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스님과 20년을 함께하다
고재 가구로 유명한 ‘예나무’ 대표 손건우씨와 중광의 인연은 특별하다. 대학 시절, 사람 많은 명동에 놀러갔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중광에게 그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평소 중광에 대해 남다른 동경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사춘기 아이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심정이랄까. 그는 중광을 보자마자 달려가 덥석 알은척을 했다. 중광은 그날로 그를 인사동으로 데려가 도자기와 골동품을 보여주고, 그중 하나를 구입해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광이 직접 손 대표 부모님의 양해를 얻어 그를 양아들로 삼았고, 이후부터 중광 곁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지금 그가 하는 고재로 가구를 만드는 일도 중광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평소 옛것을 좋아하던 중광은 그에게 종종 골동품 같은 오래된 물건을 선물로 주었고, 사찰이나 지방 기행을 다닐 때마다 그에게 골동품을 보여주고, 알려주었다. 그러니 그 역시 옛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고재 가구를 만드는 일이 단순히 가구 만들기가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제 고재를 이용한 회화 작업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고재로 지은 집
산속에 지어진 집이라고는 하지만 이 집은 그야말로 돌, 나무, 흙으로 지은 토속적인 집이다. 비록 보일러 버튼만 누르면 뜨끈해지는 서양식 집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극히 전통적인 가옥의 특징을 살려 지었다. 철근을 이중으로 엮어 지붕과 집 전체의 틀을 짜고, 그 안을 황토로 채운 다음 회벽을 발라 마무리했다. 일일이 수작업을 요하는 일이라 공이 많이 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거실 창과 마주하는 곳에도 큰 창을 두어 앞뒤가 통하는 한옥을 닮았다. 이는 통풍이 잘 되는 것은 물론 집 주변의 경치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외부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창문은 똑 떨어지는 사각형이 아니라 역사다리꼴 모양. 오른손잡이인 중광은 평소 왼손으로 글씨를 썼고, 낙관이나 사인도 거꾸로 하는 적이 많았다. 창문 역시 거꾸로 된 사다리꼴 모양인 것을 보니 그의 성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큰사람을 우리의 작은 자로 잴 수 없다
‘중광’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괴팍하고, 파격적이고, 매우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버님(그는 중광을 ‘아버지’ 혹은 ‘은사님’이라 부른다)이 모시는 노스님이 계셨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녁마다 아버님이 손수 식사를 챙겨드릴 정도로 규칙적이고 소박한 생활인이었죠. 남들은 매일 밤새워 술이나 마시며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세간의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하는 게 전 가장 안타까워요.”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한 달 전, 가장 더운 여름날에 그는 매일 아침 중광과 함께 올림픽공원에 나갔다.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쓰레기를 줍는 등 공원 청소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가 힘들게 왜 하느냐고 투덜거리자 중광은 나라에서 큰일을 치르는데 이 정도쯤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단다. 한 달이나 이 일을 계속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을 들이는 중광의 마음과 생각이 가슴에 와 닿는다.
손 대표는 5월 말 갤러리 ‘마루’를 오픈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한편에 중광의 작품과 애장품 등을 상시 전시할 계획이다. 중광을 그리는 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그를 떠올릴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틈틈이 작업한 자신의 고재 회화도 전시할 예정. 그는 갤러리 ‘마루’를 중광을 그리는 사람들이 들러 중광을 떠올리고, 자신이 직접 만든 가구와 작품도 감상하고, 함께 차나 와인 한잔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랑방으로 만들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