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구시합 중계를 보다가 몸이 찌푸퉁하여 벌떡 일어나 뒷산 산책로 쉼터까지 와서 가뿐 숨을 가라앉히고 벤치에 앉는다.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시나브로 흘러간다. 그냥 멍하니 구름을 바라본다. 머리에 가득하던 잡념이 사라진다. 이래서 산을 찾고 숲을 찾아온다. 숲속은 심신의 보약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녹색의 향연이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엔 노랗고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그림을 그리겠지. 흰 구름이 저만치서 자리를 옮긴다. 낙엽이 한 잎 두 잎 계단에 포르르 떨어져 내린다.
아직은 초록이 좋다. 녹엽이 좋다. 벤치에 앉아서 구름을 보고 녹엽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 진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집을 나서 숲속을 거닌다. 내 속이 내 마음이 푸르게 되어간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간다. 젊은 아가씨가 내가 무얼 쓰고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까닥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흰구름이 어느 순간 시커먼 먹구름이 되어 간다. 구름의 변화가 개였다 맑아졌다 우울해 졌다 하는 인간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저녁 까마귀가 까악 까악 울고 간다.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는건가 ?
천사같은 친구와 서울역에서 만나 점심을 하고 KTX 내려가는 계단에 퍼지고 앉아서 여러가지 환담을 나누다가 마산으로 내려갔는데 이 친구를 만나면 내 마음이 조금은 순수해 지는 것 같다. 가끔 이 친구를 만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마음은 이 친구에 비해 때가 많이 묻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 친구의 손바닥만한 마산 원룸을 방문 하룻밤을 함께 자면서 그 순수함을 좀 배워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나뭇잎과 풀잎들이 서로 서로 부딪치며 내는 바스락거림에 귀를 기울이는것도 단풍이 들고 낙엽들이 떨어져 내리고 하늘에서 하늘하늘 함박눈이 내리면 내년 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세월의 법칙이다. 24.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