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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19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nglish Electric에서는 당시 캔버라 폭격기 수요가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는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이미 캔버라를 대체할 수 있는 신형 폭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이 사안이 공급청과 진지하게 논의된 것은 1956년이 되어서였다. 당시 조달청은 고속의 소형 공격기를 원했다. 이러한 공식계획은 P.1B(훗날 라이트닝이 됨)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EE는 완전히 새로운 공격기를 준비했다. 두 사안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한 달여가 지나 좀더 분명한 요구사항이 전달되었다. 요구사항은 2000NM을 자력으로 비행할 수 있어야 하고 마하 1.5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고 다양한 무기와 정찰 장비를 장비할 수 있어야 하며 초저공 공격이 가능하고 단거리 이륙이 가능해야 했다. EE은 P.17이라 명명된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었고 그들은 직선익에 엔진이 장착된 모델에서 델타익에 엔진을 동체에 장비한 모델로 전환한다.(이 모델은 P.17A로 명명된다.)
조달청과 영국 공군간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좀더 명확한 요구사항이 더 많이 제시되었다. 2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며 적어도 4발에서 6발 정도의 1000파운드 폭탄을 탑재할 수 있어야 하며 저공 공격 능력과 수직 이륙과 같은 단거리 이륙 능력이 좀더 강조되었다. P.1B을 발전시킨 P.18은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어 폐기되었다. 이 시점에 내각 예산 선정 위원회에서 군용기 공급에 관련된 보고서가 언급되었다. 여기에는 합작을 통하여 계약을 얻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항공우주 관련 회사를 제한하는 방안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는 영국의 유명한 항공기 제조 회사의 대다수가 끝장나는 시나리오의 서막이었다. 그동안에 스탭들은 캔버라 폭격기를 대체할 General Operational Requirement (GOR) 339를 설계하고 있었고 그들은 던컨 샌디스 국방 장관이, 유인 비행기는 시대에 뒤쳐졌다고 언급한, 악명 높은 1957년 국방 백서를 발표하기 며칠 전에 설계를 완성하였다. GOR 339은 9월 말 다양한 회사에 의해 논의되기 전부터 많은 토의의 주제가 되었다.
Shorts Brothers 사는 EE 사와의 협력을 약속하고 GOR 339의 모든 면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그들의 독특한 생각은 P.17A에서 P.17D로 이어져 수직 이착륙을 위하여 56 리프트 엔진을 장착하게 된다. 당연히 이러한 생각은 실현되지 못했다. 1958년 3월 입찰한 아브로, 호커, 비커스-암스트롱, EE 중 어느 회사가 수주를 획득할 지 발표되었다. 그들로부터의 협력은 모두 예상되었다. 요구사항들이 좀더 다듬어지고, 재검토되었으며, 재명명되고 새로운 번호가 부과되었다. 처음에는 OR 339으로 불렸으나 나중에 OR 343로 바뀌었다. 요구사항은 더 빠른 속도, 더 높은 순항 고도, 더 먼 항속 거리, 더 짧은 이륙 거리를 요구하였다. 캔버라를 대체하고자 시작된 프로젝트는 점점 공상 과학 소설의 소재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더욱이 조달청은 차기 공격기가 캔버라가 수행하는 모든 임무-정찰 임무를 포함하여-를 수행할 수 있기를 원했다. 조달청은 요구사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별 접촉이 없었던 EE와 비커스-암스트롱 사가 협력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2월에 내각에서 처음으로 공식 승인되었다. 1959년 1월이 되자 TSR.2의 명칭을 포함한 좀더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준비되었다. (TSR.2의 2는 마하 2를 의미했다.) TSR는 원래 전술 정찰 및 정찰의 약자였으나 후에 핵병기 운용 능력 추가가 결정되자 전술 타격 및 정찰로 바뀌었다
블랙번 사는 GOR 339를 보고 자사의 버캐니어 공격기가 이미 요구사항을 어느정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량이 선행된다면 요구사항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충족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아이디어는 많은 이점이 있었다. 새로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비행기를 개량하는 것이 비용 절감 등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해군 항공대에서는 버캐니어의 성능에 만족하고 있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 공군에서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국 공군은 해군의 이 비행기에 경멸 이상의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또한 이러한 형태의 협력 체계는 그들의 의도에서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블랙번의 P.150 디자인은(몇 년 후인 1968년에 등장하였다.) 재연소 장치가 추가된 스페이 엔진, TSR.2 스타일의 에어 인테이크, 연장된 동체, 폭이 좁아지고 윙폴딩 기능이 제거된 날개와 두 개의 메인휠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만약 채택된다면 블랙번 사가 어떻게 사업을 추진할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블랙번 사는 -별 관심은 없었지만- TSR.2 프로젝트로 돌아가게 된다
비커스 사와 EE 사의 합작으로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었고 두 회사가 제시한 디자인이 융합되면서 OR 343라는 하나의 디자인이 등장하였다. 1959년 7월 그들은 -설계상의 한정적인 일면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새로운 디자인을 수용하게 된다.(사실 P.17A에서 크게 변한 점은 없었다.) 시행 과정 상의 자세한 합의사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기 제작 사업 분배에 대하여 합의를 마쳤다. 처녀비행은 1963년 1월, 실전배치는 1966년 1월로 계획되었다. 계약 체결은 1959년 후반으로 계획되었으나 1960년 10월까지 지연되었다. 첫번째 시제기 생산 전부터 지연이 생기다니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이 위험한 시기에 British Aircraft Corporation가 결성되었다. (1960년 1월 1일이었다.) 나중에 호커-시들리 사가 결성되면서 영국 우주항공산업은 BAC와 호커-시들리 사에 의해 양분되었다.
영국 정부는 프로젝트 관리 및 발전시키는 데 미국식 방법을 주목했고 영국식 방법보다 미국식 방법이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러한 우월한 방식을 실시하여 완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정부의 목적에 포함되어 있던 의도와 목적의 좋은 점은 사라지고 나쁜 점만 남게 되었다. 새롭고 더 '효율적'이라던 경영 기술은 항공 산업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관료정치의 표본이 되었다. 한가지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의장은 참가 인원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고는 일단 회의를 폐회한 후 다음 회의에는 좀더 '효율적인' 인원만 참가하도록 했다. 재소집된 회의에서는 '효율적인' 인원만 참가하였다. 사실 재소집된 회의에 참가한 인원이 처음 있었던 회의보다 인원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와 BAC 사내 투표권을 둔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기체의 설계와 생산은 계속되었다. 한 예로, 엔진을 기체 프레임에 설치하려 하였을 때 엔진이 기체 프레임에 맞지 않는 사태가 생기기도 하였다. 더불어, 하청업자들이 BAC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당국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상호 의견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일어났다. 당국의 간섭은 비행기의 설계 및 생산으로 이어졌다. 당국은 기체 조종석 레이아웃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스위치 하나 위치 정하는 데 회의를 세 시간 씩이나 하였다.(그리고 이는 보통 문제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벌컨 폭격기의 조종석 설계와 비교하여 수석 테스트 파일럿인 Roly Falk가 마찰을 일으켰고 그 자신이 조종석을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도대체 조종사보다 더 설계를 잘한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또다른 면에서도 압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TFX 사업이 시작되었고 영국에서는 TFX를 사느냐, 더 비싼 TSR.2를 사느냐 하는 압박이 이어졌다. (TFX는 F-111로 이어졌다.
_PS||MG_BAC 사의 대표단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여 TRS.2 수출 계획을 제시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 새로운 비행기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였다. 당시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은 책상 위에 열 장의 버캐니어 공격기 사진과 한 장의 TSR.2 공격기 사진을 탁 펼쳐 놓으며 한 대의 TSR.2 공격기를 살 비용으로 열 대의 버캐니어 공격기를 구매할 수 있다고 말하여 유명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단이 영국에 방문하였을 때 마운트배튼 경은 그들과 만나 대담을 가졌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TSR.2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마운트배튼 경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은 큰 파장을 몰고왔고 TSR.2 수출 계획은 갑자기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F-111 구매를 신속하게 결정했다. 아마 마운트배튼 경은 BAC 사가 말한 비용보다 10배는 더 들 것이고 실전배치되는 데에도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엔진 문제도 표면으로 떠올랐다. 브리스톨-시들리 올림푸스 엔진은 완전히 새로운 엔진이었고 너무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은 벌컨 폭격기의 시제기가 지상에서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첫 번째 시제기가 완성되었을 때 시제기는 Boscombe Down로 옮겨졌다. 비커스 사는 위슬리에 있는 자사의 비행장에서 시험하길 원했다. 그러나 수석 테스트 파일럿 Roland Beamont는 이에 반대했다. 활주로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EE 사의 워튼 비행장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절충안으로 Boscombe Down이 결정되었다. 이로 인해 계획은 계속 연기되었다. 또한 Boscombe에서도 세 달간 부품을 재조립해야 했다. 1964년 5월 6일 완전히 재조립된 XR219는 행거에서 빠져나와 택싱 시험을 비롯한 테스트 비행에 들어갔다. 제동을 위한 패러슈트 전개 등의 사소한 문제가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해결하였다.
엔 진 문제는 TSR.2가 비행하기 며칠 전에 원인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전방위에서 몰려오는 압박 때문에 TSR.2의 비행은 강행되었다. 당시 보수당 정부에서는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해 말에 총선거가 있을 예정이었고 노동당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BAC에서는 차기 정부가 이 문제많은 프로젝트를, 비행기를 날린 만큼 좀더 확실한 지원을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마지막 결정은 BAC 사의 수석 테스트 파일럿 Roland Beamont을 낙담시켰다. 엔진 문제(제조사에서는 97% 이상의 출력에서 5시간 이상 버틸 수 있을 지 장담하지 못했다.)나, 장비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음에도, 착륙 장치와 제동을 위한 패러슈트에 문제가 예상되었음에도 그는 비행 강행을 결정했다. 그는 이외에도 혼자 날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브 리스톨-시들리 사는 97% 이상 추력을 낼 경우 엔진이 분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처녀비행에서 엔진 하나가 이상을 일으켰고 남은 엔진 하나가 최대 출력으로 작동해야 했다. 이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9월 27일 처녀비행이 정식으로 이루어졌다. Roland Beamont가 조종사로, Donald Bowen이 항법사로 탑승했다. XR219, 콜사인 Tarnish 1은 예정되었던 시험 비행을 순조롭게 시행했다. Roland Beamont은 이 시험 비행을 "쾌조의 출발"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나 XR219는 당시 실전배치형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엔진 추력이 제한되었으며, 다수의 시스템이 결여된 상태였다.(두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무게 절감을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처녀비행을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었다. ) 또한 랜딩 기어를 접어 넣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랜딩 기어를 수납하기 위한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위에꺼는 머 퍼온거니깐 신경 안쓰셔두 되시구요;;;
머 일단;; 에어픽스제 1/72 TSR.2가 되시겠습니다!!
사진으로 함 보시죠;;
이것은 항공 오덕후 만을 위한 에니메이션인 스트라토스4의 버전인 것입니다;;;;
에어픽스는 사장이 바뀐 이후로 품질향상과
공격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요즘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어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더이상은 그 망할놈의 에어픽스 구제품 같은 품질에 더이상 소비자들이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것이었지요 ^^;;
데칼을 살펴보면 에어픽스 특유의
데칼 디자인이 고스란히 있긴 하지만.....
그 예전의 "드럽게" 안붙고
마크소프터에도 반응조차 안하는 구질 구질한 데칼이 아닙니다
(그래도 인쇄 품질은 좋고 아카데미의 그 쌍늠의 데칼 보다는 나은 데칼 이었었죠)
무려;; 현재의 아카데미와 같은 카르토 그래프;;;;;
우와;; 이거는 변혁에 가까운 발전인 것입니다!!!!!
에어픽스제 설명서야 머 다들 잘 아시는 성의 있고 참 멋진 설명서 이지요
이렇게 풀 칼라로 되어있는 설명서는 솔직히 에어픽스에서 아~~~~~~~~~~~~~~~주 예전부터 즐겨오던 방법입니다
머 물건들 품질을 말하자면 한숨이 좀 나오기는 하는데요..........
특유의 나뭇가지 스타일의 런너가 즐비하게 보입니다;;;;
아;; 이거 처음 개봉부터 땀이 흐르는데요;;;;
이 런너는 하나 자체가 스트라토스에 나오는 버전으로 만들 수 있는 런너 입니다 ;;;;;
오우~~ 생각 이상으로 깔끔하게 나와줫습니다
머 아직은 예전의 에어픽스 향이 팔팔 나는 부품들 이지만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에어픽스제 인형들은 돌 하루방 아니면 모아이 수준이었는데
이 킷에 들어있는 애들은 그나마 사람형태를 갖추고 있네요;;;
샤프하진 않지만
그래도 - 몰드의 킷입니다!!!
몰드도 상당히 좋은편에 속하는군요!!!!
한번씩만 파주면 정말 멋진 패널라인이 완성될거 같습니다
예전의 그 밭고랑 패널라인에 비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꽤 발전되었습니다 ㅠㅠ
자질구례한 부품들도 품질 향상이 있었습니다!!!
넓디 넓은 날개 조차도 꽤 샤프하군요~!!!
동체 분할이 특이하게 분할이 되어있어서 왠만한 디테일은 다 살아 있다 보시면 됩니다 ~
바퀴 역시 1/72로서는 합격입니다!! 상당히 좋습니다
브레이크 부분도 당연히 재현되어있군요!!!!
자기네 나라 비행기를 이정도 까지만 이라도 재현해 주는 에어픽스가 고마울 따름 입니다 ㅠㅠ
렌딩기어도 수준급이어서 브레이크 라인만 추가해 주면 좋아질거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거 안합니다;;; 귀찮아유;;;;
투명부품은 따로 포장되어있고 그 품질 또한 상당히 좋은편에 속하네요
설명서 역시 참 좋습니다
에어픽스의 시빅센이라던지 이번에 새로 나오는 제품들은
상당히 좋은 품질로 우리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가격또한 착하기 땜시롱
속는셈 치고 사서 만들다 보면
에어픽스 특유의 그 볼륨감이 정말 좋아지실 겁니다
다만;;;
예전킷들을 사서 만드신다면;;;;;;;;;;;
나무를 깎아 만드시는것이 편할지도 모르는 킷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셔야 할듯;;;;;ㅎㄷㄷㄷㄷㄷ
자아~ 지옥의 뽑기 세계인 에어픽스 제품을 한 번 만들어보심이 어떠신지요 ㅎ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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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전 월간항공에서 울프팩의 정기영님이 극찬하던 제품이군요~~에어픽스는 극과 극을 달리는 제품이 많은듯.. 리뷰가 끝내줘요~~
안그래도 물어볼려 그랬능데 에어픽스제품 좀 구할 수 있남;; 아궁;;; 이놈 1/48 있음 좀 넘기시게나 1/48 캔버러도 좀 보고 싶은데 이건 머 국내 리뷰는 찾을래야 찾을수도 없으니... (워낙에 마이너 아이템이라 그런가,,,,)
에이픽스 얼마전에 들어왔는데... 알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