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취미(페인팅메이트) 24-3, 아프니까 청춘이다
“악!”
순식간에 사람들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카페에 흐르던 음악이 멈춘 것만 같다.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다.
다행히 수습 아닌 수습은 내 몫이 아니다.
페인팅메이트 사람들 웃음소리가 멈추었던 시간에 균열을 낸다.
대화방에서 장소가 공지되었다.
충혼탑 앞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다.
거창청년사이 장소 대관에 사정이 있는지, 의도해서 장소를 옮기는 건지, 근래 다양한 데서 모이는 듯하다.
가는 길에 다이소에 들렀다.
지난번 의논하며 전성훈 씨가 그림을 배워 보면 좋겠다고 했다.
강서희 회장님과 강보배 회원님이 밑그림에 색칠하며 붓질 익히는 것부터 돕기로 했다.
다이소에 가면 간단하게 살 수 있는 재료가 많다고 들어서 왔는데,
우리가 못 찾는 건지 다른 매장에 있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전성훈 씨가 일부러 스마트폰도 집에 두고 온 터라 아쉬운 대로 뭐라도 준비해 가면 좋겠다고 권했다.
그래서 고른 게 양모 펠트였다.
여러 가지 중에 고민 없이 하나를 골랐다.
전성훈 씨가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회원들 있는 데 가서 인사한다.
오늘 취미의 밤은 자주 보던 강서희 회장님, 강보배 신용석 회원님,
전성훈 씨와 강서희 회장님 동생 강희윤 회원님까지 함께한다.
마침 회장님도 오늘 양모 펠트를 준비해 와서 전성훈 씨가 옆에 앉아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듣는다.
양모 덩어리를 적당한 크기로 말아 바늘로 콕콕 찔러 가며 모양을 만드는데, 찌르면 찌를수록 작고 단단해진다.
엉겁결에 준비한 것이어서 전성훈 씨가 관심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몇 분 만에 명백한 오인으로 밝혀졌다.
신나게 오가던 바늘이 손가락 끝을 찔러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한 몸에 주목받아 주춤하기 전까지는.
잘하고 있으니 계속해 보라 했다.
회원들 응원에 다시 바늘을 잡았다 놓기를 거듭했다.
전성훈 씨가 다른 회원이 하는 활동을 구경하거나 창밖을 볼 때, 바늘은 내 손에 쥐여 있었다.
그사이 전성훈 씨가 만드는 게 곰인지 다람쥐인지 저마다 주장이 오갔다.
쿼카라는 동물인 것으로 얼추 합의되었지만, 전성훈 씨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곰. 곰이요, 곰. 곰돌이.”
페인팅메이트 모임에 동행하기까지 몇 번이나 망설였다.
얼른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늘어져 눕고 싶었다.
고민 끝에 오늘은 사회사업가로서 정체성이 직장인의 그것을 압도했다.
그런데 따라가니 회원들과 있는 전성훈 씨를 보는 게 재밌었다.
늘 그렇지만 동행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카페 마감을 알리는 직원 안내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성훈 씨 귀가를 도우니 오후 열한 시가 다 되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했다. 어쩐지 낯설지 않다.
1.
“보성 씨, 잘했어요. 앞으로 계속 나와서 이렇게 합시다. 알겠죠?”
“네!”
회장님이 벤치에서 물을 따라주며 보성 씨에게 말했더니 힘차게 대답했다. 보성 씨도 동호회 활동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운동은 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즐기면서 재밌게 하면 돼요. 부담 갖지 말고 시간 될 때 나와서 같이 합시다. 조심히 가요.”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스포츠파크를 나서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오늘 마라톤 했다.”
“보성이 잘 지냈나? 뭐? 많이 먹었다고?”
“아니, 마라톤 했다고 마라톤.”
보성 씨가 답답해하며 설명할 때도 다 있다. 동호회 사람들의 환영, 아버지의 응원을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보성 씨의 거창마라톤클럽 첫 활동, 좋은 출발 좋은 시작이다. 보성 씨, 우리 끝까지 달려봅시다!
『마라톤 갑니다(개정판)』 36쪽, ‘거창마라톤클럽 첫 활동’(2019년 5월 16일 목요일) 발췌
2.
“많이 따뜻해져서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녁이니까 긴팔, 긴바지가 낫지 않을까요? 보성 씨는 추위를 많이 타니까 그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니, 뭐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오늘 춥다’ 이 말입니까? 내 말 맞습니까?”
“아니요, 아니요. 오늘 춥다는 게 아니라 보성 씨가 추위를 많이 탄다고요. 조금만 쌀쌀해도 춥다 그러잖아요.”
“아, 그래요? 추워요. 춥다고요.”
여차여차 오늘 입을 운동복을 골랐다. 저녁 날씨를 모르는 게 오랫동안 그 시간에 외출하지 못한 이유도 있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동안 동호회 운동에 꼬박꼬박 나가면서 이보성 씨에게 좋다고 생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는데…, 저녁 시간 외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다시 열심히 해 보자는 결심을 한다.
『마라톤 갑니다(개정판)』 200쪽, ‘일 년 반 만에 화달’(2022년 5월 3일 화요일) 발췌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정진호
새로운 활동도 회원들과 함께하니 감사합니다. 신아름
밤 열한 시가 넘어 퇴근하는 정진호 선생님의 마음과 그 풍경을 헤아려 봅니다. 기록의 끝은 사회사업가의 수고와 보람으로 가득하네요. 새벽 운동을 나서기 전 이부자리를 걷고 옷을 갈아입을 때의 천근만근 무거운 몸과 유혹 가득한 마음을 떨치듯 나서는 선생님의 몸과 마음도 살핍니다. 고마워요. 덕분에 성훈 씨 삶이 충만합니다. 월평
전성훈, 취미(페인팅메이트) 24-1, 반은 칠하고, 반은 지금처럼
전성훈, 취미(페인팅메이트) 24-2, 지속 가능한 출석
첫댓글 글을 다 읽고 '아, 제목이 뭐였지?' 하고 다시 보니 그 제목이 새롭게 보여요. 제가 알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보다 훨씬 청춘 같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 아무도 없는 빈 교실을 나와 교정을 거닐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무언가가 있죠. 하루를 충만히 살았다는 느낌이랄까? 성훈 씨를 데려다주고 월평을 나오며 정진호 선생님도 그런 비슷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설사회사업가가 누릴 수 있는 복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