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1부 5
타루의 숫자는 정확했다. 의사 리외는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수위의 시체를 격리시킨 다음, 그는 리샤르에게 사타구니에 생기는 열병에 관해서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전혀 모르겠는데요”라고 리샤르가 대답했다. “두 사람이 죽었는데, 하나는 이틀 만에 죽고 또 하나는 사흘 만에 죽었어요. 나중 사람은 그날 아침만 해도 회복기에 들어간 것 같아서 그냥 두었었죠.”
“또 다른 환자가 있거든 알려주세요.” 리외가 말했다.
그는 다시 몇몇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알아본 결과, 그는 며칠 동안에 약 스무 건의 유사 증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의 전부가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오랑 시 의사회의 간사인 리샤르에게 새로운 환자의 격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오.” 리샤르가 말했다. “현청에서 어떤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건 그렇고, 전염성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으셨소?”
“어디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나타나는 증세로 보아 불안합니다.”
그래도 리샤르는 ‘자기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단정했다. 자기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고작해야 지사에게 그 말을 전하는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설왕설래하는 동안 날씨는 악화되고 있었다. 수위가 죽은 다음 날, 짙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었다. 억수 같은 소나기가 이 도시에 퍼부어졌다. 그러고는 그 갑작스러운 폭우에 이어서 푹푹 찌는 더위가 계속되었다. 바다조차도 그 짙은 푸른빛을 잃고 안개낀 하늘 아래서 눈이 아프도록 은빛 또는 무쇠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러한 봄의 습기 섞인 더위보다는 여름의 혹서가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언덕 위에 나선형 계단식으로 건설되어 바다와는 거의 등지고 있는 이 도시를 우울한 혼수상태가 지배하고 있었다. 개륵을 바른 기다란 벽의 한복판에서, 먼지 낀 진열장이 늘어선 거리거리에서, 더러운 황색의 전차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하늘 아래 감금당한 죄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지 리외의 그 늙은 환자만은 해수증이 떨어져서 그러한 날시를 즐기고 있었다.
“푹푹 찌는 군”하고 그가 말하곤 했다. “기관지엔 좋은 날씨야.”
사실 푹푹 찌고 있었다. 열병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무더위였다. 도시 전체가 열병에 걸려 잇었다. 적어도 코타르의 자살 미수 현장 검증에 입회하기 위해서 페테르브 가에 가던 날 아침 의사 리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던 인상을 그랬다. 그러나 그러한 인상이 그에게는 부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것을 신경 과로와 자기가 근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선입견 탓으로 돌리고, 우선 머리속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시인햇다.
그가 도착했을 때, 경감은 아직 와 있지 않았다. 그랑이 층계참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둘이서 그랑의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열어두었다. 이 시청 직원은 방을 두 개 쓰고 있는데, 가구가 대단히 단촐했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두어 권의 사전이 꽂혀 있는 책장과 칠판 하나뿐이었는데, 그 위에는 반쯤 지워졌으나 ‘꽃이 풍성한 오솔길들’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잇었다. 그랑은 코타르가 밤에 잘 잤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깨면서부터 두통을 앓고 아무런 반응도 나타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랑은 피곤하고 신경이 예민해진 듯이 보였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탁자 위에 놓인 사본이 가득 차 있는 커다란 서류철을 펼쳤다 덮었다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의사에게, 자기는 코타르를 잘 모르지만 아마 재산이 좀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코타르는 약간 괴상한 사람이고, 그랑과의 관계는 오랫동안 계단에서 인사나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는 이야기였다.
“꼭 두 번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봤어요. 며칠 전에 나는 집으로 가지고 오던 분필통을 층계참에서 엎어버렸지요. 그때 코타르가 층계참으로 나오더니 줍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그는 그 가지각색의 분필을 무엇에 쓰느냐고 내게 묻더군요.”
그래서 그랑은 다시 라틴어를 좀 공부해볼까 한다고 설명해주었는데,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로 라틴어를 거의 잊었다는 것이다.
“그럼요.” 그는 의사에게 말했다. “불어 단어의 뜻을 더 잘 알려면 라틴어를 공부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지요.”
그래서 그는 칠판에다 라틴어를 써놓고, 동사의 변화와 활용에 따라 변화하는 부분은 푸른 분필료, 전혀 변화하지 않는 부분은 붉을 분필로 배껴 써보곤 했다는 것이다.
“코타르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흥미가 생겼는지 붉은 분필을 하나 달라더군요. 나는 좀 놀랐지만 어쨌든….그런데 그것이 그런 일에 사용될 줄이야 난들 예측이나 했겠어요.”
리외는 두 번째 대화는 어떤 내용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경감이 서기를 데리고 와서 우선 그랑의 진술을 듣겠노라고 말했다. 의사는 그랑이 코타르 이야기를 하면서 노상 그를 ‘그 절망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에 유의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숙명적인 결론’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들은 자살의 동기에 관하여 토론을 했는데, 그랑은 어휘 선택에 조바심을 냈다. 마침내 ‘심적인 슬픔’ 이라는 말로 결론이 내려졌다. 경감은 코타르의 태도에서 ‘그의 결심’이라고 그랑이 이름 붙인 것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었던 점이 아무것도 없었느냐고 물었다.
“어제 내 방문을 두드리더니,” 그랑이 말했다. “성냥을 빌려달라더군요. 그래서 갑째로 주었지요. 그는 이웃 사이에…….운운하며 미안해하더군요. 그러고는 꼭 돌려주겠노라고 다짐을 하기에, 나는 그냥 가지고 잇으라고 말했죠.”
경감은 코타르가 좀 수상해 보이지 않더냐고 그에게 물었다.
“수상하게 보였던 것은 자꾸 말을 걸려고 하는 눈치였단 말씀이에요. 그러나 나는 일을 하는 중이었지요.”
그랑은 리외를 돌아다보며 당황한 태도로 덧붙였다.
“개인적인 일이죠.”
경감은 어쨌든 환자를 보자고 했다. 그러나 리외는 이 방문에 대해서 코타르로 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시켜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리외가 방에 들어갔을 때, 코타르는 뿌연 회색 플란넬 잠옷만 입은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불안한 표정을 짓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찰이군요, 그렇죠?”
“그렇소.” 리외가 말했다. “하지만 염려할 건 없소. 두서너 가지 형식적인 심문만 끝나면, 더는 귀찮은 일은 없을 거요.”
그러나 코타르는 그런 건 다 소용없는 짓이고, 자기는 경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리외는 화를 냈다.
“나도 경찰은 싫소. 문제는 그들의 물음에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대답해버리는 것이오. 그래야 한 번만으로 끝나니 말이오.”
코타르는 입을 다물었다. 리외가 문 쪽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 작은 사나이는 다시 리외를 부르고, 리외가 침대 가까이 오자 그의 손을 쥐고 말했다.
“환자를, 그것도 목을 매어 죽으려 했던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겠죠? 그렇죠, 선생님?”
리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런 종류의 걱정은 문제도 되지 않고, 또한 자기는 환자를 보호하려고 와 있는 것이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코타르는 약간 마음을 놓은 듯싶었다. 그래서 리외는 경감을 들어오게 했다.
그는 코타르에게 그랑이 한 증언을 읽어주고, 그에게 행위의 동기를 밝힐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심적인 슬픔 때문에 그랬지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라고만 대답했다.
경감은 또 그런 짓을 하고 싶으냐고 추궁했다. 코타르는 흥분해서 다시는 그럴 생각이 없으며, 다만 가만히 놔두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주의해두는데,” 경감이 좀 화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오.”
그러나 리외가 눈짓을 하자 그쯤 해두었다.
“글쎄 말이죠.” 방에서 나오면서 경감은 한숨을 쉬었다. “그 열병의 말썽이 생긴 후로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그는 의사에게 사태가 심각하냐고 물었다. 리외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순전히 날씨 탓입니다. 그뿐이죠.” 경감이 결론을 내렸다.
아마 날씨 때문일지도 몰랐다. 해가 점점 드높아짐에 따라 모든 것이 손에 쩍쩍 들러붙었다. 그래서 리외는 한 집 한 집 회진을 할때마다 불안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날 저녁, 교외에 있는 그 늙은 환자의 이웃 한 사람이 사타구니를 누르고 헛소리를 하면서 토하고 있었다. 림프샘의 응어리들은 수위의 것보다 더 컸다. 응어리 가운데 하나는 곪기 시작하고 있었고, 이내 썩은 과일처럼 짝 갈라져싿. 집으로 돌아온 리외는 현(縣)의 의약품 저장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날의 임상 일지에는 다만 ‘부정적인 회답’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미 비슷한 증세 때문에 왕진을 청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곪은 것을 째야만 했다. 그것은 뻔한 일이었다. 메스를 두 번 놀려서 열십자로 째자 응어리에서 피가 섞인 고름이 흘러나왔다. 환자들은 피투성이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배와 다리에 반점이 나타나고, 어떤 림프샘은 나오던 고름이 멎자 다시 붓기 시작했다. 대개의 경우 환자는 무서운 악취를 풍기며 죽어갔다.
쥐 사건에 대해 그처럼 떠들어대던 신문이 이젠 아무 소리도 없었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서 죽고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었으니, 그것은 당연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신문은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나 현청과 시청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의사들이 제각기 두서너 건의 사례를 알고 있을 때만 해도 누구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 합계를 내볼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합계를 내보니 놀랄 만한 숫자였다. 불과 며칠 동안에 사망 건수가 곱절이 되었고, 그 해괴한 병을 다루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틀림없는 유행병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바로 그 무렵에 리외와 같은 의사지만 훨씬 나이 많은 카스텔이라는 사람이 리외를 만나러 왔다.
“물론,”하고 그는 리외에게 말했다. “당신은 뭔지 알겠죠, 리외?”
“분석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 병을 알지. 그러니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단 말이오. 나는 내 의사 생활의 일부를 중국에서 보냈소. 그리고 파리에서도 몇몇 사례를 겪었소. 20여 년 전의 일이오. 다만 그것에다 감히 병명을 당장에 붙일 수가 없었소. 여론이란 신성한 것이오. 경거망동은 금물이오. 그건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게다가 어떤 동료는 ‘그럴 리가 있나. 그것이 서양에서 자취를 감췃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라는 거요. 과연 그렇소. 모든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었소. 죽은 사람들만 제외하고 말이오. 자, 리외, 당신도 이 병이 무엇인지 나만큼 잘 알고 있을 거요.”
리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잇었다. 그는 멀리 만 끝에서 굽어 오르라진 절벽의 바위 등성이를 바라보았다. 비록 푸르기는 하지만 탁한 광채를 띤 하늘은 정오가 훨씬 지나감에 따라 점점 그 광채가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렇죠, 카스텔.” 그가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페스트 같습니다.”
카스텔이 일어서서 문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할지 알고 있겠죠?” 그 늙은 의사가 말했다. “‘그 병은 기후가 온화한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소.’라고 말할 거요.”
“없어지다니, 무슨 뜻입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리외가 되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어쨌든 파리에서도 약 20여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좋습니다. 그때보다 더 심하지 않기만을 바랍시다. 그러나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