다스릴 수 있지만, 입 밖에 나온 말은 나를 다스린다" 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수도 없는 거짓말을 할테니 말이다.
원칙에 충실한 말씀입니다.
혼란스러울땐 원칙으로 돌아 가야 실마리가 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