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宗敎가 아니라 眞理가 인간을 구원한다
조선.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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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깨달음 있어야 믿음 얻고 믿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법
정말 알고 깨달아 믿는 바를 말하는 이에게 귀 기울이고
거짓·탐욕 가득한 직업 말꾼을 가까이 두어선 안 될 일이니
때가 되니 봄이 오고 봄이 오니 어느새 산수유와 매화 향기가 천지에 진동한다. 이제 부활절이 되고 그러고는 석가탄신일이 온다.
몇 년 전 석가탄신일을 며칠 앞두고 내장사를 찾았다. 부임인사 겸 석가 탄신을 경축하는 뜻으로 등(燈)이나 하나 켜드리기 위해서였다. 주지 스님과 처음 만나는지라 나도 우리 평신도 회장을 대동했고 그쪽도 그쪽 처사님 한 분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쪽 처사님께서 불쑥 민감한 말씀을 꺼내는 것이었다.
"신부님! 그리스도교에서는 믿음으로 구원된다 하지만 우리 불교에서는 깨달음으로 구원된다고 믿습니다. 하여 저는 미천하나마 깨달아 구원에 이르고자 불자(佛子)가 되었습니다."
'아니 누가 묻기나 했나! 실언하시는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아무 말도 듣지 않은 듯 넘기기에는 분위기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네 처사님. 그런데 처사님께서는 깨닫지 못한 걸 믿을 수 있나요?" 그러자 스님이 나섰다. "어허! 처사님은 괜한 말씀을… 자 드시죠" 하고 나무라자 그제야 제정신이 든 처사님이 "어어 이거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하며 사과하고 다시 좋은 분위기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주지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부님, 등보다는 석탄일 축하 현수막 하나 걸어 주시죠." "네! 문구를 내 맘대로 골라도 괜찮다면…" "아, 내용이야 신부님 마음대로 하시고요."
한참을 고민하는데 금방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렇게 하자고 했다. "깨달음의 기쁨이 온 누리에 충만하기를." 주지 스님도 매우 흡족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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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얼마 뒤 잘 아는 교우 한 분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신부님, 내장사에 현수막 걸어드렸지요? 일주문 앞에 턱 걸렸대요." "아, 그래요!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기는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예쁘게 봐 주셔서."
그리고 그해 겨울 성탄 때엔 절 쪽에서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며 큰 화분을 보내왔다. '깨달음의 기쁨이 온 누리에 충만하기를.' 이런 현수막이 석탄일에 산속 절이 아니라 성탄절에 도심 속 성당 앞에 붙었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요즘 신문에는 종교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자주 나온다. 참으로 답답하다. 어쩌다 우리가 이리되었는가. 세상을 걱정하며 종교가 생겼는데 반대로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으니.
문제는 '깨달음'이다. '믿음'이란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 믿자! 믿어야지! 믿어라! 믿어야 한다! … 아무리 다짐하고 결심해도 안 믿어지는 걸 어찌하란 말인가! 사랑해야 한다고 사랑해지던가! 믿어야 한다고 믿어지더란 말인가. 사람은 아는 만큼 믿을 수 있고, 믿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것을 어찌 믿고, 어찌 사랑할 수 있는가.
오래전 틈이 나서 어느 사찰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이 거닐던 주지 스님께 참 유치한 질문을 했다. "스님! 부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오?"
그러자 스님은 자신이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며 "신부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며 되물었다. "그거 휴대전화 아닙니까?" "맞습니다. 휴대전화입니다. 바로 그렇게, '이것이 휴대전화이다' 하고 아는 만큼 그렇게 '인간하처래하처거(人間何處來何處去·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것이 부처입니다."
순간 난 깨달았다. 그리고 참 행복했다. 지금도 그때 본 그 빛, 그 깨달음의 기쁨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참으로 개운하고 상쾌한 아침, 맑고 빛나는 아침이었다. 왜 하필 그날, 그 아침, 그 말이어야 했을까? 그동안 나는 불교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책들, 그리고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이 꽤 있다. 금강경, 반야심경, 육조단경, 법구경….
그런데 왜 그 스님의 한마디가 날 깨치게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스님은 알고 있었다. 그 스님은 깨달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있었다. 자신이 깨달아 알고 믿는 바를 자신의 언어로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은 내 마음을 비집고 내 머리를 꿰뚫어 빛 가운데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그리도 분별력이 없다는 말인가. 소위 진리(眞理)를 말한다는 사람들, 특히 직업적으로 말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그리도 모른다는 말인가. 그가 하는 말이 자신이 정말 알고 깨달아 믿는 바를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직업적으로 떠벌리고 있는지를 어찌 그리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그가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직업적으로 떠벌리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그냥 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이상도 하다.
더 이상 가까이하지 말라,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찬 직업 말꾼들과는. 종교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진리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지 그 어떤 종교도 종교 스스로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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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바다
“선생님, 도대체 우주의 빛viit이 뭡니까?” 하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원래의 ‘빛viit’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굳이 말로 표현해 보자면 ‘빛viit’이란 모든 우주만물을 움직이며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무한의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인간은 물론 지구와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원천적인 힘이며 빅뱅 이전의 무차원적인 에너지이다. 따라서 인간은 물론 우주만물은 이 에너지를 통해 삶을 부여 받았고 그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 ‘빛viit’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때로는 부정하기까지 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교만한 마음 때문이 아니가 한다. 즉 자신의 머리와 판단력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식별해나갈 수 있다는 엄청난 무지와 교만이 어두운 마음을 부르고 결국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같은 ‘빛viit’을 눈앞에 놓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며 살아왔다. 그 가운데에는 세상과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생명에 대한 의문, 보다 안락한 삶의 추구, 절대적 진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있는데 이 모두가 오랜 세월 쌓이고 체계화되면서 신앙이나 사상, 학문의 형태로 발전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에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귀의하여 무언가 높고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리에 이르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 진리라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 누구도 도달해본 적 없는 것을 놓고 저마다 자기 방식이 옳다, 그르다 하며 말을 늘어놓고 때로는 다투기까지 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맛이나 모양이 비슷한 초콜릿을 들고는 서로 자기 것이 가장 맛있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종교나 사상, 학문의 갈래는 그 뿌리가 결국 하나, 우리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 ‘빛viit’ 이다. 이 ‘빛viit’ 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매달려있는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무서운 생각의 틀은 원래의 순수함을 갉아먹고 인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구축해 놓은 학문과 사상, 종교라는 이름의 것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하고 수정되어져야 하는 대상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오직 하나, 모든 생명의 시작이며 끝인 동시에 완전한 에너지, 우리의 마음이 유래한 근원의 ‘빛viit’뿐이다. 마치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듯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앎 그리고 그 외 모든 학문이나 진리를 전부 포함하는 것이 우주마음의 ‘빛viit’이다.
따라서 ‘빛viit’을 앞에 두고 자신의 지식이나 사고,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여 고개를 돌리는 이들은 결국 인간의 유한함으로 무한한 우주 전체를 판단하려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리를 향한 인간의 노력과 그 결과물 전부를 부정 하자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이제 겨우 작은 실개천의 수준에 다다랐을 뿐이면서 큰 바다가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물줄기들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 오늘날의 종교, 사상, 학문과 같은 것들도 결국에는 거대한 원래의 진리, ‘빛viit’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
출처 : 물음표? 정광호 著 2005.07.20 초판 3쇄 P. 223~225 중
어둠을 밝혀 새로운 희망을 주는 힘
‘빛viit’은 이 어둠을 밝혀 새로운 희망을 주는 힘입니다. 한계와 어려움을 뛰어넘어
마음속 꿈을 이루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만드는,
근원의 마음에서 오는 최상의 순수 에너지입니다.
‘빛viit’은 인간이 인지하는 시공간의 개념을 초월합니다.
또한 종교적 이론이나 그 어떤 규율에 갇혀 있지도 않습니다.
만약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것일 뿐 우주마음의 것은 아닙니다.
‘빛viit’은 우리에게 무한의 차원으로 다가오기에
우리의 마음이 한계를 초월하여 ‘빛viit’과 함께하는 동안 그 변화 또한 무한으로 향합니다.
우리의 꿈,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한계와 고정관념 너머,
시공간과 종교를 초월하여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언젠가 과학 혹은 신학의 힘으로 빛의 실체가 밝혀지고
인간의 지적 능력을 통해 누구나 보편적으로 ‘빛viit’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 책은 그날을 준비하는 징검다리의 하나로 남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신
이어령 전 장관님의 얘기가 생각납니다.
출처 : 향기와 빛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정광호 著 2012.08.25. 초판 6쇄 P. 121 중
기차와소나무 - 이규석
기차가 서지않은 간이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남겨진 이야기만 뒹구는 역에 키작은 소나무 하나
낮은 귀를 열고서 살며시 턱을 고인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야기는 산이되고
우리들에게 버려진 추억들은 나무되어
기적 소리없는 아침이면 마주하고 노랠 부르네
마주보고 노랠 부르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첫댓글 빛과함께 온세상이 화합하고 밝게 웃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올수 있기를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종교적인 좋은 말씀과. 빛이란 모든 우주만물을 움직이며 끝도없고 시작도 없는 무한의 에너지이다 .라는 말씀 마음에 담습니다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깨달음의 기쁨이 온 누리에 충만하기를 !! 참 좋습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피어 오릅니다. 무한한 에너지 무차원적인 에너지 빛과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모든 학문이나 진리를 전부 포함하는 것이 우주마음의 빛 !! 입니다. ^♡^
힘찬 노래와 함께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좋은 글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서유종님 빛과함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서유종 님, 빛책 속의 명문장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오직 하나, 모든 생명의 시작이며 끝인 동시에 완전한 에너지, 우리의 마음이 유래한 근원의 ‘빛viit’뿐이다.>를
마음에 담습니다.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교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진리가 인간을 구언한다는 것...
영원불변의 진리,무한의 에너지, 우리의 마음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 빛이 어두운 세상을 환희 밝혀지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빛책 속의 명문장을 옮겨 주셔서 다시 한번 읽을수 있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생명의 시작이며 ...끝인 동시에 완전한 에너지 근원의 빛.....최상의 순수에너지 빛...
겸손하고도 진실한 마음으로 근원의 빛과 함께 합니다...감사합니다*~
서유종님, 생각하게하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빛을 알게 해주신 우주마음, 학회장님 고맙습니다
모든 강물이 흘러 흘러 바다에 모이듯이 모든종교의 끝은 같다고 감히 저는 얘기하고싶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하지만 답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어떤 말로도 빛을 정확하게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많지만 초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우주와 세상만물의 근원인 빛과 함께 합니다 감사합니다 ^^
초종교적인 빛을 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하는 글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하는 우리는 행운아임을 다시느끼며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서유종 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빛과함께 할 수 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깊은 감사의마음 올립니다.
모든 종교나 사상, 학문의 갈래는 그 뿌리가 결국 하나, 우리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 ‘빛viit’ 이다.
귀한 글 마음에 잘 담아 봅니다. 서유종님 감사합니다.
모든 물줄기가 흐르고 바다로 흘러 들어가듯
종교 사상 학문같은 것들도 결국에는 거대한 원래의 진리 빛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
최상의 순수 에너지 빛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깨달음 뒤에 믿음이 있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네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빛viit은 가장 친근하게 우리의 몸을 감싸고 있는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