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진특별반 - 특별한 사진?
'특별' 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일단 경계심이 앞선다.
난 이제 '보통' 이 좋을 나이다.
특별은 대체로 터무니 없이 비싸거나, 뭔가 모가 나거나 사람이 모질거나.
그런데, 나는 이 봄, 지리산행복학교에서 '사진특별반'을 선택했다. '특별한 사진' 을 추구할 것 같았다.
내게 특별한 사진은 숨 쉬는 것을 잊을 만한 미인이 피사체거나,
까무러칠 것 같은 곡선을 가진 누드이거나, 대체로 내 수준에서는 그런 것이다.
내심, 아래 정도면 사진특별반에 등록해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면사포를 쓴 여인이 다른 여자의 지퍼를 올리고 있는가? 아니면 벗기려는가?"
즉, 인간의 헛된 껍데기를 벗기는가? 입히는가? 뭔가 철학적이지 않는가?
글로 써서 공개하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고백하거니와 엉덩이에 눈이 먼저 간 것이 사실이다.
2. 아침 8시에 시작하는 수업 - 잘 못된 선택?
첫수업을 하동 쌍계사에서 아침 8시에 시작한다고?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수업료는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지도교사(이하 교수님)님이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니까.
시간에 맞추려면 두어시간 빨리 일어나야한다.
달리면서 보니, 밖이 영하 5도다.
8시가 되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문자가 왔다.
70여 Km를 달려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입구에 이르를 즈음이다.
흐구, 첫날 부터 지각이다.
"사천왕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필 청룡인월도와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쥐어 팰것 같이 눈을 부릅뜬
사천왕문에서 교수님께서 기다리신단다.
초등학생이 지각한 느낌이다.
절반은 놀자는 것이 지리산문화학교 프로그램 아닌가?
잘 못 선택했다. 후회한다.
그러나, 나는 교수님 한마디에 그냥 수강하기로 했다.
"이 아침에 비추는 햇빛이 소중합니다. 아침 햇살이 무엇보다 사진을 아름답게 합니다."
어딘선가 본듯한 문구, 사진은 빛의 예술입니다.
3. 궁리하다- 임신했다고?
교수님께서 사진 전시회를 다음 주에 한다고 초대장을 주셨다.
영어로 쓰였다.
"태진 공원이 어딥니까?"
Park TaeJin, 틀림없이 '태진 공원' 영어 표기이다.
아래 사진도 공원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Deliveration of Park TaeJin이라는 전시회는
'태진공원의 탄생'이다.
태진공원이 탄생하기 위한,
어떤 고통을 사진에 담아 전시회를 할까?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하고 태진 공원이 어디냐고 여쭸다.
"태진 공원이 아니라, 박태진, 내 이름입니다."
뭐라고요?
박씨는 영어로 쓰기가 참 어렵다.
Park은 공원이고, Bark은 개가 짖고, Pak은 파키스탄인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고...
다시보니,
Deliveration of Park TaeJin이 아니고, Deliberation of Park TaeJin이다.
박태진 본인을 심사숙고(궁리)한다는 것이다.
출산을 유식하게 delivery라고 한다.
배달하는 뜻이 있는 deliver의 명사형이다, deliveration이 아니고.
또 망했다. 돌아온지 40년 가까이 된 미국 유학을 다시 가야겠다.
교수님, 본인은 그만 궁리하시고,
이제는 멋진 사진 비법을 전수하는 것을 궁리하고 계시지요?
오전 3시간 지리산 부근 촬영, 점심식사, 오후 2시간 사진을 돌려보며 잘 찍는 법 궁리. 이런 순서로 사진특별반의 수업은 진행된다.
난 첫날,
사진보다 점심 매뉴를 뭐로 할까 궁리했다.
4. 사진과 시 - 디카시반 첫수업, 복수전공
오후 3시쯤 수업이 끝나므로,
5시쯤 시작하는 디카시반을 함께 수강해도 좋다.
나와 사진반 교수님도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디카시는 이원규 시인님께서 궁리하시고 사진을 직접 찍고 시를 쓰신다.
시와 사진!
멋지지 아니한가?
아래는 첫수업 강의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사상의 감각화, 시각의 감성화, 관념의 시각화"
햇살 한조각이 다람쥐 꼬리처럼 내 목을 감싼다 - 김남주 시인
시를 쓰는 것은 상처에 햇빛을 쪼이는 것 - 이원규 시인 굽은 새끼발가락
심장을 꺼내 개울물에 씼었다 - 정호승 시인
매화에게 매년 아름다워라고 강요하는 것은 예술의 비정함에서 온 것이다. - 이원규 시인
이원규 시인님께서 들려주신 박완서 작가의 사연도 참 서럽다.
남편이 먼저 죽고,
스물다섯 아들이 죽었을 때,
가슴 속에 살려 둔
신마저 죽여 버린 그녀가
봄마다 섬진강을 찾아와
소주 석잔을 마신 뒤,
매화 그늘에 앉아
가는 손가락 떨며
담배 한개비 얻어 피우고,
글을 썼다.
이제 그녀도 가고,
매화는 봄마다 기다리는데
그녀의 글을 기억하는 사람들만
햇살처럼 왔다간다.
이렇게 고쳐쓰니,
나도 시인이 된 것 같다.
이게 디카시반의 첫수업의 효과이다.
5. GROTTO - 숨구멍을 찾아 오셔요
목 놓아 울고 싶으면,
섬진강으로 오세요.
목이 터지게 소리치고 싶으면,
지리산으로 오셔요.
얼음장에 난 조그만 숨구멍,
지친 토끼가 숨는 굴,
발가락 부러진 사람끼리,
양지쪽 햇볕에 꺼내놓고
서로 호호 불어 말려주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크게 울리는,
손가락 누름 한번으로도 내 맘을 담아내는,
시와 사진이 있는 그로토(grotto),
이곳으로 오셔요.
* 그로토(grotto): 거친 세상의 풍파를 피하는 아늑한 작은 동굴
* 초등 때 줄반장 이후, 사진특별반 반장이 되었으므로, 사진반 홍보를 하면 좋겠다는 교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글을 씁니다.
* 더구나, 교무처장님이 첫수업 후기를 쓰면 무슨 혜택도 있고, 학생들이 추가 수강을 한다고 했어요.
* 시인이 되고 싶은가요?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둘 다 되고 싶지요? 그러시면, 사진반과 디카시반을 추천합니다.
2024.03.12. 최진종 씀
첫댓글 디카시가 디카와 시의 합성어 였군요 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네, 담월님. 사진반 교수님께서 수강생 9명을 위해 울산에서 달려오시는데, 9명은 부족해서 제가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사진반과 디카시반을 연결하여 수업이 가능하므로, 사진반이 20명쯤으로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멋진 후기를 쓰시는 분과 같은 반이 되었다는 영광~~~!!
사진특별반이 더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대명처럼, 칭찬도 이쁘게 해주시네요. 지리산학교에서 얻은 위로와 칭찬에 대한 조그만 보답입니다. 고맙습니다.
오!!!
사람도 멋지신데
글도 멋지시고
오우~
감탄연발입니다^^
사람도 멋지다는 말, 취소하지 마셔요. 항상 고맙습니다. 지리산학교가 숨구멍이 되는 여러 사람들이 있어요.
글도 잘 쓰시고 정리도 잘 하시고 !
타반은 따라갈수 없는 넘사벽이시네요 ㅎㅎ
훌륭하시옵니다. 글 잘 봤습니다 ^^
고맙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선생님의 탁트인 (득음하신) 판소리 한구절을 반드시 배우겠습니다.
아무도 따라 갈 수 없는 멋진 후기입니다.
역시 사진반 하실려구 디카시반 먼저 수강하신거죠?
멋지세요 ^^
항상 애쓰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진도 좋고, 디카시고 좋은데, 행복학교 선생님들이 더 아름다워요.