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알앤엘바이오 연구센터. 작업자들이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서 임상의약품 제조용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있다. |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면 장님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사지 마비 환자는 벌떡 일어난다.”
“나는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으니 150세까지 살 거다.”
“줄기세포 맞으면 얼굴이 괴물처럼 변할지도 모른다더라.”
줄기세포와 관련돼 떠돌아다니거나 직접 들은 이야기들이다. “(서울) 강남에서는 젊어지는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는 게 부의 상징이다”는 말도 들었다. 줄기세포의 효능에 대해 입증되지 않은 뜬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가 전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이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마이니치 보도가 논란 불붙여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기존의 보존적 치료와는 달리 세포를 재생시키는 근본적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희귀 난치병, 만성질환자의 치료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당뇨병, 심장병, 척추외상 등의 치료 사례가 하나둘 보고되고 있다. 2012년 5월에는 서울 아산병원 전상용 교수팀이 교통사고로 척수가 손상돼 8년간 팔다리를 쓰지 못하던 환자를 줄기세포로 치료한 바 있다.
줄기세포 치료는 미래 바이오산업의 총아다. 신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 간, 대학 간, 바이오기업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줄기세포 치료의 안전성과 효능이다. 치료 가능성은 무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시점에서 효능이 검증된 치료제는 전 세계적으로 다섯 개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무허가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줄기세포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지난해 12월 22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후쿠오카의 한 병원이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시술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도한 게 발단이 됐다. 이 신문은 신주쿠클리닉 하카다원이 한국의 바이오벤처회사에서 한국인들을 소개받아 이 회사가 배양해 보관하는 줄기세포를 한국인 환자에게 투여하며, 한국의 벤처회사는 환자 1인당 1000만~3000만원을 받고 줄기세포를 시술할 외국 병원을 물색해준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부작용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알앤엘 “법적 조치 취하겠다”
마이니치신문이 언급한 한국의 회사는 알앤엘바이오(기술원장 라정찬·이하 ‘알앤엘’). 알앤엘은 성체줄기세포 분야에서 국내외적으로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바이오기업이다. 알앤엘 측은 마이니치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라정찬 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낸 일본 언론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알앤엘의 줄기세포 기술은 국제기준의 안전성을 검증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병원과의 어떠한 지분 관계도 없으며 독립적 판단과 결정에 의해 환자들에게 자가지방줄기세포를 투여하고 있다”며 협력금 지급 부분도 전면 부인했다.
알앤엘 측은 마이니치신문 측에 정정보도를 요청했지만, 마이니치 측은 지난 1월 7일 정정보도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알앤엘 측에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데루야마 데쓰시 과학환경부장 명의로 1월 4일에 작성된 한 장짜리 서신을 알앤엘바이오에 보냈다. 서신에는 “(우리의 기사는) 줄기세포 투여에 관해 실질적으로 규제가 없는 일본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태를 보도한 것”이며 “귀사를 비판할 목적으로 취재, 집필, 게재한 기사가 아니며, 치료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도 아니다. 그밖에 지적한 다른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취재를 한 상태에서 보도했다”고 적혀 있다.
알앤엘 논란의 핵심에 있는 사람은 라정찬 원장이다. 그는 서울대 수의학과 학사 석사 출신이고 제주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바이엘코리아, LG화학, LG생명과학에서 일하다 2000년 알앤엘바이오를 설립했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2009년 장영실 과학기술 대상을 수상했다. 라정찬 원장이 진두지휘하는 연구소에는 박사급 7명, 석사급 20명을 포함해 총 115명의 연구원이 근무 중이다. 이제까지 37편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을 해외의 크고 작은 학술지에 발표했고, 39건의 줄기세포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줄기세포법 나라마다 제각각
한국 환자가 일본으로 가는 건, 국내에서는 줄기세포의 시술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관련 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줄기세포의 추출은 가능하지만, 배양 및 시술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에서는 제한적인 줄기세포 시술이 가능하다. 알앤엘 측은 이런 나라별 차이를 이용해 국내에서는 해당 환자의 줄기세포를 추출만 한 후, 시술이 허용된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시술을 받도록 한 것이다.
줄기세포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알앤엘 관련 첫 기사가 나간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3일 마이니치신문은 재생의료의 안전성을 위해 줄기세포 법안을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는 속보를 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줄기세포를 투여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줄기세포의 배양과 사용 두 단계에 걸쳐 규제하기로 하고, 필요한 경우 벌칙 부과도 검토하기로 했다는 것. 마이니치신문은 이 같은 규제방침이 한국인을 상대로 연구단계의 줄기세포 투여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등 민간 의료기관에서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가 확산되고 있어 제동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알앤엘의 줄기세포 원정 시술이 일본 재생의료법안까지 뒤흔든 것이다.
알앤엘 잇단 악재
라정찬 알앤엘 원장은 일본 마이니치신문 보도 이후 논란에 휩싸였다. 소개료를 받고 일본 의료기관에 환자를 보냈느냐는 보도의 진위 논란도 있지만, 그 논란의 핵심은 과연 그의 주장대로 줄기세포 치료가 안전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마이니치 보도 이후 우리 보건 당국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무허가 줄기세포 해외 시술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고, 라 원장은 이에 대해 신문광고까지 내며 맞대응하고 있다. 그는 자사의 줄기세포 시술이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보건복지부, 식약청, 줄기세포 전문가들과 끝장토론을 제안할 것”이라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 개인과 국가 간 대립은 더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약사법상 금지된 무허가 치료제를 광고했다며 알앤엘을 1월 9일 검찰에 고발하고 ‘줄기세포 치료제 사용에 대한 대국민 당부 말씀’을 발표했다. 알앤엘은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올렸다.
알앤엘 줄기세포 논란은 지난 2004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수의학과)를 떠올리게 한다. 사태의 발단과 원인은 황우석 사건 때와는 딴판이지만 유사성이 적지 않다. 줄기세포 분야에서 촉망받는 연구자가 도마에 올랐다는 점,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패권을 잡기 위한 조급증이 부른 결과라는 점, 일면 애국심에 호소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라정찬 원장 본인 역시 “나를 제2의 황우석으로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은 알앤엘 관련 악재가 끊이지 않던 지난 1월 2일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라 원장은 줄곧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진실”이라며 억울해했다. 또한 그는 “법을 어기려면 국내에서 투여를 했지, 왜 일본에서 줄기세포 치료제 제휴를 하겠는가”라며 “국가기관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려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고 오히려 현행 법률로 억누르려고만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허가 치료제 시술이 문제
알앤엘의 줄기세포 시술이 도마에 오른 이유는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사용했다는 데 있다. 현재 국내에는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가 세 개 있다. 에프씨비파미셀의 급성 심근경색 치료제 ‘하티셀 그램-AMI’, 메디포스트의 관절염과 무릎연골 손상 치료제 ‘카티스템’, 안트로젠의 크론병 치료제 ‘큐피스템’. 모두 국내 토종 기업이 만든 제품들이다. 알앤엘의 경우, 아직 당국으로부터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가 없다. 현재 버거씨병 치료제와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가 임상 2상까지, 척수손상 치료제는 임상 1상까지 마친 상태다. 임상 3상까지 마친 후 의약품으로 허가받기 위해서는 6개월~2년이 더 필요하다.
자가줄기세포와 관련한 또 다른 논란은 줄기세포 치료가 의약품과 치료의 경계선에 있다는 점에 있다. 의약품으로 볼 경우 여타의 화학합성의약품처럼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치료로 볼 경우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시술이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의약품으로 보기 때문에 FDA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치료로 보기 때문에 의사의 판단하에 제한적 시술이 가능하다. 미국의 텍사스는 주법상 줄기세포 시술이 가능하다. 텍사스에 사는 스탠리 존스라는 외과의사가 알앤엘의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자가면역성 관절염을 고친 후 자신의 고객인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에게 청원했고, 그 결과 관계당국의 감독 아래 줄기세포 치료가 가능토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라 원장은 “자가줄기세포는 자기 세포를 자기에게 투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상 별 무리가 없다”고 하고, 식약청은 라 원장과 다르게 말한다. 박윤주 식약청 세포유전자 과장은 주간조선에 “줄기세포를 조작, 배양하는 과정에서 유전자가 변형될 가능성이 있고, 체내에서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치료제를 임의로 의사가 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알앤엘 측은 자가지방유래 중간엽 줄기세포를 정맥에 투여하는 자사의 기술이 안전하다는 것은 식약청에 이미 보고됐으며, 줄기세포 전문지인 ‘스템셀 앤 디벨로프먼트’(2011년 12월호)에 그 내용이 실렸다고 반박했다.
자가유래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사용 관련 법 내용을 완화할 것인가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심재철 의원(새누리당·경기 안양 동안 을)은 2009년 관련 약사법 개정안을 냈다. 희귀난치성 질환 및 위급 환자의 경우, 임상 1상 시험만 거친 줄기세포 치료제라도 의약품 제조 품목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였다. 변재일 의원(민주당·충북 청원)은 2010년에 낸 약사법 개정안에서 자가유래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 임상시험 자료 중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하도록 하자고 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의사협회, 병원협회, 제약협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았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효과와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으면 환자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두 건 모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현재 국내에는 줄기세포의 채취·보관·시술에 관한 법률이 없다. 2011년 9월, 친박연대 소속 정하균 의원의 대표발의로 ‘줄기세포 등의 관리 및 이식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이후 몇 차례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2012년 8월 같은 법안을 그대로 양승조 의원(민주당·충남 천안 갑)이 다시 대표발의했으나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되지 않고 있다.
난치병 환자의 마지막 희망?
자가지방줄기세포에 대한 안전성 공방이 일자 희귀난치병 환자 일부가 알앤엘 측을 옹호하고 나섰다. 명동돈가스 윤종근 회장은 조선일보에 두 차례를 비롯, 국내 대부분의 일간지에 총 7000만원을 들여 자비로 광고를 냈다. 마이니치신문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저희 부자의 30차례 줄기세포 치료 경험으로 알앤엘바이오 줄기세포 기술의 안전성을 확신한다”며 “안전한 알앤엘바이오 줄기세포 기술로 이제 한국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게 광고 내용이었다. 복지부는 윤 회장 역시 검찰에 고발했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광고를 한 혐의(의료법 위반)다.
윤 회장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자비 광고는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절대 아니다”며 “알앤엘을 폄하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윤 회장의 아들은 스물두 살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다. 고등학교 때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고려대 통계학과에 다니던 씩씩한 아들이었다. 3개월 동안 호스를 통해 호흡을 하고, 음식물을 섭취했다. 가까스로 깨어났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아들을 치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전 세계의 명의를 다 찾아다녔으나 소용이 없었다. 20년 동안 투병을 하던 중 줄기세포의 효능에 대해 들었고, 그의 아들은 알앤엘을 통해 일본과 중국에서 30여차례에 걸쳐 자가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 투여 횟수가 거듭될수록 서서히 치료됐고, 그 결과 지금은 거의 다 회복되어서 윤 회장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윤 회장 역시 줄기세포 시술로 퇴행성 척추협착을 고쳤다. 척추에 못을 네 개나 박고, 100m를 걸어가려면 서너 번씩 주저앉을 정도로 다리 감각이 둔하고 불안정해 지팡이를 짚고 다녔지만 지금은 지팡이 없이도 잘 걷는다고 한다. 그는 “아들과 나는 각각 30회의 치료를 받았지만 부작용 하나 없이 효과만 봤다”고 했다. 치료비는 총 2억원 정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아들을 살리는 데 무슨 일인들 못 하겠냐”고 말했다.
고엽제전우회 역시 알앤엘을 적극 옹호한다. 고엽제전우회 박근규 부회장은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에게 라정찬 원장님은 은인”이라면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심장질환을 오랫동안 앓아왔는데 라 원장님이 고쳐주셨다”며 “육체가 아프다 보니 생활에 의욕이 없었는데 이제는 내 또래의 정상인보다 더 건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규 부회장 말에 의하면 라정찬 원장은 4년 전부터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무료 시술을 해주고 있다. 비행기 왕복 요금과 해외 숙박비 등 원정 시술에 드는 비용 전액을 알앤엘 측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이제까지 무료 시술을 받은 고엽제전우회 회원은 총 47명. 한 명당 3회 이상 시술을 해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47명이 전부 효과를 보았다”며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의 질병은 20가지가 넘는데, 관절, 신경계통, 지루성 피부염, 뇌경색, 다발성 신경마비 등의 질환에 두루 효과를 보았다”고 말했다.
두 건의 사망 관련 보도
그렇다면 부작용은 없었을까. 라정찬 원장은 “효과가 없다면 그게 부작용”이라며 “(알앤엘을 통해 환자들이) 5년 동안 2만 8000회 성체줄기세포를 투여받았다. 10번 넘게 투여받은 환자도 있고, 나 역시 47번을 투여받았지만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2010년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줄기세포 시술의 위험성을 보도하면서 알앤엘의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후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환자들을 다루었다. 한 명은 줄기세포를 맞은 후 1주일 만에 암이 생겼다는 환자, 두 명은 시술 후 사망했다는 환자였다. 이에 대한 라 원장의 말이다.
“첫 번째 케이스는 원래 암이 있었던 것을 몰랐다가 임상진단으로 뒤늦게 안 경우다. 두 번째 케이스는 전남 나주에 사시는 분으로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줄기세포를 맞은 후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고 주장한 경우인데, 이 역시 줄기세포가 직접적 사인이 아니었다. 원래 심근경색이 있던 환자다. 세 번째는 부산의 72세 외과의사인데, 이 경우는 가장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경우다. 혈전증을 앓던 분인데 시술 얼마 후에 폐혈관이 막혀 사망했다. 일본의 부검의는 이코노미증후군처럼 하부정맥에서 엠볼리즘이 올라와서 폐혈관을 막은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공식적으로 줄기세포 때문에 사망한 경우는 하나도 없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줄기세포 피해자 가족들의 모임’이라는 카페가 있다. 카페 주인은 알앤엘로부터 줄기세포 시술 후 아버지가 숨졌다고 주장하는 전영일씨. 두 번째 케이스에서 언급한 사망 사례다. 전씨는 카페에 “너무나 억울하여 이 글을 작성합니다”로 시작하는 긴 글을 올렸다. 요약하면 아버지의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알앤엘을 통해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고, 2회에 걸쳐 3000만원이 넘는 돈을 냈다. 그런데 2회 시술 중 갑자기 의식불명이 되었고, 한국으로 모셔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는 것. 원통하고 분해 광주 남부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1년 넘게 소송 중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남 나주에 사는 전영일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알앤엘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기 곤란하다”며 “혼자서 큰 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10분이 넘는 전화 통화에서 그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금은 소송을 취하한 상태다. 왜 취하했는지는 정확히 얘기하지 않았다.
“충분한 안전성 검증 거쳐야 ”
서유헌 서울대 의대 교수(한국뇌연구원장)는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자가줄기세포에 의한 성질 변화는 없다는 것이 논문으로 밝혀졌고, 이제까지 수만 명이 시술을 받았는데 문제가 있다는 보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대해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막상 시험을 해보니 치료 결과가 상당히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부터 라정찬 원장과 손잡고 자가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매 치료를 연구해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낸 바 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대부분의 학자와 보건복지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업계의 많은 관련자는 의견이 달랐다.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 남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국내에서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한 업체 관계자는 “내 피를 나한테 수혈하는 것과 자기줄기세포 시술은 다르다”라면서 “한 달 가까운 배양 기간 동안 세포가 오염될 수도 있고, 세포의 성질이 변할 수도 있다. 관계 기관의 승인제도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거치지 않고 시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통해 승인받은 의약품도 시판 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빈번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동종 업계 근무자로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식약청 박윤주 과장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줄기세포 시험 과정에서 폐색전증으로 사망한 사례가 보고됐고, 임상시험에서 오심과 구토, 발열감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약물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여부는 판명나지 않았지만 줄기세포 연구가 초기 단계이니 만큼 충분한 시험을 통해 밝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숙 경희대 교수 역시 같은 입장이다. 손 교수는 성체줄기세포 전문가다. 골수에 있는 자가줄기세포를 외부로 추출한 후 배양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이동시켜서 손상된 부분을 직접 치료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냈다. 그의 말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시술이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맞다. 환자의 안전을 담보로 내걸 순 없지 않은가. 치료제라고 하면 그 치료제에 맞는 임상시험을 각각 다 해야 한다. 임상시험을 하지 않고 안전하다고 하는 건 안전한 게 아니다.” 손 교수는 그러면서 “(자가지방줄기세포 치료가) 안전은 할 거다. 하지만 효능을 입증하지 않은 치료제에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줄기세포학회 역시 우려를 표명했다. 학회에서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무분별한 남용과 무허가 시술에 대한 한국줄기세포학회의 공식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자기 몸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의 줄기세포를 무분별하게 시술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과 재산에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임상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과연 치료 효과는 있나
줄기세포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많은 만큼 전 세계적으로 임상실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만도 척추손상, 간경변, 하지허혈증, 급성 뇌경색, 급성 심근경색 등 다양한 질병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4000건에 가깝다. 그중 자가유래성체줄기세포의 임상시험은 600여건. 하지만 치료효과가 있었다는 보고는 단 네 건에 불과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직접 치료의 효능, 다시 말해 어떤 질병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한 사례는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자가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추손상을 치료한 서울 아산병원 전상용 교수팀은 만성 척수손상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다. 결과 3명은 호전됐으나 나머지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일부는 효과가 있었지만 일부는 효과가 없었다”며 그 이유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에 가서 자가지방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온 김윤아(가명·44·서울 역삼동)씨는 주간조선과의 전화 통화에서 “별 효과를 못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줄기세포 주사를 맞으면 아기 피부처럼 되고 활력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알앤엘이 주선한 500만원 상당의 메디컬 투어를 다녀왔다고 했다. “아픈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건강해서인지 몸의 변화를 못 느꼈다”고 답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 이용석 생명복지조정과 과장은 “웬만한 수의 줄기세포가 투여되지 않는 한,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도 줄기세포 시술을 하는 병원이 꽤 있다. 이는 대부분 자가줄기세포를 추출한 후 배양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손상된 부위로 투여하는 경우로, 알앤엘이 하는 시술과는 다르다. 이 경우 투여하는 세포의 수가 적기 때문에 치료적 효과는 미미하다. 또한 다양한 추출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안전성에서도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난치병 환자 “시간이 없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자가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효능 면에서는 밝혀야 할 부분이 많지만 공식적인 임상실험을 통해서 확인된 부작용은 없다. 이에 대한 국과위 이용석 과장의 말이다. “부작용을 확인할 길이 없다. 암암리에 행해지는 경우, 부작용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부잣집이 도둑질 당한 격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한 줄기세포 치료제가 모든 임상시험이 끝나 제품화되기까지는 5년 이상이 걸린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에게 줄기세포 시술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다. 라정찬 알앤엘 원장은 “간경화 환자가 있다고 하자. 그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간 이식밖에 없다. 기증자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면 기증자가 있는 외국까지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난치성 질환자들은 5년, 10년을 기다리지 못한다. 외국에 가서 당장 시술을 받겠다는 주체는 환자다”라고 말했다. 서유헌 서울대 교수 역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허가를 받기 위해 수백,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을 거치라고 하는데, 물론 하면 좋다. 하지만 난치병 환자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식약청 박윤주 과장은 “희귀 난치병 환자들이 줄기세포 주사라도 한번 맞아보고 싶다는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이런 환자들을 위해 ‘응급 사용’ 제도가 있다고 했다. 임상시험 중인 의약품을 응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의사가 환자의 상황이 급박하거나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식약청에 소견서와 진단서, 동의서, 의약품 공급 의향서 등을 제출하면 미허가 의약품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박 과장은 “인도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검토 시간이 길지 않다. 5일 이내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알앤엘 측의 말이다.
“우리도 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응급임상 허가를 받으려면 종합병원 측과 식약청 양쪽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병원 측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 위원 소집이 쉽지 않아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 2009년에 호흡기 질환을 앓던 환자는 한 달이 넘는 승인 과정을 거친 후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도중에 사망했다. 또한 동일 질환의 허가서가 3~4건 이상이 되면 연구자 임상이나 상업 임상 쪽으로 돌리라고 권유하기 때문에 응급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질병은 많지 않다.”
“악법도 법이다”
라정찬 원장은 “2013년은 우리의 자가 줄기세포 기술이 실용화되는 첫해”라면서 알앤엘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을 음모론이라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음모론은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자사의 기술이 실용화될 경우 타격을 입게 될 제약업체와 병원들의 견제라는 주장. 치매 치료 줄기세포가 실용화되어서 치매 치료가 된다면, 치매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는 논리다.
또 하나는 성체줄기세포의 효능을 견제하는 배아줄기세포 및 역분화줄기세포 연구자들의 음모라는 주장이다. 역분화줄기세포를 개발해 지난해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로 인해 일본은 역분화 줄기세포 연구에 올인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분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성체줄기세포의 효능이 새롭게 입증되면 일본 측이 허탈해진다는 논리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에 있는 알앤엘 본사 입구에는 대형 태극기가 게양대에 펄럭이고 있다. 라정찬 원장은 “한때 천연생명과학기술로 전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근사한 비전이 있었지만 2010년 MBC(의 부작용 보도)사태를 겪으면서 비전을 내려놨다. 지금은 자기 줄기세포를 가지고 불치병과 난치병을 하나라도 고치자는 사명감을 붙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서 멈추면 제2, 제3(의 라정찬)이 또 나오겠지만 그만큼 늦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안전성을 강조해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의 국내 시술을 엄격히 금지할 것인가, 아니면 뾰족한 치료법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에게 길을 터줄 것인가. 또한 라정찬 원장의 말대로 자가지방줄기세포 치료는 100% 안전한가, 줄기세포는 현대의학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그 누구도 정답을 모른다. 이 모든 논란은 충분한 시간이 입증해 줄 것이다.
국과위 이용석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는 지금 춘추전국시대다. 연구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누구의 잣대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10년 후에는 라정찬 원장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관련 법안이 있고, 다른 업체들은 이 법안을 차근차근 지켜 나가는데 변칙적으로 급행열차를 탄 게 문제다. 악법도 법이다.”
줄기세포란 배아·성체·유도만능·직접전환세포 등 4종류로 나뉘어 줄기세포(stem cell)는 조직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미분화세포다. 아직 운명이 결정되지 않은 세포이기 때문에 적절한 조건을 맞춰주면 다양한 신체 조직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상처난 부위에서 새 살이 돋고, 독감에 걸리면 후각 신경세포의 기능이 정지돼 냄새를 맡지 못하다가 독감이 다 나으면 다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 등은 줄기세포가 재생된 결과다. 현재까지 발견된 줄기세포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세포, 직접전환세포다. 황우석 박사는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 전문가다. 배아줄기세포는 배아의 발생과정에서 추출한 세포로 수정된 지 14일 이전의 세포를 말한다. 신체의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전능세포’ 혹은 ‘만능세포’로 불린다. 하지만 장차 태아로 자랄 생명의 씨앗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생명윤리에 어긋나고, 조절이 어려우며 암세포화 될 수 있어 임상시험에 무리가 따른다는 단점이 있다. 성체줄기세포(Adult stem cell)는 신체의 성숙한 기관과 조직 내에 존재하는 세포다. 골수, 제대혈, 지방조직에서 얻을 수 있어 윤리적인 문제가 없지만 배아줄기세포보다 분화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성체줄기세포의 분화력이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과거에는 한 조직에 있는 성체줄기세포는 오직 그 조직의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다른 조직의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역분화줄기세포(iPSㆍ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는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차원의 세포다. 역분화란 말 그대로 분화가 끝난 세포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배아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신체의 모든 곳으로 분화 가능하기 때문에 ‘유도만능줄기세포’라고도 한다. 성체줄기세포를 사용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없고, 배아줄기세포와 동일한 능력을 지녔다. 이 세포를 개발한 일본 교토대학 야마나카 신야 교수와 미국 위스콘신 대학 제임스 톰슨 교수는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직접전환세포(Direct Conversion)는 최근에 발견된 새로운 차원의 기술로, 몸 안에 있는 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직접 전환시키는 방식이다. 세포를 체외로 꺼내 배양한 후 다시 집어넣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진화된 방식이다. 면역 거부 반응의 우려가 없고,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기초 연구 단계의 수준이기 때문에 많은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