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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산에서 아재비고개로 내려가는 중
藜杖穿雲步步遲 지팡이 짚고 구름 속을 느릿느릿 걸어가니
山花紅紫待幽期 산꽃들은 울긋불긋 은거할 날 기다리네
風煙滿袖歸來晩 바람 안개 소매에 담고 느지막이 돌아오니
漠漠前郊落日時 아득한 앞 교외에 해가 지는 무렵일세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김영봉 (역) | 2014
――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 1537~1616), 「늦봄에 화담 가에서 노닐다(暮春遊花潭上)」
▶ 산행일시 : 2020년 4월 25일(토), 미세먼지 나쁨, 바람 부는 쌀쌀한 날씨
▶ 산행인원 : 23명
▶ 산행시간 : 9시간 10분
▶ 산행거리 : 도상 17.6km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와 승용차 2대에 분승
▶ 구간별 시간
06 : 3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2 - 가평군 상면 상판리 우목 마을, 우목골 입구, 산행시작
08 : 18 - 445.8m봉
09 : 43 - 우정능선 진입, △943.5m봉
10 : 15 - 1,055.1m봉, 헬기장
10 : 28 - 연인산(戀人山, △1,076.8m)
11 : 28 ~ 11 : 56 - 아재비고개, ╋자 갈림길 안부, 점심
12 : 40 - Y자 갈림길, 명지3봉(1,211.9m)
13 : 07 - 명지2봉(△1,250.1m)
14 : 05 - 명지산(明智山, 1,252.3m)
14 : 38 - ┣자 갈림길, 오른쪽은 익근리주차장 5.4km, 직진은 사향봉 1.5km
14 : 53 - 1,053.0m봉
15 : 22 - 1,008m봉(장막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사향봉 0.4km
16 : 12 - △614.6m봉
16 : 52 - 가평군 북면 도대리 거릿내, 적목교, 영화교, 산행종료
17 : 51 ~ 20 : 10 - 가평, 목욕, 저녁
21 : 1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연인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명지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 산행 고도표
【경강횡단(京江橫斷)이란?】
경강횡단은 서울(京)에서 강릉(江陵)까지 산을 이어가는 도상거리 249.1km의 횡단을 말한
다. 상고대 님이 오랜 시간 연구하고 검토하여 강호제현께 내놓는 회심의 역작이다. 우리는
경강횡단 249.1km를 15차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가 넘게 되는 주요 산들을 살펴보
면 수락산, 용암산, 죽엽산, 수원산, 운악산,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 가덕산, 수리봉, 구봉산,
대룡산, 가리산, 백우산, 백암산, 가득봉, 맹현봉, 개인산, 구룡덕봉, 오대산, 철갑령, 발우봉
등이다.
▶ 연인산(戀人山, △1,076.8m)
아직은 경강횡단이 서울 근교(?)라 산행인원이 많고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절실
하여 KF94 마스크로 무장하였으나 25인승 버스와 승용차 2대에 분승한다. 승용차 2대 8명
은 차량회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백둔리 연인산주차장에 주차하여 당분간 따로 산행한
다. 25인 버스 15명은 조종천을 거슬러 상판리로 들어간다.
오늘 경강횡단 제4차 연인산과 명지산 구간의 들머리는 우목골 입구 우목 마을이다. 뒤돌아
조종천 맞은편은 경강횡단 제3차인 운악산 구간의 날머리인 길마봉 남릉의 끄트머리에 불끈
솟은 천맥산(330.4m)이다. 천맥산은 그때 상고대 님이 대표로 혼자 넘었다. 우목골 입구 산
자락 수놓은 산벚꽃을 바라보며 우목 마을 농로를 잠시 지나고 산모퉁이에 이르러 왼쪽의 잣
나무 숲속 생사면을 뚫는다.
대개의 산이 그렇듯 인적 드문 산자락은 가시덤불이 사납다. 안면 블로킹 하고 들입다 덤빈
다. 이어 잡목 성긴 곳 고르느라 온 사면을 누빈다. 한 피치 거친 숨 몰아쉬어 지능선에 올라
서고 울창한 잣나무 숲을 천군만마 사열하듯 씩씩한 발걸음 한다. 잣나무가 너무 밀집하여
솎아내려고 그러는지 허리께 줄기를 벗겨낸 잣나무가 자주 보인다. 이러면 잣나무는 물관부
의 단절로 머지않아 고사하게 될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도대체 쉬운 산이 없다. 여기만 해도 그렇다. 가파르것다 켜켜이 쌓인 잣나무
낙엽이 푹신하여 오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눈길이 아니더라도 이런 생사면에는 앞사람이
내는 발자국을 쫓는 것이 훨씬 힘이 덜 드니 자연스레 열을 지어 가기 마련이다. 장사진(長
蛇陣)이다. 잣나무 숲 벗어나고 덤불숲 헤쳐 특고압송전탑을 지난다. 뒤돌아보면 운악산 전
경이 잠깐 트인다.
외길. 우정봉 서릉을 잡는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자주 지난다. 마치 누군가 분재 가꾸듯 바
위 틈새 비집고 다소곳이 하얀 화판 숙인 건 바위말발도리가 틀림없다. 어느덧 진달래는 끝
물이다. 낙화로 한 몫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철쭉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척촉(躑躅) 그대로
발걸음을 머뭇거린다. 발아래 살피면 각시붓꽃도 한 철이다. 엎드려 눈 맞춤을 할라치면 봄
바람 시샘으로 한참을 뻗치곤 한다.
봄바람답지 않게 찬바람이 엄청 세게 분다. 옷깃을 여미면서 한편 이 바람이 미세먼지를 말
끔히 쓸어내겠지 기대했는데 그러기는커녕 미세먼지(봄철 이맘때의 불청객인 황사인지도
모르겠다)를 쓸어오는 것처럼 대기는 점점 더 칙칙해진다. 445.8m봉 넘고 능선 마루금과 함
께 가는 묵은 임도를 따른다. 임도는 소로로 가늘어지며 왼쪽 산허리를 돌아가기에 우리는
그를 버리고 직등한다.
3. 우목골 마을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본 운악산
4. 우목골 입구 잣나무 숲 오름길
5. 우목골 입구 잣나무 숲 오름길
6. 잣나무 숲 벗어나 대형 송전탑 지나면서 뒤돌아본 운악산 전경
7. 진달래는 끝물이고 철쭉의 계절이 돌아왔다.
8. 각시붓꽃, 봄바람이 시샘하여 눈 맞춤하기 어려웠다.
9. 각시붓꽃
10. 각시붓꽃
연인산이 거느리고 있는 이름난 능선들, 예를 들면 우정능선, 연인능선, 청풍능선, 장수능선,
소망능선 등은 하나같이 순하고 부드러운데 우리가 가는 능선은 인적 드문 바윗길이 연속하
여 꽤 거칠다. 그래서다. 느닷없는 등산객들의 출현에 멧돼지가 놀라 지축 흔들며 잽싸게 꽁
무니 뺀다. 긴 오르막 막바지는 곧추 섰다. 발자국계단 만들어 오른다.
우정능선이다. 방화선 잘난 등로를 간다. 우리는 휴식에도 격식을 갖춘다. 아무 데서나 퍼질
러 앉는 게 아니라 먼저 산세를 살핀다. 저 앞이 우정봉이려니 게거품 물고 내쳐간다.
943.5m봉. 약간 도드라진 언덕일 뿐이다. 우정봉은 여기서 남쪽으로 0.6km 떨어진 916.4m
봉이다. 여러 지도에는 우정봉의 표고를 906.0m라고 하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916.4m이다.
봄바람에 등 떠밀려 간다. 등로 주변의 얼레지와 바람꽃은 찬바람에 잔뜩 움츠렸다. 우리도
추워서 웅크리고 잰걸음한다. 1,055.1m봉은 너른 헬기장이다. 야트막한 안부 지나고 한 피
치 바짝 오르면 연인산 정상이다. 오석의 커다란 정상 표지석 뒤쪽에 3등 삼각점이 있다. 일
동 309, 2006 재설. 미세먼지가 아주 나쁨이라 아무리 발돋움하여도 근경조차 산 윤곽이 희
미하다.
연인산은 1970년대에는 ‘1,068m봉’이라 높이로만 불리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 고원산악회
등반대장 이무송 씨가 이 봉 아랫마을인 우목골 마을 주민들의 얘기를 근거로 ‘우목봉’이라
했었다. 월간 山이 옛 문헌에서 ‘월출산(月出山)’으로 기록된 것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산을
우목봉 또는 월출산으로 불리어오던 중 1999년 3월 15일 가평군수 외 6인으로 구성된 지명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연인산으로 이름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연인산 남릉 상의 906m봉을
우정봉으로, 그 아래 전패고개를 우정고개로 고쳤다.(월간 山, 1999년 6월호)
이 산을 굳이 연인산이라고 작명한 데는 유래가 없지는 않다고 한다. 옛적 숯을 굽는 청년 길
수와 참판 댁의 여종 소정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소정과 혼인하기를 원했던 길수에게 참
판은 ‘조 백 석을 가져오거나 숯 가마터를 넘기라’고 했고, 이에 길수는 연인산 정상 샘 부근
에 분지를 발견하고 아홉 마지기 밭을 일궈 조 백 석을 마련했으나 참판의 계략에 역적의 아
들로 쫓기게 되면서 소정과 함께 조 더미 속에서 불타 죽었다는 줄거리다.
그런데 그 둘의 신발이 놓인 자리 주변의 철쭉과 얼레지는 불타 없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
아 군락을 이뤘다는 얘기다. ‘연인산’으로 이름 지으며 정상에는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문화일보, 2013년 5월 31일자,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
11. 멀리 왼쪽은 칼봉산, 오른쪽은 매봉 연봉
12. 멀리 왼쪽은 칼봉산, 오른쪽은 매봉 연봉
13. 매봉, 송이봉, 대금산 등
14. 가운데 안부는 길마재, 왼쪽은 길마봉, 오른쪽은 청계산
15. 연인산 정상에서
16. 아재비고개 가는 길
17. 아재비고개 가는 길
18. 아재비고개 가는 길
19. 현호색
▶ 명지산(明智山, 1,252.3m)
아재비고개 가는 길. 방화선 길이다. 한달음에 쭈욱 내리면 다다를 것 같은 아재비고개가 의
외로 까다롭다. 준봉인 1,032.9m봉을 비롯하여 봉봉을 넘는다. 더구나 북릉 땅 거죽만 녹은
곳이 허다하여 넉장거리 피하려니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등로 옆 풀숲의 더덕도 우리가
어찌할 도리 없을 것을 알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언 땅 연장 질로 몇 번 불꽃 튀겨보고 물러
난다.
아재비고개. ╋자 갈림길이 있는 펑퍼짐한 안부다. 드넓은 화원이기도 하다. 현호색과 바람
꽃, 양지꽃, 얼레지가 이제 막 봄나들이 나왔다.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점심자리 편다. 챔프
님 먹거리가 걸다. 지지난주에 이어 베트남칼국수다. 반주는 연태, 식후 커피는 연태에 커피
얹었다. 점심은 안부에서 먹기보다는 산 정상이나 그 근처에서 먹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잔뜩 부른 배를 안고 가파른 오르막을 가는 것이 아무래도 더 힘들다는 이유에
서다.
그렇지만 나는 가급적 안부를 택하는 편이다. 아마 오지산행 대부분의 멤버가 그러할 것이
다. 안부가 겨울에는 고도가 낮아 비교적 따스하고 여름에는 바람골로 시원하여 점심은 물론
이에 곁들여 반주하기 딱 좋고, 그보다는 힘들이지 않고 가는 산은 도무지 재미가 없기 때문
이다. 반주 얼근하여 쉬운 산도 어렵게 가기 일쑤다. 무릇 프로라면 어떠한 악조건이라도 극
복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재비고개에도 서글픈 전설이 유래한다.
옛날 계속되는 가뭄과 가난으로 굶주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이 고개를 넘게 되었다. 너무
허기진 아버지의 눈에 갑자기 자기가 사슴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여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어
린 아들이더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애를 잡을 뻔했다’하여 아재비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다른 버전도 있지만 즐거운 산행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 소개하지 않는다.
자주 다닌 길은 지겹다. 처음 가는 길이라면 설령 험로일지라도 호기심이 생겨 사뭇 즐거운
법이다. 나로서는 아재비고개에서 명지3봉 오르는 길이 지겹다 못해 퍽 따분하다. 이래서일
까? 버들 님과 자연 님은 아재비고개에서 백둔리로 탈출하고, 소백 님 또한 명지3봉을 오르
다말고 뒤돌아 아재비고개에서 백둔리로 탈출한다. 소백 님의 경우는 약간 다르긴 하다.
백둔리 연인산주차장에서 연인산을 오르는데 소망능선을 곁에 두고 가외의 산릉을 여러 차
례 휘도는 통에 자신의 페이스를 잃었다고 한다.
소백 님의 후일담이 재미있다. 지친 발걸음으로 어렵사리 백둔리 연인교 갈림길까지 내렸다.
아침에 승용차를 주차한 연인산주차장까지 갈 일이 걱정이었다. 거리가 3km 남짓이고 군내
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요행이 그쪽으로 가는 차를 히치하는 수밖에 없다. 때마침 쉬고 있는
(?) 산불감시원의 산불조심 빨간 깃발을 단 트럭이 보이더란다. 평소에는 경찰백차를 보면
괜히 움찔해지는 것처럼 피하고 싶은 트럭이다.
다가갔다. 산불을 감시하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셔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을 걸고, 연인산주
차장까지 자기를 태우고 가면서 함께 주변의 산불을 감시하자고 했더란다. 산불감시원은 머
뭇거리다가 그 얘기도 일리가 있겠다 싶어 그러자며 연인산주차장까지 태워주더란다. 소백
님더러 가평에 가면 목욕탕부터 알아보시라고 부탁했다.
20. 아재비고개 가는 길 바라본 명지3봉과 명지2봉의 연릉
21. 얼레지, 아재비고개에서
22. 얼레지, 아재비고개는 거대한 화원이었다.
23. 얼레지
24. 얼레지
25. 뒤쪽이 연인산
26. 귀목봉
27. 명지2봉에서 바라본 명지1봉
아재비고개에서 명지3봉 가는 길이 줄곧 가파른 오르막 1.4km이다. 암릉이 나오면 등로 따
라 좌우사면으로 비켜간다. 바위 슬랩은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데크계단 4차례를 올라 가파
름이 수그러들고 이윽고 Y자 갈림길이다. 그 옆 바윗길을 더듬어 암봉인 명지3봉에 오른 건
발동작의 관성 때문이다. 바람이 몸 가누기가 어려운 정도로 세게 불어댄다. 여느 때는 빼어
난 경점인데 오늘은 미세먼지로 천지가 뿌옇다.
명지3봉에서 명지2봉까지 이정표 거리 0.8km. 주릉의 암릉 아래 평탄하게 사면 도는 돌길이
다. 그래도 조망이 궁금하여 등로 벗어나 잡목 헤치고 암봉에 올랐으나 사방이 잡목 숲으로
가렸다. 명지2봉. 이제 휴식한다. 탁주는 동났고 챔프 님이 집에서 가져 오고 새들 님이 아재
비고개에서부터 대간거사 총대장님 손을 거쳐 건네받은 코냑을 정상주로 분음한다. 안주는
메대장님이 손수 깎은 과일(참외)이다. 향긋하게 혀를 감기는 맛이 옛날 싸롱에서의 술맛보
다 백배천배 더 낫다. 그때는 이 명주를 물 들이키듯 했으니 기실 아무 맛도 몰랐다.
이다음 휴식은 명지1봉이다. 1.2km의 절반인 0.6km를 내렸다가 나머지 절반 0.6km를 오른
다. 내리고 오를 때 등로 옆의 봉봉을 들러보지만 조망이 별로 좋지 않다. 카메라만 무겁다.
명지1봉 오르는 중턱의 오른쪽으로 익근리주차장 가는 ┣자 갈림길이 눈 쌓인 어느 해 겨울
에는 아주 고약했다. 오늘과는 반대로 명지1봉에서 명지2봉을 혼자서 가는데 여기서 두 번
이나 익근리주차장 쪽으로 잘못 갔다가 뒤돌았다.
명지1봉. 명지산 주봉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랐다. 바위 삐쭉삐쭉 솟은 정상은 비좁아 교
대로 들른다. 명지산 연봉 중 최고의 조망이 오늘은 무망이다. 단체 기념사진은 정상 살짝 벗
어난 양지쪽 사면에 모여 찍는다. 하산! 해피 님의 구호가 없으니 어째 어수선하다. 잘난 등
로 따른다. 경주하듯 줄달음한다. 어차피 고개 들어 보이는 것 없고, 고개 숙여 보이는 것 없
으니 막 간다.
오른쪽으로 인적 소란스레 익근리주차장 가는┣자 갈림길이 금방이다. 직진하여 사향봉 가
는 길은 한갓지다. 암봉이 나오면 얌전히 좌우사면의 등로 따라 돌아 넘는다. 북사면 도는 길
은 얼음이 아직 미끄럽게 남았다. 오르고 내리고 몇 번 출렁이다가 1,008m봉이다. ‘장막
봉’이라는 표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사향봉은 여기서 0.4km를 더 가야 한다.
우리는 1,008m봉에서 북동진하는 능선을 내린다. 이정표에 맹구스럽게 ‘등산로 없음’이라고
한다. 색 바랜 몇 장의 산행 표지기가 흐릿한 인적과 함께 안내한다. 한 차례 수북한 낙엽을
신나게 지치며 내리고 나서 갑자기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
다. 절벽과 맞닥뜨리는가 싶어 오른쪽 능선으로 갈아탔는데 거기가 맞았다. 대 트래버스 한
다. 가파른 협곡 사이를 가로지를 때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그때는 우리를 안내했던 산행 표지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렵사리 주릉에 들고 이번에는 확실
히 절벽이다.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내린다. 여기도 절벽이다. 다래덩굴을 자일 삼아 붙들
고 내린다. 식겁한다. 대체 김형수의 『韓國400山行記』 등 지도에 표시된 등로가 어디로 갔
을까? 산행 표지기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614.6m봉을 넘으니 비로소 거칠던 등로가 차분해진다. 여기저기 둘러보아 푸릇푸릇한 산
빛을 감상할 여유가 생긴다. 봄날을 간다. 산기슭 덤불숲 뚫어 물가 펜션이고 적목교 건너 거
릿내이고 영화삼거리 영화교 건너 75번 국도 갓길에 노란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28. 귀목봉
29. 멀리 가운데는 청계산
30. 명지1봉
31. 명지1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명지2봉
32. 명지1봉에서
33. 등로 주변의 낙엽송 숲
34. 멀리는 화악산
35. 거릿내, 앞의 산등성이를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