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深不知處
2018. 1. 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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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제일중학교 뒷산이 코끼리 형상을 닮았대서 코끼리산이다. 1987년 제일중학교에서 평교사회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오래오래 우정을 변치 말자고 만든 계모임이 ‘코끼리떼’다.
그러니까 벌써 30년 전 일이로구나. 이제는 모두들 퇴직을 하고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도 몇 안 된다. 모두들 머리에 서리가 허옇게 내려앉았다.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디로 갔느냐.
2018년 1월 15일 아침, 무주로 놀러가기로 한 날, 나는 문화방송국 앞에서 코끼리 회원이 몰고 올 렌터카를 기다린다.
문화방송 노조에서 내건 현수막이 눈에 띈다. 서울은 사장이 물러났는데 목포는 아직도 사장이 물러나지 않았단다.
문화방송 길 건너 상가 건물들. 지금은 팔아버렸지만 삼십 몇 년 전에는 저 건물 중 하나가 우리 처남 건물이었다. 지금의 문화방송국 자리가 그 시절에는 목포시외버스공용정류장이었다.
점심시간이면 70평이 넘는 처남네 짜장면 집은 발 비빌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식당 아래 지하에서 다방을 하던 여주인은 이렇게 말했더란다.
“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 줄 몰랐어요.”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 부자가 되는 비결은 번 돈을 헤프게 쓰지 않고 그냥 꽉 쥐고 있는 것이다. 저 건물에서 식당 다방 당구장을 하던 주인들은 그 돈들을 잘 꽉 쥐고 간수를 잘 했을까.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 몰라도 번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번 돈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경우도 없지 않으리라.
시간도 돈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한테 청춘이 주어졌을 때에는 그것이 아까운 줄도, 소중한 줄도 모르고, 헤프디헤프게 펑펑 써버리다가, 늘그막에야 뒤돌아보면서 안타까워 입맛을 쩝쩝 다신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다. 후회는 늘 늦는 법이렷다. 이제 얼마 많이 남지도 않은 인생, 슬슬 돌아다니며 산천경개 구경하고 맛있는 것들이나 먹어야 쓰겄다.
무안으로 향하는 서해안 고속도로, 며칠 전에 큰 눈이 내렸다. 여름 내내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워대던 배롱나무 가로수들이 발가벗은 채 흰 눈에 발이 시려 오들오들 떨고 서있다.
도래석에 둘러싸인 봉분도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저 아래 누워계신 양반들도 솔찬히 춥겄다. 영웅호걸도 절세미인도 한번 가기만 하면.......
함평 들녘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눈이 많이 내려야 풍년이 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닐 성싶다. 추울 때는 추워야하고 눈 내릴 때에는 내려야 병충해도 줄어들고 농사도 잘 될 것 같다.
함평 나비 휴게소. 여행이 언제가 즐겁냐고? 떠날라고 배낭 챙길 때가 가장 가슴 설레고 즐겁다. 휴게소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실 때가 가장 삶의 무게가 가볍다.
전선줄에 앉아 있는 새들아, 눈 공기 속에서 얼마나 춥냐. 나뿐 아니라 니기들도 이 외롭고 쓸쓸한 겨울을 나기가 무척이나 힘들겠구나.
목포 광주 사이에는 굴이 열다섯 군데 뚫려있다.
금성산 일대는 나주시에서도 가장 깊고 그윽한 곳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평생 한 번도 구경하기 어려운 구석지 땅이었지만 이제는 고속도로가 뚫려서 예사롭게 지나다닌다.
목포 패거리는 광주 동성교회로 가서 광주 패거리와 만난다. 동성교회의 장로인 오 선생은 칭송을 받아 마땅한 인생행로를 걸어왔다. 수십 년간 교사로 후학을 지도했고, 목포시립교향악단에서 꽤 오래 비올라를 연주했고, 골수이식까지 한 사모님을 헌신적으로 오랫동안 수발을 들었다. 나는 교회를 안 다니니까 잘 모르지만 장로도 아무나 그냥 맡을 수 있는 직책은 아니렷다.
뭐니뭐니해도 담양을 대표하는 길은 메타세쿼이아길이다.
1946년 《중국지질학회지》에 기적의 나무 ‘살아 있는 메타세쿼이아’가 세상에 처음 확정 보고되었다. 벌써 200~300만 년 전 지구상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았던 메타세쿼이아가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세계의 식물학자들은 커다란 기쁨과 충격을 받았더란다.
중국 이름은 수삼(水衫 - 물가에서 잘 자라는 삼나무)이라 한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우리가 점심 먹으러 창평 장터 들른 날이 바로 오일장날이었다. 우리는 한가로이 꺼떡꺼떡 시장을 돌아보며 옛날 시골 장날이 얼마나 떠들썩하고 은성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 시장의 꽃은 나이롱 약장수였다. 시끌벅적한 약장수가 사라진 시장은 한정 없이 조용하고 쓸쓸했다.
우리는 창평 명물인 콩엿과 산자를 사서 나눠먹고 저녁에 술안주로 먹으려고 쥐포, 말린 홍합, 말린 새우도 샀다.
오 선생의 추천으로 찾아간 창평 시장의 황토방 국밥집. 가수 현미의 사진이 붙어 있다. 아마도 현미 씨가 텔레비전 나와서 소개했던가 보다.
국밥 맛이 기대만큼 좋았다. 먹고 나서 밖에 나와 누군가가 사장한테 맛은 좋았지만 요즘 요리 대세가 싱거움인데 조금 짜더라고 말하니까 사장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내가 안 짰다고, 새우젓 더 넣어서 먹었다니까 사장이 웃었다. 유 선생이 그래도 싱겁게 조리하라고, 짜게 먹는 사람들은 새우젓 더 쳐서 먹으면 된다고 매듭을 지었다.
지리산 휴게소. 그러고 보니 옛날 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 다니면서 남해 가는 길에 저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도 같다.
여행길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한량없이 들뜨고 신비롭고 신기한 느낌은 학생들이나 어른이나 똑같다. 역마살이 낀 나는 특히 더 여행의 순간순간들이 각별하게 행복하다.
눈 오는 날을 보았느냐 눈과 밭과
이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 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이제 아무것도 더는 소용없다 돌아설 수 없는 삶이
길 없이 내 앞에 가만히 놓인다 (김용택)
드디어 뾰족지붕이 이채로운 무주 리조트 관리사무소 도착.
리조트 진달래2동 6층의 안락한 특실로 들어갔다. 방이 세 개, 화장실이 두 개, 거실이 드넓은 특실. 보통은 27, 8만 원씩 줘야 하는데 주 선생 회원권으로 반값만 주었단다.
리조트에 여장을 풀고 당구장에 가서 두어 시간 놀다가 저녁 식사.
돼지고기 묵은지 찌개.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음식 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스키장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다음 모임은 군산 쪽 신시도에서 5월 15일쯤 만나기로.
간단한 회의 끝내고 즐거운 화투놀이. 개평을 주다 보면 따는 것도, 푸는 것도 별로 없다. 전에는 화투를 치지 않다가 늘그막에야 끼어들어 맹렬히 실력을 갈고 닦는 오 선생, 박 선생한테 깊이 감사말씀 드린다.
16일 오전 무주 스키장.
낙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노인들은 출입금지란다. 스키장에 못 들어가도 좋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만 보아도 짜릿짜릿 즐겁다. 어렸을 적 대나무로 만든 스키를 타고 비탈로 미끄러져 내리던 느낌을 아직도 내 몸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곤도라를 타고 올라간 곳.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안 보이고, 는개비가 질질 흘러 옷이 축축하게 젖는다.
회원들 중 몇몇은 용감하게 향적봉으로 올라가고 몇몇은 곤도라 타는 곳언저리에서 얼쩡거린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무슨 산악회에서는 눈길을 뚫고 산을 타려는 모양이다.
귀로에 지리산 휴게소에서 점심을 때웠다. 나는 유부통밀우동.
춘향의 고향 남원을 소개하는 우스꽝스러운 인형들이 눈길을 끌었다.
목포 가는 길, 산에는 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길에는 가랑비가 질금질금 내렸다. 나도 이제 늙었으니 구름 속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싶었다.
松下問童子 (소나무 아래 동자한테 물었더니)
言師採藥去 (답하기를, 스승께서는 약초 캐러 가셨습니다)
只在此山中 (지금 저 산중에 계시온데)
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알 수 없나이다) - 끝 -
첫댓글 십 수년 전 순천 해직가족들과 지금 선생님의 코스를 놀러갔었죠. 생전 처음으로 그 긴 스키를 한 번 신었는데 아내는 아예 입구 쪽 옴팡진 귀퉁이에 미끄러져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깟 것을 와 기를 쓰고 배우는지 여행 후 한 일주일을 간병하였어요.^^! 놀이는 바로 어젠데 세월은 이다지도 멀고 무심하군요...
마음은 집시님... 넘넘 오랫만이에요. 건강은 좋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